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北海道의 눈보라 속으로
-내린 눈도 문화재처럼 보존, 관리하는 일본인들!
北海道 삿포로 남쪽 30㎞쯤에 「시코쓰코」라고 불리는 호수가 있다. 한겨울에 이곳을 찾았다. 호수를 빙 둘러 눈덮인 산봉우리가 병풍이었다. 호수의 둘레는 약 50㎞이고, 15×10㎞의 사각형이다. 투명도 18m,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약 250m로서 日本 호수 중 두 번째이다.
버스편으로 이 호수에 면한 마루코마(丸駒) 온천 여관에 도착하여 다다미 방에 들었다. 호수로 면한 창문을 여니 숨이 막힐 것 같은 장관이 펼쳐졌다. 이 호수는 뜨거운 물이 솟아올라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달밤에 눈덮인 산과 잔 물결치는 호수를, 여관의 露天(노천)온천에 몸을 담근 채 바라보는 것은 최고의 사치이다.
다음날 尙美會(상미회) 여행단을 태운 버스는 눈보라 속을 네 시간을 달려 北海道 한복판에 있는 아사히카와(旭川) 市에 도착했다. 시베리아의 겨울보다 더 눈이 많이 내린다는 北海道의 도로망은 잘 정비되어 있다. 버스는 눈길을 雪海(설해)의 배처럼, 때로는 슬로프를 타는 스키처럼 달렸다. 도로 양쪽으로는 높이 1∼3m의 눈이 쌓여 있고, 雪原(설원)과 도로의 한계선을 보여주는 ↓ 표시대가 빨갛게 신호등처럼 촘촘히 줄을 이었다.
大地가 온통 눈으로 덮여 어디서부터가 도로인지 알 수 없는 雪原에 전봇대처럼 박힌 이 표시대를 따라 달리는 버스는 등대불이나 나침반을 보고 항해하는 배이고, 눈을 밀어내는 와이퍼의 소리는 노 젓는 소리였다.
눈보라는 때론 눈먼지, 때론 눈안개로 변하고, 주변의 침엽수는 얼음과자처럼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눈의 무게에 눌려 뿌리째 뽑혀 넘어진 巨木(거목)들의 최후는 식물계에서 벌어지는 생존경쟁과 適者(적자)생존의 냉혹함을 보여주었다.
아사히카와市는 인구가 약 36만명. 北海道 두 번째 도시이고, 일본에선 가장 북쪽에 있는 가장 큰 도시이다. 이 도심지로 들어갔을 때는 눈이 멎고 파아란 하늘이 白雪(백설)을 뒤집어쓴 도시를 잘 조명해 주었다. 북해도는 인구가 적고(약 600만) 넓기(약 남한 크기) 때문에 고층빌딩이 적다. 도시나 건물이 미국식으로 낮고 길며, 겨울엔 스칸디나비아의 취락 풍경이다. 일본 본토와는 너무나 다른 자연과 도시의 모습으로 해서 가끔 '여기가 일본인가, 미국인가' 하는 착각이 생긴다.
아사히카와 市內 도로는 氷雪板(빙설판)이고 길가엔 눈이 제방처럼 쌓여 있었다. 눈이 문화재처럼 곱게 잘 보존돼 있었다. 눈은 내릴 때는 좋지만 쌓인 뒤에는 밟히고 더럽혀지는 법인데 이 도시의 눈은 쌓여서도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눈이 이렇게 깨끗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대기오염이 거의 없어 눈이 원체 깨끗하고, 일본인들이 깔끔하게 눈을 치우는 데다가, 눈에 덮여 흙이 보이지 않아 눈을 오염시킬 물질이 없는 덕분일 것이다.
아사히카와 市의 숲 속에 있는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문학관을 찾았다. 「氷点(빙점)」으로 40대에 유명작가가 된 미우라씨는 아사히카와 市에서 죽을 때까지 살면서 이 도시를 배경으로 기독교 정신이 밴 9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2층의 아담한 기념관은 이 고향을 아낀 작가와 작가를 아낀 고향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만들어낸 「향기 있는 공동작품」이었다. 38명의 한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100만 원쯤 쓰도록 만든 것도 그런 人情(인정)이었다. 善意(선의)야말로 최고의 관광자원이다.
이 전시관을 둘러보다가 1960년대의 한국 영화 포스터를 만났다. 한국에서도 氷点을 영화로 만들었던 것이다.
2. 소설 雪國의 무대 니가타의 유자와紀行(기행)
일본은 47개 道 都 府 縣(도도부현)으로 되어 있다. 혹가이道와 도쿄都, 교토 및 오사카府, 그리고 43개 縣이다. 필자는 요사이 일본의 47개 도도부현(道都府縣)을 전부 한 번씩 가본다는 목표를 세우고 4박5일씩의 여행을 해오고 있다. 현재 목표의 약 90%를 달성했다.
非서구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선진국이 된 일본의 저력은 지방에서 실감할 수 있다. 인구 5만 정도의 작은 도시라도 숙박시설과 음식점의 질이 도쿄와 같다. 縣마다 근사한 기념관과 박물관 미술관이 있고 잘 정비된 사회기반 시설이 있다. 축적된 富(부)의 위력이다. 일본은 한반도의 약 두 배인데 여행하다가 보면 그보더 더 넓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산이 약 70%인데 일본은 산이 약 80%이다. 아마도 산악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일본일 것이다. 일본 산은 가파르면서 높고 계곡은 깊다. 일본은 국토가 좁고 길어 긴 강은 없다. 가장 긴 강은 니가타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시나노가와인데 367km이다. 한강의 반 정도 길이다.
일본은 평균 강우량이 연간 약 1650mm로서 한국보다 약 400mm가 더 많다. 일본의 지질은 한국보다 젊다. 화산과 온천이 많아 땅이 살아 숨쉬는 것 같고 나무가 크게 자란다. 열대 정글지대를 제외하면 미국과 일본의 나무들이 가장 클 것이다.
필자는 요사이 우리나라 경상도 강원도와 마주하고 있는 일본의 서해안을 자주 다니고 있다. 시마네, 돗도리, 이시카와, 도야마, 니가타, 아키다縣을 따라서 가다가 보면 친근감이 생긴다. 신라에서 건너간 이른바 渡來人(도래인)들이 개척한 곳이라 그 흔적들과 자주 만난다. 신라 도래인들이 만든 시마네縣의 이즈모(出雲)신사(神社)를 비롯하여 한반도 사람들이 만든 제철지(製鐵址), 온돌터가 있다. 일본의 지방 박물관에서는 중앙과 달리 한반도로부터 온 문화의 자취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전시를 하고 있다.
이 일본의 서해안을 따라서는 해안과 평야와 산맥이 나란히 달린다. 바다와 산맥 사이 평야가 매우 넓다. 일본의 가장 유명한 쌀생산지가 이시카와와 니가타이다. 이곳 쌀은 맛이 있고 물이 좋다. 쌀과 물로 빚어지는 것이 일본 정종이니 술맛도 좋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지방을 여행하다가 보면 저마다 酒都(주도)라고 자랑하지만 니가타의 정종이 최고급이라고 보면 된다.
10여 년 전 일본 니가타의 유자와(湯澤) 온천을 가게 되어 있어 이곳을 무대로 하여 쓰여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雪國'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읽다가 중단했었다. 줄거리가 너무 평범하여 재미가 없었다는 기억과 함께 소설의 첫 문장은 가슴에 오래 남았다.
<國境(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니 雪國(설국)이었다. 밤의 바닥이 하애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췄다.>
여기서 國境이란 군마현과 니가타현 사이에 있는 시미즈(淸水)터널을 가리킨다. 도쿠가와 막부시대에는 영주들이 다스리는 영지(藩)를 國이라 불렀다. 시고쿠(四國)는 4개 藩(번)이 있던 곳이다. 이 소설의 '국경'이란 이런 번의 경계선(그 뒤는 縣의 경계선)을 말한다.
'雪國'을 다 읽지 않는 사람들도 이 첫 문장을 기억하는 이가 많다. 여러 소설들의 첫 문장중에서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雪國'은 그 배경처럼 문장이 아름답다. 일본의 短詩(단시:7-5-7자)인 俳句(하이쿠)를 닮은 문장과 대화가 많이 나온다. 짧게 끊어지는 문장에 일본인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을 담았다.
이 짧은 소설을 다 읽고나면 마음 속에 많은 장면들이 殘影(잔영)처럼 남는다. 한 편의 詩를 읽은 느낌이다. 문장이, 특히 대화가 짧고 함축적이라 오히려 상상력과 애틋한 생각이 더 길게 오래 가는 모양이다.
남자주인공 시마무라는 시니컬한 성격의 무용평론가(기혼자로 추정된다)인데 유자와 온천향에 한가하게 놀러와서 기생(게이샤)을 불러 수작이나 걸려고 한다. 그래서 고마코를 만나게 된다. 그 장면.
<여자의 인상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청결했다. 발가락 뒤 옴폭 파진 데까지 깨끗할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첫여름의 산들을 보고 온 자신의 눈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가 하고 의심이 들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소설에서 많은 것을 생략한다. 그 생략으로 해서 상상력이 자극된다. 야스나리는, 시마무라가 이 고마코와 처음 관계하는 장면을 이렇게 스쳐지나가듯이 썼다.
<'내가 나쁜 여자가 아니에요. 당신이 나빠요. 당신이 진 거예요. 당신이 약한 거예요. 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라고 중얼거리면서 기쁨을 누르려고 소맷자락을 씹었다. 잠시 힘이 빠진 듯 조용했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날카로운 어조로,
'당신 웃었죠. 날 비웃는 거죠?'
'웃긴 누가 웃어?'
'마음 속으론 웃고 있는 거죠. 지금은 웃지 않아도 나중엔 반드시 웃을 거야'>
야스나리는 이 소설을 1934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3년 뒤 일단 완결했으나 1947년까지 고치고 다듬고 하여 마무리했다. 사와노라는 일본 평론가는 '이 소설만큼 상징적이고 아름다운 일본문장은 좀처럼 볼 수 없다. 慾情(욕정) 같은 것도 눈 녹은 물처럼 淸潔(청결)하다'고 썼다.
'돌을 갈아놓으면 반들반들해지는' 것처럼 신경이 예민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소설을 붙들고 13년간이나 고치고 다듬고 했다는 것은 그의 '고독한 魂(혼)'에서 나온 힘이 있었음이라고 한다. 사와노는 '그의 부드러움은 失意(실의)와 체념에서 나온 것이고 그의 엄격함은 사라지는 일본의 美를 마지막까지 버티어보려는 데서 연유한다'고 덧붙였다.
이 소설의 基調(기조)를 이루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생애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 早失父母(조실부모)한 천재 야스나리가 일본의 美的 감수성에 탐닉했다가 73세에 자살로 생애를 마감하는 것이 이해된다.
나는, 연일 눈이 내리고, 이미 내린 눈은 깊이가 2m를 넘는 곳도 있었던 유자와 온천에서 못다 읽은 이 소설의 남은 부분을 덮고 인적이 드문 거리로 나와 보았다. 고마코를 닮은 여인과 마주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산비탈에 서 있는 듯한 유자와 온천의 역사는 약 800년. 2000m를 넘는 連峰(연봉)들이 달리는 주변에는 좋은 스키장들이 많다.
유자와가 속해 있는 니가타는 면적이 1만2583평방킬로미터로서 경상남도만한 크기이다. 인구는 약 245만명. 지진이 자주 나기로 유명하고, 해안지역에 연간 산출량 약 300만 배럴의 유전이 있다. 쌀 출하액이 일본제1이다.
니가타의 나가오카라는 작은 도시는 금속洋食器(양식기)의 세계적 생산지이다.
인천 공항에서 니가타까지는 비행기로 약 두 시간, 니가타역에서 고속 신간선(新幹線)으로 유자와역까지는 약 40분 걸린다. 도쿄-니가타의 신간선은 산맥을 뚫는 공사로 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먹힌 철로라고 한다. 니가타 출신 政界 실력자 다나카 전 수상 덕분에 가능했던 공사였다.
평자들이 소설 雪國의 클라이맥스라고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고마코는 약간 어색한 기색으로, 이를테면 아기를 한 번도 낳아 본 적이 없는 처녀가 남의 아기를 안고 거북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들어 마치 아기의 잠자는 얼굴을 지켜보는 몸짓을 했다. 잠시 후 시마무라가 입을 열었다.
'넌 좋은 애다'
'왜? 어디가 좋아요?'
'좋은 애야'
'그래요. 짖궂은 양반, 무슨 애길 하는 거죠? 정신 좀 차리세요.'
고마코는 외면을 하고 시마무라를 흔들면서 토막토막 쏘아붙이듯 말하고는 또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혼자 입 속으로 웃으면서 '당신 안되겠어요. 괴로우니까 돌아가 주세요. 이젠 입을 옷이 없어요. 당신에게 올 때마다 새 옷을 갈아입고 싶지만 이젠 바닥이 났어요. 이것도 친구에게 빌린 거예요. 나쁜 애죠?'
시마무라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뭐가 좋은 애에요?'
'넌 좋은 여자야'
'짖궂은 분'
어깨가 간지러운듯 얼굴을 숨겼으나 무엇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한쪽 무릎을 세워 고개를 들고는, '그게 무슨 의미죠, 네? 무슨 얘기에요?'
시마무라는 놀라서 고마코를 보았다.
'말해주세요. 그래서 찾아오신 건가요? 당신, 비웃고 있었군요. 역시 비웃고 있었죠?'
고마코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시마무라를 노려보더니 어깨는 심한 노여움으로 떨리고 안색은 창백해지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분해라, 아이, 분해라' 하며 데굴데굴 구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돌아앉았다.>
'넌 좋은 애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감격하면서 과거 심정까지 털어놓던 고마코가 '넌 좋은 여자야'라고 시마무라가 말을 바꾸는 순간 돌변한 이유는 일본인과 한국인은 알 것이다. '좋은 애'와 '좋은 여자'의 차이. 이 차이로 해서 고마코는 시마무라에 대한 꿈을 접고 배신감을 느끼며 소설은 파국으로 달린다.
평론가는 '낱말의 사소한 차이를 가지고 이렇게 많은 것을 암시하는 소설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유자와 온천에는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이 雪國을 썼던 여관과 방이 남아 손님들을 끌고 유자와 마을 민속박물관에는 雪國館(설국관)이 있다. 이 전시실에 가면 한 장의 나무판이 있다. 설명인즉, 雪國을 영화로 만들 때 고마코役을 맡은 배우와 야스나리가 소설에서 고마코의 모델로 삼았던 기생이 만났는데 그때 두 사람이 함께 발을 녹이며 이야기하던 온수통(고다츠)을 받치던 나무판이라고 한다.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일본인이다. 눈이 많이 쌓이는 니가타의 도로는 거의 막히는 날이 없다. 일본의 도로정비 능력은 이럴 때 돋보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雪國, 그 感傷 紀行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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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18, 09:16












참 좋은 여행기를 읽었습니다. 어릴 적 읽었던 이 소설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소이다.
P.S. naidn 씨,... 무슨 이런 ssagazi 없는 말씀을.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
<雪國>에 대한- 그리고 그 지역 분위기!
참 아름다운 글이다.
살벌한 빨갱이 亂動의 非常에도,
조갑제는 낭만이네.
非凡이 자신을 편안케 하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