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재앙의 현장으로

유럽기행(9)/ 폼페이, 소렌토, 나폴리

유럽여행기 9 

과단성 있는 국가 지도자, 무솔리니의 업적

피렌체에서 하루를 묵은 우리 일행은, 폼페이 최후의 날로 널리 알려진 2000년 전 재앙의 현장, 폼페이와 ‘돌아오라 소렌토로’란 이탈리아 민요로 귀에 익은 소렌토, 세계 3대 미항(美港) 중 하나로 알려진 나폴리를 관광하기 위하여 또 다시 210여 km 을 달려 이탈리아 남부 지방으로 이동을 하였다.

우리가 달린 고속도로는, 1930년도에 독재자 무솔리니(Mussolini)가 국민의 원성과 반대를 무시하고 가설한 것으로 이탈리아인들 역시 국가적인 대사업은 과단성 있는 국가 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그가 건설한 고속도로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이 각기 나름대로 故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평가하는 것처럼, 현재의 이탈리아인들은 독재자 무솔리니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할까? 그 나라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이가 든 세대들 간에는 긍정적인 평가가 높고 젊은이들에게는 그리 인기가 높지는 않다고 했다.
 
무솔리니가 건설한 고속도로를 발판으로 1964년도에는 밀라노에서 나폴리까지 780km의 고속도로가 완공되었고 1990년도에는 2000년대 연간 관광객 5700만 명으로 배가하기 위하여 4차선을 6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완료하였다.

남부 지방으로 내려올수록 공장지대보다는 농경지가 많고 농경지에는 주로 올리브나 포도를 재배하는 곳이 많이 보였고 사람들의 주거 환경에서도 북부나 중부 지방과는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남부 지방 사람들의 80% 정도가 고향을 떠나 북부로 가거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버려서 남부 지방은 인구 밀도가 북부 지방에 비하여 몇 배나 적다고 했다. 범죄율도 남부 출신들이 더 높다는데 범죄 대상이 북부 지방이나 구라파 전역으로 진출하는 원정 범죄가 많다.

남부 지방은 생산성이 낮으니 세금을 통한 국가 재정에 대한 기여도가 낮을 수밖에 없고, 혜택은 북부 지방이나 남부 지방간에 차이가 없으니 북부 지방 사람들은 자기들이 남부 지방 사람들을 벌어 먹이느라고 생고생한다고 생각하고 남부 지방 사람들은, 북부인들이 좀 잘 산다고 거들먹거리고 남부 지방을 무시한다고 해서 서로 앙숙으로, 심지어 두 지역이 이혼을 해서 두 나라로 갈라서자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민족 분열이 근자에 들어서 심해진 나라가 이탈리아다. 

2000여 년 전의 상수도

우리는 가장 먼저 폼페이를 방문하였다. 폼페이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 중에는 간혹 인도의 봄베이로 착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은 데 전혀 다른 지역이다. 나폴리보다 더 남쪽 그리 멀지 않은 바닷가에 위치한 폼페이 유적은, 화산재로 뒤덮여서 오랜 세월 매몰되어 있다가 이 세상에 드러난 비극의 현장이다. 문화재로 일부 복원이 되었지만 당시 주거 지역 전부가 발굴된 것이 아니라 현재도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참고 문헌과 현지의 안내판, 가이드의 설명을 종합하면, 폼페이(Pompeii)는 서기 79년 8월24일 인근 베수비오 산 화산 폭발로 도시 전체가 멸망한 곳으로 화산 폭발 전까지만 해도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로마에서 한 자리 하는 귀족들의 휴양지가 많은 풍광 좋은 도시였다. 폼페이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 지 1460여년 만인 1549년 수로 공사 중에 그 흔적이 우연히 발견되면서 발굴이 시작되었다. 1748년까지 발굴을 통하여 시가지 광장, 목욕탕, 원형 극장, 약국, 상가 건물, 주거 시설, 매몰된 사람 중에 용암의 고온에 직접 노출되지 않아서 온전하게 보존된 시신들도 여러 구 발견되었으며 현재까지 재난 현장의 약 3분의 2가 발굴되었다.

유적지 중에서 놀라운 사실은 2000여 년 전에 벌써 가가호호 상수도를 가설했던 파이프 흔적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성행위를 묘사한 벽화들이 남아 있는 매음굴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춘의 역사는 2000년도 족히 넘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도 볼 수가 있었다.

엄청난 화산 폭발에도 불구하고 허물어진 목욕탕 잔해의 벽에는 바다 신(海神) 포세이돈 조각이 지금까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제우스 다음 서열의 높은 신으로 물[水]로 만사를 다스렸다는 신통방통한 포세이돈도 제 몸은 온전하게 지켰으면서도 목욕탕은 못 지켰구나 하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비록 울퉁불퉁 하지만 돌을 이용하여 포장 형식을 갖춘 도로, 마차가 지나가기 용이하게 돌의 배열을 정교하게 해 놓은 기술 등 당시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나 지혜로움은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폼페이를 관광하면서 화산 폭발의 엄청난 재해 규모에 놀랐고, 필자의 고향에 있는 한라산은 언제 폭발했던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또 앞으로 수십 년 이내에 폭발 확률이 60%가 넘는다는 백두산 화산이 재분화할 경우 한반도에 얼마나 엄청난 재난이 어디까지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인지, 불쌍한 북한 동포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인지 걱정이 아니 될 수가 없었다. 웬만한 핵폭탄 이상의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화산 폭발의 재앙만은 막아야 하는데 인간의 힘이나 과학의 원리로는 막을 수 없는 자연 재난으로 달리 도리가 없다니 단지 폭발 예측이 틀리기를 바랄 뿐이다.

말문이 막히면 무조건 “그라시에”(감사합니다)

폼페이 구경을 마친 후 열차를 타고 40여 분만에 소렌토에 도착했다. 열차는 만원은 아니었지만 좌석은 전부 차서 서서 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고 이용객들은 관광객보다는 통학생이나 장을 보러 나들이 가는 인근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생각보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주민들이 많지 않으니 의사소통이 쉽지 않아서, 말문이 막히면 무조건 “그라시에”(감사합니다)란 한 마디로 대충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소렌토는 우리나라 충주시 규모의 작은 포구에 위치한 도시였다. 거리의 악사는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열심히 연주하였지만 구경꾼이라고는 관광객 몇 명뿐이고 사람들은 남부 지방 한 낮의 더위를 피하여 노상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되었다.

기원전에 그리스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알려진 나폴리는 오랜 세월 비잔틴 제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여러 민족의 지배를 받았지만 엄연한 독립국가로 나폴리 왕국(兩시칠리아)은 이탈리아와의 통합에 반대했으나 1860년에 결국 무력으로 통일을 맞은 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호주 시드니와 더불어 세계 3대 미항(美港)에 속한다는 나폴리(Napoli)는 피자의 원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캄파니아 주(州)의 주도(州都)로 영어명은 네이플스(Naples)라고 하며 로마, 밀라노에 이어서 인구 약 50만 명에 이르는 이탈리아 3 대 도시 중 하나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 민요 ‘산타루치아(Santa Lucia)’ 나 ‘돌아오라 소렌토로’, ‘오 솔레미오‘가 공히 이 지역의 민요다. 전 세계인들에게 한결같이 사랑 받는 칸초네 명곡들임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특히 산타루치아는 나폴리를 상징하는 수호신의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절경인 산타루치아 해안을 노래한 것이다. 오솔레미오는 ‘유 아 마이 선샤인’(You Are My Sunshine)이라는 미국 민요와 음율이나 형식은 달라도 유사한 제목으로 노래의 명성에서도 쌍벽을 이룬다고 할 것이다.

서정이 넘쳐나는 노래에서처럼 나폴리 항구는 아름다울까? 멀리서 바라보는 조망이나 야경은 정말 아름답지만 정작 대낮에 보면 시가지에는 방치된 쓰레기 더미와 색 바랜 낡은 아파트,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항구의 바닷물 등 솔직히 크게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기대를 충족해 주지는 못했다는 생각이다. 

유용한 커피포트

이탈리아 호텔에는 특급 호텔이 아니고서는 웬만한 호텔에 커피포트가 없는 곳이 많다. 자주 여행을 하는 여행객들은 이런 현지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커피포트를 반드시 챙긴다. 커피포트는 커피만 끓여 마시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배가 출출하면 컵 라면도 끓여 먹고 심지어 계란도 삶아 먹고 즉석 쌀밥(햇반)도 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론트 데스크에 내려가서 커피포트를 좀 빌려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상냥한 여직원이 순순히 빌려준다고 했다. 헤어드라이어라면 몰라도 불가능할 것으로 알았는데 커피포트를 빌려준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장비 및 비품을 관리하는 직원에게 뭐라고 저들끼리 얘기하더니 커피포트를 갖고 나왔다.

커피포트를 들고 객실로 올라가려는 데 호텔 보이가 재빠르게 커피포트를 낚아채더니 자기가 가져다준다면서 방 번호를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괜찮다는데도 기어코 커피포트를 들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따라오는 멀대처럼 생긴 사환의 과잉 친절의 의미를 간파하고 바쁠 테니 가서 일을 보라면서 1달러를 주었더니 단 한 번의 사양도 하지 않고 냉큼 받더니 “Thanks”를 연발하고 돌아서는데 그런 녀석이 결코 밉지가 않았다.

오늘도 좀 지저분한 얘기를 하나 해야 할 것 같다. 서양인들도, 여행 중 갈아입은 속옷을 호텔 방에서 빨래를 하는 경우가 있을까? 필자가 미국에 체류할 때 궁금하여 솔직한 답을 듣고 싶다고 친한 미국인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단기 여행인 경우는 갈아입을 팬티, 티셔츠들을 충분한 수량만큼 갖고 가서 아주 부자들은 한 번 입고는 버리고 보통 사람들은 입고 난 것은 비닐과 같은 것에 넣어서 밀봉을 하여 집에 와서 세탁을 하는 반면, 장기간 여행인 경우는 자기들도 사람인지라 밤사이에 빨아 놨다가 입는다고 했다. 누군가가 객실로 찾아올 경우 미리 치워놓기 때문에 눈에 안 띌 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사람 사는 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꼭 같구나 하고 안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여행 온 한국인 부부가 프런트 데스크에 내려와서 메모지에, ‘Room No.1118 Electricity Out!’이라고 적은 것을 보여줬다고 했다. 독자 여러분도 전부 이해하셨겠지만 ‘1118호실 전기 나갔음’이라는 정확한 표현을 했으니 데스크 직원도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를 했다. 그 정도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면 전화로 얘기해도 됐을 터인데 직접 내려온 것으로 비춰봐서 영어 교육은 받았지만 영어에는 자신이 없는 사람이 해외여행 시 만일에 대비하여 한영사전을 갖고 왔다가 자기 방이 정전되자 사전을 찾아서 적어서 온 것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인들이라면 이런 경우, “Rm #1118 Lights Out!” 혹은 “Power Out”이라고 쉽게 전화로 얘기했을 것이다.

하여간 왜 정전이 됐는지 영문을 모르고 한국인을 따라 컴컴한 해당 객실에 들어간 호텔 전기공은 기절초풍을 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운동회 날 운동장에 만국기를 걸어놓은 것처럼 호텔방에 줄을 길게 매고 남편과 아내의 팬티, 티셔츠, 양말, 브래지어, 스타킹, 손수건을 그 것도 세트로 요란하게 걸고도 빨랫줄이 가득 차서 침대 옆 전기스탠드에 까지 양말을 걸어놨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양말에서 흘러내린 물 때문에 합선이 되어 전기가 나가버린 것이었다. 프런트 데스크에 알리기 전에 치우기라도 하고 내려왔어야 하는데 방은 컴컴하고 자기들의 실수로 발생한 일이라 당황하여 그냥 내려와서 모든 현장을 들켜버린 것이었다.
 
호텔 지배인은 가이드에게 웃으면서, “정말 그런 발상을 하는 꼬레아노 대단하다!”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였다고 했다.
 

-10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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