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軍이라 하지 않고 王軍(Royal Army)이라고 호칭

나의 유럽 여행기(2)/영국
유럽 각 나라의 역사



유럽 각 나라의 역사는 나라별로 각각 독립된 역사가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가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 밀접한 연관을 갖는, 대륙 전체가 어떤 때는 하나의 역사, 또 어떤 때는 2-3 개의 역사권으로 연결된 얽히고 설킨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나라의 역사가 곧 다른 나라의 역사가 되거나 타국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데는, 전쟁과 정복, 피지배, 종교적 유사성, 국가간의 혼맥(婚脈)에서 비롯된다.



유럽은 기독교 국가이다. 그 중에서도 개신교보다는 구교인 천주교를 주로 믿는다. 다만 영국은 천주교를 주로 믿는 북아일랜드 주(洲)를 제외한 나머지 3개주는 영국 성공회라는 변형된 형태의 기독교를, 러시아는 다(多) 종교 국가지만 러시아 정교회를 주로 믿고 있다.



유럽의 역사가 종교(천주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면 천주교를 총괄하는 교황청은 그 자체로 유럽 역사의 한 단면을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각 나라의 역사에서 천주교나 교황청은 실로 엄청난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미쳤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유럽 여행 명소의 대부분은 왕궁과 더불어 교회 건물(성당)이라는 건축물과 거기에 부속된 조각품, 성당 내부에 그려진 유명 화가들의 명화를 빼 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유럽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유럽 역사의 시작은 BC 1200 년에 도시 국가를 형성한 그리스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BC 753년에 이탈리아 반도에서 건국된 로마는 지중해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당시의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테베레강 하류에 세운 도시국가 로마제국은 반도 자체를 통일한 이후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서부유럽을 500여 년간 통치하였고, 그 기간 동안 로마 문화는 이 지역에 거주한 주민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로마제국은 395년에 동서로 갈라졌고, 서(西)로마제국은 476년에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멸망하였으나, 동(東) 로마제국은 비잔티움(현재의 이스탄불)에 수도를 두고 1453년 오스만투르크(터기족)의 침입으로 멸망할 때까지 1,000여 년간 동부유럽을 지배하면서 동부 유럽의 정치·경제·문화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4∼5세기경 라인강 하류 중심에는 프랑크 족이 프랑크 왕국을 건설하고 그 영토를 확장하였는데 이들은 879년의 메르센 조약으로 3분 되었고, 이들 3국은 오늘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기원이되었다.

오스만투르크(터키)족의 발호로, 그 전까지 중동지방을 통하여 이루어지던 정상적인 동방 무역로(東方貿易路)가 봉쇄됨에 따라 유럽인들에게는 새로운 무역로 개척이 필요하였고 이는 곧 15∼16세기에 걸친 인도 항로와 신대륙 발견으로 요약되는 지리상 대발견으로 유럽의 시대는 더욱 활짝 열리게 되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죽은 후(1715)부터 빈 회의가 개최(1815)될 때까지 1세기 동안의 유럽은 근대적 특징을 가진 혁명의 시기였다.

나폴레옹 전성기에는 프랑스가, 비스마르크가 집권할 무렵에는 독일이 하는 식으로 유럽은 영국, 이태리, 스페인, 불란서, 독일과 같은 강대국들이 번갈아 가면서 대륙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였다.

유럽에서 큰 사변이나 전쟁, 지각변동의 근저에는 항상 독일(프러시아)이 있었다.

30년 전쟁도, 세계 1,2차 대전도 전부 독일이 직접 야기하거나 도화선이 되어 유럽 전역을 뒤흔든 사변임에서 이 말은 분명하게 입증된다.




유럽의 문화적 배경



1.언어 :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그리고 각국에 존재하는 소수사람들의 특색적인 토착 언어,.


2.민족적 분류 : 북서부유럽 –앵글로색슨 족 , 남부유럽 – 라틴 족, 동부유럽 – 슬라브족


같은 서양인이면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극명한 차이라면 무엇일까?


미국에서 최고 인기 스포츠에 속하는 야구를 유럽인들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에 미국이나 카나다에서는 별로 하지 않고 인기가 없는 축구(SOCCER)는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국기일 정도로 유럽인들은 축구에 미친다는 점일 것이다.


영국


영국이 영어를 쓰는 나라임은 누구나 다 안다.


영국의 영어 국명은 최소한 3 가지로 쓰여진다. ENGLAND, UNITED KINGDOM, 혹은 GREAT BRATAIN 인데 한국어로는 공히 영국으로 번역이 되지만 영어로 표기할 때 각각의 이름이 갖는 의미는 약간씩 다른 뉴앙스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영국은 섬나라이고 영국이란 나라의 영토는, 브리튼(BRITAIN)이라는 영국 본 섬과 본 섬의 좌측에 있는 아일랜드라는 부속 섬 중에 일부(북 아일랜드)를 포함하고 있다.


영국의 본 섬, 즉 브리튼에는 잉글랜드(ENGLAND), 스코틀랜드(SCOTLAND), 웨일즈(WALES) 3 개 주(洲)가 있다.




영국을 혹자는 ENGLAND, 어떤 경우는 UK (UNITED KINGDOM), 또 달리 표현한 것을 보면 GB (GREAT BRITAIN) 과 같이 통상 3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데 일반인들이 대화나 영어 회화책에서는 3 가지 표현 방식 모두 영국이라는 국명을 총체적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나와 있는 데 이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영국 국호를 영국 내의 외교, 법률 문서에 쓰일 때는 위 세가지 표현의 의미가 판이하게 다름을 알 필요가 있다.




영국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4개 주(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 아일랜드)가 합쳐져서 형성된 국가이기 때문에 50개 주로 이뤄진 미국의 경우처럼 연방이란 의미의 UNITED 란 단어와, 왕(현재는 여왕)이 통치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왕국이란 의미의 KINGDOM 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영국 정부가 공식으로 표명한 국가의 공식 명칭은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THERN IRELAND 라는 다소 긴 국호를 사용하며 통상은 UNITED KINGDOM 이라고 줄여서 사용한다.




GREAT BRITAIN 은 앞서 언급한 본 섬에 있는 3개주를, ENGLAND 라고 할 때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영국이란 의미와는 달리 대내적으로는 브리튼에 있는 하나의 주, 잉글랜드만을 의미한다 보면 된다.




이제 영국 국호가 갖는 의미를 알았으니 참고로 한 가지만 더 소개하면, THE BRITISH COMMON WEALTH NATATIONS 이라고 하면, 영국을 포함한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공과 같은 53 개의 영 연방 국가를 모두 망라한 의미 임을 밝혀 둔다.




좀 다른 얘기지만, 한국 육군은, KOREAN ARMY 라고 국명 다음에 육군을 적어서 표시하는데 그렇다면 영국 육군은, ENGLISH ARMY 라고 쓸까?


아니다. 그들은 임금의 충직한 군대라는 의미에서 ROYAL ARMY 가 공식 명칭이다. 물론 ENGLISH ARMY 라고 하더라도 알아는 보겠지만 영국 국민들이라면 픽 웃고 말 것이다.


앞서 영국은 4 개 주가 합쳐져서 단일 국가를 이루게 되었다는 데, 단일 국가가 형성되기 전 이 4 개 주는 각각 독립된 왕국이었다.


원래 BRITAIN 섬에 3 나라 중 ENGLAND 왕국은 섬의 중남부에 위치하여 , 수도는 런던,

SCOTLAND 왕국은 섬의 북부를, 수도는 에든버러, WALES 왕국은 섬의 남동부에 위치하여 수도는 카디프에 있었고 본 섬, BRITAIN의 북서부에는 본 섬보다 다소 작은 아일랜드(IRELAND) 라는 섬에 별도의 왕국이 있었다.




유럽 대륙의 라인강, 도나우 강 유역에서 게르만 족의 한 파인 켈트 족이 현재의 잉글랜드 지역과 웨일즈, 북 아일랜드 지역에 이주해 와서 살게 되었는데, 이 두 나라가 스코트 족 (아일랜드 섬에서 본 섬의 스코틀랜드에 들어와 살던 원주민) 의 잦은 침입을 받게 되자 두 나라는 유럽 대륙에 원병을 청하였다.




현재 영국 국민의 주류가 된 앵글로 족과 색슨 족(이들 역시 게르만 족의 한 파인데 이들은 켈트 족과는 달리 북 구라파 태생)은 이 때 들어와서 잉글랜드에 살던 켈트 족을 내 쫓고 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앵글로-색슨족의 잉글랜드는1066년 노르만인(게르만 족 중에서 주로 스칸디나비아 및 덴마크에본거지를 둔 종족) 들에게 정복을 당하여 잉글랜드의 지배층은 노르만족으로 바뀐다.




1200년대 중반에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웨일즈를 정복 잉글랜드 중심의 웨일즈 합병하고.

스코틀랜드 왕국은 이후 수백년간 잉글랜드와 전쟁과 협상을 반복하다가 1600년경 잉글랜드에 스코틀랜드가 합병된다.




1707년 연합법에 의해 웨일즈 및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하나의 나라,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되었고 아일랜드 왕국은 1170년 잉글랜드의 노르만 왕조이래 지속적으로 본 섬의 침공을 받다가 결국에는 정복되고 만다. 그레이트 브리튼 연합 왕국은 17세기에 이르러서부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지역의 개신교도(성공회)들을 아일랜드 섬의 얼스터 지역에 대거 이주시켰다. 이들 개신교도들은, 가톨릭을 신봉하는 아일랜드 주민들과 종교 문화적인 차이로 많은 충돌을 야기한다.


1641년 아일랜드 주민이 본 섬에 대한 반발과 이교도들에 대한 불만으로 봉기를 하자 중앙 정부는 아일랜드 거주 로마 가톨릭 교도들에 대하여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박탈하였다.


아일랜드의 새로운 지배계급이 된 개신교 이주민들은 18세기에 이르러서도 가톨릭 교도에 대하여 영국 성공회의 신자가 아닌 이른바 "비 국교도(非國敎徒)" 전체를 대상으로 정치 참여 금지를 확대하였다.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의 조치에 맞서 아일랜드 단결협회 등을 만들어 저항하였으며 결국 1798년 아일랜드 봉기가 발생하였으나 영국에 의해 진압당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공회 교도만으로 이루어진 아일랜드 의회는 영국과의 합병에 동의하고 영국은 1800년 아일랜드를 영 연방국에 병합하는 연합법을 선포하나 대다수 아일랜드 주민들은 이에 호응하지 않는다.


1918년 아일랜드는, 영국 의회와 분리된 별도의 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 선거를 실시한 후 익년 아일랜드는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니 아일랜드의 분리 독립을 막기 위하여 영국과 아일랜드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아일랜드 독립전쟁의 결과 1921년 아일랜드는 영국 성공회 신자들이 많아 영국 령으로 남기를 원하는 북 아일랜드 6개 군을 제외하고 (면적으로는 아일랜드 섬의 5/6 로 70,273km2)만으로 호주나 캐나다처럼 영 연방국 하에서 자치를 인정 받는 조건으로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약은 완전한 독립을 원하는 아일랜드 내부의 요구와 충돌하였고 결국 아일랜드 내전이 발생한다. 내전의 결과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던 아일랜드 공화국군, 구(舊) IRA는 패배하였으며 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내 자치국으로 남았다가 1949년 아일랜드는 영 연방을 탈퇴하여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다.




이제 오늘 날의 영국에 대하여 살펴 보자


영국의 면적은 한반도의 1.1 배 정도이고 인구는 6,300만명 정도이다.


영국은, 앞서 본 바와 같이 4 개 국가 연합이 평화롭게 합의에 의하여 하나의 나라를 이룬 것이 아니라 힘에 의한 합병으로, 북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와는 종족과 종교가 틀리고 영국에서 독립해 떨어져 나간 아일랜드와 같은 민족계이고 지정학적으로도 본 섬과는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영국으로 부터의 분리 독립을 꾸준히 주장해 왔으며 이 문제로 중앙 정부와 갈등이 끊기지 않고 오늘날까지
도 중앙 정부에 대한 무력 봉기나 테러가 수시로 일어나 크나큰 국내 문제로 잠재하고 있다.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군림했던 영국은 오늘 날에도 과거 식민지 국가였던 54 개에 달하는 영 연방 국가(THE COMMON WEALTH NATIONS) 들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중, 카나다, 호주, 뉴질랜드, 홍콩(중국에 반환되기 직전까지) 등은 그들의 국기에 유니온 잭이라는 영국 국기가 들어가 있을 정도로 영국과 돈독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은 여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입헌 군주국이며 국정의 실권은 수상에게 있다.


유럽 연합 국가이면서도 파운드 화를 자국 화폐로 고수하고 있는 영국은 한 때 전 세계를 호령할 정도로 그 국력이 막강한 국가였으나 2 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경제력이 급격히 쇠퇴되고 좋지 않은 자연 환경, 대륙과 바다로 차단된 국가의 한계, 막강한 노조의 횡포, 높은 실업률, 부존 자원의 제약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1975 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북해 유전과 강력한 대처리즘(Thatcherism)으로 영국 경제 회복에 많은 기여를 하여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미화로 환산, 33,000 불 정도로 북부 유럽 내에서는 상위권 국가보다는 약간 쳐지는 순위이다.


영국이 가장 가까운 우방은 우리나와 마찬가지로 미국이며, 미국에 있어서 영국은 카나다에 이어 두 번째 우방국으로 간주되고 있다.


영국의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일부 영연방 국가로부터 여왕의 초상화를 화폐에까지 채택했을 정도로 추앙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간 영국 왕실은 황태자의 이혼 등 몇 가지 불미스러운 추문으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기도 했으나 그 왕자들은 국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지위를 초월하여 목숨도 바치겠다는 각오로 각종 전쟁의 최일선에서 활약하여 국민들에게 솔선수범하는 모범을 보여서 진한 감동을 던져주고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이 식지 않도록 하는 데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촬스 황태자는 70년대 공군과 해군에서 복무를 했고 동생 에드워드 왕자는 영국군 헬기 조종사로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하여 영국 전함이 아르헨티나 군이 발사하는 엑조세 미사일에 피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함정으로 향하는 미사일 방향을 바꾸기 위하여 미사일이 발사된 순간부터 자신의 헬기를 이륙시켜 미사일이 자신의 헬기로 향하도록 하는 위험천만한 역할을 수행한 사실은 적국 아르헨티나에게 까지 진한 감동을 줬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 받아서 촬스 황태자의 아들인 해리 왕자도 이라크 전장에 지상군으로 참전을 하면서 왕자 신분에 관계 없이 다른 영국 군인들과 꼭 같은 조건으로 최 일선에서 헌신하였다는 점을 영국 국민들은 높게 평가하고 혹시라도 참전중인 왕손에게 어떤 불운이 발생하지 않을까를 노심초사하였다고 한다.


필자가 런던에서 만난 영국인들은 미국인들처럼 상냥하지는 않았다. 말씨도 무뚝뚝하고 표정도 그리 밝지는 않았으나 기품이 있고 도움이 필요하여 요청할 경우는 잘 응대해 주었다.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에 지하 100 미터 깊숙한 곳에 지하철을 건설한 저력에 감탄하면서도 그 막장에서 터널을 판 사람들은 영국인이 아니라 식민지 백성인 인도인이었다는 사실에 약소국의 설움을 실감했다.


‘ 이 역은 승강장과의 사이가 넓어서 발이 빠질 우려가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는 복잡한 안내말 대신에 단 두 마디,


“ Mind the Gap ! “ 영어의 편리성일까? 군 말을 싫어하는 민족성 탓일까를 곰곰하게 생각해봤지만 답은 안 나왔다.


유럽 대륙과 바다로 차단된 영국은 오래 전에 영/불 도버 해협 간에 약 50 km에 달하는 해저 터널을 관통하여 고립된 도서 국가의 숙원을 해소함으로써 그 때까지 배편으로 최소한 2시간 걸리던 것이 35분으로 단축되며 초고속열차 유러스타는 파리∼런던을 3시간, 런던∼브뤼셀을 3시간 15분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인들은 검소한 민족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동네 술집에서 흑 맥주 한잔으로 피로를 풀고 축구를 즐기며, 모처럼 해가 뜨는 날 런던 시내에 있는 여러 공원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영국의 명물 템즈강, 1859년도에 건립된 106 m에 달하는 대형 시계탑 빅 벤(Big Ben), 2층 버스, 롤스 로이스(Rolls-Royce), 화려한 여왕 근위대(Royal Horse Guards), Bobby 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영국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독특한 복장의 영국 경찰, 영국 도처에 남아있는 각종 성곽, 영국 역사를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는 대영 박물관이 필자에게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 3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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