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고대 도시 아파미아 紀行

한때 50만의 인구, 발굴된 2km의 중앙大路를 따라 600개의 石柱가 나 있다.
시리아의 경치는 다양하다. 사막, 평원, 돌밭, 산악, 지중해, 황량한 광야, 그리고 호수들. 尙美會(02-734-1245) 여행단은 지중해변 항구도시 라타키아를 떠나 北進하면서 평야지대로 들어갔다. 두 산맥 사이로 비옥한 녹색의 카피트가 펼쳐졌다. 오론테스 강의 유역이기도 한 이 알가이브 평원은 한때 코끼리가 살았다고 한다. 이집트왕이 코끼리를 잡기 위해서 이곳으로 원정을 오는가 하면 로마와 싸워서 패배한 뒤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여기 망명을 와서 시리아 사람들에게 코끼리를 전투에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放牧場으로도 안성마춤인 이곳에 아파미아라는 거대한 유적이 있다.
아파미아(Apamea)는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로서 이 지역을 통치했던 셀레쿠스의 페르샤 부인 이름이다. 셀레쿠스는 유능한 행정가이고 외교관이었다. 시리아에는 그가 건설한 고대도시가 많다. 아파미아도 그 중의 하나이다.

셀레쿠스는 지금의 터키 안티옥을 수도로 하여 시리아 일대, 소아시아, 페르샤, 그리고 인도의 일부를 통치했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안티옥이라 이름 지은 것을 비롯하여, 어머니 이름을 따서 라타키아라고 붙이기도 했다. 그의 아내 아파미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샤 王女인 록사나와결혼한 관례를 따라서 얻은 여자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외국여자와 결혼할 것을 부하들에게 권했다.


사진1 : 아파미아의 중앙大路는 약2km. 오른쪽 石柱 뒤는 상점가였고 그 뒤에는 목욕탕, 극장 등이 있었다.


사진2 : 로마시대의 건축물이지만 그 양식은 그리스식 등 여러 가지이다. 일종의 古代건축박물관이다. 발굴된 도시는 극히 일부이다.

교통의 요충지인데다가 생산성이 높은 분지에 있던 아파미아엔 5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 아파미아의 황금기는 로마시대였다. 기원 전 64년에 이 도시는 로마의 폼페이 장군에게 점령당하고 셀레쿠스 왕국은 망했다. 서기 2세기에 이 도시는 큰 지진을 당하여 많이 부서졌다. 로마의 식민지였던 아파미아는 이 지진 뒤 재건되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적은 주로 이 재건된 부분이다.

전성기에 아파미아의 인구는 약50만 명이었다고 한다. 당시 세계 유수의 도시였다. 이 규모를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 石柱가 전봇대처럼 나란히 서 있는 중심 大路이다. 로마 도시엔 항상 이 남북방향의 중앙대로가 있다. ‘직선도로’ 라는 뜻의 카르도라고 불리는 이 도로는 너비가 약30m나 된다. 돌이 깔린 이 도로의 한쪽은 상점가였다. 남북방향의 중앙도로를 십자가 식으로 가로지르는 동서방향의 大路는 좀 짧다. 발굴된 이 아파미아의 카르도는 길이가 약2km이다. 石柱를 따라 걷다가 보면 기원 전 2세기, 즉 로마의 전성기로 돌아간 듯하다. 주변의 풍요로운 녹색 평원, 그 멀리 병풍 같은 산맥들이 유장하게 넘실댄다. 과연 5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겠구나 하는 감이 온다. 시리아의 지리 변화는 급격하다. 이런 대평원을 지나면 갑자기 사막으로 바뀐다. 이곳 사람들의 성격에 이런 풍경이 상당히 반영되었을 것이다.

시저가 죽은 뒤 클레오파트라의 애인이 된 안토니우스는 아르메니아 원정을 마친 뒤 이집트로 돌아가는 길에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이 도시를 방문했다고 한다. 50년 전만 해도 아파미아는 언덕뿐이었다. 1930년대 이후 벨기에 발굴팀이 이곳을 파헤쳐 누워 있는 기둥을 올려 세우는 등 복원작업을 벌이고 있다. 발굴된 부분은 50만 도시의 일부이다.

서기 2세기에 황금기를 보낸 아파미아는 그 뒤 비잔틴 제국 치하로 들어갔다가 6, 7세기엔 페르샤의 침략을 받았고, 7세기 말 시리아가 이슬람화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도시의 건축물은 그리스와 로마식이 大宗을 이룬다. 카르도를 따라 세워진 600개의 기둥은 거대 서양 건축양식을 다양하게 대변하고 있다. 건축박물관인 셈이다.
시리아 사람들은 특히 외국인들에게 친절하다. 다만 유적지엔 사진첩을 파는 사람들이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사진3 : 여행단의 일원인 嚴相益 변호사가 돌기둥 사이에서 명상중이다. 한가하게 유적지를 걷다가 보면 모든 존재하는 것에 대한 외경심과 애정을 갖게 된다. 어제가 없는 오늘은 없다.


사진4 : 5000년 전에 그러했듯이 양떼들이 풀을 뜯는다.


사진5 : 직선도로의 중앙지점. 아파미아는 아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목록에 오르지 않았다. 발굴이 더 진전되면 오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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