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법정의 진실과 형장의 진실
계획, 위장, 책임전가
이 책의 마무리를 지을 단계다. 이 시점에서 나의 주관적 판단을 밝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오휘웅 씨는 과연 억울했는가에 대한 나의 의견은 이렇다.
법원이 오 씨를 범인이라고 판단한 이유는 여럿 있으나, 결국 두이분 여인의 말은 믿고 오 씨의 말은 믿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 그런 판단의 근본이었다.
지금 비로소 우리는 두 인간을 총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서 있다. 공판정처럼 시간과 공간이 한정되고 거기에서 드러나는 사실들이, 여러 가지 규칙에 의해 제약받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이미 무덤으로 들어가 버린, 정리된 두 인생의 전체상을 넓게 볼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는 얘기다.
먼저 두이분 여인을 본다.
이 젊고 영리하며 예쁜 여자는 가난에 허덕이면서, 동시에 성에 굶주리고 있었다. 그 사건 10개월 전에는 음식에 독을 타서 남편을 죽이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혼하자는 이야기도 남편에게 꺼냈다. 여덟 달 전쯤부터 오 씨를 알게 됐고 친해졌다. 사건 나기 보름 전에는 최초의 육체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 두 여인은 오 씨에게 같이 살자고 했고, 오 씨는, 당신이 주변을 정리해야 같이 살 수 있겠다고 했다. 그 무렵 두 여인은 옆집 사람에게 ‘20만 원 사기 운운’하는 이야기를 해놓는다. 사건 나기 열흘 전에는 다량의 아티반을 사 모아두었다.
이 무렵 오 씨가 어느 처녀와 선을 보았으며 곧 약혼할 것이란 소문을 듣고, 두 여인은 그 처녀의 험담을 하고 다니고 약혼하면 칼부림이 날 것이라고 위협을 하기도 했다.
사건 나기 사흘 전부터는, 밤늦게까지 열어놓던 가게 문을 저녁 무렵부터 일찍 닫았다. 사건이 난 12월30일 오후 6시에 두 여인은, 평소엔 남편이 술을 너무 마신다고 싸움질을 했던 사람이 소주 한 병을 사가지고 가서 남편에게 주었고, 정시화 씨는 다 마셨다. 그 직전에 두 여인은 사이다에 아티반 10알을 풀어 남편뿐 아니라 두 아이에게 나눠 먹였다. 신경안정제와 술을 함께 마시면 상승작용으로 더 깊게 잠들게 된다.
이날 오후 7시께 두 여인은, 평소에 별로 교류가 없는 삼성라사에 나타났다. 여주인에게 20만 원을 가져간 사람이 물건을 갖고 오지 않는다고 푸념을 하고 돌아갔다.
오후 7시40분께 오휘웅 씨의 동생 오택석 씨가 두 여인 집에 들렀다. 술에 취한 정 씨가 오 씨에게 술을 권하니 두 여인이 말려 오 씨는 그냥 나왔다.
오후 8시15분께 오휘웅 씨가 두 여인 집에 나타났다. 두 여인은 인삼주를 한 잔 따라 오 씨에게 주었다. 오 씨는 이 집을 나와 사진관으로 갔다.
오후 8시25분께 오 씨는 두 여인 집으로 다시 왔다. 가게 문이 꽁꽁 닫혀 있었다. 사가지고 온 군고구마 봉지를 건네주었다. 두 여인은 한 조각만 먹고는 더 먹지를 못했다. 사진을 같이 보았다(오 씨는 그리곤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는 주장).
오후 8시40분께 두 여인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삼성라사에 나타나 ‘20만 원 사기 운운’ 이야기를 또 했다. 손가락에 피가 묻어 있었다. 두 여인은 금방 나갔다가 피를 씻고 다시 나타나, 큰집에 간다면서 집을 봐달라고 부탁하고는 나갔다.
두 여인은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가다가 쉬었다 가다가 쉬었다 하면서 오후 9시30분께 정 씨의 큰집에 나타났다.
시어머니에게, 또 ‘20만 원 사기 운운’ 이야기를 했다. 무를 써는 이 여자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오후 10시40분께 두 여인은 다시 삼성라사에 나타났다. 집에 도둑이 든 것 같다면서, 이옥련 씨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두 아이와 남편이 죽어있고 옷가지가 흐트러져 있는 방안에서 쓰러져 통곡을 했다.
오후 11시께 두 여인은 실신상태로 병원에 운반되어, 그날 밤은 병상 위에서 환자 대접을 받으며 보냈다. 경찰은 두 씨가 퍼뜨린 ‘20만 원 사기 운운’하는 이야기에 속았는지, 이 사건을 자살로 보고했다. 이 시점까지는 두 여인의 각본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그 다음날 경찰은 두 여인을 수상하게 여기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두 여인은 “아이구, 아이구, 아이들은 안 죽일 줄 알았는데…”라고 푸념하면서 오휘웅 씨가 살해했음을 내비쳤다.
1월2일 두 여인은, 오 씨가 살해범이고, 강도사건으로 위장하도록 시킨 것도 오 씨라고 진술했다.
1월9일 두 여인은, 아티반을 남편과 두 아이에게 먹인 사실을 비로소 털어놓으면서, 이것도 “오 씨가 먹여놓으면 내가 와서 처치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유치장에서 두 여인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경만 외었다.
검찰에 송치된 뒤, 두 여인은 아티반을 먹인 것은 오 씨가 시켜서 그런 것이지만, 죽이러 오겠다고 오 씨가 말한 적은 없으며 나중에 생각해보니, 오 씨가 죽이기 쉽게 약을 먹이도록 한 것 같다고 했다. 오 씨가 범행을 부인하자 두 여인은 검사에게 “그를 사형에 처해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오 씨를 저주하기 시작했다(경찰에서는, 오 씨를 사랑하고, 앞으로도 같이 살겠다고 고백).
1심 공판이 오 씨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고 걱정하던 두 여인은 감방 변소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했다.
무계획, 태연, 발버둥, 항변, 저주
오휘웅 씨를 본다.
이 청년은 일련정종의 청년 간부로 무직상태였다. 같은 신도 두 여인과는 1974년 가을부터 친해졌다. 12월15일 첫 육체관계를 가졌던 것 같다. 그 무렵 오 총각은 어느 처녀와 선을 보고 결혼할 뜻을 굳히고 있었다. 사건 나기 나흘 전 그는 수도검침원으로 취직했다. 사건 당일 그는 정상적으로 업무에 임했다. 일과가 끝난 뒤엔 직원 망년회와 신도집회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오후 8시15분께 두 여인 집에 들렀다. 인삼주를 한 잔 얻어 마시고 나와서는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찾고, 아직 뽑지 않은 사진을 빨리 뽑아달라고 부탁한 뒤 군고구마를 사가지고 두 여인 집에 다시 들러 군고구마를 주고, 사진을 보여주었다.
오후 8시30~40분 사이 오 씨는 자기 집에 도착, 이미 진행 중이던 좌담회에 참석, 교리문답에 참여했다.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9시20분쯤 좌담이 끝나자 두 신도에게 취직에 따른 신원 및 재정보증서를 부탁했고, 다른 신도들과 기념사진을 나눠 보았다. 그날 밤 잠을 자다가 오 씨는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고 20시간 만인 12월31일 오후 9시에 풀려났다. 1월1일 아침 아버지의 생신잔치를 주관한 뒤 이발소에 갔다. 경찰이 또 부른다는 전갈을 받고 자기 발로 파출소에 찾아들어갔다. 그날 점심때는 아버지와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경찰이 묻지도 않고, 보내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오 씨가 범인이라면 공범 두이분 여인이 이틀째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럴 수 있나?).
그날 밤 자정께 그는 경찰에서 ‘범행’을 자백했다. 새벽엔 수사과장과 녹음대화를 했다. 범행에 대한 진술내용과 현장 상황은 거의 부합되지 않았다. 오 씨는 유치장 안에선 태연한 모습이었다. 검찰로만 넘어가면 곧 풀려나올 것이라고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다. 현장검증에서 오 씨는 ‘범행’을 재연해 보였다.
검찰로 넘어가자마자 오 씨는 두 차례 범행을 부인했다. 오 씨는 아버지에게도 억울하다면서 변호사 선임을 부탁했다. 오 씨가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한 직후, 가족 면회가 금지됐다. 2주간 아무런 조사를 받고 있지 않던 오 씨는 24일 오전엔 범행을 부인하다가 밤늦게 다시 범행을 시인하기 시작했다.
1심 공판정에 나와 오 씨는 경찰과 검찰에서 한 자백을 전부 부인하기 시작했다. 두 여인이 자살했다. 그 소식을 접한 오 씨는 “이제 빠져나가기 어렵게 됐다”고 실망했다.
1, 2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면서 그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대법원이 상고기각 판결을 하자, 그는 서울구치소 목사와 교무계장에게 “나는 억울하니, 누명을 벗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밤엔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재심청구를 했다. 기각되면 항고하고, 이것도 기각되면 재항고하고, 여섯 번을 되풀이했다.
하느님께, 누명을 벗게 해달라는 2년 작정 기도도 했다. 효험이 없자 이젠 교회에 나갈 마음이 없어졌다고 투정을 부렸다. 가족에겐, 언론기관을 찾아가 호소해보라고 부탁했다. 목사, 구치소 직원, 신앙의 자매, 동료 죄수들에게도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했고, 이들은 모두 오 씨가 억울하다고 믿게 됐다.
집행장에서 그는 억울하다는 말과 함께, 사후의 명예회복을 가족에게 당부하는 말고 수사관 및 증인들을 저주하는 유언을 한 뒤 순순히 죽음을 맞았다.
오 씨는 위선자인가, 슈퍼맨인가
위의 두 인간 가운데 법원이 믿기로 한 것은 두 여인이었다. 두 여인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이 사건을 사전에 오랫동안 치밀하게 단독 계획했고, 사후에는 강도나 자살로 위장하기 위하여 무서운 집념으로써 명연기와 거짓 진술을 되풀이했던 사람이다.
오 씨도 수사 받을 때 거짓말을 한두 가지 했으나, 모두가 지엽적인 부분에 대한 것이었고, 사건수사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두 여인이 수사를 받으면서 한 거짓말 가운데 객관적으로 확인된 거짓말은 그 전부가 범행의 계획, 사주, 실행, 위장 책임을 오 씨에게 떠넘기려는 것이었다. 두 여인은 범행과 그 뒤의 위장 계획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고, 오 씨는 판결문에서도 나타나듯 아무런 계획을 갖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법원은 거짓말과 위장의 명수인 두이분 여인의 자백을 믿기로 하고, 오휘웅 씨의 진술 가운데서는 경찰과 검찰에서 한 자백만 믿고, 법정에서 한 진술은 안 믿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것이 오 씨가 유죄라고 인정한 판단의 근거였다.
법원의 판단대로 오 씨가 범인이라면, 오 씨는 이런 인간이란 결론을 내려야 한다.
범행 직전까지도 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던 사람이 범행 몇 분 전에 두 여인의 막연한 눈짓에 살의가 발동하여, 순식간에 세 사람을 처치하고, 현장엔 지문은 물론 소지품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옷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채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 웃는 얼굴로 좌담회에 참석, 교리문답을 한 다음엔, 재정보증서를 부탁하고 사진까지 나눠 보며 희희낙락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공범인 두 여인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데도, 달아나지 않고 두 번씩이나 경찰에서 오라고 하면 제 발로 가고, 가라 하면 집에 가서 머물러 있는 강심장 중의 강심장, 또는 바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경찰에서 자백을 할 때는, 일부러 현장 상황과 부합되지 않는 방향으로 교묘하게 뒤죽박죽의 진술을 뒤풀이하여, 그 뒤 변호사나 나 같은 기자가 자기의 무죄를 믿도록 유도한 천재가 아니면 안된다.
검찰에 넘어가서는 범행을 부인하다가 갑자기 2주일 만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죽음을 각오하고 범행을 시인한, 순진무구한 청년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놓고는 법정에 나가서 다시 결백을 주장하는 후안무치한 인간이 아니면 안 된다.
목사, 감방친구, 신앙자매, 구치소 직원들에게도 그의 무죄를 확신시켜 줄 만큼, 4년 동안 한치의 빈틈도 없이 명연기를 해온 희대의 배우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2년 동안 작정기도란 쇼를 하고, 집행장에선 “억울하다”는 거짓 유언과 “원혼이 되어 복수하겠다”는 거짓 저주를 남김으로써 감히 하느님을 속이고(더 나아가서는 부처까지도) 나 같은 고참기자까지도 유혹한 희대의 사기꾼이지 않으면 안 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강심장(또는 바보), 순진무구한 청년, 후안무치한 인간, 명배우, 희대의 사기꾼의 얼굴을 다 가질 수 있는 인간은 슈퍼맨이다. 그런 슈퍼맨이 중학교를 중퇴하고, 부두 노무자로 일했고, 일련정종을 믿고, 수도검침원으로 취직했다가 사형을 당했으니 나라를 잘못 택한 것인가, 시대를 잘못 만난 것인가.
두 사람의 마지막 말, 그 선택의 조건
대법원 판결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두 피고인은 바로 죽기 30분 전쯤에도 ‘누명 쓰게 되었다’고 연거푸 네 번씩이나 중얼거렸다는 것인바 이와 같은 망 두이분의 증인 이주순에 대한 진술은… 모든 것은 체념한 상태하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참작할 때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 정황은 그 진술이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자살 직전에 남긴 말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판시였다.
그렇다면, 똑같은 논리로 오 씨가 집행 전에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에서 남긴 “나는 누명 쓰고 죽는다”는 유언에 대해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 정황은 그 진술이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판단해야 마땅하다.
이 무슨 언어의 유희인가! 지구보다도 무겁다는 인간의 생명을 말살하는 결정을 그런 식의 덧없는 말과 논리로써 했다는 점이 이 사건의 비극이며, 재판과 인간의 한계를 새삼 확인시켜준 교훈이다.
너무 가혹한 취재란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 책을 쓰기 한 달 전에, 사건 관계자 두 사람을 더 만났다.
그때 경찰 수사 책임자였던 ㅈ 씨는 비교적 솔직하게 말했다.
“아직도 오 씨가 범인이라고 믿는다.”
“장갑 수사가 안 된 것은 인정한다.”
“고문에 대해선 모른다.”
“담당 형사들이 몇 번 검사에게 불려가더라.”
“두이분이가 자살하여 오 씨가 무죄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 여인의 자살을 막지 못한 교도소의 책임이 크다.”
“의심이 간다면, 무죄를 선고해야지… 오 씨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한다면 검사와 판사의 책임이다.”
“그가 사형집행을 당했다는 기사는 잡지를 읽고 알았다. 만일에 억울한 사람이었다면 하고 생각하니, 괴로워서 종교에 귀의하고 싶은 마음이 나더라.”
김진우 1심 재판장(지금은 변호사)은 〈월간조선〉에 썼던 나의 기사를 못마땅해 하면서 “사물의 일부를 본 사람과, 전부를 본 사람의 차이다”고만 말했다.
(계속)
오휘웅 씨는 위선자인가, 슈퍼맨인가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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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9-14, 17: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