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청 철거를 다시 생각한다!

문화유산의 복원復元과 보존保存

유난히 길었던 추위를 밀쳐내고 화창한 봄날이 5월과 함께 찾아왔다. 5년 3개월이란 긴 복구공사를 끝내고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의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崇禮門)도 우리들 곁으로 되돌아왔다.

복원된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崇禮門).
철거 전의 조선총독부 모습.

1398년(태조7) 완공, 1447년(세종29) 개축, 1479년(성종10) 보수공사, 1963년 해체와 수리, 2005년 주변 차로 정비 및 공원공사, 2008년 화재로 2층 문루 소실 그리고 2013년 복원공사 완료 / 615년 동안 우리 곁을 지켜온 숭례문의 이력서다. 6.25 때 파손되어 임시로 복구했던 현판도 원래의 필체로 복원되고 외딴 섬처럼 외롭게 서 있던 문의 좌우에 성곽을 일부 복원하여 정문(正門)의 옛 모습을 되찾았다.

경복궁으로 가보자. 조선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1395년 종묘, 성곽, 사대문과 경복궁 창건,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전소, 270년간의 폐허, 1868년(고종5) 흥선 대원군에 의한 중건, 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궁궐의 기능 상실, 1910년 한일합방, 1926년 조선총독부 건설, 1945년 광복,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1996년 조선총독부 철거, 2010년 제1차 복원정비 완료 / 경복궁의 역사다.

이렇게 복구공사를 마친 숭례문과 일부 복원공사를 완료한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중심축이 되살아난 것이다.

문화유산의 가치가 큰 건물일수록 보존과 복원은 정치적 사회적 문제와 결부되기 마련이다. 건물이란 의도한 취지와는 달리 시간과 더불어 용도가 변하거나 대수선 증축 개축 등을 거치며 본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변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어느시점의 건물 모습과 용도가 진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이와 같이 특정 건물의 보존과 복원은 건물 용도의 변환, 특정시점의 건물복원 주장 등 정치적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충분조건을 안고 있다. 우리 사회도 몇 년 전 복원된 광화문의 현판 글씨를 한글, 漢字, 어느 시대, 누구의 필체로 할 것인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시대 간, 세대 간의 이념전쟁으로까지 비화하는 것을 경험하였다.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기치 아래 1990년 경복궁의 복원과 이전공사가 시작되면서, 중앙청-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던 조선총독부건물의 철거에 관한 찬반논의도 함께 시작된다. 찬반논의가 뜨거운 가운데 결과는 싱겁게도 정치적인 결단(?)으로 1996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존치하자는 제안 중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건물을 땅 밑으로 주저앉히고 그 위를 유리로 덮어서 위에서 건물을 볼 수 있게 하고 건물도 사용하며 보존하자는 젊은 건축가의 안이다. 두 번째는 개인의견이라는 전제를 붙인 일본인 건축평론가의 제안이다.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의 중심축을 뒤틀고 절단하여 지은 건물이므로, 이번에는 건물의 정중앙을 잘라서 건물을 2개로 절단하여 中心軸을 부활하는 방법이다. 건물을 둘로 쪼갠 상태로 존치하는 것이 해체하여 없애는 것보다는 훨씬 도발적이란 설명이다. 건물은 이미 없어졌으나 여러분도 함께 자유롭게 논의에 참여하며 상상의 날개를 달아보자.

최근 일본에서는 경도된 역사관으로 무장한 도발적이고 우경화된 정권이 들어서면서 연일 우리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한일 양국의 국민에게까지 번져가고 있는 감정의 악화가 무척 우려스럽다. 만에 하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일제가 지은 건물이라고 하여, 우리나라에 몇 남지 않은 보쟈르 양식(Beaux-Arts)의 건축인 한국은행본점이나 서울역을 때려 부수자는 설익은 애국자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尙美會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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