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세계최대의 교회가 있는 곳

시리아를 통치하던 비잔틴 제국 시절인 서기 490년에 14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한 이 교회는 당시 세계최대규모였다. 교회당 한 곳과 순례자용 세 棟의 건물터가 잘 남아 있다. 이 교회는 시몬이란 수도사 덕분에 세워졌다.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1민족1국가1국어의 전통을 이어온 한국인들은 인종적, 종교적, 언어적 다원성과 복잡성에 대한 이해가 생래적으로 부족하다. 그런 한국인들에겐 시리아와 같은 복잡다기한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민주국가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좋은 공부가 될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리아의 땅은 옛날 그대로 그 자리에 있지만 주인은 수십 번 바뀌었다. 오늘날 주인은 이슬람을 믿는 아랍족이지만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투르크족, 맘루크족, 그리스인, 로마인, 아람인, 아시리아인, 페니키아인들이 한때의 주인들이었다.
말이 다르고 얼굴이 다르고 생각도 다른 이들과 함께 섞여 산다는 것은 다름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키운다. 한국인이 머리는 좋지만 너그럽지 못하다는 평을 듣는 것도 다름을 체험해볼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19세기말 개화기 때 한국을 여행했던 서양인들의 기록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묘사가 있다. 조선팔도 어디를 가든지 아이들과 어른들이 異國人을 신기해하면서 쫄쫄 따라다니고 문틈으로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주인이 가장 크게 바뀐 것은 西로마가 멸망한 5세기였다. 로마의 멸망은 유럽 지배층의 교체를 의미했다. 로마 그리스인들이 지배하던 古代 세계가 무너지면서 게르만족이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했다. 롬바르드족은 북이탈리아, 고트족은 스페인, 프랑크족은 프랑스, 앵글로-색슨족은 영국, 바이킹족은 스칸디나비아, 기타 여러 게르만 부족은 독일의 지배세력이 되었다. 물론 게르만족의 인구는 피지배 민족보다 훨씬 적었다.

지배층은 인구가 적어도 권력을 잡았으므로 자신들의 언어, 풍습, 종교, 제도를 피지배 민족에게 강제할 수 있다. 나라의 모습이 지배층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5세기에 유럽의 주인이 된 게르만족은 그 뒤 1600년 동안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문예부흥을 하고, 종교개혁을 하고, 식민지를 개척하고, 산업혁명을 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킴으로써 오늘날 세계의 주인이 되었다. 유럽의 파생국가인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도 기본적으론 게르만족이 주도하는 나라이다.
게르만족은 체질이 강건하고 지능지수가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이들이 기독교가 아니라 이슬람화되었더라면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사진 : 苦行 수도사 시몬이 기둥 위에서 살면서 도를 닦았다는 그 기둥은 순례객들이 뜯어가는 바람에 난쟁이가 되었다.

유럽을 여행해보면 이슬람이 700년간 지배했던 스페인을 제외하고는 서기 5~11세기 사이 약600년간 지어진 건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콜로세움이나 聖베드로 사원 등 유명한 건축물은 거의가 이 600년 시기 이전이나 이후에 세워졌다. 이 600년을 흔히 中世 암흑의 시대라고 부른다. 로마가 무너진 후유증이 그렇게 길었다. 이 600년간 그리스 로마 문명은 잊혀졌다. 기독교가 로마문명을 대체하는 중심적 권위로 자리 잡았으나 로마의 법치와 토목기술은 맥이 끊어졌다. 이 시기 기독교의 가장 큰 역할은 게르만족을 기독교화 한 일이다.
이 600년 사이 그리스, 로마 문명의 전통을 이어간 것은 콘스탄티노풀을 수도로 삼은 東로마제국, 즉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세계였다. 이 600년 사이의 기독교 교회 건물로서 가장 유명한 것은 지금 이스탄불에 있는 聖소피아이다. 6세기 중엽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건축한 이 건물은 유럽에서 문예부흥이 일어나기까지 약1000년간 최고 최대의 기독교 건축물이었다.
시리아 알레포市에서 약 한 시간 거리의 야산 위에 아주 귀중한 초기 기독교 교회터가 있다. 콸라트 사만이란 곳인데, 여기에 거대한 5세기말 교회 유적이 있다. 시리아를 통치하던 비잔틴 제국 시절인 서기 490년에 14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한 이 교회는 당시 세계최대규모였다. 교회당 한 곳과 순례자용 세 棟의 건물터가 잘 남아 있다. 이 교회는 시몬이란 수도사 덕분에 세워졌다.
시몬은 양치기의 아들로 서기 392년에 났다. 그는 어릴 때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더 엄격한 생활을 원했던 것이다. 시몬은 동굴을 찾아가 그 안에서 苦行하면서 修道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나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이 싫었다. 3m 돌기둥을 세우고 그는 기둥 위에서 사람을 피해가면서 살았다. 사람들이 더 몰려왔다. 그는 기둥을 더 높였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40년 동안 기둥위에서 살았는데 마지막 기둥 높이는 18m였다.

시몬의 이름은 유럽의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영국에서, 프랑스에서 순례객들이 몰려왔다. 동유럽에서는 시몬을 따라서 기둥 위에서 修道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東歐의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실패했다.
시몬은 기둥 위에서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아래 모인 순례객들과는 문답을 주고받았다. 그는 여자들에겐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한테도 입을 떼지 않았다. 그는 서기 459년에 죽었다. 당시 시몬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독교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지금의 터키 땅 안티옥에 묻혔다. 그가 기둥 위에서 수도하던 곳에 거대한 교회가 섰다. 시몬이 수도했다는 기둥은 순례객들이 기념으로 떼어가는 바람에 밑만 겨우 남아 있다.
교회의 正面은 로마네스크식인데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터키의 안티옥쪽으로 퍼져간 대평원이 멀리 보인다.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세력이 접근하자 이 교회를 요새로 만들어 저항했다. 퀄라트는 아랍어로 요새란 뜻이다. 이곳은 서기 1017년 이슬람 군대에 넘어갔고 그 후로는 교회로 쓰이지 않았다.


사진 : 서기 5세기말에 완성된 이 교회당 건물은 당시 세계최대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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