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7편
낭만적인 곤돌라 유람
유럽인들이 그리는 가장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햇살이 감미로운 지중해 연안이나 알프스 자락에서 일본 여자와 결혼을 하여 영국의 고색창연한 성곽으로 둘러싸인 대저택 맨션에 살면서 영국 경찰의 보호를 받고 미국 영화를 즐기며 독일의 벤츠를 몰고 프랑스 요리를 먹으면서 이탈리아인들의 로맨스를 만끽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럽에서는 동양 여자, 그 중에서도 일본 여자의 인기는 최고로 알아준다. 유럽 여자들처럼 억세지 않고 순종인데다가 아마 나비부인이라는 영화의 여 주인공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짜아식들! 보는 눈은 높아 가지고. 한국인들도 사람이다. 비슷한 꿈을 꾸기는 마찬가지다.
반대로 유럽인들이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영국의 기후 환경에서 독일 여자와 결혼하여 일본식 다다미방에 살며 영국 요리사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이탈리아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사는 것을 최악의 콤비네이션 끔찍한 삶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유럽의 지명을 어떤 곳은 현지어 발음으로 어떤 곳은 영어식 발음으로 제각각 소개된 경우가 있어, 같은 곳인데도 발음이 달라서 다른 곳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탈리아 지명이 더욱 그러하다. 우리에게 베니스로 잘 알려진 베네치아도 마찬가지다.
 
‘베니스 상인’으로 잘 알려진 베니스는 바다에 만들어진 인공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112개의 조그만 섬들을 연결하여 만든 곳이라고 한다. 당초에는 지상에 노출된 부분이 많았는데 기후 온난화 때문인지 수심(水深)이 깊어져서 건물들이 점점 물에 잠기고 있다.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는 것은 어렵고 물에 잠긴 땅속으로 파일을 박아서 그 위에 지은 주택을 유지하는 것에 부심하고 있다.
도로가 따로 없으니 통행은 수상 택시나 마찬가지인 곤돌라라는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소방차나 구급차도 전부 배다. 따라서 소방선, 구급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베니스는 서기 423년부터 사람들이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고 이들은 원목이나 향신료, 크리스털 제품을 만들어 이탈리아 각지로 팔았다고 한다. 물의 도시 베니스를 연결하는 다리 400여 개를 독재자 무솔리니 집권 중에 건설하였다.
베니스는 들어오는데 배편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소매치기들도 많지 않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 주중에 수입을 못 잡은 소매치기들이나 어쩌다 원정 출장을 올 뿐 토착 소매치기는 드물기 때문이란다. 외국 관광객 중에 소매치기가 끼었는지 흘끔흘끔 경계하면서 베니스의 명물 베니스 왕궁을 둘러봤다. 왕궁 바로 가까운 곳에 감옥이 있었다. 감옥으로 통하는 다리 이름은 ‘탄식의 다리’였다. 무수한 사형수들이 처형당하기 위하여 이 다리를 건넜을 것이다.
세기의 탕아 카사노바의 출생지가 베니스다. 그도 이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1756년 탈옥하여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는 재능이 많아서 외교관, 스파이로 활약하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를 여성 편력의 기회로 적절하게 활용했다고 한다. 그는 비록 탕아의 기질을 타고 났으나 문필가로서의 소질도 풍부하여 그가 쓴 여러 권의 책들, 특히 《회상록》은 18세기 유럽 사회의 풍속을 이해하는 데 소중한 기록이 되었다.
베니스에 왔으면 곤돌라를 타보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4인 1조로 나뉘어 곤돌라 유람을 하였다. 곤돌라에는 관광객과 뱃사공만 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수상 가옥(?)이랄까, 유서 깊은 물의 도시 베니스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 운하를 누비는 곤돌라는 수십 척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뱃사공이 노를 젓는 대로 물 위를 스쳐 지나가는데 이런 낭만스러운 순간에 음악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이탈리아 여러 곳에서 몰려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내로라하는 아마추어 가수들이 곤돌라마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와 함께 탑승하여 곤돌라가 베니스 수로를 이동하는 동안 각종 노래를 불러서 감흥을 돋궈줬다. 오솔레미오('O Sole Mio), 산타루치아(Santa Lucia) 등 관광객이 요청하는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일류 가수 뺨 칠 정도였다. 그 때마다 배에 실린 샴페인을 권하고 팁을 주면 좋아서 앙코르 송이 이어졌다. 이탈리아 노래가 아닌 팝송이나 샹송까지 두루 섭렵하고 요청 곡을 막힘없이 불러 재끼는 그의 노래 솜씨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30분이 꿈처럼 지나갔다.
한국 관광객들의 슬픈 매너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독일이던가, 오스트리아 호텔 식당은 넓어서 여러 개의 홀로 나뉘어 있었는데 한국인 관광객은 C홀에서, 다른 홀에는 유럽인들과 또 다른 동양인(알고 보니 일본인)들을 위한 식사가 분리하여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국인 식탁에는 스푼 세트 마다 1개씩 계란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반면에 다른 홀에는 큰 바구니에 수북하게 계란을 한 곳에 모아 놓고 필요한 만큼 가져다 먹도록 되어 있었다.
야릇한 차별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가이드에게 따졌더니, 최초에는 한국인들도 같은 방식으로 필요한 만큼 계란을 가져다 먹을 수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1인 1개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따졌더니 식당 매니저가 “한국인들은 계란 껍데기를 벗기지 않고 먹느냐?”고 묻더란다. 너나없이 상당수 식사객들이 서너 개씩 가지고 가는 데 남은 껍질은 달랑 한 개라고 했다.
더욱 슬픈 얘기가 있다.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굶다가 왔는지 호텔 투숙객 200명 중 한국인이 50여 명이라고 했을 때, 한국인이 먼저 식사를 마치기라도 하면 200명 분 식사 중 최소한 150여 명 분이 초토화 된다는 지적이었다. 우리를 살짝 부끄럽게 했다.
민망한 한국인의 식사 매너를 목격한 적이 필자도 여러 번 있다. 음식을 입에 넣어서 오물거리며 게다가 음식을 입술에 묻히고도 모르고 음료수를 따르려고 컵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 커피를 따르는 한국인 뒤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는데 커피를 다 따르고 나서도 비켜서 줄 생각을 아니하고 커피 머신 앞에서 여유를 부리며 커피 맛을 보고 있는 사람, 빵에 발라 먹도록 준비된 쨈을 한 움큼 가져와서 핸드백에 집어넣는 사람, 유럽인들이나 일본인 중에는 그런 사람을 아직 못 봤는데 음식을 산더미처럼 가져다 놓고 배가 불러서 인지 아니면 잘 알지 못하는 음식이라 맛이 없다고 반도 안 먹고 남기고 나오는 사람, 이게 해외에 나온 극히 일부지만, 한국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왜들 그러시는지….
‘죽기 전에 꼭 한 번…'
다시 우리 일행은 단체로 유람선을 탔다. 20인승 모터보트에 우리를 태운 선장은 베니스의 풍광 좋은 앞 바다를 질풍노도처럼 달리다가 속도를 줄이고 지그재그로 몰기도 하고 급회전을 하기도 하고 때론 보트가 트위스트를 추도록 하면서 우리를 즐겁게 해줬다. 그 때마다 뱃전에 부딪친 파도가 우리 얼굴을 때렸지만 기분은 상큼했다.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베니스 시가가 저녁노을에 빨갛게 물들어 있고 항구에는 한번 출항하면 전 세계를 최소한 6개월 이상에 걸쳐 돌아다녔을 것 같은 15층 구조의 5000여 개의 객실을 갖춘 네덜란드 여객선 홀랜드 아메리카(HOLLAND AMERICA) 호가 정박해 있었다. 대형 유람선들 사이사이로 정박해 있는 크고 작은 자가용 유람선들은 홀랜드 아메리카 호와 같은 대형 유람선의 위용 때문에 손톱만큼 작아 보였다.
‘죽기 전에 저 호화 유람선을 꼭 한 번 타보고 말 거야.’
베니스는 대륙과 연결이 끊긴 관계로 빗물을 정수해서 쓰고 부족한 물은 본토에 의존할 정도로 물이 귀하다는 설명을 듣고 보니 갑자기 갈증이 나는지 우리 일행은 전부 약속이나 한 듯이 본능적으로 물병을 들고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은 뇌가 전달하는 신체의 신비, 반응기재 때문일까?   
베니스의 또 다른 명물 산마르코 광장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옥외 카페에서 시원한 맥주나 음료수를 마시며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한 때 역사적인 인물, 괴테, 헤밍웨이, 카사노바, 그리고 바그너와 같은 예술가나 유명 인사들도 즐겨 이용했다는 얘기를 듣고 보니 한 잔 생각이 절로 났지만 바쁜 여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아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우리는 건물 한 채를 짓는데 불과 몇 개월, 대형 건물이라도 2~3년이면 족하다. 속전속결 주의다. 그런데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돔 형태의 산마르코 성당은 9세기에 착공을 하여 모자이크된 스탠드글라스 등 600여 년에 걸쳐 전 세계 요소요소에서 수집해온 장식품들로 치장을 한 미적으로 수려한 성당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성당이 한 개 쯤은 있었으면 못난 중생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엉뚱한 공상을 해보기까지 했다. 
우리 일행은 베니스에서 빠져 나와 차편으로 파도바로 이동하는 과정에, 베니스 남쪽 150여 km 떨어진 비교적 험준한 산악 지역에 자리 잡아 멀리서 보면 철옹성처럼 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산마리노 공화국을 보면서 지나갔다. 2000여 년 전에 건립된 웅장한 건물을 관공서와 도서관으로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고 가이드는 소개하였다. 
이탈리아 호텔의 화장실은 우리나라의 그 것과는 많이 달랐다. 유럽의 다른 나라와도 달랐다. 하얀 도자기로 된, 싱크대의 식기 세척통 처럼 아담하게 생긴 그릇이 있고 누르면 옹달샘에서 샘물이 솟듯이 물이 나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우리 일행 중에서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극성스러운 한국인 투숙객 중에 이 물건이 너무 신통하고 날씨도 더운 관계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호텔을 나와 주변 가게에서 수박을 사다가 이 그릇에 물을 채우고 수박을 담가뒀다고 먹었다는데, 알고 보니 중동 국가에서는 흔한 우리가 화장실에서 성스러운 행사를 한 후에 생식기를 씻는 분리식 비데였으니….
빡빡한 일정으로 피곤한 한국인 중 게으른 사람 중에는 샤워는 생략하고 비데인 줄 모르고 머리를 감았다가 그 도기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머리털이 쪼끔 빠질 정도로 뒹군 사람도 있다고 들려줬다.
(8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