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달 만에 뵙게 됐습니다. 이제 봄이 됐습니다. 봄이 되니까 한반도 상황도 약간 호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관례에 따라 앞 부분은 제가 주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나중에 북한의 국제범죄 실상에 대해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0분 정도는 제 강연을 매번 들으러오는 20대 젊은 학생이 있는데 그 학생에게 발언권을 주려고 합니다. 이 학생이 한국의 보수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평소에 제게 자주 이야기를 합니다. 이 학생의 이야기 중에는 연세가 드신 분들께서 참고하실 만한 게 많아서 젊은이의 발언대랄까 그런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 [趙甲濟의 현대사 제14회 토요강좌 오디오] 주제 : 북한의 국죄범죄 실상 |
저는 외국여행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주로 역사 기행이라는 이런 주제를 가지고 외국에 나갑니다. 여행을 하면서 국내를 바라보면 다른 관점에서, 그동안 한국에서 못봤던 점을 외국 여행 중에 발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주 가는 편입니다.
최근의 여행으로는 지난달에 열흘 정도 시간을 내서 이탈리아 북부를 갔다 왔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피렌체, 베니스, 피사라는 곳, 라벤나라는 곳도 있구요. 이름을 들으면 잘 기억이 안나는 자그마한 도시를 여행을 했는데 주제는 르네상스였습니다.
르네상스라고 하면 우리가 文藝復興이라고 번역을 합니다만 그것은 정확한 번역은 아닙니다. 하여튼 중세 암흑기가 끝나고 근대로 넘어가는 14, 15, 16세기. 이 300년 동안에 유럽에서 있었던 변화를 말하는 거죠.
그 변화의 결과물이 자본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으로 또는 산업혁명으로 나타남으로 해서 서양이 동양을 앞서가게 됐습니다. 바로 르네상스 때문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그 르네상스의 본거지가 바로 이탈리아 북부입니다. 그 쪽을 여행을 하면서 나름대로 한 번 세계사의 흐름을 정리해 봤습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어떤 역사적인 흐름 속에 어떤 좌표속에 있느냐 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사건에 휘말려서 흘러가다 보면 오늘 대한민국이 대충 어떤 위치에서 가고 있느냐, 나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 하는 좌표를 상실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한국은 세계에서 독불장군처럼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사의 변화가 오면 반드시 그 영향을 받아서 나라의 운명이 바뀝니다. 동시에 나의 운명도 바뀌는 것을 우리가 볼수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문닫고 가만히 있으면 됐지만 舊韓末 서양에서 제국주의 시대가 일어나면서 강력한 해군력을 앞세워 동양으로 진출을 하니까 우리도 할 수 없이 문을 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서 조선이 망해 식민지가 됩니다. 곧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다음에 소련을 앞세운 사회주의가 전세계로 번지면서 한반도가 두 동강이 나고 그런 흐름이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운명이 우리의 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의 大勢 속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가 아주 실감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解消 과정도 아마 그런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결정될 것이고 거기에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 역할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느냐에 의해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르네상스 이야기를 예로 들어 제가 한 번 정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세계사에서 동·서양을 보면 참 재미있는 주고받기를 했습니다.
세계사의 문명의 양대 축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양과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서양의 대결과 협력 또는 긴장관계에 의해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양대 축이고 그 이외에 중동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인도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있지만 양대 세력에는 포함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GDP를 계산하는 방법 중에서 구매력 기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할 경우 지금 일본, 중국, 한국을 합친 구매력 기준 GDP는 벌써 2년 전에 미국과 유럽을 능가했습니다. 그래서 GDP 기준으로 보면 EU, 미국, 동아시아 3대 지역이 세계 3대 경제, 또는 군사력의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100년 전만 해도 상황이 달랐죠. 100년 전의 동아시아는 모두 서양 제국주의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었습니다. 그 중 일본만 독립을 지키고 중국은 완전히 뜯어먹히는 존재였고 한국은 식민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왜 생겼느냐. 동양과 서양의 흥망성쇠를 비교하려면 서양과 동양의 암흑시기를 봐야 합니다.
서양의 암흑시기가 언제냐 하면 게르만족이 로마 영역으로 쳐들어와서 西로마가 무너지던 때부터입니다. 그게 한 5세기쯤 되죠. 그 5세기부터 문예부흥, 즉 르네상스가 일어나기 시작한 14세기까지 약 1000년 동안이 서양의 암흑기였습니다.
이 암흑기에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퍼졌죠. ‘기독교가 있었는데 어떻게 암흑기냐’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만 그 당시의 기독교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사람한테 사랑이나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억압하고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믿으면 화형에 처하는 등 神의 이름으로 교황이 인간을 독재하는, 그런 神政체제가 이뤄졌습니다.
그 바람에 산업도 발달하지 않고 과학도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의 찬란한 문화가 1000년 동안 번성하다가 기독교가 전유럽을 석권하는 것과 동시에 암흑기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후 약 1000년 동안 유럽은 과학, 문화, 예술 이런 부분에서 동양에게 뒤지게 됐습니다.
이때 동양에서는 그런 큰 역사적인 기복이 없이 잘 발전해 나갔어요. 동양에서는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와 같은 세계적인 文化大國이 생기고 동시에 北方의 초원지대에서는 징기스칸이라든지 이런 군사강국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주로 서쪽으로 쳐들어갔습니다. 1240년이면 우리나라가 고려시대 무신정권 시절입니다. 징기스칸의 손자인 바투라는 사람이 지금의 중앙 아시아 북쪽, 시베리아 남쪽의 볼가강 하류에 있다가 약 15만 명의 기마군단을 거느리고 겨울에 지금의 러시아 지역을 지나서 1241년 봄에 유럽에 나타났습니다.
지금의 영토를 기준으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이런 곳을 다 석권하고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지역까지 진출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동양이 서양으로 가장 깊게 진출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 앞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왜 망했느냐. 바로 훈족의 침입 때문에 망했습니다. 이 훈족은 흉노족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몽고 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2세기, 1세기 한나라의 한무제가 흉노족을 치니까 흉노족이 서쪽으로 도망갔습니다. 이 사람들이 서기 4세기 경에 유럽에 나타났습니다. 이들 흉노족은 기마군단이라서 싸움을 잘했습니다. 이들이 게르만족을 쳤어요. 그러니까 게르만족이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로마제국 속으로 들어갔고 결국 로마제국이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지배층이 교체가 됐어요.
서기 5세기에 가면 야만적인-기독교를 믿지 않는-게르만족이 全유럽을 뒤덮었습니다. 야만족이죠. 그 사람들은 글자도 모르고 그리스-로마와 같은 과학기술도 갖지 않았습니다. 이 게르만족이 유럽을 덮치면서 지배층이 로마 사람에서 게르만족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나라들은 그 게르만족이 세운 나라들입니다. 프랑크족이 세운 나라는 프랑스가 되고 앵글로색슨족이 세운 나라는 영국이 되고, 데니쉬라는 종족이 세운 나라는 덴마크가 되고 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는 게르만의 일족인 바이킹들이 정권을 잡고 그렇게 게르만족 세상으로 변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게르만족이 야만족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죠. 게르만족의 기독교化가 서기 5세기부터 진행이 됐습니다. 7, 8, 9세기에 가면 게르만족이 전부 기독교가 돼버립니다. 그러면서 교황의 힘이 세어졌습니다. 그래서 중세 암흑기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잡았던 사람이 바로 교황이었습니다. 교황이 오로지 기독교 하나만 철저한 통치이념으로 앞세우는 바람에 나라가 神政체제로 가버리면서 문화가 발달하지 않게 됐습니다.
어떤 나라든지 통치이데올로기, 정치이념을 하나로 만들면 그 국가는 반드시 독재화, 전체주의화가 일어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습니다.
유럽이 이런 상황이던 7,8세기부터 중동에서는 이슬람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슬람도 기마전법을 잘 썼기 때문에 불과 1세기 만에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석권하고 드디어 유럽으로 진출을 합니다. 8세기에는 지금의 스페인 지역을 모두 점령을 합니다. 그래서 스페인 통치를 한 700년 동안 이슬람이 하게 되죠. 이것은 기독교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이 이슬람 사람들은 당시의 가톨릭과는 달리 종교의 자유를 상당 부분 허용했어요. 그래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도 예루살렘에서 기독교 신도들이 자유롭게 순례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11세기쯤 가면 동쪽에서 다른 유목민족들이 중동으로 들어옵니다. 그 사람들이 셀죽터키라는 사람들입니다. 투르크 족-우리가 말하는 돌궐인데-돌궐 중에서 셀죽族이라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중동을 점령합니다. 이들이 아랍족을 타고 넘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다음에는 기독교도들을 탄압합니다. 그러니까 유럽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갈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러자 교황이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죠. 교황이 유럽에 있는 기독교 왕들을 ‘우리가 이교도를 치러가자’며 선동을 해가지고 십자군 전쟁이 일어납니다. 십자군 전쟁은 그 뒤에 7, 8회에 걸쳐서 이뤄졌는데 딱 한 번 예루살렘을 탈환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곧 쫓겨나죠.
유럽이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보니까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뭘 깨달았느냐 하면 유럽 기독교 왕국의 실력이 이슬람 제국의 실력에 비해서 훨씬 못하다. 과학적으로도 그렇고 군사적으로도 그렇고 전쟁만 하면 번번이 진다는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유럽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하나님만 믿으면 어떤 전쟁에서도 이긴다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 십자군 전쟁 중에서 이런 전쟁도 있어요. 어린 아이들로만 부대를 만들어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으면 이길 것이다’라는 생각에 몇만 명의 어린아이들로 부대를 만들어 보냅니다만 가다가 다 몰살됩니다. 이후에 ‘야, 이거 하나님만 믿어서도 안되고 전쟁이라는 것은 과학기술이 뒷받침돼야 되는 것이구나’라고 정신을 차리게 된 계기가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이 십자군 전쟁은 유럽과 동양이 서로 교통을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됐습니다.
그 후 당시 지중해에서 동쪽과 무역을 많이 하던 이탈리아에서 문예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문예부흥은 대충 13세기부터 시작되서 13, 14, 15, 16세기까지 진행됩니다.
왜 이탈리아에서 문예부흥이 일어나느냐. 그리스 로마 문명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세시대 약 1000년 동안 유럽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를 잊어버렸습니다. 특히 로마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리스 로마 문명이 얼마나 찬란했느냐 하는 것은 잊어버린 채 오직 하나님만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슬람과 싸우면서 보니까 오히려 그리스 로마 문명의 좋은 유산들, 과학, 기하학, 화학 이런 것을 발전시킨 사람들이 이슬람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슬람 사람들을 통해서 그리스 로마 문명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주변을 다시 살펴보니까 바로 그리스 로마 문명의 본거지 이탈리아가 생각난 겁니다. 그래서 로마로 돌아가자 한 것이 문예부흥의 시작입니다.
오늘날의 이 문제, 암흑시대. 우리가 왜 이렇게 못사느냐, 우리에게는 왜 이렇게 자유가 없느냐, 우리가 왜 이슬람에게 이렇게 얻어터지느냐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돌아보니까 우리에게는 로마가 있었다. 로마로 돌아가자. 그래서 1000년 동안 잊어버리고 있다가 그리스 로마를 공부하게 됐어요. 자기에게는 좋은 유산을 물려준 그런 좋은 조상이 있었고 좋은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기독교의 전제정치 때문에 까먹고 있다가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비로소 自覺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 로마로 돌아가자. 로마 시대 때는 우리보다 나았다 하는 쪽으로 생각이 돌아간 겁니다. 일종의 復古(복고)운동인 거죠. 그래서 로마의 고전을 연구를 하고 그리스 로마 시대 때의 미술을 연구하게 되는 것이죠.
요 대목에서 한국하고 비교를 해봅시다. 한국에서 그리스 로마 시대는 언제냐, 그건 바로 삼국시대, 통일신라 시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조선조, 고려, 그 이전에 후삼국 시대, 통일신라시대, 삼국시대 이렇게 되는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정신력이나 그 사람들이 남겼던 유물이나 이런 것을 보면 정신적으로 가장 고양돼 있었던 때가 통일신라시대나 삼국시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통일신라 시대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해야 우리가 미래로 나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사에서 로마가 있다면 그것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부분은 나중에 다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유럽 사람들이 자각을 하게 됩니다. 자각을 하면서 그것이 어떤 식으로 표현이 되느냐. 우선 건축과 그림을 통해서 표현이 되죠. 아주 활달한 그림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까지 발가벗기고 여자들의 裸身(나신)을 그냥 그리는 등 그 전에 그렸던 종교화와는 아주 다른,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그림이 나타나기 시작하죠.
동시에 문예부흥이라는 말처럼 소설과 시에서 단테라든지 보카치오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글을 통해서 인간 중심으로 관점이 바뀌는 거죠. 그 전에 1000년 동안에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인간 중심, 인간 해방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마키아벨리라는 사람이 플로렌스에서 등장하면서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게 됩니다. 그 전에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였습니다. 종교가 정치를 주무르고 있었으니까요. 반면 ‘종교는 종교고 정치는 정치다. 정치는 권력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고 권력은 권력을 장악한 사람이 부국강병해야 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과학이 발달하죠. 그러니까 무슨 생각이 나옵니까. 코페르니쿠스같은 사람이 나와서 ‘이 우주에서 지구가 중심인 줄 알았는데 지구도 돌고 있구나.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코페르니쿠스는 요행으로 종교재판에 안넘어갔지만 그런 주장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종교재판에 넘어가서 화형돼 죽었습니다. 갈릴레오도 자기가 망원경을 만들어서 천체를 관측한 결과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발표해가지고 나이 칠십에 종교재판에 끌려갑니다. 거기서 자기의 주장을 번복했습니다. 그래서 살았습니다. 거기서 나오면서 중얼거렸다는 이야기가 ‘그래도 지구는 돌고있다’라는 거 아닙니까. 그게 우리나라로 치자면 어느 시대냐. 병자호란 때입니다. 병자호란 때 동양은 그래도 그 정도로 무지막지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무슨 과학이론 때문에 화형당하고 하지는 않았지만 유럽은 아직도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점점 과학적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신에서 인간중심, 과학.
그 다음에 드디어 결정적인 게 1517년에 지금의 독일 작센 지방에 있었던 신학대학의 교수인 마틴 루터라는 신학자가 종교개혁을 일으킵니다. 마틴 루터는 당시에 교황이 하고 있는 걸 보니까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당시 교황은 지금 성베드로 사원-지금 로마에 가면 교황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와가지고 설교도 하고 이러는 성베드로 사원-을 짓기 위한 돈을 만들기 위해서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사면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 하는 면죄부를 파는 것을 보고 마틴 루터가 화가 나서 자기 대학교 문 앞에다가 95개조의 질문을 써가지고 붙였습니다. 일종의 대자보를 붙인 겁니다.
이것은 당시에는 당장 불려가서 화형을 당할 만큼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독일 영주들이 로마 교황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마틴 루터를 보호해줍니다.
또 당시에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만들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자기의 주장하는 바를 글로 쓰고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만들어 마틴 루터가 쓴 것을 찍어가지고 유럽 전체에 돌렸습니다. 이것은 언론의 승리죠. 그러니까 여론이 형성된 겁니다. 마틴 루터를 지지하는 여론.
마틴 루터의 주장은 뭐냐. 교황이라는 존재가 필요없다. 성경에 나온대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하고 상대해야지 왜 교황이 중간에 있으면서 권력을 누리고 부패하고 하느냐며 교황을 부정합니다. 교회의 부정부패를 부정하면서 여기서 프로테스탄트, 신교가 일어나는 거죠.
이것 때문에 문예부흥으로 시작됐던 유럽의 각성운동이 결국은 종교개혁으로 갑니다. 이 종교개혁이 유럽에서 약 130년 동안 전쟁을 만들어내는 거죠. 1517년에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선언이 일어났고 30년 전쟁이 독일에서 끝나는 것이 1648년입니다. 그러니까 130년 동안 유럽에서 무지막지한 종교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에 종교전쟁을 하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었습니다. 가장 심하게 종교전쟁을 한 나라가 독일이었습니다. 즉, 신교를 믿는 사람과 가톨릭을 수호한다는, 똑같은 성경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전쟁을 합니다.
30년 전쟁이 결판입니다. 1618년에서 1648년 사이에 30년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혹시 여기 프라하에 가보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는데 프라하에 있는 궁전, 거기서 일어났습니다. 거기서 신교도들이 교황편에 선 사람을 잡아가지고 창문 밖으로 집어던져버리는 게 계기가 돼 30년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30년 전쟁의 주 무대는 독일이었습니다. 독일이 30년 전쟁의 주 무대가 돼버리는 바람에 독일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습니다. 이 30년 전쟁에는 스웨덴도 참전하고 스페인도 참전하고 유럽의 모든 나라가 다 이해관계에 얽혀서 전쟁에 참전합니다. 전쟁을 하다보니까 제일 처음에는 신교와 구교의 싸움이었는데 나중에는 구교편이었던 프랑스가 오히려 신교편을 들고 하는 식으로 뒤죽박죽이 돼버렸어요. 그러니까 전쟁이 각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힌 겁니다.
독일이 전쟁의 주무대가 되는 바람에 독일은 그 뒤 회복하는데 굉장히 오랫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독일이 유럽에서 후진국이 돼버렸죠. 독일이 30년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는 데 약 200년 걸렸습니다. 비스마르크가 나왔던 19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독일이 원래 위치를 차지해서 프랑스와 대등한 관계로 가게 됐습니다. 프랑스는 물론 신교도와 구교도의 싸움이 있었으나 비교적 간단하게 갈등을 극복했기 때문에 프랑스가 그 뒤에 유럽에서 주역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영국도 종교전쟁을 비교적 간단하게 처리했습니다. 영국의 국교로써 이 문제를 해결을 했습니다. 이렇게 유럽에서는 제일 처음에는 문예부흥, 그 다음에 종교개혁, 그 다음에 드디어 산업혁명이 일어납니다.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먼저 일어났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유럽이 이런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잡습니다. 이 문예부흥으로 시작된 혁명이 산업혁명으로 일단 완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유럽은 드디어 과학기술을 가지게 됐습니다. 산업혁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거죠.
산업혁명이라는 것은 뭡니까. 산업혁명 전의 ‘힘’이란 것은 동물적 힘 아닙니까. 인간의 힘, 또는 말을 탔을 때 말의 힘, 또는 소의 힘 이런 것이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힘은 기계의 힘이 됐습니다. 증기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엔진으로까지 넘어갑니다만 이전까지 사용하던 동물의 힘보다 기계의 힘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의 힘이 더 센 거 아닙니까. 그래서 동양과 서양의 힘이 산업혁명을 계기로 완전히 서양쪽으로 기울어져버립니다. 문예부흥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면 이런 비유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예부흥 시대에 또 중요한 것의 하나가 사람들이 에너지가 폭발하니까 해외로 나가게 됐습니다. 지리상의 대발견 시대라고 해가지고 서양 사람들이 신대륙, 아프리카, 동양으로 배를 타고 가게 됐어요. 항해기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1492년에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 콜럼부스가 스페인 왕가의 도움을 받아서 배 세 척을 가지고 약 두 달 동안 항해를 해서 지금의 쿠바 근방에 도착한 것이 신대륙의 발견입니다. 그때 배 한 척당 톤수가 약 150톤 됐어요.
1492년 훨씬 전인 1405년 명나라의 영락제가 정화라는 환관을 지휘관으로 하는 대함대를 만들어서 아프리카, 중동쪽으로 원정을 보냈어요. 이때 만든 배는 木船(목선)이지만 배 하나가 몇천 톤이 됐습니다. 당시 해양력은 명나라가 훨씬 앞서 있었다는 거죠. 그러다가 명나라는 곧 폐쇄정책을 써서 외국과 무역을 못하게 해버립니다. 큰 배를 못만들게 해요. 큰 배를 만들어서 외국에 가서 무역하는 사람들을 잡아 감옥에 보냅니다. 해외로 갈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막아버렸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유럽은 해양개척을 시작합니다. 이것 또한 동서양의 힘의 관계를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서양이 문예부흥을 하고, 종교로부터 정치가 독립하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모든 사물을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그 연장선상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싹트게 됩니다. 이것은 부드럽게 이어진 것이 아니라 전쟁과 소용돌이와 혁명과 쿠데타를 통해서 일어났어요. 그 혁명의 싹이 튼 것이 지금의 이탈리아 북쪽, 플로렌스입니다. 문예부흥의 수도가 플로렌스죠. 그 다음이 베니스, 피사같은 이런 자그마한 도시들입니다.
거기서 제가 생각한 것은 그겁니다. 동서양이 다 각기 암흑시대가 있었다. 유럽에서는 5세기부터 약 600~700년의 암흑시대가 있었다. 그렇다면 동양에서의 암흑시대는 언제냐. 그것은 명나라가 해외무역금지령을 내린 15세기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명나라 당시에 조선 등이 주자학-유교 중에서도 가장 교조적이고 관념적인 주자학-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채택을 하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양 전체가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이 유교라는 것은 지금도 우리가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만 원래 유교라는 것은 실용적입니다. 특히 孔子, 孟子의 유교, 論語같은 것은 지금 읽어봐도 정말 좋은 글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에게 뼈와 살이 되는 학문인데 이것이 주자학으로 가면서 理氣論(이기론)이라고 해가지고 이퇴계 선생이라든지 이율곡 선생까지 내려와버리면 이게 아무도 모를 정도로 어려운, 관념적인 도덕론으로 돼버립니다. 그래서 그것을 믿지 않으면 斯文亂賊(사문난적)이라고 해서 처벌을 받는, 말하자면 동양이 단일 이데올로기로 통일이 돼버립니다.
중세 유럽에 암흑시대가 있었던 것은 기독교로서 통치 이데올로기가 통일이 됐기 때문입니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약 400년 동안 동양은 주자학으로서 통치 이데올로기가 통일이 돼버리니까 쇠퇴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어떤 이념이라든지 그것이 획일적으로 되면 안되는거죠. 이런 동양의 쇠퇴에서 예외가 있었습니다. 바로 일본이죠. 일본은 주자학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하나의 교양으로 받아들였지 통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조선과 일본의 차이입니다. 일본은 당시 무사들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관념론에 빠져들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서양의 산업혁명에서 발달한 과학기술을 빨리 받아들이고 동시에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체제를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주자학에 덜 오염됐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죠. 그래서 동양의 암흑시대도 400년 정도 됐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서양과 동양의 힘이 완전히 역전이 되면서 19세기 말부터는 중국부터 서양의 세력에게 뜯어먹히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시작이 아편전쟁 아닙니까. 아편을 사지 않는다고 영국이 중국을 쳤습니다. 그뒤 중국이 내전도 거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1949년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합니다. 비로소 100년 만에 중국이 다시 통일 국가를 만듭니다. 그것도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기복이 많았습니다. 4000만 명의 사람이 죽는 희생을 거치다가 1979년, 1980년 등소평의 실용정책이 시작되면서부터 다시 중국이 일어서게 되면서 지금과 같은 어마어마한 발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동양의 반격, 동양이 약 400년 동안 죽을 쑤다가 다시 반격을 하게 된 최초의 시작은 明治維新(명치유신)이죠. 일본이 명치유신을 성공적으로 해가지고 무사계급제도를 없애버리고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본을 받아들입니다. 일본은 20세기에 들어서 금방 세계 강국이 됐습니다. 그 후에 러일 전쟁을 통해 세계 제일의 지상군 강국인 러시아를 이기고 간이 커져서 미국하고 한 판 붙으려고 하다가 망했습니다. 그 다음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부흥을 해가지고 한때는 경제로 미국을 능가하는 세력이 됐습니다. 이것을 본 동양 사람들이 ‘아, 우리도 저런 식으로 하면 되겠구나’해서 일본 모델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근대화도 일본 모델에 가깝죠. 그것은 박정희, 이승만 이 사람들이 식민지 시대 때 일본의 영향, 또는 일본의 좋은 점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광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일본으로 시작된 일종의 ‘동양 르네상스’가 다시 시작되면서 약 100년 동안의 노력 끝에 지금은 동양이 드디어 미국, 유럽과 맞먹는 단계로 와있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 지금 한반도 문제가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들이나 저나 참 좋은 시대, 바로 동양에서의 르네상스가 다시 시작돼 드디어 유럽과 맞먹을 수 있는 단계까지 가는 와중에 한반도 남쪽에서 태어났으니까 얼마나 행복합니까. 말하자면 이 세계의 대세를 잘 탄 거죠. 좋은 시기에 태어난 거죠. 다만 이런데서 북한 하나만 세계사의 대세를 거스르는 암덩어리처럼 거기에 고착이 되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몸의 모든 부분은 피가 잘 통하고 영양분이 많아서 자라고 있는데 배 한 부분에 암덩어리가 있는 것과 같은 겁니다. 이 암덩어리가 굳어져 있어서 이게 뭔가 찝찝한 상태에서 그래도 몸 전체는 커지는 것처럼 동양 삼국은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는데 한복판에 있는 북한 때문에 뭔가 찝찝한 상태에서 지금 발전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본다면 결국 북한이라는 존재의 앞날이라는 것은 명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복이야 많겠지만 두 가지죠. 북한의 암덩어리가 주변의 발전에 의해서 스스로 녹아버리든지 아니면 그 암세포가 퍼져서 지금 잘 나가고 있는 일본, 한국, 중국을 암세포로 전염시켜서 암환자로 만들든지 둘 중의 하나인데 아마도 전자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이 생각을 전제로 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북한의 국제범죄 실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두 달 전부터 조금씩 해드리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종합적으로 북한의 범죄와 對北금융제재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이고 이것이 한반도와 한국 국내 문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김정일로 봐서는 이게 예사 문제가 아니죠. 이게 예사 문제가 아닌 이유가 몇 개가 있는데 북한이라는 체제가 어떻게 운영이 되느냐 하면 김정일이가 두 개의 카드를 가지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무지막지한 폭력 조직이 있습니다. 조금만 말 잘못해도 수용소로 보낼 수 있는 독재권력과 그것을 집행하는 국가안전보위부라든지 하는 이런 경찰조직이 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되죠. 또 하나는 김정일의 비자금이 있어요. 50억 달러 이상이 될 겁니다. 이 비자금을 가지고 지배층을 관리합니다. 지배층을 어떤 식으로 관리하느냐. 예컨대 2월 16일. 김정일의 생일입니다. 매년 2월 16일이 되면 김정일이가 그 비자금으로 선물을 사가지고 전 주민들한테 술도 한 병씩 주고 사단장들한테도 굉장히 비싼 코냑이나 자동차까지도 선물을 했을 거에요. 이런 돈이 있습니다. 비자금이라는 것과 탄압조직,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북한 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게 김정일이죠.
그런데 여기서 이 비자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비자금은 전부 달러입니다. 그동안 북한 정권이 비자금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합법적인 방법과 비합법적인 방법이 있었습니다. 합법적인 방법으로서는 북한에 금이 많이 납니다. 금을 수출해가지고 번 돈이라든지 또는 여러 가지 무역을 해가지고 번 돈, 이것이 노동당의 39호실이라는 쪽으로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그것 말고 더 많은 돈은 주로 종합적인 범죄행위를 통해서, 국제범죄 행위를 통해서 벌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사실도 아닙니다.
북한의 범죄는 어떤 게 있는가 하면 먼저 군대 안에다가 공장을 만들어서 헤로인을 만듭니다. 아편-북한은 아편을 공개적으로 재배하고 있죠-을 재배해서 거기서 헤로인으로 정제를 한 다음에 그것을 팝니다. 또는 일본에서는 각성제라고 하는 필로폰을 만들어서 일본으로 내다 팝니다. 그 다음에 100달러짜리를 위조해 유통시킵니다. 요새는 담배도 위조합니다. 담배 포장지를 가지고 와서 말보로라든지 하는 양담배로 만들어서 내다팝니다. 그 외에 외국인을 납치합니다. 이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를 다 저지르는 종합 범죄백화점이죠.
그러니까 북한이 그동안 벌여놓은 국제범죄를 꼽아보면 아웅산 테러와 같은 테러, KAL 858기 폭파와 같은 항공기 테러, 외국인 납치, 한국인, 일본인만 납치하는 것이 아니라 마카오 사람, 레바논 사람까지 약 12개국 사람을 납치해 갔습니다. 몇 백명을 납치해 갔는지 몰라요. 최소한 100명은 넘을 겁니다. 김정일이 일종의 인종수집가가 돼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마약밀매, 달러위조, 담배위조, 요새는 의약품 위조까지 합니다.
이런 것을 국가기관이 하나의 국가정책으로서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국가는 일찍이 인류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번 돈이 연간 10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북한 전체 무역의 약 50%가 됩니다. 외화 수입의 50%를 범죄를 통해 벌어들이는 세계 최대의 범죄조직입니다. 이런 범죄를 국가가 모르는 사이에 민간인들이 작당을 해서 하는 경우야 많았지만 국가가 정책을 세워서 군대시설까지 빌려주면서 한 경우는 없습니다. 또 여기서 국제범죄의 중요한 하수인들이 누구입니까. 외교관들 아닙니까. 외교관들이 가지고 있는 면책특권, 그리고 외교관들의 행낭은 열어보지 않는다는 관례를 이용해서 거기다 마약 등을 넣고 다닙니다. 이렇게 외교망을 범죄조직의 하나의 인프라로 이용하는 이런 국가는 나치 독일도 그렇게는 하지 않았어요. 하여튼 인류 역사상 최초의 범죄국가입니다.
그래서 김정일 정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개념규정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이제 새로운 과제가 됐습니다. 과거에는 ‘惡의 軸’이라고 그랬어요. 또는 ‘로그 스테이트(Rogue State)’, ‘깡패국가’다. 이렇게 하다가 요새는 미국에서 북한을 ‘크리미널 스테이트(Criminal State)’다. 즉 ‘범죄국가’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저는 여러 가지 용어 중에서 제일 정확한 게 범죄국가란 말인 거 같아요. 독재국가라고 하면 독재도 여러 가지 형태의 독재가 있지 않습니까. 박정희식 독재자도 있고 김일성식 독재자도 있는데 북한을 똑같은 독재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깡패국가라는 말도 애매하다구요. 이것은 범죄국가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정확한 개념이 설정되지 않습니까. 범죄국가라고 하면 그 다음에 대응하는 방법도 경찰식으로 대응하면 되는 거죠. 범죄집단에 대해서는.
그래서 북한을 어떤 식으로 개념규정하느냐가 그 뒤에 대책을 논의하는데 하나의 방향을 설정하기 때문에 ‘크리미널 스테이트’라는 말을 우리가 계속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독재라든지 주체사상 이런 말은 집어치우고 말이죠. 주체사상하면 무슨 철학국가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주사파라는 말은 안써야 돼요. 주사파라고 하면 무슨 소크라테스처럼 하나의 사상파처럼 들립니다. 그게 무슨 사상입니까. 그래서 크리미널 스테이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죠.
일찍이 신상옥씨가 그렇게 예언을 했어요. 신상옥씨는 예술을 한 사람이고 천재니까 말을 아주 간단하게 하는 편입니다. 김정일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고 한 소감이 어떻느냐 물어보니까 이 사람은 딱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마적단 같더라’ 왜 마적단 같으냐 그러니까 ‘북한 사람들 그렇게 굶겨놓고 이렇게 호화스럽고 배부르게 먹는 데 대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고 북한이라는 마을을 점령한 마적단들이 한 판 걸쭉하게 파티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 이해가 되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지도자라는 자가 300만 명이 굶어죽은 나라, 그 한가운데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밥을 먹으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느냐. 이것은 바로 마적단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에요. 김정일이 왜 이런 심리에 빠지게 됐느냐 하는 것은 일본의 하기와라 료라는 사람이 아주 정확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하기와라 료라는 사람은 일본 ‘아카하다(赤旗)’라는 공산당 기관지의 평양 특파원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공산주의자입니다. 지금도 공산주의자입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김일성, 김정일은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이 자들은 오히려 자기와 같은 양심적 공산주의자의 적이더라. 권력세습하는 공산주의자가 어디 있으며 이렇게 부패한 공산주의자가 어디 있느냐’ 해가지고 ‘자기 필생의 사업은 김정일 때려잡는 것이다’라면서 글을 많이 쓰는 사람입니다. 하기와라 료라는 사람이 ‘조선전쟁’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조선전쟁이라는 책 서문에 이렇게 썼어요.
「1945년 9월에 김일성이가 소련 KGB의 앞잡이가 돼 조국을 떠난 지 몇십 년 만에 평양에 나타났을 때 김일성과 그 집단은 조선 사람이로되 조선 사람이 아니었다. 왜냐. 조선 사람들과 애환을 같이 한 적이 없었다. 이 집단은 처음부터 중국 공산당의 밑에서 게릴라전을 하다가 토벌당하자 소련으로 넘어가서 소련군에 편입됐다. 김일성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자기가 미래의 북한 지도자로 지명된 것도 모르고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결정을 하느냐. ‘나는 소련 군대에서 출세해보겠다’라고 생각하고 김정일까지 소련 이름-유라라는 이름으로 바꿨지 않습니까-으로 바꾸고는 소련 장교로서 출세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재수 좋아가지고 괴뢰 국가의 지도자가 되도록 끌려나온 거죠.
그러니까 일제 36년 동안 한반도에서 고생했던 이 조선 사람들하고는 정서적으로 이미 멀리 떨어져가지고 하나의 외국인처럼 북한에 들어왔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 점령자로 들어온 거죠. 북한에서 36년 동안 일제시대 때 고생해가면서 굴욕을 참아가면서 그리고 힘을 길러가면서 독립을 기다리던, 이런 애환을 다 겪었던 이 조선 민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마적단 심리의 기본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이 집단은 마적단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자기가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이 없는데다가 사회주의라는, 좌익이라는 이 이념 자체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나는 혁명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혁명을 이루기 위한 무슨 범죄를 하든지 그것은 다 정당화된다’ 하는 이상한 악의 논리로 무장돼 있었기 때문에 이런 크리미널 스테이트, 종합범죄조직이 됐어도 아무런 미안한 생각도 없이 지금까지 굴러왔다는 거죠.
그러다가 이제 작년부터 처음으로 제재를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2, 3년 동안 어떻게 북한을 조일 것이냐 고민을 해보는 과정에서 이 방법으로 한 번 해보자 해가지고 시작된 것이죠. 미국이 북한을 포위망 속에 가두는 게 지금까지 세 가지가 나왔습니다. 하나는 6자 회담. 6자 회담은 북한을 중심으로 한 여섯 개의 나라를 묶어서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것을 미국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6개국의 공동 책임 하에서 해야 한다 해서 책임을 분산시킨 겁니다. 그 다음에 PSI라는 게 있어요.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라는 건데 이것은 북한에서 외부 세계로 핵물질이라든지 마약이라든지 이런 것을 팔 때는 그것을 단속한다. 그래서 PSI에 가입하면 그런 수상한 배를 검문을 하고 미사일 부품을 실은 항공기를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포위망을 하나 만들었어요. 그 다음에 이제 對北금융제재라는 이 아이디어가 하나 생겨난 겁니다. 이렇게 삼중 포위망을 만들었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이 대북금융제재로 드러났습니다.
작년 9월에 미국 재무부에서 마카오에 있는 작은 은행, 방코델타아시아라는 은행에 대해서 미국 금융기관에게 이런 지침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방코델타아시아 은행과 금융거래를 하지 마라. 왜냐. 이 은행은 김정일의 비자금과 김정일이 위조지폐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창구 역할을 하는 곳이니까 범죄에 협력하는 저 은행과 미국의 금융기관이 거래해서는 안된다는 지침을 미국 금융기관에 내린 겁니다.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게 명령을 내릴 수는 없죠. 마카오에 있으니까. 중국 주권 하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대북금융제재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죠.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금융제재를 한 적이 없어요. 미국이 미국 금융기관에 대해서 방코델타아시아 은행과 거래하는 것은 안된다고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어요.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서 인출사태가 나고 은행이 부도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그래서 정부 관리 하에 들어갔습니다. 이 은행은 자본금이 4억 달러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은행이에요. 그런데 중국이 이제 떨게 됐어요. 왜냐. 중국의 대형 은행인 뱅크 오브 차이나가 지금까지 김정일의 계좌를 개설해주고 북한이 무역하는 것을 지급보증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많이 도와줬습니다. 잘못하면 미국 금융기관과 뱅크 오브 차이나의 거래가 끊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중국이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뱅크 오브 차이나라는 중국의 대형 은행이 미국 은행과 외환 거래를 못한다 하면 그 은행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미국 은행과 외환 거래를 못하는 은행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미국은행과 거래를 못하는 은행은 존재할 수 없어요. 즉, 세계의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바로 그 금융시장을 이용해서 북한을 목조르는 거죠. 그런데 이게 아주 절묘한 겁니다. 아주 조용하게 북한을 제재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 문제에 관한한 매사에 북한편을 들던 중국이 대북금융제재에 관해서는 한 번도 북한 편을 든 적이 없습니다. 최근에는 우리 한국의 외환은행도 방코델타아시아 은행과의 거래를 끊었습니다만은 오히려 중국 쪽에서 외환은행에게 그 은행과 거래를 끊었으면 좋겠다는 권고를 했답니다.
김정일이가 연초에 중국을 방문한 것은 새삼스럽게 개방개혁의 현지를 찾아가서 견학하려는 게 아니고 후진타오(胡錦濤)한테 이 문제를 호소해가지고 미국한테 잘 봐달라고 부탁을 해달라고 했던지 아니면 미국한테 같이 우리 한 번 맞서자고 이렇게 이야기했을 거에요. 그러나 중국이 김정일의 부탁을 들어줬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이 미국에게 협력 안할 수 없는 금융 문제로 북한을 목조르니까 북한의 반응이 금방 나왔습니다.
우선 6자 회담에 불참하겠다는 말을 하루에 한 번씩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위조지폐의 책임자를 처벌할 용의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건 북한이 지금까지 한 이야기 중에서 아주 이례적인 이야기죠. 이미 그것은 위조지폐를 만든 사실을 반쯤 인정을 한 거죠. 또는 앞으로 그런 국제금융질서를 잘 지키겠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아주 나약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거기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아주 간단합니다. 위조지폐에 관한한 위폐를 찍고 있는 인쇄기를 모두 파괴하고 그 지폐를 찍고 있는 銅版(동판)을 우리가 회수해야 한다. 동시에 이미 찍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위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연간 수천만 달러씩 찍었다고 하니까 그 양이 수억 달러가 넘겠죠-거기에 또 대책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요구를 북한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마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우리(북한 김정일) 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거에요.
그리고 이 문제를 가지고 협상을 하자고 하면 미국은 이 문제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미국의 유가증권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자위적으로 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또 이것은 형사사건에 대한 형법적인 조치이기 때문에 외교적인 협상의 대상이 안된다. 다만 그쪽에서 누가 오면 설명은 해주겠다. 이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李根(이근․6자 회담 북한측 차석대표)이라는 사람이 워싱턴으로 갔죠. 이렇게 미국은 ‘이것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公言을 하고 있고 부시 대통령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미국 정부 내의 사정을 보면 이 대북금융제재는 부시 대통령의 적극적인 뒷받침 하에서 각 관련, 약 13개 부서, 그러니까 CIA, 국방부, 국무부, 특히 재무부, 재무부가 하는 일 중에서 달러를 보호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업무라고 돼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경호실이 재무부 소속인 거 잘 아시죠? Secret Services라는 경호실이 재무부 소속인데 이 재무부 소속의 경호실이 왜 대통령을 경호하게 되었느냐. 대통령 경호, 그리고 미국의 유가증권의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 같은 것이다 해서 오래 전부터 재무부가 경호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3개 부서가 종합적으로 팀을 만들어서 북한의 위조지폐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다루겠다는, 말하자면 국가의 의지를 실어놓은 압력이 되기 때문에 이것은 외교력으로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아마 장기적으로 진행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 비자금을 39호실 자금이라고 부르는데요. 김정일이 운영하고 있는 중앙당의 39호실이 이 비자금과 범죄로 벌어들인 돈을 총 관할하는데 도대체 액수가 얼마냐 하는 것이 상당히 궁금합니다. 1997년에 고위 탈북자 한 사람이 증언을 하기를 스위스 은행에 맡겨놓은 것이 약 46억 달러다 이렇게 증언을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국내외 정보기관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뒤에 늘었겠죠. 이 스위스 은행에 맡겨놓았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의 친인척들이 스위스에서 생활을 하고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니고 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요새 후계자로 거론되는 김정철이나 이런 친구들도 모두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스위스에서 굉장히 잘 보호를 해줬습니다.
CIA에서 스위스로 가서 공작을 맡았던 사람의 증언을 들어보니까 자기들이 김정일의 가족들에게 접근하려고 아무리 해도 스위스 경찰이 철저하게 막는 바람에 안되더라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김정일이 만약 망명한다면 제일 후보지는 아마 스위스일 거에요. 돈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스위스도 그동안 많은 욕을 들었습니다. 스위스 은행에 범죄자금, 또 무슨 마르코스라든지 하는 독재자들의 정치 자금, 우리 정치인들 중에서도 거기에 맡겨놓은 사람이 아마 있을 거라 생각되는데 이런 문제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부정한 돈의 피난처다. 이렇게 해서 항상 욕을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몇년 전에는 2차 세계대전 전에 50억 달러의 돈을 맡겨놓았던 유태인들이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해서 이겼어요. 그 뒤로는 상당히 조심하고 있어요. 그래서 범죄로 밝혀졌을 때는 그 돈을 동결해서 그 나라에 돌려줄 수 있다고 합니다. 마르코스가 맡겼던 몇억 달러가 되는 돈은 그 케이스로 동결이 됐습니다. 그래서 범죄로 조성된 비자금으로 밝혀졌을 때는 김정일의 비자금도 동결될 수 있다는 논리적인 타당성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위스가 하나의 거점이고 그 다음에 마카오가 중요한 거점이었어요. 마카오에는 도박장이 많죠. 그 도박장을 경영하는 사람이 김정일하고 친해서 평양에도 도박장을 하나 만들어 놨습니다. 스탠리 호라는 사람인데. 또 마카오에는 예전부터 조광무역상사라는 게 있습니다. 무역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테러에 필요한 자금이라든지 장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웅산 테러가 났을 때도 조광무역상사가 거기에 필요한 폭약을 구입했다 이런 의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조광무역상사가 작년 연말에 중국 어딘가로 철수를 해버렸어요. 그 다음에 조광무역상사와 긴밀하게 연계된 대성은행이라는 게 있습니다. 대북송금사건 당시 대성은행이 중국은행, 뱅크 오브 차이나에 개설하고 있던 계좌로 김대중씨가 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것 하나만 보면 형식상으로는 김대중씨는 김정일의 국제범죄계좌로 돈을 보낸 협력자다 하는 논리가 성립이 될 거에요.
申光洙(신광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1980년 무렵에 일본에서 미야자키에서 하라 다타아키라는 요리사를 납치해간 거물 간첩이에요. 이 사람이 1985년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체포가 됐습니다. 범행을 자백해서 일본에 조회를 해보니까 납치를 한 사람이 틀림없어요. 그래서 누가 납치했고 납치된 사람이 누구인가 밝혀진 유일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1998년에 김대중 정부 들어서고나서 무기징역 살고 있던 이 신광수를 풀어주더니 2000년 6·15선언 이후에 비전향 장기수를 북한으로 보낼 때 김대중씨가 북한으로 보내버렸어요. 그때만 해도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보내지말라는 요구를 우리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에 고이즈미 수상을 만난 김정일이가 ‘우리가 일본 사람 13명을 납치했는데 8명은 죽고 5명만 살아있다’ 이러면서 공개한 명단에 하라 다타아키가 들어있었으니까 신광수는 확실한 범인임을 김정일이 인정했어요. 더구나 신광수의 안기부 증언에 의하면 자기가 납치명령을 받은 것은 김정일에게 불려가서 김정일로부터 직접 납치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광수가 만약 지금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살아있었다면 신광수의 증언을 기초해서 김정일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고소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신광수를 김대중씨가 보내버렸습니다. 보내면서 납치된 사람의 안부는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것은 문명국가에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납치범은 풀어주면서 납치된 사람들의 생사여부도 묻지 않고. 그 뒤에 일본 경찰에서 조사를 해보니까 신광수가 관련된 납치 사례는 그것뿐만 아니라 세 건 정도 더 있는 걸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일본인 납치에 있어서의 최대의 거물, 책임자입니다.
이 사람은 포항사람인데 전력도 아주 좋습니다. 루마니아에 가서 이공계 계통으로 유학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걸 보내줬더니 신광수는 북한에서 나타나가지고 남한 정부 욕하고 대중집회에 나오고 야단났습니다. 요새는 안나와요.
그렇다면 김대중씨는 김정일로부터 직접 납치지시를 받은 납치범을 돌려보내주고 김정일의 해외범죄계좌로 돈을 보내준 김정일의 국제범죄의 중요한 협력자죠. 이런 것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건인데 이것이 어느쪽으로 불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마카오가 중요한 거점 중의 하나고 또 하나는 비엔나가 있습니다. 비엔나에 가면 자그마한 은행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1986년에 신상옥씨가 탈출할 때 그 비엔나에 맡겨놓았던 300만 달러인가를 찾으려고 하다가 실패한 경우가 있었죠. 그 돈은 나중에 재판을 통해서 오스트리아가 가져가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북한 돈은 틀림없는데 북한이 오스트리아에게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돈이 비록 신상옥씨 명의로 돼 있었지만 오스트리아 돈으로 환수가 돼버렸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비엔나, 스위스, 마카오가 북한의 주요 거점입니다. 그런데 마카오가 딱 막혀버리니까 스위스 은행도 북한과 새로운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김정일이 스위스에 있는 돈을 룩셈부르크로 옮겼다는 說도 있습니다.
김정일은 이 39호실 해외비자금. 이게 50억 달러 이상 안되겠습니까. 그동안 늘었으니까. 그동안 이걸로 뭘했느냐. 對南공작에 썼습니다. 예컨대 김낙중이라는 간첩이 있습니다. 요새 한참 간첩에서 민주투사로 둔갑해서 설치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죠. 김낙중이라는 사람이 민중당이라는 것을 만들 때 북한이 잘 해보라면서 200만 달러를 보냈습니다. 자기 마당에 파묻어놓은 이 돈을 이선실 간첩 사건 때 안기부가 발굴했습니다. 200만 달러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는 상황에서도 거물 간첩 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현금 200만 달러를 보냈습니다. 39호실 해외비자금은 그런데 주로 쓰여집니다.
그 다음에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한다든지 또는 아까 말씀드린 軍(군), 黨(당)의 간부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뇌물을 주는, 자동차 사주고 고급술 주는 이런데 쓰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가 친척들의 호화생활을 위해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비자금은 식량수입에는 전혀 쓰여지지 않았다고 그래요. 주민들이 굶어죽고 있던 95년 이후에도 김정일이가 비자금을 뽑아가지고 식량을 구입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겁니다. 전부 자기 일가 친척, 지배층의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위해서 쓰고 대남공작을 위해서 썼으니까 이 돈줄이 막히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거죠. 즉 대북금융제재는 지배층에 대한 중요한 타격이 된다는 겁니다. 지배층의 중요한 돈줄이 끊겼으니까 이제는 북한에서 이 문제 때문에 김정일과 그 주변에서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까, 혼란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이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대한 무슨 식량지원을 끊는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지배층의 비자금 루트를 끊어버리는 거니까 국제적으로 무슨 비난을 받을 것도 없죠. 요새는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북한이 당황하고 있는 게 일반 무역 거래도 안된다는 겁니다.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이라는 작은 은행과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끊어버리니까 이 소문이 국제금융시장에 퍼져가지고 ‘이제는 북한 사람들과 북한 계좌를 도대체 안심하고 거래를 할 수 없다. 이거 잘못 만지다가는 우리도 미국 금융기관으로부터 당할지 모르겠다’ 하는 공포감이 확산되는 바람에 북한 계좌는 실명으로 거래가 거의 불가능하게 된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정상적인 무역도 안된다는 겁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세계화된 상황에서 무역을 할 때마다 현금들고 다녀야 할 판입니다. 현금들고 다닌다고 해도 북한 사람들이 주는 현금을 믿겠습니까. 전부 위조지폐 감식기계에 넣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게 북한이 정상적인 무역거래도 안된다는 겁니다. 무역거래에 상당히 타격이 많겠죠. 거기에 대해서 미국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년에 벌어들이는 돈의 절반을 범죄로 벌어들이는 나라에서 어느 부분이 정상적인 것이고 어느 부분이 범죄인 것을 어떻게 아느냐, 한 덩어리로 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 거기에 대한 대답이에요. 뭐 맞는 이야기 아닙니까. 국가수입의 1% 정도가 아니라 반 이상을 범죄로 벌어들이는 나라에서 이것은 정상적인 거니까 해도 좋고 이것은 하면 안된다고 누가 갈라줍니까. 그래서 김정일 정권은 지금 상당히 빠져나오기 힘든 함정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더 갑갑한 게 있을 거에요. 이 모든 범죄 지시를 한 사람이 자기 부하가 한 게 아니잖아요. 전부 자기가 지시한 거 아닙니까. 이것을 김정일 지시 없이 할 수 있습니까. 또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걸 해결해야 될 사람은 김정일입니다. 이 스트레스가 굉장할 거라구요.
김정일은 지금까지 책임 안지는 구석에서만 다녔어요. 김정일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1996년 당 간부들 모아놓고 수령님이 나한테 부탁한 게 있는데 경제문제는 절대 손대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나는 군부대 시찰만 한다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경제문제는 실패하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런데 국제범죄 이것은 김정일이 전부 시킨 것이고 해결도 김정일이 해야 되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다 하면 지배층 안에서 김정일의 권위가 손상되지 않을까, 김정일을 보는 아랫사람들의 눈초리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것을 또한 본인이 의식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최근 김정일을 과거 사진과 비교해 보면 몸무게가 10킬로그램 정도 빠진 것으로 나오는데 그 이유가 당뇨라든지 이런 쪽으로 진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저는 이것이 스트레스하고 관계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미국이 오랜만에 주도권을 잡아서 김정일을 가두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을 전망해 본다면, 김정일에게도 탈출구가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이죠. 대충 올해 우리나라가 뒷거래 말고 공식적으로 북한한테 지원해주는 금액이 10억 달러 정도됩니다. 1조원입니다. 10억 달러를 여러 가지 형태로 지원합니다. 금강산 관광비용이라든지 대북 비료지원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지원을 해줍니다.
지금 북한에 가는 학생들이 1인당 약 20만원 이상씩 정부로부터 지원받습니다. 그 지원금은 그냥 북한에게 가져다 주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뇌물을 주는 것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여튼 10억 달러 정도가 남한에서 들어가니까 그걸 가지고 연명할 수 있을 거에요. 또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 지금 여러 가지 형태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금은 지원하지 않습니다만 물자로 지원하는 것은 한국보다 많을 거에요. 약 20억 달러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현상유지는 될 걸로 생각합니다.
당장 금융제재에 걸렸다 해가지고 올해 안에, 내년 안에 체제가 무너진다든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탈출구가 있어요. 문제는 지금 미국이 중국과 한국에 대해서 협조를 해야 한다고 하는 압력을 어느 정도 넣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죠.
이것을 확대해석하면 북한에 대해서 관광비를 줄 때도 달러를 주지마라, 주려면 김정일 계좌로 넣지 말고 다른 계좌로 넣어라, 이런 쪽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에요. 또 왜 보조금을 주느냐, 보조금을 주는만큼 김정일에게 가지 않느냐, 보조금 주지 마라 이런 식으로까지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 협조요청을 강력하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하나의 관점이고, 그 다음에 중국은 지금 미국의 대북금융제재에 대해서 겉으로는 협력을 하는데 저렇게 협력을 하다가는 김정일 정권이 무너질 거 같다 그러니까 오히려 뒷구멍으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지원액을 더 늘일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미국이 어떻게 할 거냐 하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정권의 연명은 가능하다. 즉 중국과 한국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금융제재 하나로써 김정일 정권이 당장 무너졌으면 속이 시원하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뭐 이렇게 전망이 됩니다.
이것이 남북 간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이냐. 우선 김대중씨 訪北(방북)이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인데 김대중씨는 방북을 선거 다음으로 미루겠다고 하지만 선거 다음으로 미루든지 뭐 선거 전에 가든지 하는 결정은 김대중씨가 하는 게 아니죠. 그건 김정일이가 하는 거죠. 내일이라도 당장 김정일이가 연락와서 올라오라고 하면 당장 갈 사람 아닙니까. 그걸 한 달 미룰 수 있을까요. ‘고맙습니다’하고 가지. 그래서 남북 관계에서 김대중씨가 북한으로 가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김정일이가 결정하는 겁니다. 회담 하는 것도 북한이 하자면 하고 회담 끝내자는 것도 북한이 끝내자면 그걸로 끝나는 거고. 언제고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잡아본 적이 있습니까. 한번도 없어요.
마찬가지로 김대중씨의 방북이 언제 되느냐 하는 것은 김정일의 사정인데 김정일로 봐서는 굉장히 고민을 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대북금융제재 문제 때문에 남북관계에 신경을 쓰기가 어렵게 되지 않았냐 하는 눈치가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급한 문제다. 그런데 해결 방법이 뭐냐. 책임자를 처벌하겠다, 앞으로 하지 않겠다 하면 그 즉시 과거의 범행을 다 인정해버리는 거 아닙니까.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는 인간 간의 관계와는 달라서 비정하지 않습니까. 어느 국가가 과거에 우리가 위조지폐 만들었다 인정해버리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국가는 거의 절대로 자신의 과오나 범죄를 인정하지 않지 않습니까. 김정일이가 고이즈미한테 한 번 인정을 했죠. ‘우리가 사실 납치한 게 맞다’고 인정을 했습니다. 거기서 김정일이가 고이즈미라는 사람에 대해 착각한 거죠. 원래 독재자는 자기가 만나는 사람도 그 나라에서 독재자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고이즈미가 일본에 가서 이야기를 잘 하면 日北 수교 회담이 잘 풀려서 100억 달러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범죄를 인정했는데 범죄를 인정을 하니까 일본 여론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김정일이가 노렸던 日北 수교 회담의 돌파구는 하나도 열리지 않고 오히려 막혀버렸습니다. 이것은 국가가 범죄를 인정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인정할 수가 없어요.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계속 금융제재를 당한다는 겁니다. 이게 말하자면 딜레마(Dilemma)입니다. 영어에서 말하는 딜레마가 바로 이런 겁니다.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나갈 수도 없는 것이 딜레마입니다. 바로 이런 딜레마 속에 북한이 빠져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김정일은 남북관계를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고 미국 눈치를 봐가면서 미국한테 잘해가지고 뭐 좀 얻으려고 하는 이런 쪽으로 나올 가능성이 하나 있고 완전히 반대로 미국쪽에 의해서 코너에 몰렸으니까 이제는 탈출구를 한국으로 삼아가지고 한국과 정상회담도 하고 평화공세를 펴면서 민족공조를 강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미국에 대항해서 남북한이 손을 잡자. 미국이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 해가지고 남한의 親北反美 여론을 고조시켜서 한반도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어 이 문제에 대응해보겠다 하는 생각도 할 거에요. 양쪽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의 행태를 보면 북한은 압력에 몰리면 굽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코너에 몰리면 북한은 굽히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김정일은 6자 회담을 결코 깨지를 못할 거 같습니다. 6자 회담에 나오지만 당장 타결은 되지 않겠죠. 미국도 이제는 6자 회담을 통해서 북한 핵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거죠. 미국에게는 이란 핵문제가 더 급하기 때문에. 세계의 화약고라고 볼 수 있는 중동에서 이란이 핵무장을 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 것보다 엄청난 파급효과를 부르기 때문에 이란을 막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앞서니까 북한의 핵문제는 우선순위에서 상당히 뒤로 밀렸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있으니까 북한을 이중 삼중의 포위망에 집어넣어놓고 歸趨(귀추)를 한번 지켜보겠다 하는 이런 쪽으로 한발 물러나서 장기전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상당히 많다 지금 현재로는 이렇게 판단이 돼요.
과거에 북한이 코너로 몰렸을 때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경우가 몇 번 있습니다. 1991년에 유엔에 단일 의석으로 가입하자는 주장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의 조국이다’ 해가지고 ‘유엔에 두 개의 의석으로 동시가입하는 것보다는 하나의 의석으로 남북한이 가입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펴오다가 우리는 그럼 우리 먼저 가입하겠다고 하고 중국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버리니까 북한이 동시가입으로 갔습니다. 그때 한 번 있었고. 그 다음에 1991년 말에 남북기본합의서가 우리 페이스대로 우리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북한의 예상은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면 미국과의 대화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양보하고라도 미국과 대화를 해야 되겠다는 계산으로 남북기본합의서에 많은 양보를 했어요. 북한이, 그러나 그 뒤에 바로 핵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미국과의 협상이 제대로 되지를 않았습니다.
이런 사례를 볼 때 북한이 지금 뭔가 코너로 몰렸기 때문에 굽히고 나올 것 같은데 어떤 방향으로 굽히고 나오느냐. 그것이 개혁이 될 가능성도 있어요. 말하자면 지금까지 북한이 개혁개방, 특히 개방은 어려운 거고 개혁을 하려다가 도로 배급제로 돌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은 한국에서 도와주고 중국에서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다시 배급제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즉 그동안의 햇볕정책을 편 것이 북한의 개혁을 도운 것이 아니라 북한을 다시 거꾸로 돌렸다는 말이에요. 북한이 개혁했다는 부분은 어떤 것이냐 하면 배급이 안되니까 주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장을 만들고 장사를 해가지고 시장경제화된 겁니다. 결국 배급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생필품의 80%를 시장에서 산다, 그 부분만큼 북한이 시장경제화가 됐는데 이것은 북한 주민 300만 명이 죽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 목숨값으로서 이뤄진 개혁이에요. 그러나 98년 이후에 남한 정부에서 계속 물자를 가져다 주고 현금을 갖다주니까 김정일이는 배가 부른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겁니다. 시장도 좀 규제를 하고 다시 배급을 주는 쪽으로, 反개혁쪽으로 가 버렸습니다.
햇볕정책은 그 타당성을 어디서 구했느냐 하면 우리가 햇볕을 쪼여가지고 북한을 개혁개방시키는데 목표를 두었는데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이 反개혁으로 가버렸습니다. 북한 주민 300만 명이 굶어죽어서 쟁취한 시장경제를 다시 배급경제로 돌리는 역할을 한 것이 김대중의 위선적인 햇볕정책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제 다시 대북경제제재를 통해서 돈이 잘 들어오지 않게 됐다, 어렵게 됐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또 먹고 살기 위해서 중국식 개혁개방을 좀 해볼까, 개혁을 해볼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뀔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쪽에서의 전략적인 계산은 첫째 앞으로 북한이 범죄를 저지르는데 있어서 세계 금융기관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그 다음에 이렇게 북한을 조이면 북한 핵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둘째, 이렇게 조이면 북한이 범죄에서 손을 떼고 개혁개방으로 갈 것이다. 마치 어떤 망나니에게 범죄를 못하게 하면 먹고 살기 위해서 노동판에라도 가는 것처럼 북한이라는 크리미널 스테이트도 범죄를 못하게 되면 주민들 먹여살리는 쪽으로 궁리를 하지 않겠느냐, 그쪽으로 갈 것 아니냐. 즉 북한을 개혁개방시키는 쪽으로 갈 것이라는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그대로 맞을지 안맞을지는 앞으로 지켜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이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대북경제제재의 대충의 흐름입니다.
이것을 다시 요약해서 정리를 한다면 이걸 통해서 세계에서 북한이 어떤 존재의 체제냐 하는 것을 새삼 알려주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판단이 됩니다. 그리고 북한의 본질을 정확히 알게 됐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효과적인 대책이 나오게 됐는데 이것은 범죄 행위에 대해 경찰이 하는 수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외교도 아니란 말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미국 국내 문제다. 이것은 우리의 국내 문제이기도 하죠. 지금 우리나라 안에 얼마나 많은 북한산 가짜 담배, 가짜 달러, 가짜 비아그라 이런 게 들어왔겠어요. 우리도 피해자입니다.
그동안의 우리 정부의 조치를 보면 이것은 국가가 아니죠. 그동안에 북한의 범죄에 대해서 제일 많은 자료를 확보해서 국내 국제사회에 돌리면서 조심합시다라고 한 것이 우리나라 안기부, 국정원이었어요. 99년까지도 그랬습니다.
99년에 나온 자료를 제가 한 번 다시 봤더니, 국정원에서 나온 자료에요. 북한의 범죄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쓰여졌어요. 최근 한국 정부에서 국내 은행에서 유통되던 3만 달러 상당의 위조달러를 압수를 했는데 그 몇 달 전 러시아에서 노동당 부부장 길재경이라는 자가 3만 달러를 유통시키려다 러시아 경찰에 압수된 것과 맞춰보니까 같더라. 그러니까 이것은 북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서를 낸 것이 99년이었어요. 그런데 요새는 뭐라고 그럽니까. 국회에 나와서 하는 말이 증거가 없다고 합니다.
이 국가라는 것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지만 절대 거짓말을 해서도 안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것 때문에, 이 대북금융제재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가정보기관이 서방세계에서는 완전히 이것은 김정일의 하수기관, 거짓말쟁이 이런 식으로 완전히 낙인이 찍혀버린 것 아닙니까. 그런 역할을 앞장서서 한 반기문이라는 자가 유엔 사무총장이 되겠다고 나오니까 무슨 국회의원 한 사람이 직격탄을 날렸습니다만 말은 맞는 이야기 아닙니까. 한국 사람이 유엔 사무총장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과는 다른 차원에서 국제규범을 지키는 데 방해가 된 사람이 유엔의 사무총장이 되겠다고 나선 게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그러니까 이런 행동 때문에 북한이 크리미널 스테이트로 봐도 되는 것과 동시에 남한은 거기에 대한 협력자 내지 공범자가 된 것 아닙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분노해야 될 부분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일단 제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질문을 받기 전에 박지영 양 어디 있습니까. 여기로 나오세요. 박지영 양은 1984년 생이니까 우리나라 나이로 스물세 살입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버클리대학에 재학 중입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 했답니다. 특히 수학을 잘했대요. 그래서 조기 졸업을 해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버클리 대학을 다니다가 작년에 귀국을 했습니다. 그후 애국집회나 우리 강연하는 데 많이 옵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쪽에서 보는 한국 애국운동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을 많이 합니다. 그런 지적을 저 혼자서 듣기에는 아깝다 생각돼 10분 정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고 했으니까 한 번 들어봅시다.
박지영: 안녕하세요. 제가 어른분들께 무엇을 말씀드릴 수 있을까 많이 생각해봤는데 제가 한국에서 자란 기간이 그다지 많지 않고 그래서 한국 젊은이로써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요새 미국 아이들에게, 그러니까 제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김정일은 어떤 사람이냐 물어보잖아요. 그럼 테러리스트라고 말해요. 그런데 한국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그런 대답이 안나오더라구요.
미국 아이들에게 김정일은 테러리스트이자 대량학살자인데 그에게 돈을 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했더니 그 사람들도 테러리스트래요. 그러면 결국에는 남한 정권도 테러리스트라고 보는 거거든요. 그런데 한국애들은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죠.
간단하게 이념정리를 하려고 한국애들한테 물어보면 북한은 무엇이고 김정일은 무엇이냐 할 때 김정일은 북한의 수령이고 그러면서 뭔가 이야기는 하는데 말이 엉키면서 정확하게 설명이 안돼요.
제가 미국에서 2000년도 대선 캠페인 때 맥케인 쪽에서 여러 가지 연설을 했던 적이 있어요. 제가 연설했던 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금연운동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제가 여러 가지 설명을 해봤어요. 과학적으로도 전문적으로도 데이터를 가지고도 했지만 제일 확실했던 것은 담배에 무슨 청산가리, 니코틴, 타르 등 4000개의 화학성분이 들어있어서 몸에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담배는 사람을 죽인다는 거였어요. 담배는 사람을 죽인다고 말을 하니까 확실하게 그 메시지가 전달이 돼 젊은 사람들과 많은 정책 결정자들 앞에서 설명을 할 수 있었고 그 계획이 많이 퍼져서 2000년도 공화당 집회에서 그때 처음으로 담배회사들한테서 돈을 안받고 캠페인을 했어요.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한국에 공산당이 없다고, 또는 빨갱이는 없다고 아니면 위험하지 않다고, 뭐 제3의 길도 있고 지금 세계가 바뀌었으니까 우리도 나름대로의 방식, 즉 중국과 같은 길을 많이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사실은 북한과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과연 인권을 얼마나 존중하는가, 존중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가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너무 어렵게 설명을 하면 이해를 못해요. 그래서 간단하게 설명을 하면 중국은 나쁘다, 북한은 나쁘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아까 전에 조갑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르네상스 시대 때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듯이 아무리 우겨도 지구는 도는 거고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공산당은 나쁘다는 것, 그런 것을 쉽게 설명해야 한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인가. 제가 아무리 설명해봐도 제 나이 또래 애들은 이 심각성에 관해서 의식이 없더라구요. 의식이 없다는 것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각이 별로 없다는 거에요. 그러면 그 감각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생각하다가 그들이 ‘왜’라는 질문을 못하는 걸 봤어요. 왜 이게 나쁜 것인가. 물론 모든 사람이 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거고 저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왜 이 돈을 주는가, 왜 이게 나쁜 것인가, 여러 정치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서 왜 이런 일이 나타난 것일까. 성추행이라든지 이해찬씨의 골프가 왜 중요한 것인가 하는 이유, 만약에 무슨 사건이 있다면 그것을 연출하는 사람의 의도는 무엇인가. 결국 무엇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인가에 관해서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으면 해요. 다른 것은 필요 없어요. 뭐 신문 많이 안읽어도 돼요. 어차피 잘 읽지도 않지만 물어보세요. 이게 왜 이럴 거라고 생각하니, 앞으로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한 번 물어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의식과 감각을 키우게 되면 그 의도가 보일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여기서 내가 선택해야 될 게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젊은이들은 대부분 현실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이 어느 쪽이라고 이야기해주면 그쪽으로 가려고 해요. 북한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냐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가 가야 될 길이 무엇이고 그 때문에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나가려면 세상의 흐름을 읽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것에 관해서 알려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2007년에 대선이 있잖아요. 대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는 2007년에 이승만 대통령 같은 분이 나타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대한민국에 갱생의 기회가 올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가 여러분들의 도움을 통해서, ‘왜’라는 질문을 통해 어떻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지도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지영 양이 말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라는 질문을 도로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미 공조가 왜 중요했다고 생각하느냐, 그러면 ‘한미공조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민족공조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할 때 반드시 ‘왜’라는 질문을 던지도록 해서 그쪽의 대답이 헛나갈 때 그것을 반격의 자료로 삼아서 설득하는 게 좋다 그런 뜻인 거 같습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왜라는 생각을 안한다. 이게 민족공조라는 말이 과연 맞는 말이냐부터 물어야 되겠죠. 너는 왜 민족공조라고 생각하느냐, 그러면 김정일이 우리 민족이냐, 민족공조라고 하면 외국사람들하고는 협조를 안해야 되는 거냐, 민족공조만 주장하면 이 세계화된 사회에서 과연 살 수 있는 거냐 하는 식으로 왜, 왜, 왜를 가지고 꼬리를 물어야 된다 하는 겁니다.
오늘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안했는데 박지영씨는 2007년 대선에 젊은 사람들한테 먹히는 가장 좋은 선거 구호는 ‘취직’이라고 말합니다. 젊은 사람들한테는 일자리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해야 먹힌다고 그랬어요. 또 하나 이런 이야기를 한 게 기억이 나는데 우리나라에 나이드신 분들이 젊은 사람들하고 대화할 때 너무 자기 생각을 강요하려고 하지 말랍니다. 그냥 이야기만 하고 꼭 내가 잘못했다든지 하는 답을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도 했어요. 하여튼 여러 가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포인트별로 지적을 해줬는데 혹시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 중에서 박지영 양에게 질문할 게 있으십니까.
박 양이 예전에 한 이야기 중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젊은 사람들에게 왜 반미감정이 생기느냐. ‘과도한 영어교육과 관계가 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니까 실감이 났습니다. 지금 초등학교, 유치원 때부터 영어교육을 시키는데 대학교 가도 영어로 대화가 안된다. 이렇게 되면 영어에 대한 감정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미국 사람들에 대한 나쁜 감정으로까지 이어지는 거죠.
그건 제가 미국에서 1년 동안 있을 때 실감을 했어요. 한국에서 초빙교수들이 왔을 땐데 미국 대학에서 영어가 안통해요. 말이 안통하니까 자기들끼리만 놉니다. 한국에서 온 교수들끼리만 만나고 이야기하고, 모이면 항상 미국 사람 욕하는 거죠. 더구나 콤플렉스도 있고 하니까 차별대우를 안받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한국에 돌아오면 反美 교수가 돼 돌아온다고 합니다.
박양의 이야기는 영어 교육을 지금처럼 많이 시킬 필요가 없다는 거죠. 우리가 영어 교육을 이렇게 많이 시켜서 미국 사람들과 대화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게 100명 중에서 1명 나올까 말까 아닙니까. 요행이 돈이 있어서 미국에 유학가는 사람은 괜찮은데, 아니 한국 사람들이 다 영어를 잘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그럴 시간이 있으면 국어 교육을 제대로 시키라는 겁니다. 국어 교육을 제대로 시키면 나중에 통역을 통해서 의사 전달을 하면 되는 거에요. 미국 사람들이 통역을 통해서 내용이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한국 사람을 더 존경합니다. 박정희가 그러면 뭐 영어를 잘 해서 미국 사람의 존경을 받았습니까. 그 내용이 문제입니다. 전달하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전달할 거냐.
미국 사람을 만나서 통역을 중간에 놓고 아주 고급스런 이야기가 통하면 서로 대화가 통하는 건데 우리는 영어 교육에 치중하다가 국어교육을 죽이고 더구나 한자까지 안쓰는 바람에 국어가 망가지고 국어가 망가지니까 사람이 무식해지고 무식함 속에서 좌익의 선동이 먹히는 거죠. 이 좌익은 가난 속에서도 피어나지만 정신적으로는 무식한 바탕에서 좌익의 선동이 먹힌다는 이야기가 박지영씨 이야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