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시리아 여행기

이번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타도(打倒)됨으로써 어떤 변화가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암튼, 당시에는 한국과 외교 관계가 없는 나라를 여행한다는 것은 위험천만, 무모(無謀)한 짓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시리아 여행을 감행한 것은 요르단에 있는 동안 현지인과 한국인을 통해 안전하다는 확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요르단에서 시리아행 합승택시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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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만난 사람들 (252) - 긴장 반, 기대 반 시리아 여행

(English version is be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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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리아를 다년 온 지 벌써 17년째다(2007). 당시는 물론 지금도 大韓民國과 시리아 양국(兩國)은 미수교(未修交) 상태이다. 대신 그들은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이번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타도(打倒)됨으로써 어떤 변화가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암튼, 당시에는 한국과 외교 관계가 없는 나라를 여행한다는 것은 위험천만, 무모(無謀)한 짓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시리아 여행을 감행한 것은 요르단에 있는 동안 현지인과 한국인을 통해 안전하다는 확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대사관에 문의 전화를 했지만 불통이었다. 당시엔 스마트폰도 없던 시대라 직접 발로 뛰면서 정보를 입수해 교통편과 숙소(게스트하우스)를 찾아야 했다. 어떤 면에선 그 시절의 배낭여행이 그립기도 하다. 흥미진진한 얘깃거리가 더 많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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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르단에 있는 동안(2주일) 수도(水都) 암만을 중심으로 제라시, 사해, 페트라, 와디럼, 로만 원형극장 등을 구경했다. 이제 시리아로 들어갈 차례다. 나름대로 정보를 얻어 본 결과 시리아 입국 방법은 비행기가 아닌 이상 거의 다 합승 택시로 간다는 것이 틀림없었다. 요금은 4인 합승 조건에 일 인당 8JD~10JD(약 14,000원), 출발지는 압달리(구 버스 터미널). 우리는 오전 9시경 압달리에 도착했다. 시리아행 택시로 보이는 곳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이미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년의 중동인(中東人) 남녀 한 쌍이었다. 택시기사가 금방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 배낭을 뺏다시피 낚아채 자기 차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2인분 20JD를 내고 빨리 출발하잔다. 좀 깎아 보려고 했지만,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그냥 달라는 대로 20JD를 건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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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발! 나는 우리와 함께 탄 커플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조수석에 앉은 중동인 남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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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녕하세요? 어디서 왔어요?

J: 서울에서 왔습니다. 당신은요?

A: 난 이라크 출신이지만 사업 때문에 시리아에 살고 있습니다.

J: 그렇군요. 사업은 잘되고 있나요?

A: 상황에 따라 다르죠. 지금 여행 중인가요?

J: 네. 그래요. 아내와 함께 여행 중이에요.

A: 그렇군요. 시리아에서 즐겁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J: 그럴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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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길 나눠보니 이 사람은 시리아에서 토마토 등 과일을 받아 이라크로 수출하는 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우리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던 히잡과 차도를 두른 여인이 마침내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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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주 좋아 보이네요. 한국 여성들은 매우 쾌활해 보여요.

W: 칭찬 감사합니다.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은 대개 명랑해요.

A: 아라비아 음식 좋아하세요?

W: 네, 하지만 과일을 더 좋아해요. 특히 달콤한 포도와 체리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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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이 여인 역시 이라크인이었다. 그러나 부부는 아닌 듯싶었다. 하여간 이 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택시를 달렸다. 약 30여 분을 달렸을까 요르단의 이민국(移民國)에 도착. 간단한 출국 스탬프를 받고 곧이어 시리아령의 이민국에 도착했다. 이민 관리국 청사에는 입국 절차를 밟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약간 긴장됐다. 접수창구 위의 게시판에는 국가별로 비자비가 다양하게 적혀 있었다. 가령, 미국 50불, 일본 45불, 독일 45불 중국 25불 등 어림잡아 100여 개국이 나열돼 있었다. 혹시나 해서 봤다. 물론 아무리 봐도 大韓民國은 없었다. 대신 북한은 있었다. 비자비 없음이란 글과 함께. 당연한 얘기지만 공산권끼리는 다 그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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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이곳에서도 돈 욕심만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듯, 게시판의 여백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한국과는 국교가 없지만, 비자비 33불만 내면 비자를 발급한다.” 결코 적지 않은 비자비였지만 이는 아마 한국이 북한보다 33배나 더 잘 사는 나라이므로 그 정도는 내야 한다는 뜻인 듯싶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비싸긴 하지만 그다지 기분 나쁠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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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행인 것은 택시기사가 대부분의 우리 입국 수속을 대행해 주다시피 했다. 아마 자신이 직접 대행해 주는 것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쨌든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이곳 시리아의 이민국은 여타 다른 후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일 처리 과정이 너무나 원시적(原始的)이었다. 상당한 인내심 필요. 말하자면, 비자비를 내는 과정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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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첫 창구에서 내 여권을 받은 직원은 여권을 대충 훑어본 뒤 조그만 쪽지에 33US$라고 적은 뒤 나에게 건네준다. 그 쪽지를 들고 다른 건물에 있는 수납처로 가서 달러를 지불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다시 다른 쪽지에 뭘 적어서 내준다. 그것을 가지고 또 다른 옆 건물로 가서 내밀면 거기서 시리아 돈으로 바꿔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시리아 돈을 가지고 처음 내 여권을 받았던 창구에 가서 내밀면 그때야 비로소 비자를 주는 작업에 착수한다. 한 자리 건너에 있는 직원에게 뭐라고 얘기하면 그 직원이 여러 장의 인지(印紙)를 한 장 한 장 세어 본 뒤 건넨다. 그러면 그 직원을 그 인지를 또 한 장 한 장 내 여권에 풀칠해 붙인다. 그리고 그 옆 직원에게 넘기면 거기서 최종적으로 내 여권에 스탬프를 꽝 찍는다. 한편의 긴 드라마를 본듯했다. 이는 대체로 90년대에 중국 러시아 헝가리 불가리아 인도 베트남을 포함해 사회주의 국가나 그와 같은 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비효율의 극치라 하겠다. 그러나 나는 옆에서 구경만 했을 뿐 택시기사가 발 빠르게 싸다니며 다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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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택시는 달렸다. 그런데 시리아 땅으로 들어서면서 확연히 다른 현상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요르단에서 신물이 나도록 본 황량한 사막 산과 돌사막이 더는 안 보였다는 것. 대신 채소밭과 과일밭이 많이 눈에 띄었다. 도로에는 토마토를 가득 싣고 달리는 중소형 트럭들이 줄을 잇다시피 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시리아는 요르단에 비하면 턱도 없이 빈곤한 나라이거늘 이렇게 풍요롭게 보이다니. 다시 이라크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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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요르단과는 완전히 다르네요. 이곳은 요르단보다 자원은 훨씬 풍요롭게 보입니다. 근데 시리아가 요르단보다 왜 소득이 낮지요?

A: 간단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마다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겁니다. 농지와 인력, 노동력은 충분하지만, 전혀 성과가 없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그들은 전혀 효율적이지 않은, 비생산적인 멍청하기 짝이 없는 사회주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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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세상은 모순덩어리요 요지경(瑤池鏡)이라 하겠다. 시리아뿐만 아니라 미얀마며 아르헨티나며 짐바브웨 등이 다 그랬다. 눈에 보이는 것이 확 트인 기름진 땅이요 인력(人力)이건만(직접 가서 본 것임), 정작 이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들로 분류돼 있으니 이를 두고 어찌 모순된 세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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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시간을 달린 끝에 마침내 시리아의 수도(首都) 다마스쿠스에 도착했다. 우리를 내려 준 곳은 그냥 어느 도로상이었다. 여기서 적당히 시내 택시를 타고 가면 된다는 말을 남긴 택시기사는 휑하고 떠나버렸다. 그랬다. 빈 택시는 금방 다가왔다. 우리는 이라크인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눈 뒤 택시를 타고 헤어졌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그래도 이곳 다마스쿠스에서는 꽤나 이름난 세계의 배낭족들이 다 모인다는 알하라마인 게스트하우스였다. 도미토리룸 일인당 300 시리아파운드(약 6,000원). 체크인했다. 우선 샤워부터 해야 했다.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자그마치 40‘C라고. 천장의 선풍기도 지쳤는지 도는 것이 영 신통치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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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만난 사람들 (253) - 다마스쿠스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

(English version is be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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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都巿)들 가운데 하나를 들라면 '다마스쿠스’일 것이다. 이 도시는 자그마치 5천여 년 전에 세워졌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대표적인 문화는 역시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일 것이다. 그 흔적들을 다마스쿠스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주로 성당과 모스크다. 성경(聖經)은 모세, 바울, 세례 요한 등 무수한 인물들을 이곳 다마스쿠스와 관련해 기록하고 있다. 이슬람 역시 이곳을 4대 성지(聖地)중 하나로 꼽고 있다. 오늘날 다마스쿠스는 국경선에 의해 이스라엘과 이라크와 이란 등 주변 국가들과 서로 멀리 뚝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대(古代) 로마제국 시대에는 예루살렘과 다마스쿠스의 거리는 겨우 240Km에 불과했다. 상호(相互) 왕래가 빈번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마음 같아선 고대인(古代人)들의 발자취를 따라 이 길을 한 번쯤 걸어 보았으면 하는 강한 유혹을 받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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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는 꽤 이름이 알려진 곳이지만 건물과 내부 시설은 매우 낙후(落後)된 곳이다. 공동 샤워장은 지하실에 있고 1,2,3층 모두 숙소다. 아주 오래된 목조(木造) 건물이다. 보기에 따라선 꽤 고풍적(古風的)이라 할 수도 있다. 가령, 나무계단을 밟고 오르내릴 때마다 삐거덕 소리를 낼 만큼 오래된 목조 건물이지만 이것이 선진국(先進國)의 경우라면 고풍스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후진국(後進國)일 경우, 이는 매우 노후화(老朽化)되어 불안감을 주는 위험한 건물이다. 실례로, 내가 1984년 프랑스의 어느 지방(루쏭, 아미엥 등)을 여행할 때 묵었던 숙소를 들 수 있다. 이는 중세(中世)에 지어진 1000년 된 목조 건물의 수도원(修道院)이었다. 너무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 계단을 밟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마치 순식간에 내려앉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불안감을 가진 건 아니다. 오히려, 옛 중세 수도원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신기했고 뿌듯했다. 그러나 이곳 시리아는 달랐다. 매우 불안했다. 왜? 후진국이니까. 실제로 이들이 사는 주택가를 돌아보면 가난한 티가 줄줄 났다. 처마의 서까래나 벽에 붙은 부조물(浮彫物)들이 부식(腐蝕)돼 조그만 바람에도 위태위태했다. 세탁소, 이발소, 식당 등도 그랬다. 마치 한국의 가난한 시절 50~60년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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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층에 있는 도미토리방을 이용했다. 방에는 침대가 네 개 있는데 둘은 우리가, 하나는 프랑스 친구가 또 다른 하나는 현지인이 사용했다. 이 프랑스 친구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가면 밤늦게 들어오고 또 저 현지인(現地人)은 낮 동안 내내 침대에서 잠만 자다가 저녁이면 전통적인 아랍 복장을 하고 어디론가 나갔다. 그래도 서로 인사를 나누며 대화할 시간은 있는 법. 문제는 누가 먼저 말을 거느냐다. 나의 경우 대부분 내가 먼저 말을 건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인과 일본인 등 아시안들은 영어 대화를 못 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말문이 트이면 달라진다. 특히 서구인들이 그렇다. 대화에 더 적극적이다. 여태껏 그들이 대화를 피하거나 싫어하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만큼 大韓民國에 대한 인지도(認知度)도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튼, 나는 세계 배낭여행 중 가능한 한 많은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대화 내용을 역시 가능한 한 영어 그대로 올리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싫으나 좋으나 세계인들과 소통하려면 영어 외에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이 프랑스 친구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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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A: 하이. 어디서 오셨나요? 중국인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요?

J: 맞아요. 근데 우리가 중국인이 아니란 걸 어떻게 알았어요?

A: 이유가 있지요. 상하이에서 3년 동안 살았거든요.

J: 그래요? 무슨 일로 그렇게 오래 머물렀나요?

A: 그곳엔 영어 학원이 많아요.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J: 그렇군요. 그럼 미국인? 혹은 캐나다인?

A: 아뇨. 난 프랑스인이에요. 하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10년 동안 살았습니다.

J: 그럼 아직도 그곳에서 영어를 가르치나요?

A: 아니요, 끝났어요. 다시는 중국에 가지 않을 겁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J: 네. 알아요. 중국인은 좀 그래요. 알면 알수록 더 싫어진다고 할까.

A: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비슷해요. 내 몸을 보세요. 바싹 말랐잖아요. 중국 음식 때문입니다. 내가 먹을 게 없어요. 다 돼지비계로 요리하거든요.

J: 맞아요. 그들에게 돼지비계 없는 음식은 있을 수 없지요. 그런데도 중국 음식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있는 걸 보면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 이도 많은 것 같아요.

A: 물론...하지만, 어쨌든 중국 음식은 내 식성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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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의 말은 중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결국 상하이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 다마스쿠스에 왔다는 것이다. 현재 아랍어를 배우고 있으며 이곳에서도 장기 체류를 할 예정이란다. 세계 여행을 하다 보면 이 같은 친구들을 자주 본다. 여간 멋져 보이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인생(人生)을 더 넓은 세계에서 자기답게 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그렇다. 이런 친구들의 공통점은 영어 소통력은 기본이고 현지어와 문화를 배우는 데에도 열심이란 점이다. 이 프랑스 친구 역시 현지인 친구를 사귄 뒤 그의 집에서 생활하다시피 했다(*튀니스에서 만난 미국인 젊은이 스티브도 그랬다). 이는 현지어와 생활 문화를 익히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느 날 그는 우리 보고 자기의 친구 집에 함께 놀러 가자고 했다. 사양(辭讓)했다. 그 시간대가 밤일뿐만 아니라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였기 때문에. 그와의 대화는 계속됐다. 나는 그가 중국 상해에서 3년간 살았다는 얘기도 듣고 싶고 또 이곳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관한 얘기도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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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중국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보니 어때요? 잘 배우든가요?

A: 그런 것 같아요. 그들은 매우 실용적 마인드를 가졌어요. 영어 회화 연습하는 걸 보면 아주 적극적이죠. 프랑스인보다 중국인 가르치기가 훨씬 쉽습니다.

J: 중국어와 영어의 어순이 비슷해서 그럴 겁니다.

A: 네, 맞아요. 그 점이 많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J: 여기 다마스쿠스에서도 영어를 가르치고 있나요?

A: 물론 그러고 싶지만, 아직 탐색 중입니다. 그들의 성향이 어떤지.

J: 그 게 무슨 뜻이지요?

A: 이들의 반미 감정이 아주 심하거든요.

J: 공감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초강대국은 항상 그랬어요. 미국이라고 예외가 아니지요. 프랑스도 그런 적이 있었구요. 오히려 난 그런 점이 부러워요. 한국인은 그런 역사를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암튼, 내가 알기론 아랍인들도 영어 배우려는 열망이 대단해요. 미국인은 죽도록 싫어하면서도 그래요.

A: 맞아요! 분명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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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는 프랑스인이면서도 영어 가르치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실로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예전에 내가 프랑스 여행을 통해 직접 겪었던 그들의 콧대 높은 태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현실적으로 영어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더욱 분명한 건 어느 나라도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질서와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세계어 즉 영어는 강력한 창이자 방패다. 이를 가진 자와 갖지 않은 자의 대결은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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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쿠스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면 유난히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젊은이들이었다. 알고 보니 이들 대부분은 실업자(失業者)들이었다. 이미 얘기를 들은 바는 있지만, 막상 그 현장을 대하고 보니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었다. 실업자들, 특히 젊은이 실업자가 많은 사회는 어느 나라든 불안하고 또 실제로 위험하다. 이 이야기도 프랑스 친구의 입을 빌려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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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다마스쿠스의 사회 보장 제도는 어떤가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아요.

A: 아뇨, 문제가 될 게 없어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들은 일자리는 없지만 아주 좋은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 너무 착해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J: 정말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합니까?

A: 간단합니다. 파리나 유럽에 살고 있는 그들은 그런 폭력을 자주 일으켜요. 작년에 파리의 실직자들이 정말 심각한 폭력 시위를 벌인 것을 보셨을 겁니다. 이곳 사람들과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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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보니 이 친구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별로 희망적이진 않았지만. 이 친구의 말대로 선진국에서 이 같은 대량 젊은이 실업자들이 양산(量產)되면 결코 그렇게 조용히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친구의 말마따나 실제로 작년에 프랑스에선 연일 실업에 불만을 품은 이민 2세들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폭력 방화(放火)를 동반한 대형 시위를 했다. 그리고 그 불만은 어떤 경로를 통하든 정부에 반영되고 그 결과 실업률을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곳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는 아무리 실업자가 넘쳐나도, 아니 그 이상의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어도 정부를 향해 시위는커녕 불평불만조차 토로(吐露)할 수 없는 사회주의 체제의 나라였다. 이를 참작하면 별로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나라였다. 물론 잠깐 들렀다 가는 여행자에게 치안(治安)이 좋다는 말처럼 듣기 좋은 말은 없을 테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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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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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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