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정부군, IS를 쫓아내고 古都 팔미라를 탈환하다!

IS는 고고학자를 참수하고, 고대 극장에서 수십 명을 학살하며, 신전을 폭파시켰다.

UNESCO, the United Nations cultural organization, called the destruction of the Temple of Baalshamin a

IS의 팔미라 신전 폭파 장면


 2007년 초에 찍은 팔미라의 로마 시절 유적. 마주 보이는 바알 신전이 최근 IS에 의하여 폭파되었다. 약200m의 벽으로 감싸진 이 神殿은 서기 1세기에 세워졌다. 그레코 로만 스타일의 건축기법에 페르샤 풍이 혼합된 것이었다. IS의 만행으로 주 건물과 기둥이 쓰러졌다고 한다. 팔미라엔 코린트 식 기둥이 1000개나 서 있다. 

팔미라의 로마 시대 水道橋

 며칠 전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군이 IS 군대를 몰아내고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를 탈환하였다. IS는 작년 봄 팔미라를 점령한 뒤 이 古都의 신전, 개선문 등을 폭파시키고, 문화재 담당자를 학살하는 등 문명 파괴의 만행을 저질렀다. 유네스코는 그리스, 로마, 페르샤의 문화가 혼합된 이 고대 도시를 파괴한 자를 전쟁범죄자로 규정, 단죄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2007년 초 필자는 상미회 여행단의 일원으로 시리아를 찾았다. 시리아 동쪽엔 사막이 있는데 여행단을 태운 버스는, 지중해와 이라크를 연결하는 隊商路(대상로)이자 아시아 북방을 종단하는 실크로드의 서쪽 끝 부분을 따라 달렸다. 목적지는, 이 東西 무역로의 거점이었던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Palmyra. Palm=종려의 도시라는 뜻. 아랍어로는 타도몰이라 불린다)이다.

팔미라로 들어가니 사막이란 바다를 항해하다가 항구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모래산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나지막하게 발달한 숲의 섬(오아시스)이 신기루처럼 태양 아래서 잠들어 있었다.

서기 271년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는 우리가 왔던 경로를 거쳐 팔미라로 進軍(진군)했다. 터키 남부의 안티오크와 홈스에서 팔미라의 여왕 제노비아의 군대를 무찌른 로마 군대는 팔미라를 포위하고 관대한 항복조건을 제시했다.

자존심이 강한 제노비아는 이를 거부하고 페르시아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포위망을 빠져나와 동쪽 유프라테스江으로 달리다가 로마軍에 붙들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앞으로 끌려왔다. 그 뒤 전설이 된 제노비아의 운명에 대해선 異說(이설)이 많다. 황제가 로마에서 개선식을 거행할 때 쇠사슬에 묶인 채 나타났고, 그 뒤 로마 근교의 별장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說이 있는가 하면, 로마로 압송 도중 굶어서 자살했다는 說이 있다.

로마軍은 팔미라를 약탈하고 주민들을 많이 죽였다. 철학자 롱기누스가 이때 죽었다. 273년 팔미라 사람들은 로마 주둔군 600명을 죽이고 또 반란을 일으켰다가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이때부터 이 사막도시는 亡兆(망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제노비아는 팔미라를 거의 독립적으로 다스리던 오다이나트 왕의 부인이었다. 그 전, 팔미라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우대를 받았다. 2세기의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특별히 보살펴 주었다. 세베루스는 北아프리카 리비아 땅에서 태어난 페니키아 사람으로서 시리아 홈스의 神殿 司祭(사제)의 딸과 결혼해 고향 땅인 시리아에 애착이 많았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서기 130년에 팔미라를 방문하여 자유도시로 선포하고 세금을 거둘 권리를 주었다. 서기 212년 카라칼라 황제는 이 도시를 로마 식민지로 인정하고, 주민들에겐 로마 시민권을 주는 등 우대했다. 팔미라 군대가 로마軍과 함께 페르시아와 싸운 데 대한 보상이었다. 東西 무역로에 놓인 이 도시는 오가는 隊商들로부터 세금을 거두고 隊商들이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기지였다.

사막의 밤

그러나 팔미라의 통치자 오다이나트는 야심가였다. 혼자 힘으로 페르시아의 사산朝 군대를 격파한 뒤엔 왕을 자칭했다. 로마도 처음엔 이곳에 주둔하는 로마 군대의 지휘권을 주는 등 그를 우대했다. 서기 267년 오다이나트 왕이 암살을 당했다. 부인 제노비아가 실권을 잡고 아들을 허수아비 왕으로 내세웠다. 로마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진압군을 보내자 제노비아는 로마 군대를 맞아 싸웠다.

제노비아는 대단한 미인인데다가 전략가였다. 로마제국의 멸망사를 쓴 영국의 에드워드 기본은 『그녀는 미모에선 조상인 클레오파트라를 능가했고, 용기와 순결함에선 따를 여인이 없었다』고 극찬했다.

로마 군단을 격파한 제노비아는 내친 김에 로마領이던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 전부를 점령하고 이집트로 침입하여 항복을 받아 냈다. 오아시스 도시를 큰 제국 수준으로 키운 제노비아를 로마가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아울레리아누스 황제의 親征은 불가피하였다.

팔미라 유적은 서기 2, 3세기 때 지은 도시 건축물의 잔해이다. 발굴된 면적은 수십만 평에 걸쳐 뻗어 있다. 로마 도시의 전형이다. 神殿·大路·극장·목욕탕·광장·개선문·상점가들이 발굴되어 재현되었다. 다 둘러보려면 종일 걸릴 것이다.

필자는 팔미라의 이곳저곳을 거닐다가 10代 후반의 한국 젊은이 세 명을 만났다. 청년이 둘, 여자가 한 사람이었는데 요르단을 거쳐서 버스편으로 팔미라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시리아에서 만난 최초의 한국인이었다. 시리아의 매력은 관광객들이 밀려 오기 전의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팔미라에는 돌탑을 만들어 유해를 안치했던 로마시대 유적들이 많다. 첨성대처럼 생긴 돌탑 하나에 가족 단위로 수십 명의 유해가 보존되었다. 이곳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두 살 정도의 아기를 안은 30代로 보이는 여인이 「아기를 안고 사진을 찍으라」고 권했다. 한 장 찍는 데 5달러를 요구했다. 자신의 아기를 돈벌이로 이용하는 商術 또한 상업도시의 수천년 전통을 이어 가는 듯했다. 약 4만 명이 살고 있는 팔미라 근방에는 공군기지가 있었다. 전투기들이 유적을 표적으로 삼고서 저공비행을 했다.


대폭발

베두인族 텐트에서 빵「코부즈」를 굽는 여인.
저녁에는 베두인族의 천막으로 들어가 그들의 춤과 노래를 구경했다. 천막 바깥으로 나와 하늘을 보았다. 장작불 위에 솥뚜껑을 엎어 놓고 밀가루 반죽을 그 위에 얹어 얇게 구워 내는 「코부즈」라고 불리는 빵이 있다. 별 보이는 밤 코부즈를 굽는 베두인 아줌마 옆에 자리하여 바로 구워 나오는 빵떡을 1달러씩 주고 먹었다.

7세기 초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일어난 이슬람이 100년 사이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것은 13세기 초 몽골 고원을 통일한 칭기즈칸이 50년 만에 세계제국을 건설한 것과 비견되는 대폭발이다. 이 대폭발의 엔진은 몽골의 騎馬유목민족과 아라비아의 베두인 騎馬(낙타)부대였다. 마호메드가 메카를 점령한 것이 서기 630년, 2년 뒤 그는 죽었지만 이슬람 세력은 「한 손에 코란, 다른 손에 칼」을 들고 北上, 東進, 西進한다.

641년에 시리아와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643년부터 北아프리카를 치고, 705년부터 7년간 중앙아시아를 복속시키고, 708년부터 7년간 지금의 파키스탄 펀자브 지방을 이슬람化했다. 北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에 상륙하여 710년부터 4년간의 戰役으로 이를 점령한 뒤 프랑스로 쳐들어갔다. 727년엔 러시아 남부의 그루지아를 치고, 750년엔 지금의 카자흐스탄 탈라스에서 고구려 출신 고선지 장군이 지휘한 唐軍과 결전해 이겼다. 이때 製紙(제지) 기술자가 포로로 잡혀 그 기술이 아랍을 거쳐 유럽에 전해졌다.

이슬람 세력은 페르시아에서 만든 우수한 선박으로 인도양, 남중국海로 진출했다. 인도, 인도지나, 말레이반도, 중국에까지 이슬람의 씨가 뿌려졌다. 육지와 바다에서 이슬람 세력은 無敵(무적)이었다. 이들은 통일신라期에 한반도에까지 진출하여 무역을 하고, 신라를 최초로 서방에 소개했다. 

최근 팔미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암울하다. 지난 5월 IS가 이 도시를 점령, 유적을 파괴하고, 고대 극장에서 수십 명을 처형하였다. 그것도 소년들을 시켜서. 며칠 전엔 팔미라 유적 보존에 생애를 바친 80대 고고학자가 IS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참수당하였다. 팔미라의 중심 건물인, 서기 1세기에 지은 신전도 폭파시켰다. 

이슬람은 다른 종교를 포용하는 면이 있는가 하면(스페인의 코르도바), 他종교를 부인하고 유적을 파괴하는 면이 있다. 지난 2월 인도에 갔더니 수많은 힌두교 유적의 인물상마다 코가 잘려 나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슬람 침입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으로 꼽히는, 타지마할은 페르샤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된 걸작이다.
 
팔미라는 그리스-로마, 그리고 페르샤 문명이 융합된 도시로서 독자적인 문화 양식을 품고 있는,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중 하나이다. 물론 일찍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런 도시를 파괴하는 IS는 인류의 敵이다. 대한민국 공군을 파병, IS와 싸우는 미국을 돕는 것은 세계 평화를 위한 우리의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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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stkorea 2015-09-02 오후 4:35

    저희 부부는 2007년 7월에 부부배낭여행으로 팔미라를 다녀왔습니다.
    로마는 물론 요르단 등 옛 로마 유적지가 산재해 있지만 팔미라의
    유적지처럼 규모로 보나 수량으로 보나 원형 상태를 보나 이곳
    팔미라처럼 아름답고 생생한 유적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희는 언젠가 다시 한 번 꼭 가 보고 싶은 곳으로 버킷리스트 목록에
    올린 곳 중 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시리아 내전이 끝나기 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가능성은 멀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더더욱 그 아름다운 인류의 문화 유산들이 계속 폭파돼 사라져 간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통탄스럽습니다. 참으로 못된 인간들입니다.
    제안하신대로 우리 공군이 파병되어 그 아름다운 인류 문화 유산을
    지키는데 기여를 한다면 대한민국의 위상은 크게 오를 것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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