페더러와 나달의 호주 오픈 결승전을 보고

페더러와 나달이 그랜드 슬램 대회의 결승전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기대한 이는 거의 없었다. 어제 경기는 결과보다 만남이 더 극적이었다.
어제 경기 시간은 페더러의 페이스 덕분에 세 시간을 조금 넘겼는데, 다섯 세트를 치르면 다섯 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 그랜드 슬램 결승전 구경은 기복 많은 인생의 축도판을 보는 듯하다. 강한 선수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선수가 이긴다는 교훈을 늘 준다.
 
어제 밤 호주 멜보른에서 열린 호주 오픈 테니스 결승전에서 로저 페더러(스위스)가 宿敵인 라파엘 나달(스페인)를 상대로 다섯 세트 경기를 펼친 끝에 3-2로 이겼다. 35세의 페더러는 18회째의 그랜드 슬램(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던, 유에스 오픈) 우승을 기록하였다. 나달은 14회, 조코비치는 12회이다. 페더러는 2012년 윔블던 이후 처음으로 그랜드 슬램 우승을 달성하였는데 역대 그랜드 슬램 우승자 중 두 번째로 고령이다. 30세 이상 선수가 그랜드 슬램 결승전에서 맞붙은 것은 2002년 유에스 오픈에서 피트 샘프라스가 안드레 아가시와 격돌한 경우가 마지막이었다.

작년 페더러는 무릎 부상으로 하반기를 포기하였다. 전성기를 지나 그랜드 슬램 우승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깬 위업 달성이었다. 지난 10여년 간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세르비아), 머레이(영국)는 그랜드 슬램 우승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누가 역대 최강이냐가 논란거리인데 어제 우승으로 페더러가 최강이란 데는 異見이 별로 없게 되었다.

페더러와 나달이 붙으면 접전으로 가도 페더러가 지는 경우가 많았다. 어제도 페더러가 첫 세트를 6-4로 이겼으나 2세트에선 3-6으로 졌고 3세트에서 6-1로 이겼지만 4세트에선 3-6으로 졌다. 5세트 첫 게임에서 서브권을 가졌던 페더러가 지는 바람에 1-3으로 몰리다가 逆轉에 성공하였다.

페더러는 어느 경기장에 가든지 팬들이 많다. 어제도 호주 사람들은 그를 일방적으로 응원하였다. 페더러는 늘 정리된 사람처럼 깔끔하고 경기도 예술적으로 한다. 强서브와 백핸드 플레이가 勝因이었다.

어제 경기는 테니스 역사상 최고 시합은 아닐지 모르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경기였다. 나달도 최근에 손목 부상으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하였다. 올해 30세로서 페더러보다 다섯 살 아래이지만 2000년대에는 두 사람이 결승전에서 자주 만나는 라이벌이었다. 나달은 서브력이 떨어져도 왼손잡이의 利點과 혼신을 다하는 鬪志로써 감동을 주는 경기를 한다. 특히 클레이 코트(프랑스 오픈 등)에서 강하다.

전성기를 지난 페더러와 나달이 그랜드 슬램 대회의 결승전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기대한 이는 거의 없었다. 어제 경기는 결과보다 만남이 더 극적이었다. 페더러는 우승 컵을 받는 자리에서 "내가 졌더라도 행복하였을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2009년 호주 오픈 결승전에서 페더러는 나달에게 2-3세트로 졌다. 시상식에선 드물게도 울음을 터트렸었다.

두 사람은 싸우면서 친해진 경우이다. 냉철한 페더러와 뜨거운 나달을 보면 스위스와 스페인의 국민성을 대표하는 것 같기도 하다. 페더러의 부인은 테니스 선수 출신으로서 늘 관중석에서 응원을 하는데 좀처럼 웃지 않는다. 남편보다 더 걱정이 많은 표정이다. 어제는 우승이 결정되자 배를 드러낼 정도로 뛰어 올랐다. 여자 쌍둥이, 남자 쌍둥이를 낳았다.

어제는 졌지만 나달은 역대 그랜드 슬램 결승전에서 페더러를 7-3으로, 역대 종합 전적에선 23-12로 앞서고 있다. 올해 호주 오픈에선 조코비치와 머레이가 하급 랭킹 선수에게 져 일찍 탈락하는 바람에 페더러-나달의 결승전 成事 여부가 話題였다. 두 사람은 상승세의 도전자들을 차례로 꺾고 결승전에 올라와 전성기에 못지 않은 최고 수준의 경기를 보여주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영어권에선 이런 시합을 epic이란 단어로 표현한다).

어제 경기 시간은 페더러의 빠른 페이스 덕분에 세 시간을 조금 넘겼는데, 다섯 세트를 치르면 다섯 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 그랜드 슬램 결승전 구경은 기복 많은 인생의 축도판을 보는 듯하다. 강한 선수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선수가 이긴다는 교훈을 늘 준다.

나는 나달과 조코비치가 붙으면 나달 편을 든다. 나달과 페더러가 맞서면 後者 편이다.
굳이 이유를 단다면 조코비치보다는 나달이 순수하고 겸손하며 나달보다는 페더러가 격조가 높고 신사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BBC는 어제 경기의 논평에서 "두 사람이 다 이길 수 있었으면 좋았를 경기였다"고 했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사를 잠시 잊게 하는 예술 같은 스포츠 타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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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목천리 2017-01-31 오전 11:11

    미친 세상에서 한 줌도 안 되는 의인들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는 나라를 지탱하고 계십니다. '나달처럼 순수하고 겸손하게, 페더러처럼 격조 높고 신사 답게', 조코비치처럼 생동감 넘치게, 이 위대한 선수들이 만들어 나가는 테니스 세상보다 필요하다면 더 격렬하게.

  • 늦지않게 2017-01-30 오후 8:11

    저도 설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결승전을 느긋하게 너무도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저도 페더러를 응원했었는데 이유는 피터 샘프라스이후 거의 사라져가는 서비 앤드 발리의 교과서적인 정석 플레이를 페더러가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라켓의 파워가 워낙 좋아져서 아가시 이후로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베이스 라인 플레이로 승부를 걸지만 페더러는 베이스라인 플레이와 서브 엔 발리를 적절히 구사하면서 그야말로 테니스의 교범을 보여 주니까요. 몇 년 전인가 나달에게 결승에서 지고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선한데 어제 되갚아 주는 것 같아 특히 기뻤습니다. 제 생각인데 승인은 그의 우승 소감에서도 말했듯 졌어도 행복했을 거라는 여유가 아니었을까요? 한가지 사족을 말하자면 페더러도 어떤 질병으로 스위스 군대 면제를 받았다는 사실......

  • jws3127 2017-01-30 오후 12:13

    조기자님!
    지금 제 입에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오고 있습니다.
    페더러와 나달이 아니라 바로 '조갑제'입니다.
    탼핵정국에 대응하는 조기자님의 일정과 글쓰기가 거의 살인적인데 그 와중에 호주 오픈 결승전을 관전하고 이렇게 수준높은 관전평을 쓸 수 있는 것은 인간사에 대한 갚은 성찰과 폭 넓은 식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겠죠.

    지금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강하지는 않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조기자님 말씀대로 결국은 태극기가 이길 겁니다.

    부디 건강에 유의 하십시오.

  • naidn 2017-01-30 오전 11:57

    황 대행이 대통잇는 날 ,
    조 애국자와 취임축하 테니스 내기 한 번 합시다.
    삽겹살에 꼬냑 한 잔 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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