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커스 大모스크 구경

가장 오래 되고 가장 큰 모스크가 1300년간 생존해왔다.
7세기 초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일어난 이슬람이 100년 사이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것은 13세기 초 몽골 고원을 통일한 칭기즈칸이 50년만에 세계제국을 건설한 것과 비견되는 대폭발이다. 이 대폭발의 엔진은 몽골의 騎馬유목민족과 아라비아의 베드윈 騎馬(낙타)부대였다. 마호메드가 메카를 점령한 것이 서기 630년, 2년 뒤 그는 죽었지만 이슬람 세력은 ‘한 손에 코란, 다른 손에 칼’을 들고 北上, 東進, 西進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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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년에 시리아와 페르샤를 정복하고, 643년부터 北아프리카를 치고, 705년부터 7년간 중앙아시아를 복속시키고, 708년부터 7년간 지금의 파키스탄 푼잡 지방을 이슬람화했다. 北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은 지브랄탈 해협을 건너 스페인에 상륙하여 711년부터 4년간의 戰役으로 이를 점령한 뒤 프랑스로 쳐들어갔다. 727년엔 러시아 남부의 그루지아를 치고, 750년엔 지금의 카자크스탄 탈라스에서 고선지 장군이 지휘한 唐軍과 결전하여 이겼다. 이때 종이 만드는 기술자가 포로로 잡혀 製紙 기술이 아랍을 거쳐 유럽에 전해졌다.
이슬람 세력은 페르샤에서 만든 선박으로 인도양, 남지나해로 진출했다. 인도, 인도지나, 말레이반도, 중국에까지 이슬람의 씨가 뿌려졌다. 육지와 바다에서 이슬람 세력은 無敵이었다. 이들은 통일신라기에 한반도에까지 진출하여 무역을 하고 신라를 최초로 서방에 소개했다.

미국을 제외하고 제1관광大國(관광수입 기준)인 스페인의 남부지방은 안달루시아라고 불린다. 이곳의 3大 도시는 코르도바, 세빌리아, 그라나다이다. 무어인(아랍과 아프리카 베르베르족의 혼혈)이 主力인 우마야드 왕조(수도 다마스커스)의 이슬람 군대가 서기 710년에 이곳에 상륙했다. 그들은 불과 4년만에 이베리아 반도(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체를 점령하였다. 이슬람 세력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에 그라나다에서 철수하여 아프리카로 돌아갔다. 700년이 넘게 계속된 이슬람의 스페인 경영은 찬란한 문화유적을 남겼다. 스페인이 이탈리아와 프랑스보다도 더 많은 관광수입을 올리는 이유도 이슬람 문명의 유적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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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스페인을 경영한 이슬람 세력의 본부는 다마스커스를 수도로 삼아 90년간 이슬람 세계를 통치했던 움마야드 王朝였다. 요사이 순니파라고 불리는 종파가 중심인 움마야드 王朝는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뒤 750년에 시아파가 중심인 압바시드 왕조에 의해 멸망했다. 압바시드 王朝는 수도를 바그다드로 옮겨 1258년 몽골군에 짓밟히기 전까지 약500년간 이슬람 세계에 군림했다.
 다마스커스의 움마야드 왕조는 망했지만 왕족의 일파는 스페인으로 피난 와서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고 통치를 계속했다. 당시 이슬람 문명은 과학, 문학, 군사 등 모든 면에서 중세 암흑기를 겪고 있었던 유럽의 기독교 문명을 앞섰다. 이슬람은 또 기독교도나 유태인들을 박해하지도 않았다. 사실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은 한 뿌리에서 파생된 종교이다. 유태교는 아직도 메시아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고 기독교는 예수가 메시아라고 하고 이슬람은 예수는 여러 선지자중의 한 사람일 뿐이고 마호메드가 마지막 선지자로서 왔다고 믿는 점에서 다르다.
 움마야드 왕조가 만든 코르도바의 大모스크(메조키트)와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은 안달루시아뿐 아니라 세계사를 대표하는 위대한 건축물이다. 움마야다 왕조가 망할 때 코르도바로 피신해 와서 왕이 된 압둘 라만 1세는 코르도바를 유럽의 中世를 밝히는 등대로 만들었다.  
 코르도바에선 이슬람, 기독교, 유태교가 공존했다. 大모스크에선 세 종교가 함께 예배를 올렸다. 유태교의 시나고그, 카톨릭의 성당, 이슬람의 모스크를 다 겸하고 있는 예배당이었다.
  8~13세기의 약500년간 코르도바는 유럽의 빛이었다. 10세기에 코르도바엔 27개의 학교, 50개의 병원, 900개의 공중목욕탕, 6만300채의 고급 주택, 그리고 8만455개의 상점이 있었다고 한다. 인구는 50만 명을 넘었다. 유럽은 당시 교황청이 득세하여 왕권을 누르고 있었다. 글을 아는 사람들은 신부들과 유태인뿐이었다고 한다.
 
 코르도바는 13세기에 기독교 세력에 넘어갔다. 故地를 탈환한 기독교 세력도 코르도바에서 이슬람과 유태인을 그렇게 박해하지는 않았다(1492년까지). 大모스크도 부수지 않았다. 16세기 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스페인 왕을 겸했던 카를로스 5세 시절 가톨릭 세력이 大모스크 한 복판에다가 성당을 만들었다. 이 공사가 끝난 뒤 시찰 나온 카를로스 황제는 개탄했다고 한다. 그는 성당측 사람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평범한 성당을 짓기 위해서 세계에서 여기밖에 없는 명물을 파괴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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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美會 여행단은 드디어 이슬람의 전성기 수도였던 다마스커스로 들어갔다. 우리는 움마야드 왕조의 작품인 大모스크로 직행했다. 다마스커스의 움마야드 大모스크는 이슬람 세계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가톨릭 세계에서 로마의 聖베드로 성당이 차지하는 위치라고 보면 된다. 서열에선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 모스크 다음이지만 역사성에서 따라올 건물이 없다.
이슬람 군대가 다마스커스에 들어온 636년 그들은 이 자리에 있던 기독교 교회당의 동쪽 반을 모스크로 사용했다. 이 교회당은 참수당한 세례요한의 목이란 것을 보존하고 있었다. 기독교인들에겐 서쪽에서 예배를 올릴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슬람은 이교도에게 改宗을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이슬람 신도를 일류시민으로 대우하여 특권을 주고, 개종하지 않은 유태인이나 기독교인을 2류시민으로 대우하였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겐 이슬람으로 改宗할 것을 강요했다. 100년 사이 이슬람이 세계 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이런 포용성이었다.
다마스커스에서 이슬람 신도들이 늘어나자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 황제는 ‘전무후무한 모스크’를 짓기고 결심한다. 1000명의 石工과 1만2000명의 노동력이 10년간 동원되었다. 이 모스크는 그 뒤 여러 차례의 지진과 화재를 견디어내었다. 보수는 있었지만 原型은 보존되었다. 몽골군대도 다마스커스를 약탈했으나 이 건물을 부수진 않았다. 오랫동안 보존되는 건물은 우선 아르다운 것들이라고 한다. 너무 아름다우면 적이라고 감히 손을 대지 못하게 하는 모양이다. 아름다움이 가진 카리스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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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스크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마당 전면으로 모스크의 위용이 나타났다. 간결하고도 거대한 느낌이었다. 이슬람 대제국의 표상이자 모든 모스크의 어머니가 되는 위대한 건물 앞에서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신라통일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지어진 이 모스크는 아랍의 예술 감각이 총동원되었다. 아치, 모자이크, 코린트식 기둥, 미나렛(기도탑), 수도원.
마당은 150X100m의 규모였고 본당은 140X40m의 길쭉한 건물이다. 신발을 벗고, 여인들은 모스크에게 내어주는 검은 덧옷을 걸치고 들어갔다. 모스크는 사막의 텐트처럼 간소하다. 속은 텅 비어 있다. 여기 저기 신도들이 모여 기도하고 예배를 올린다. 1300년짜리 모스크는 유물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숨 쉬는 생물이다. 모스크 중앙엔 세례요한의 목이 안치되었다는 큰 청색 보석함 같은 곳이 아직도 있었다. 물론 중동에는 세례 요한의 목을 보존하고 있다는 유적이 많아 眞僞는 알 수 없다. 모스크의 동쪽에는 마호메드의 외손자인 후세인의 무덤이 있다. 그는 이라크에서 움마야드 왕조에 의해 피살되었다. 마호메드의 사위 알리는 시아파의 조상이다. 순니파였던 움마야드 모스크로 이란의 시아파 신도들이 많이 오는 이유가 있다.
기도탑(미나렛)은 세 개인데 하나는 ‘예수의 기도탑’이라고 불린다. 예수가 최후 심판의 날에 나타날 곳이 여기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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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이 大모스크를 바라보면서 스페인에서 감동했던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과 코르도바의 大모스크를 떠올렸다. 이 세 건축물은 아마도 이슬람의 3대 건축물일 것이다. 이를 만든 움마야드 왕조의 교양과 안목과 기술은 그리스-로마-비잔틴의 전통과 연결된다. 7~8세기 이슬람이 동서양을 석권할 때 이들은 그리스-로마의 전통을 이어서 예술과 과학 기술도 발전시켰다. 이것이 코르도바나 나중의 십자군을 통해서 유럽에 전해졌고,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되었다. 유럽에선 5세기에 로마를 무너뜨린 게르만족이 기독교화되어가면서 그리스-로마를 잊고 있을 때 이슬람이 중동에서 그 전통을 이어갔던 것이다.
움마야드 왕조에 의해서 이슬람 치하로 들어간 시리아와 그 주변 지역은 그리스와 로마를 포함한 서양문명의 오랜 요람이었고 문화적 축적이 엄청났다. 그런 토양에서 이슬람 문명이 자라난 것이다. 움마야드 왕조를 무너뜨린 압바시드 왕조는 수도를 바그다드로 옮겼다. 이슬람은 여기서 찬란했던 페르샤 문명과 접목되어 다시 한번 꽃을 피운다. 이란(페르샤) 사람들은 이슬람화된 뒤 유능한 테크노크라트가 되어 중동, 인도, 중앙아시아, 몽골제국의 구석구석에서 중용되었다.
시리아를 여행해보니 이 나라와 국민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품격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건축물, 음식, 옷차림, 상푼, 태도 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런 품격이야말로 문화와 역사의 축적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것이리라. 다양한 민족, 종교, 제도가 8000년의 역사 속에서 충돌, 융합하면서 빚어낸 33개의 문명, 그 後光을 받은 나라이고 사람들이기에 촌스럽지 않고 어른스러운 것이다. 역사는 흉기가 아니라 교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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