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보도된 KBS 뉴스9 보도비평 - 총리 후보 띄우려 우리 현대사를 폄하
[정치] 한국 여성 운동의 ‘大母’
<앵커 멘트>
한명숙 총리 지명자의 삶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 여성운동의 대모입니다. 한 지명자를 김웅규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한명숙 총리 지명자는 대학 때까지만 해도 보들레르와 베를렌을 읊조리던 작가 지망 문학 소녀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러던 한 지명자는 남편 박성준 씨를 만나 시대의 아픔과 사회 현실에 서서히 눈을 떴고 이후 진보적인 맹렬 여성 운동가의 삶을 이어가게 됐다고 말합니다.
결혼 6개월 만에 남편이 통혁당 사건으로 13년간 영어의 몸이 되고 한 지명자 역시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여성들을 교육시키다 구속됩니다.
고문을 받았고,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는 한 지명자는 80년 광주를 광주 교도소에서 맞기도 했습니다. 고난의 삶에서 한 지명자는 용서와 화합을 배웠다고도 합니다.
<녹취> 김근태(의원/한명숙 지명자 대학연합 서클 후배): '사람을 상처 안주고 화합하고 격려합니다. 총리로서도 큰 덕목이 될 것입니다.'
대학시절 남편에게 프로포즈도 자신이 먼저 했고, 늦게 얻은 외아들의 이름도 자신과 남편의 성을 함께 넣어 지었다고 합니다.
초대 여성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 시절 모성보호 3법, 대기 환경 개선 특별법 등을 제정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본인과 현재 성공회대 교수인 남편 박성준 씨의 재산을 합쳐 4억 1900여만 원의 재산을 신고해 놓고 있습니다. 아들은 현역병으로 복무중입니다. KBS 뉴스 김웅규입니다.
韓 의원은 1979년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여성들에게 사회주의적 사상을 교육하다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돼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실제 2년의 刑을 살았다. 그의 남편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는 1968년 북한의 對南공작부서가 조직한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돼 13년 동안 징역을 살았었다. 당시 통혁당 사건은 북한의 對南공작비서인 허봉학에 의해 만들어진 지하당 조직이었다. 주모자 3인은 밀입북해 노동당에 가입했고 모두 사형됐다. 핵심 주모자였던 김종태가 사형당한 후 북한은 그를 추모한다며 해주사범대학의 이름을 김종태 사범대학으로 바꿨고 평양의 혁명열사릉에 가묘를 만들었다.
이런 사실들을 무시한 KBS는 ‘시대의 아픔과 사회 현실에 서서히 눈을 떴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韓 의원과 그의 남편이 마치 시대를 고민하는 지식인으로서 양심적인 행동을 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KBS의 표현대로라면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과 내통해 지하당을 조직해 반공법을 위반하고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행위가 ‘시대의 아픔과 사회 현실에 눈을 뜬 것’이 되는 것이다. KBS는 이런 반국가적, 불법적인 삶을 ‘고난의 삶’이라고도 표현하고 있다. 또한 KBS는 세계가 기적이라고 칭송하는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굴곡진 우리 현대사’라고 표현, 韓 의원을 높이기 위해 우리나라의 현대사까지 폄하하고 있다. 국가기간방송이라는 KBS는 평양방송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좌파 대통령 아래서 좌파 정권이 김정일 반역 정권을 친구로 대한민국을 主敵으로 설정하고, 국영방송이 좌파 선동을 하고, 좌파 국군통수권자 아래서 국군이 좌파짓을 하면 나라는 '빨갱이' 세상이 되는 것이다.
[정치] 이산상봉 기자단 철수, 남북간 갈등
<앵커 멘트>
이산가족 상봉 취재 과정에서 일어난 남측 기자단의 철수문제로 남북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취재 제한과 상봉 지연에 대해 정부가 거듭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김건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어제 남측 기자단이 부당한 취재 제한에 항의하며 철수하려 하자 북측은 오히려 엄포를 놨습니다. 만일 철수한다면 더는 상봉 행사를 취재할 생각을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남측 상봉행사 단장이 서면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시해 2진 상봉을 진행했는데 기자단이 철수하려는 것은 새로운 도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오늘 남측 단장이 잘못을 인정했다는 북측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개별 상봉이 지연되는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유감을 표명한 것일 뿐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측 기자의 사과 요구는 언론 자유에 관한 사항이라 수용 불가라는 입장도 북측에 전달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조심스런 가운데에서도 북한의 발언 수위가 그리 높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녹취>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북측 당국과 기자끼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남북 당국 간의 경색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북한이 대북 침공 훈련이라고 주장하는 韓-美간 전시증원 연습이 내일부터 진행될 예정이어서 당분간 기 싸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KBS 뉴스 김건우입니다.
KBS의 북한 감싸기는 이 보도에서도 계속된다. KBS는 ‘북측은 엄포를 놨다’고 표현했다. ‘엄포’란 실제 행동은 없이 말로 남을 어르는 행동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북한의 행동은 ‘엄포’가 아니었다.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방해하고 기자들을 위협해 결국 기자단이 스스로 철수하게 만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정부의 행동에 대해서도 다른 언론들은 정부가 북한에 서면으로 사과해 놓고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KBS는 정부가 북측에 사과를 했는지 안했는지에 대해 사실은 밝히지 않고 모호하게 보도하고 있다.
北의 반응을 보도하는 부분에서도 ‘정부는 조심스런 가운데에서도 북한의 발언수위가 그리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면서 정부 당국자의 의견은 없고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의 개인 의견을 내보내고 있다. 일선 기자들이 당한 언론자유 침해 사례에 대해 KBS가 가해자인 북한측에 대해 엄정한 비판을 포기한 것은 KBS가 진정한 언론이 아닌 좌파선동 매체임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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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총리후보 한명숙 의원]통혁당사건 13년복역 남편 박성준
[동아일보 2006-03-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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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아내가 국무총리가 된다면 임기 이후에 개인 자격으로 통혁당(통일혁명당) 사건의 재심을 청구하겠다.”
한명숙 총리 후보자의 남편 박성준(朴聖焌·66) 성공회대 NGO대학원 겸임교수는 총리 후보자 발표 이틀 전인 22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처벌이나 보상이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오해를 풀고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지만 우선은 ‘외조(外助)’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
박 교수는 1968년 이른바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구속 수감돼 징역 15년형을 선고 받고 13년간 옥살이를 한 뒤 1981년 성탄절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당시 발표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박 교수는 서울대를 비롯한 각 대학 기독교계 학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경제복지회’ 회장으로 모임을 이끌며 북한의 경제제도를 찬양 연구했고 아내인 한 후보자도 ‘포섭’한 것으로 돼 있다.
당시 경제복지회 부회장이던 한 후보자도 이 사건으로 붙잡혀 갔으나 강원용(姜元龍) 목사와 교인들의 탄원으로 풀려났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당시 신영복(申榮福·현 성공회대 교수) 씨에게서 책을 빌려 읽은 것뿐”이라며 “자본론 등 당시 반공법에 저촉되는 서적이었지만 지금은 문제될 게 없는 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에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였던 게 아니냐’는 질문에 “나는 과거나 지금이나 어떤 이데올로기도 신봉하지 않는다”며 “조선노동당이나 통일혁명당 같은 조직에 가입한 적도 없고 포섭된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 교수는 1981년 출소 후 신학에 입문했으며 한국신학대를 졸업하고 일본 릿쿄(立敎)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방문학자로 1997년 미국에 갔다가 2000년 개신교의 한 교파인 퀘이커교도가 됐다. 퀘이커교는 목사 없이 평신도 위주로 예배를 보는 교파다.
박 교수는 “퀘이커교 친우회에는 나만 입문했다. 아내는 경동교회 교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비폭력 평화의 물결’과 ‘아름다운 가게’ 등 시민단체의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통혁당 사건은…▼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가 ‘통일혁명당 간첩단’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사건이다. 규모 면에서 6·25전쟁 이후 최대 조직 사건이었다. 지금은 중고교생 권장도서가 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도 이 사건으로 20년간 복역했다.
검거된 158명 중 73명(23명 불구속)이 검찰에 송치됐으며 김종태(金鍾泰)를 비롯한 주모자 4명은 사형을 당했다. 중정은 당시 통혁당이 북한 조선노동당의 지령을 받는 간첩조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통혁당 핵심 인사들과 어울렸던 진보적 지식인들은 중정에서 주모자로 지적된 김종태가 북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다.
사형이 집행된 김종태에 대해 1969년 7월 당시 북한 김일성(金日成) 주석은 영웅 칭호를 내렸다. 당시 김 주석은 “김종태와 같은 투철하고 준비된 혁명가를 육성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혁당 사건은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위)의 조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과거사위 안병욱(安秉旭·가톨릭대 교수) 간사는 “과거사위의 조사 대상은 사회적으로 의혹이 크거나 논란이 많은 사건이지만 통혁당 사건은 그렇지 않다”며 “주모자들에 대한 혐의가 분명해 정치적으로 과장이나 왜곡된 사건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총리 후보 띄우려 대한민국을 명예훼손
- 全敬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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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3-25, 10: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