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會昌 출마, 선명보수당으로 이어져야"

11월10일 '제48회 趙甲濟의 현대사 강좌:李會昌 쇼크' 全文. "공공의 敵을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는 게 보수의 역할"
강연에 오기 전에 거리를 걸어보니, 비가 와서 그런지 은행나무 잎이 떨어져 만추(晩秋)의 기분을 느끼게 하는 주말이었습니다. 1년 전에 예상하기로는 지금쯤 되면 대통령선거 향방이 다 결정되어 느긋하게 구경할 줄 알았는데, 역시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한국에서 정치를 예상한다는 것이 맞추기 힘들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습니다. 모임에서 친구들과 내기를 걸었는데 모조리 지게 생겼습니다. 400만 표 차이로 이명박(李明博) 씨가 이긴다고 했는데,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는 마지막에 단일화가 된다든지 해서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본래 ‘국력과 필력’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긴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李會昌 쇼크’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三金 씨, 兩金 씨가 말아먹더니, 이제는 두 李씨가 나왔습니다. 이야기하는데 상당히 혼돈이 옵니다. 한 사람 이름이 李자면 괜찮은데, 방송이 나가서도 이름을 가끔 혼동해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역시 金씨 다음으로 많은 수가 李씨니까, 수가 많다는 것이 정치력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李씨 대통령은 한 사람, 金씨 대통령은 두 사람이었습니다. 朴씨도 한 번 했었습니다. 이번에 李씨 대통령이 한 사람 되면 2대 2가 되겠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결국 숫자놀음입니다. 머리수 많은 분들이 큰 소리치는 겁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여론조사를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회창 씨 출마로 해서 전보다 마음이 더 불안해 지신 분 손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그럼 더 안심이 되신 분 손들어 보십시오. 비슷비슷합니다. 50대 50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한가지일 것입니다. 좌파정권이 확실히 종식돼야 하니까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주십시오. 거의 전부 다입니다. 이렇게 불안하든, 안심이 되든 생각은 하나가 되어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판단의 근거를 어디에 두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명박 편에 서서 세상을 보면 이회창은 죽일 놈처럼 보이고, 이회창 편에 서서 이명박 씨를 보면 부패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어제까지 서로 친구처럼 잘 지내다가 이회창 씨가 출마하니까 이회창을 지지하는 사람은 이명박을 지지하는 친구를 잘 안 만나게 되고, 서먹하게 되고, 만나면 싸우고 이렇게 되는 것은 각각의 입장을 이명박 씨나 이회창 씨에게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입장을 대한민국에 두면 어떻겠습니까? 사실 여기에 계신 분이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 아닙니까? 대한민국의 주인이 여러분들입니다. 주권은 국민들로부터 나옵니다. 국민된 입장에서 보면 이회창, 이명박 씨는 다 아래로 보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단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내려다보며 판단을 하면 좌파 정권이라는 게 별게 아니고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도전세력, 부정하는 세력입니다. 이 세력을 청소해야 되는데 지금까지는 이명박이라는 주먹으로, 한 팔로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써먹어 보니 굉장히 잔재주가 있고 유능하긴 한데 펀치력이 약하다는 겁니다. 팔 하나가 더 있어야겠다 해서, 조금 녹이 슬었지만 펀치력이 있는 이회창이라는 팔도 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이 양팔을 벌렸다, 두 주먹을 쥐었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까? 한 팔을 쓰는 것보다 두 팔이 낫다는 겁니다. 그러면 원, 투, 스트레이트 펀치가 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를 좌우교대, 체제교체라고 보았습니다. 그 의미는 ‘左에서 右로 가는 것이다’가 아니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예 좌를 없애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좌우 정치구도가 안 맞는 나라입니다. 헌법과 불합치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는데, 한국의 좌파는 북한과 친해져서 친북좌파(親北左派)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친북좌파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하여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인 언론의 자유를 계속 박해하고, 기자들을 미워하고, 조선·동아·중앙일보를 특히 더 미워하는 겁니다. 이렇게 反헌법적인 행위를 하니까 한국에서 좌파는 우리 헌법질서 안에서 허용되지 않습니다. 우리 헌법은 공산당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공산당과 사촌인 좌파를 허용할 수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은 그 강령이 좌파 중에 극좌에 속하는데, 우리 헌법이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집단이 지금 좌파정권 하에서 비호를 받아 무리하게 정치권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사람들을, 헌법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좌우구도라는 말은 좋지만 헌법과 맞지 않으니까 좌를 없애버리고 보수 양당구도로 가야합니다. 보수 세력 중에서 실용적 보수, 선명한 보수로 나누든지, 경제를 중시하는 보수와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로 나누든지, 진보적 보수와 정통적 보수로 나누든지 해서 보수 양당구도로 가는 것이 헌법 정신에 맞습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좌우 대결을 벌이는데 우 속에서 또 좌우로 나뉘면 분열이 되니까, 우 즉 남한 안에서는 중동보수와 선명보수가 대결하는 양당구도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 구도로 가기 위한 대한민국의 몸부림이 이회창 씨의 출마를 통해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씨가 이기든 지든 어떤 역사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 나온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는 다 합쳐도 20%밖에 모으지 못했고, 나머지 80%를 우파가 갈랐습니다. 그렇다면 진 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정당을 만들고, 기존 정당은 그대로 유지가 되어서 다음 총선에서 보수양당이 전체 의석의 7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지역정당과 민노당이 차지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이 제대로 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북정책이 아주 엄정해 질 것이고, 남한에서 친북좌익 세력들이 발을 붙일 수가 없고, 그리하여 일류국가로 갈 수 있는 길을 열게 될 것이라고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고 제가 생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입니다. 그런데 그 쪽으로 가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수분열이 아니고 보수경쟁구도로 보아야 합니다. 말 하나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놓습니다.

오늘날 이회창 씨의 출마를 두고 보도하는 조선·중앙·동아일보의 제목을 보면 ‘보수분열, 우파내전’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저는 보수 경쟁구도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을 하면 젖먹던 힘까지 다 뽑아내게 됩니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큰 원칙은 경쟁입니다. 경쟁 없는 정치, 경쟁 없는 시장은 죽어버립니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가 경선에서 경쟁을 통해 당선된 다음에 우파정치 시장의 독점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사람이 독점자가 되니까 지난 두 달간 남북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안일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거기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정통우파 세력이 불만이 있어도 대안이 없으니까 비판적 지지를 보내고 있던 터에 이회창 씨라는 다른 대안이 생기고, 안보와 정치를 들고 나오니까 삽시간에 25%정도의 지지자가 그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생산자가 지배하던 독점시장이 경쟁시장으로 바뀌게 되면서 Seller's market이 Buyer's market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회창의 출마로 안심한다는 분의 심리를 해석해 보면 ‘이제 이명박 씨한테 제발 김정일과 맞서달라고 애걸복걸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내 생각대로 다른 사람을 찍으면 그만이다’ 하는 기분 좋은 선택의 자유가 생겼습니다. 선택을 하나밖에 할 수 없다면 고객의 입장에서는 대접을 못 받습니다. 예컨대 한 마을에 식당이 하나밖에 없다면 아무리 자주 가도 단골손님 대접을 받겠습니까? 종업원들도 손님이 오든 말든, 냉대를 받습니다. 그런데 옆에 다른 식당이 생기면, 이제는 손님을 끌려고 웃음을 팔고 손님들은 기분이 좋게 됩니다. 이 손님이 바로 한국의 보수유권자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안심한다는 것입니다.

이회창씨의 출마를 전후로 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이회창 씨의 출마는 지지율 10%에서 출발해서 많이 올라가봐야 20%다, 3등으로 끝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출마설이 나오자마자 15%에서 출발해서 일주일사이에 25%까지 올라갔습니다. 지금 여론조사 구조를 보면 이회창 씨의 출마에 찬성하는 사람이 37%입니다. 이것이 최대치라고 봅니다. 내려가면 20%까지 내려갈 것입니다. 20%와 37%에서 오고가다, 37%가 되면 역전이 되어버립니다. 두 李씨 사이는 제로섬게임(zero-sum game), 시소게임입니다. 한 사람이 올라가면 한 사람이 내려갑니다. 이회창 씨가 등장하면서 정동영(鄭東泳) 씨는 지지율이 12,13%로 줄어 3등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보수분열이 아니라 보수경쟁에 의해서 시장이 확대되어 보수 양당구도로 갈 수 있는 여론구조가 형성된 것입니다. 정동영 씨는 지난 2주에 걸쳐서 신문에 자기 이름을 내기가 참 어렵게 되었습니다. 전부 메인 게임인 두 李씨 싸움, 거기에 박근혜(朴槿惠) 씨까지 끼어서 세 사람 쪽으로 뉴스가 집중됐죠. 선거판에서 2주 동안 잊혀지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충청권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는 지역구도로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2002년과 1997년에 이회창 씨가 30만 표 50만 표 차이로 진 것은 충청권과 호남표가 합쳐졌기 때문입니다. 1997년에는 DJP연합에 의해서 김종필 씨와 김대중 씨가 손을 잡으면서 충청권이 김대중 씨 지지로 갔고, 2002년에는 소위 신행정수도 공약이 약효를 발휘해서 충청권이 노무현 지지로 가서 졌습니다. 그런데 원적지별로 인구를 계산하면 경상도가 32%, 호남이 25%, 충청도가 16%정도 됩니다.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16%, 25% 합치면 41%로, 그렇게 되면 여기에 10%만 더하면 되니까 아주 안정적입니다.

그런데 이회창 씨가 충남 출신이라 충청도 표를 잡아버렸습니다. 충청권에서는 이회창 씨가 이명박 씨를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정동영 씨는 호남권이라는 하나의 상자에 갇혀버렸습니다. 정동영 씨가 세를 확장할 수 있는 입구를 이회창 씨가 막아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38%, 24%, 14%의 이 구도가 굳어져버렸습니다. 물론 바뀔 수도 있지만 기본구도가 이렇게 설정이 되고, 이명박·이회창씨가 대결하는 모습이 아주 드라마틱하니까 사람들의 관심이 그 쪽에 집중이 되면서 지금의 二强一弱 구도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크게 요동을 칠 것입니다. 특히 다음 주 일주일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냐? 내일(11월11일) 이명박 후보가 입장발표를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박근혜 씨도 침묵할 수는 없을 것이고, 입장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 따라서 여론이 꿈틀할 겁니다. 다음으로 BBK라는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사건의 주인공인 김경준이라는 사람이 다음 주에 귀국할 가능성이 많고, 귀국 즉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친여언론, 좌파정치인들 좌파단체들이 이 사건을 크게 키울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BBK라는 것은 이회창 씨가 출마하지 않았으면 이명박 씨가 얼마든지 이 사건에 따른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 방어해주느냐? ‘이명박 씨가 김정일과 남한의 친북세력들과 싸워준다면 BBK는 무시하고 밀어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진 정통보수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방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회창 씨가 등장하니까 이명박 씨의 가장 확실한 방패세력을 했던 정통보수 세력의 주력이 이회창 씨 쪽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이명박 씨를 지키던 방패가 내려갔습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BBK문제가 나오면 지금까지는 그것을 방어해주려고 하던 사람들이 이회창 씨 쪽으로 가면서 방관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방관자가 되면 이명박 씨는 소위 중도세력에 의존해서 이것을 방어해야 하는데, 원래 중도세력들은 싸움을 잘 못합니다. 한국에서 보수·중도·좌파로 나누면 제일 싸움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중도입니다. 그러나 보수는 연세가 드셔도 싸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보수의 주력분이 이회창 지지로 가버리니까 중도세력으로 이명박 씨가 BBK공세를 막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동시에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중도세력 집단이, 바로 한나라당이 내분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래 정상적인 조직은 외부에서 위협이 생기면 단결합니다. 안에 무슨 문제가 있더라도 바깥에서 전쟁을 걸어오면 우선 살고보자해서 단결하는 게 원칙 아닙니까? 개미들도 인간과 똑같은 권력투쟁을 한답니다. 개미사회에도 전쟁이 있습니다. 개미사회에서도 쿠데타가 있고 암살이 있습니다. 인간이 하는 짓을 똑같이 하는 것이 개미인데, 싸움에 패턴이 있다고 합니다. 큰 적이 나타나면 작은 무리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도 휴전을 해서 뭉쳐 큰 집단과 싸웁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고 나면 다시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모든 조직의 생존본능인데, 이 한나라당이라는 조직은 개미보다도 못합니다. 외부에서 적이 나타나면 자기들끼리 더 싸웁니다. 이것이 바로 외우내환입니다. 외부의 공세가 왔을 때 안에서 단결해버리면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전쟁에서 지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충격이 왔을 때 안에서 갈라지면 바로 무너집니다. 한나라당의 생리 상 안에서 그런 분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분란의 핵심은 박근혜·이명박 두 사람 세력의 계속되는 갈등입니다.

8월20일에 2000여 표의 차이로 이명박 씨가 이겼을 때 박근혜 씨의 짤막하지만 명쾌한 ‘백의종군하겠다, 이명박 씨의 정권교체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는 패배시인 연설이 승리의 연설보다 더 유명해졌습니다. 박근혜 씨의 정치적 자산은 지금까지도 거기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그때 저도 글을 통해 여러 번 강조했는데 ‘이명박 씨의 선거운동은 시장바닥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는 그런 것 하지 말고, 박근혜 씨를 붙드는 선거운동을 하면 다른 선거운동 안 해도 이긴다. 박근혜 한 사람을 향한 선거운동을 해야 하고 그 선거운동을 하는 방법은 권력을 나눠가지는 것이다. 공동정권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권력을 나눠가져야 한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대통령 중심 하에서 무슨 권력을 나눠가지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생각이 바로 우리가 독재적인 정치 풍토에 너무 오래 길들여져서 우리 스스로를 세뇌시킨 것입니다. 왜 나눠가지지 못합니까? 권력이나 정권은 반드시 나눠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한 개인이 독식을 합니까? 더구나 이명박 씨는 약 51%로 이긴 사람 아닙니까? 51%로 이겨서 권력을 100% 행사하면 되겠습니까? 반드시 나눠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나눠가지느냐? ‘행정권은 내가 가지고 공천권은 박근혜 씨한테 드리겠다, 최고위원도 반 이상을 우선 차지하시오’ 이런 식으로 합의를 해야 합니다. 권력을 나눠가지는 합의를 해야 박근혜 씨와 협조가 되는 것입니다. 요새 기자들이 쓰듯이 말을 섭섭하게 했다든지, 늦게 만났다든지 하는 것은 다 잡담 같은 이야기입니다. 정치인들이 인사 좀 안한다고 틀어지고 그러겠습니까? 그것보다는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큽니다.

여기에서 이명박 씨는 실패를 했고, 박근혜 씨도 비난받을 점이 있습니다. 당인으로서 경선에 승복하겠다고 했으면 약속한대로 이명박 씨의 승리를 위해서 뛰어야합니다. 약속을 안했더라도 당과 조직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섭섭한 것은 사적인 문제고 권력분점 하든 말든 당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한다면 절대로 지금과 같은 태도를 취하면 안 되는 겁니다.

1971년에 부산에서 있었던 대통령선거 유세에 제가 기자시절에 갔었습니다. 가보니까 김대중(金大中) 씨가 연설을 하기 전에 찬조연설로 김영삼(金泳三) 씨가 올라갔습니다. 김영삼 씨는 부산의 희망 아닙니까? 또 그 1년 전에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대중 씨한테 다 이겨놓은 것을 이철승(李哲承) 씨가 각서에 속아서 김대중 씨 지지로 도는 바람에 졌습니다. 그 사람은 전당대회에서 이길 거라고 생각해서 전날에 수락연설을 쓰는데 힘을 쏟고, 김대중 씨는 여관을 돌아다니면서 대위원들 표를 얻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그런데도 자기 라이벌인, 숙적인 김대중 씨의 찬조연설자로 나와서 아주 감동적으로 김대중 씨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제가 그걸 현장에서 들었습니다.

선진국 정치는 원래 이렇게 하는 겁니다. 레이건 대통령도 1976년에 포드 현직 대통령한테 작은 차이로 지고 난 뒤에 멋진 패배연설을 하고, 그 뒤에 적극적으로 포드의 당선을 위해서 뛰었습니다. 그것이 공화당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서 4년 뒤에 압도적인 지지로 레이건이 대통령 후보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때도 레이건 대통령은 이기기위해서는 포드의 지지의 필요하니,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지만 그분을 부통령 후보로 만들어서 안보에 대한 권한을 다 넘겨주는 사실상의 공동 대통령제로서 선거에 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포드 쪽에서 너무 많은 부탁을 하는 바람에 박판에 깨지고 포드 대신에 부시를 부통령 후보로 영입했습니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한나라당 안에서는 그런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주에 BBK 김경준 귀국, 검찰 수사 착수, 폭로 기자 회견 이런 것이 뒤따르면 아마도 이명박 씨의 지지율이 조금 떨어질 것이고, 떨어진 지지율은 거의 다 이회창 씨 쪽으로 갈 것입니다.

그 때 박근혜 씨 쪽에서 어떻게 나오느냐가 아주 중요하게 됩니다. 후보 사퇴론이 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후보 사퇴론의 근거는 첫째,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검찰이 수사를 하는데 주가조작에 대한 사기혐의로 기소를 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나 검찰이 선거 전에 기소 여부를 발표하기는 상당히 어렵겠지만, 그런 공세를 펼 수는 있습니다. ‘기소를 할지도 모른다, 당선 된 후에 기소돼서 유죄판결을 받으면 당선무효가 되는 것 아니냐, 당선 무효가 될 사람을 왜 우리가 밀어야 되느냐’ 하는 의견이 박근혜 씨 쪽에서 나오기 시작하면 한나라당은 내분사태로 빠질 것입니다.

이명박 후보가 지지율이 아무리 떨어지더라도 자진사태 할 수 있겠습니까? 자진사태 시킬 방법도 사실상 없습니다. ‘전당대회를 따로 주최한다’ 그런 게 되겠습니까? 분란만 계속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명박 씨의 지지율은 더 떨어질 것이고 그 지지율이 다 이회창 씨 쪽으로 가든지, 아니면 보수 세력이 다 꼴 보기 싫다 해서 정동영 쪽으로 갈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예상되는 구도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선거구도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이냐? 선거구도가 지금은 二强一弱 체제입니다. 두 李씨가 강세고, 정동영 씨가 약세 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기계신 분들은 두 李씨 중에 한 사람만 되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니까 안심하고 느긋하게 선거과정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二强一弱체제가 유지되면 상당히 즐기면서 감상하실 수 있으나, 한나라당의 분열표가 이회창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정동영 쪽으로 가고, 장외에서 구경하고 있는 노무현·김대중 씨가 정동영 씨를 적극적으로 밀어줘서 지지율이 30%대로 세 사람이 비슷해지는 三强구도가 형성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兩李 씨한테 단일화하라는 압력이 가중될 것입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그만두라, 그만 두려면 협상이 있어야 된다, 뭘 주고받을 것이냐’ 하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지율이 5%안으로 차이가 나면 누가 우열인지 몰라서 단일화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여론조사 발표가 투표 6일 전인 12월 13일에 있으니까 그 여론조사에서 두 李 씨 중 한 사람이 5%이상으로 이기고 있다면, 그 쪽으로 표를 몰아주는, 사표방지 심리라는, 될 사람을 밀어주는 표 쏠림 현상이 일어나서 유권자에 의한 단일화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즉 三强구도냐, 二强一弱의 구도냐 하는 것이 이번 선거의 행방을 결정할 것인데, 다음 주말쯤이나 그 다음 주쯤이면 그런 흐름이 감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오늘 이 시점에서의 현재와 미래를 조금 전망해 본 것입니다. 미래라고 해도 아주 단기적인 미래입니다. 투표까지는 하달 남짓이고,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앞으로 일주일내지 열흘이내에 일어날 상황입니다.

제가 책 이름을 [李會昌 쇼크]라고 지었는데, 왜 ‘李會昌 쇼크’가 일어났느냐 하는 흐름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하면, 제가 선거 이후에 이회창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초여름이었습니다. 그분이 옥인동에 집이 있었는데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하자고 설득하기 위해서 찾아갔습니다. 혼자 조용하게 꼭 절간에 계시는 것처럼 조용하게 앉아있었습니다. 이분이 아주 독서를 많이 하는 분인데 그때도 책을 읽고 계셨습니다.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일본의 명치유신(明治維新) 시절에 신선조라는 무사그룹이 있었습니다. 이게 그 무렵에 일본에서 드라마로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신선조는 도쿠가와 막부를 끝까지 지켜내려고 하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로 명치유신을 하려는 사람들을 암살하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이 사람들도 나중에 다 죽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역사에서 이긴 사람뿐 아니라 진 사람들한테도 관심을 많이 둡니다. 역사에서 악인을 만들지 않는 게 일본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신선조가 한 때 일본에서 붐이었는데 이분이 그걸 열심히 읽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의외로 생각했습니다. 이분이 그런걸 보면서 스스로 다짐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서 제가 왜 바깥출입을 하지 않느냐고 하니까 바깥출입하기가 참 눈에 거슬린다고 합니다. 선거에서 지고해서 눈총도 받고, 마당에서 맨손체조 할 때도 혹시 누가 보는 사람이 없나 신경이 쓰인다고 했습니다.

그 몇 달 뒤 또 만나서 식사를 했는데 그때의 취지도 역시 월간조선이 이회창 씨가 사무실을 얻어서 재기하려는 것을 기자가 취재하고 있으니까 편집장이 저한테 인터뷰 설득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정치할 생각이 없으니 안 써줬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자기는 김대중 씨를 경멸한다, 왜 경멸하느냐 하면 약속도 어기고 여러 번 나와서 당선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그러면서 2002년에 있었던 섭섭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요새도 그 이야기 많이 나옵니다만, 2002년에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해서 좌파들이 촛불시위를 하니까 이회창 씨가 거기에 영합을 해서 미국 쪽에서 사과를 해야 한다는 말도 하고 그 촛불시위 현장에 찾아갔다는 비판을 합니다.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말씀드리자면 촛불시위 현장에 찾아간 것은 아니고, 촛불 시위와 관련된 어떤 행사에 갔던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 때 저도 제 사이트에 많은 글을 쓰고, 이런 기회주의적인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보수층 사람들이 많이 말을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 ‘김대중 씨는 군사쿠데타를 한 JP같은 사람하고도 손을 잡고, JP지지자들은 그걸 다 양해하는데 우리 보수 지지자들은 표를 얻기 위해 내가 조금 제스처를 쓰는 것도 봐주지 못하느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꼭 저보고 욕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일리는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납니다. ‘좌파는 원래 거짓말쟁이니까 통하는데, 보수 세력은 거짓말을 하면 자기부정이 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이야기 한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뒤에 그 분이 동부이촌동의 신동아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작년 초에 제가 또 찾아갔습니다. 틀어박혀서 수도승처럼 살지 말고 애국운동 하는데 나와서 같이 하시는 게 좋겠다, 이 총재께서 이제는 정치를 버렸다고 판단이 되니까 애국운동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흔쾌히 따를 테니 서울시청, 서울역 앞으로 나와 달라는 이야기를 하러 갔습니다. 하니까 이분이 국민행동본부가 하는 일이 가장 자기에게 맞다고 생각 하지만 자기가 나서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 그러나 문제가 있을 때 나름대로 자신의 발언을 정리해 발표하는 것은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작년 초를 전후해서 북한 핵문제라든지 무슨 문제가 있을 때 잘 정리된 글을 가지고 자기를 초청한 장소에 가서 발표를 여러 번 했습니다. 그것도 애국운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분의 말이 상당히 딱딱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잡는 드라마틱한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중정치인으로서 상당한 결격 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씨가 한 마디 하면 크게 되는데, 이회창 씨는 김대중 씨보다 훨씬 더 정리된 말을 했지만 뉴스가 안 됩니다. 또 적극적인 지지 세력이 약하기 때문에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24%의 지지율이 더 충격이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서는 남대문에 있는 사무실에 또 가서 애국운동에 나서달라는 부탁을 했고 드디어 올해 3월1일에 서울 시청광장에 있었던 국민대회에 연사로 나오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제발 좀 나와 주십시오’ 해서 나오기로 했는데, 애국운동세력 사이에 그 문제를 두고 생각이 엇갈려서 한 쪽에서 ‘안 나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 반대를 해서본인으로서는 상당히 수모를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8월에 한나라당 경선을 앞두고 만났습니다. 그때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명박 후보로 거의 결정이 될 것 같고, 김대중 씨도 자기아들 선거운동 하면서 펄펄 뛰고 있는데 이 총재께서는 왜 가만히 있습니까, 나와서 김대중 씨와 맞서는 입장에서 한나라당 선거운동을 하셔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그것보다 지금 노무현·김정일이 만나게 되어있게 더 큰 걱정이다. 2000년 4월에 총선 투표를 며칠 앞두고 소위 남북정상회담 발표가 있었을 때는 오히려 반작용으로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해서 크게 이길 것 같았는데, 그 두 달 뒤에 6·15 회담이후로 완전히 세상이 바뀌어버리더라. 실제로 일단 회담이 있으면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는데 노무현·김정일 회담에 대해 후보와 한나라당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다’고 하면서 걱정을 태산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 느낌에 이 분은 이명박(李明博) 후보를 지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혜(朴槿惠) 씨가 2002년에 탈당을 하고 김정일(金正日)을 만나고 온 데 대해서, 자기를 흔든 데 대해서 굉장히 마음이 상해있고 그 분의 말이나 측근들의 행동으로 봐서는 이 분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입증해 줄 수 있는 게 2007년 7월에 이회창(李會昌) 씨가 한나라당 강재섭(姜在涉) 씨한테 보낸 편지입니다.

편지 내용을 보면 첫째로는 ‘지금 한나라당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덕성 검증은 두 후보를 상처 내는 것이다, 상처를 내어서 본선에 진출시키는 것은 불리한 것이고 또 사실을 확인할 방법도 없으니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를 하고, 두 번째는 ‘북핵문제에 대해서 한나라당이 왜 이런 태도를 취하느냐? 특히 정형근 의원이 주도해서 만든 새 대북정책은 말도 안 된다. 이것은 기존의 한나라당 정책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정책을 내세우면 정권교체의 의미가 있느냐’ 이렇게 맹렬히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것도 크게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회창 씨의 목소리는 언론에서 무시되었습니다. 보도가 되더라도 한 줄, 두 줄로 되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회창 씨가 매우 자존심 상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역시 출마를 해서 정치를 공개적으로 해야 내 목소리를 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쉽게 말해서 언론에 외면을 당했습니다.

그 분은 자신과 김대중 씨를 잘 비교하는데, 김대중 씨는 한마디만 하면 크게 쓰고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울분이 쌓였지 않았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이분이 출마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그 주변에도 이회창 씨가 출마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출마를 하려면 조직을 확대하고 인맥을 확대하고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고, 실제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속으로 출마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고민은 아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경선에 되고 나서 이명박 씨가 이회창 씨를 만나려고 했는데 그때 음식을 먹고 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기가 되고 두 사람이 10월8일에 만났습니다. 이회창·이명박 두 사람의 만남이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이명박 씨 정치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명박 씨는 일 대 일로 만나서 상대를 설득하는 힘이 상당히 약합니다. 만났을 때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사람이 있고,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분을 보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지 않고 건성으로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CEO출신으로 항상 시간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니까 별 내용 없는 이야기를 서론·본론 해서 길게 하는 것을 이 사람이 참지를 못합니다. 중간에 졸아버리든지 나가버린다고 합니다. 이게 정치에서는 문제가 되죠.

어쨌든 이명박 씨가 이회창 씨를 만나서 상임고문을 제의했다고 합니다. 이회창 씨는 그것을 거절을 했는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신문에서 이명박 씨의 상임고문 제안을 이회창 씨가 거절했다고 하니까 이명박 씨는 그런 제의를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회창 씨가 화가 나서 앞으로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도 하는 코멘트가 했습니다. 별로 기분 좋은 만남이 아니었고, 이명박 씨로서는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 했습니다. 이때가 노무현·김정일의 10·4선언 나흘 뒤였으니까 이 자리에서도 이회창 씨가 이명박 씨한테 對北정책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노무현의 저런 굴욕적 대북정책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면서 차근차근, 하나하나 짚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뒤부터 이회창 씨가 본격적으로 출마를 생각하고, 출마를 결심한 것은 아마 10월15일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이 사람이 10월 24일에 서울 시청광장의 NLL 死守대회에 처음으로 나와서 대중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에 나오기 전에도 나가야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몇 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나오자마자 언론이 ‘정치재개를 한다, 출마선언이다’ 이렇게 쓰면서 지지자들이 이회창 씨 집 앞에서 출마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불교방송에서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여론조사를 하니까 15%, 며칠 있으니까 19%, MBC조사에서 드디어 26%까지 올라갔습니다. 이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높은 지지율에 자신도 놀랬을 겁니다. 그러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기 의지대로 간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상황이 만들어져서 끌려가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10월24일 NLL 死守대회에 나와서 아주 강력한 연설을 한 다음에는 모든 언론이 이회창 씨 쪽으로 집중되었습니다. 그래서 출마설, 출마설하고 지지율이 상상 이상으로 높게 나오니까 출마를 결심해서 11월 7일에 선언을 하게 되었다, 이게 제가 알고 있는 이회창 씨의 출마 쪽으로 간 마음의 행로의 일단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그 동안 이명박 씨 쪽에서는 뭘 하고 있었느냐? 경선에 당선되고 나서 좌파의 단일화된 후보와 가상대결에서 지지율이 60대 20으로 이긴다는 조사가 나오고, 박근혜 씨가 승복한다고 하여 박근혜 씨의 지지표가 거의 대부분 이명박 씨의 지지표에 합쳐져서 많을 때는 60%, 적을 때도 50%의 압도적 지지율이 8, 9, 10월 3개월에 거쳐서 계속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때가 이명박 씨의 잘나가던 때입니다.

사람은 잘 나갈 때 조심해야 됩니다. 이게 만고의 진리 같습니다. 잘나갈 때 반드시 실패의 씨앗이 자라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스스로를 경계해야 되는데, 그것은 오만입니다. 잘 나가기 시작하면 오만해지고, 모든 세상이 작게 보이고, 예스맨들이 몰려들고, 직언하는 사람들은 보기 싫고, 이렇게 되면 세상 민심과 유리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도록 되어버립니다. 이명박 씨도 거기에 빠졌는데 그 며칠 뒤에 버시바우 미국대사를 만나서 아주 의미 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친북좌파 대 보수우파의 대결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저도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소식이다 해서 환영하는 글을 쓰고 애국세력의 논객들도 그런 글을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그 이틀 뒤인가 이명박 씨의 측근 참모를 만나서 그 말 참 잘했다고 하니까 반응이 의외로 나왔습니다. 사실은 그 발언 때문에 이명박 씨를 말렸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했답니다. 무슨 조사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여론조사에서 불리하게 나왔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 때가 8월말, 9월초인데 지나고 보면 그때가 이명박 씨의 운명을 결정할 지도 모르는 아주 중요한 전략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주변에서 말리니까 ‘선거의 본질을 좌우 대결로 하지 않는다. 오로지 경제 제일주의로서 중도표를 잡고, 좌파와 전선을 형성하지 않으며 좌파가 싸움을 걸면 피한다, 따라서 평양회담에 대해서는 정면에서 맞받아치지 말고 회피하거나 영합하는 쪽으로 간다. 왜냐하면 내 표는 중도와 보수로 되어있는데, 보수는 어차피 다른 데 찍을 떼가 없으니 중도표만 잡으면 된다’ 이렇게 전략적 선택을 한 시기가 바로 이 때입니다.

그러면 이명박 씨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느냐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우선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이명박 씨는 잘 아시다시피 경제인입니다. 그리고 서울 시장으로서 행정을 했던 사람입니다. 실무에 매우 강한 사람이고, 또 건설회사 사장을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난관이 있어도 정해진 시간 안에 뭘 만들어내는 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불가능하게 봤던 청계천 복원공사를 별다른 저항 없이 해내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반대자를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이회창 씨가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건설의 능력, CEO로서의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금 여기서 갑자기 이회창 씨 지지로 돌아선 사람의 마음에는 이명박 씨에 대한 미움이 자라나고 있을 겁니다. 그것을 꺼야 됩니다. 두 사람 다 좋은 장점이 많습니다. 그 장점을 어떻게 하나로 합치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명박 씨는 이런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전략적 선택을 하도록 한 것은 그 분이 가지고 있던 위대한 능력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성격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 문제가 있는 성격이 무엇이냐?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한국에서 이제 이념은 끝났다, 이념이란 말만 들어도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피하고 오로지 경제로서 다 해결할 수 있다. 북한 문제 까지도 경제로, 돈으로 해결 할 수 있다. 그래서 ‘비핵·개방·3000’ 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이명박 씨의 브랜드가 되는 對北정책의 핵심적인 구호입니다. ‘비핵·개방·3000’ 즉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을 하면 북한을 1인당 GDP 3000달러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걸 보면 이 사람의 대북관이 어디에 있느냐를 알 수 있습니다. 핵을 폐기하고 개방하면 3000달러로 만들어 주겠다는 게 가능합니까? 김정일이 핵을 폐기하는 게 가능한가?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럼 김정일이 개방하는 것은 가능한가? 그것은 핵 폐기보다 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비핵 개방이라는 것이 우선 불가능 합니다. 불가능 한 것을 가능하다고 보고 3000달러로 만든다는 것은 더 불가능해집니다. 불가능 한 것이 세 개가 모였습니다. 비핵도 불가능, 개방은 제곱으로 불가능한 것이고, 3000달러를 만드는 것은 세제곱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불가능, 불가능, 불가능을 곱하면 뭡니까? 제로입니다.

‘3000달러’라는 말은 이명박적인 말입니다. 북한의 1인당 GNP는 현재 은행에서 1000달러로 되어 있습니다. 1000달러를 3000달러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실제로 따져보면 북한의 1인당 GDP는 한 300달러쯤이 되기 때문에 300달러를 도대체 어떻게 3000달러로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3000달러가 가능하려면 우선 핵을 폐기해야 되고 개방되어야 합니다. 그러러면 김정일이 물러나야 되고,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깔아야죠. 그러러면 당당하게 개혁개방, 북핵문제에 걸림돌이 되는 김정일 정권을 물러나게 하겠다고 밝히면 오히려 말이 됩니다.

이런 심리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아, 이 사람이 남북관계의 본질을 모르고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념이라고 하면, 사실 머리가 아프죠. 그러나 말을 하나 바꾸면 됩니다. 이념은 바로 ‘안보’ 문제입니다. 안보는 생존이죠. 국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고, 국민의 생활, 생계가 걸린 문제, 직업이 걸린 문제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념은 별게 아닌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자꾸 이념이라는 말에 취해서, 이념이 별 거 아니다 라고 하는데. 그걸 안보라는 말로 바꾸면 안보가 별 것 아니라는 말은 안 나올 것이다. 말 하나 차이에서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명박 씨는 오로지 경제제일주의를 앞세우기 시작하고, 남북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로 보면서 갔습니다. 본인은 실용주의적인 마인드가 너무 강한데, 이명박적인 실용주의는 문제가 있습니다.

요약을 하면 한국에서는 무조건 안보제일주의이어야 합니다. 안보라는 물그릇에 금이 가면 거기에 경제라는 물을 아무리 부어도 밑 빠진 독이 되죠. 거기에 물을 담아서 뚜껑을 덮어놓아야 물이 오염되지 않는데, 그 뚜껑은 법치다. 법치가 지켜지지 않으면 물이 오염되어서 새버리고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겁니다. 즉 안보와 법치와 경제는 그릇, 물, 뚜껑처럼 한 덩어리입니다. 그리고 그 기본은 바로 안보입니다.

이명박 씨 주변에 소위 머리가 반짝반짝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주로 소위 자칭 선거전략가들이죠. 선거 전략가들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연구하는 게 아니라 주로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연구하는데, 연구 모델이 참 많습니다. 문제는 이걸 들고 와서 한국에 적용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죠. 경제가 최고라고 해서 경제 제일주의, 그리고 대결구도로 가면 안 된다, 1등을 달리고 있는데 왜 대결구도로 가느냐 라고 이야기합니다. 듣고 있으면 과학적이다 뭐다 해서 기자도 설득이 될 정도로 근사하긴 합니다. 아마 이명박 씨는 본인의 성향과 함께 그런 주변의 말을 듣고 ‘그러면 그렇지’ 하며 아마 손뼉을 쳤을 겁니다.

그러더니 선거 구호를 하나 만들어냈는데, 선거구호가 “겨울 바다에서 고래를 잡자”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지금 이런 구호를 내걸 만큼 한국에 여유가 있습니까. 오렌지族이 만든 것 아닙니까. 압구정동에서 나라가 어찌되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젊은 애들에게 패션을 파는 사람들이 만든 구호라면 이해가 가요. “겨울바다에서 고래를 잡자”라는 말을 선거의 공식 구호로 만들어내고는 참 잘 만들었다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북핵 문제가 우리 마음 속에 드리워져 있는 상황에서 “겨울바다에서 고래를 잡자”는 이야기는, 이것이 바로 이명박 씨와 측근들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명박의 측근에는 반공의식을 가진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고 기능주의자들이 많습니다. 경제 관련 출신들, 즉 교수 출신들, 그리고 좌파 출신들, 이런 사람들이 몰려 있으니까 김정일과 대결해야 된다, 평양회담을 헌법 위반으로 규정해서 당당하게 맞서야 된다고 건의를 할 사람이 전무하죠. 그러니까 바깥에서 국민들이나 아주 소수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안 된다고 하는 의견은 이명박 씨에게 절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이명박 후보로 하여금, ‘왜 당신은 가만히 있느냐, 노무현·김정일이 대한민국을 마치 조류독감에 걸린 존재처럼 처분하는 합의를 해서 왔는데 왜 이명박 후보 당신은 침묵하고 있느냐’는 사설 하나 싣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후보로써는 이런 노선으로 가는 것이 탄탄대로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느냐. 정통보수 세력이 화가 나고 있었습니다. 화가 나면 터트려야 하는데, 그럼 화가 좀 줄어들 텐데 터트릴 곳이 없었죠. 거리에 서서 터트리던지, 자기 대신 누가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화가 바깥으로 해소될텐데 계속 쌓여갔습니다. 그런데 그야말로 느닷없이 이회창이라는 사람이 안보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자기와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이회창 씨 출마에 대해서 전혀 생각도 안 해본 사람들 중 상당수인 25%가 순식간에 거기로 갔습니다.

지금 이회창 씨 지지하는 25%는 누구냐. 여론조사에 나와 있어요. 며칠 전에 안부근이라는 여론조사 전문가가 분석했는데, 보니까 대충 이렇습니다. 25%를 분석해보니까 상당히 재미있는 통계가 나옵니다. 내일신문과 디오피니언이라는 여론조사 회사가 합동으로 조사를 했는데, 현재 이회창을 지지하는 25%와 한나라당 지지로 남아있는 잔류층을 비교해보니까 이회창 씨 쪽으로 간 사람들 중 한나라당 지지가 더 높습니다. 정권교체를 반드시 해야 된다는 생각도 이회창 지지로 간 사람이 한나라당 지지로 남아있는 사람보다 더 높게 나오고, 이회창 씨가 스페어 후보로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지금 한나라당 지지로 남아있는 사람들 보다 이회창 지지자 중에 더 많다고 합니다.

여론조사전문가 안부근 씨는, 이회창 지지자인 이 25%가 순혈지지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순혈이라는 뜻은 피가 깨끗하다는 뜻인데, 보니까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이번엔 정권교체를 해야 되고, 좌파는 반드시 종식시켜야 되고, 이것을 위해서는 설사 내가 이회창 씨를 지지하지만 스페어가 되어도 좋다는 뜻입니다. 이런 지지자들은 마지막에 가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될 사람을 민다, 사심이 적다, 사심이 없다, 순수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순혈지지층이다, 하는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인데, 정확한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화가 제일 많이 나 있는 사람들이 이회창 지지계층입니다. 이 25%를 연령적으로 말하자면 40대 이상, 지역적으로 말하자면 충청권과 대구경북, 그리고 경남입니다.

순혈지지층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이유가 있죠. 이회창 출마 이야기가 나오니까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지난 열흘 동안 이회창 씨를 도마에 올려놓고 집중적으로 비판을 했습니다. 분열주의자, 사실상의 경선 불복, 대쪽이 아니라 반쪽이다, 차떼기 등등. 이방호라는 사무총장까지 나와서 폭언까지 하니까 소재가 많죠. 사설을 통해서도 하고, 만화를 그려서도 하고, 기사를 통해서도 하고, 제 기억으로는 한국 언론사에 남을 만한 융단 폭격을 했습니다. 한국 언론사에 이렇게 한 사람을 상대로 3대 신문사가 집중적으로 비판한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이회창 씨는 무저항적으로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말에 일리는 있습니다. 사실상 경선불복이기 때문이죠. 한나라당 당원인데, 경선에 참여하려면 등록해서 싸워야지 그렇게 하지 않고, 게임은 끝났는데 뒤늦게 탈당해서 출마한다는 것은, 어떤 이의 표현대로 100미터를 뛰는데 50미터 쯤 중간에 끼어들어서 뛰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입이 열 개가 있어도 변명은 못하고, 본인도 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욕을 다 먹겠다고 하죠.

그런데 그렇게 비판을 했는데도 그 기간에 이회창 씨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왜냐. 이회창 씨 지지율 25%는 거의 99%가 조선·동아·중앙일보 중에 하나를 구독하는 사람들일텐데, 즉 자기 독자층을 향해 이렇게 집중적으로 비판을 했는데도 오히려 올라갔다는 것은 조선·중앙·동아일보가 큰 민심 변화의 흐름을 놓쳤다는 뜻이 됩니다. 반성해야 할 부분이죠.

조선·중앙·동아일보의 보도는 언론의 정도를 벗어났습니다. 언론은 항상 형식적인 객관주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미워도 26%의 사람들이 왜 이회창씨를 찍기로 했느냐에 대한 목소리를 들어봐야 하는데 그런 것이 하나도 없죠. 26%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코멘트가 하나도 없습니다. 객관주의를 상실한 것이죠. 그걸 보니까 조선·중앙·동아일보는 나라 걱정보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서 떨어지는 걸 더 걱정하고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설사 그런 생각이 있을수록 객관주의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설득력인데 말입니다.

뭘 몰랐느냐. 이 26%가 단순한 26%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주류 세력이자, 그 동안 얼마나 화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는지를 정치부 기자들이 몰랐다고 봅니다. 왜 몰랐느냐. 여의도에서 매일 정치인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밑바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게 됩니다. 또 30대가 많으니까 자기 아버지 세대쯤 되는 나이 많은 분들이 서울시청 앞 같은 곳에 모여서 데모하는 걸 보면 괜히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만 명이 모여서 데모를 해도 기사 1단 하나 안 써줍니다. 대신 좌익들은 50명만 모여서 데모해도 조선·중앙·동아일보까지도 기사를 써주는 식의 습관에 젖다가 보니 민심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라 얼마나 50대 이상의 인구가 늘었느냐. 유권자의 34% 정도가 되고 투표율이 높으니까 실질적인 선거 영향력은 40%가 된,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을 젊은 기자들이나 논설위원들이 몰랐습니다. 한 번 정도 그러면 좋은데 계속 되풀이 되고 있으니 문제인 것이죠.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조선일보 사설 밑에 댓글이 많이 달리는데, 댓글의 99%가 사설을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제발 우리 알아먹었으니까 똑같은 이야기 좀 되풀이 안했으면 좋겠다. 옛날에 유럽에 중세에서 글을 아는 사람은 가톨릭 신부 밖에 없었는데 당신들이 가톨릭 신부들인 줄 아느냐. 우리도 인터넷을 통해서 잘 안다.” 참 맞는 말입니다.

이회창 씨를 비판하는 논리는 참 단순합니다. 딱 한 줄 밖에 없어요. “사실상 경선불복이다.” 그걸 누가 모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26%의 지지가 있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러면 이명박 씨는 지금까지 무슨 실수를 했느냐. 특히 안보문제를 놓쳤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다가 이제야 뒤늦게 ‘결국 이념문제구나’ 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즉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이회창을 린치(lynch)한 사건 비슷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주먹으로 때리는 게 아니라 말로 때리는 것도 린치인데, 집단 린치를 당한 것입니다. 이 현상을 보니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영향력이 참 적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은 인터넷 영향력이 더 큽니다. 결국 본인들이 영향력이 없다는 것을 폭로한 셈입니다.

11월7일날 이회창 씨가 연설을 하면서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 날 이후 인터넷을 보니 이런 반응이 많았다. ‘온건한 연설이더라. 그런데 시원한 말이 하나 있더라.’ 바로 ‘공공의 적’이라는 발언 때문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도심의 도로를 점령하여 교통마비를 가져오는 일은 저 이회창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 군인들을 공격하거나, 젊은 전경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자들은 공공의 적으로 법에 따라 엄단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속이 시원하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한 30대 기자가 저에게 메시지로 보내왔는데,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아마 전에 노무현 찍었을 것에요.

그런데 여기에 무슨 감동할 내용이 있습니까. 여기에는 아무 뉴스가 없어요. 군인들에게, 전경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자들이 공공의 적이 아니면 공공의 친구입니까. 법에 따라 엄단하지 않겠다고 해야 뉴스가 될 텐데, 법에 따라 엄단하겠다고 하니까 속이 시원하다는 것입니다.

이건 어떤 현상이냐.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법이 무너지는, 국가 정체성이 무너지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겪었으며, 얼마나 생활을 불편해했는지, 그걸 참아왔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까. 국민들 중에는 도심지에서 시위하는 바람에 택시타고 가다가 약속을 못 지킨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꼭 막아야 될 부도를 못 막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행기를 놓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애인과의 약속을 못 지키는 바람에 애인도 놓치는 경우 등등의 사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안보에는 치안이 포함됩니다. 치안에 부담이 온 것은 바로 이념에서 온 것이죠.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불법폭력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표에 의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폭력시위 난동을 하고 무장을 해서 군인들을 패고 해도 그 군인들로 하여금 총을 들지 못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몽둥이도 들지 못하게 하고 달랑 방패 하나로 막으라고 했습니다. 또 그것을 엄중하게 단속하는 과정에서 시위대가 죽으니까 경찰청장의 목을 날려버리는 이런 정권에 대해서 조선·중앙·동아일보를 포함한 우리 언론이 오히려 폭력 시위를 비호했습니다. 특히 방송이 앞장서서 비호를 하는 이런 사태에 대해 그냥 넘어갈 줄 알았더니 그걸 모두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보수 세력이 약 70%가 되고 이회창 지지세력이 26%가 된 기본 동력입니다. 국민들이 집단적으로 화가 나게 되면 역사를 바꾸게 됩니다. 1960년의 3·15부정선거에 의한 4·19혁명이 이렇게 일어났죠. 1987년 6월 사태의 출발점은 그해 1월에 있었던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었고, 그 외 광주사태, 부마사태 등 모두 다 보통 사람들이 화가 나고 여기에 학생, 종교인들이 가세를 하면 역사가 바뀐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보수 혁명 역시 그 기본을 보면 사람들이 화가 난 것입니다.

왜 화가 났느냐. 대한민국 헌법이 짓밟히고, 국군이 짓밟히고, 공권력이 짓밟히니 화가 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도 이명박 후보는 오로지 경제제일주의에요. 그런데 여기에 이회창 씨가 안보와 법치를 들고 나온 겁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경제가 중요해도 안보가 무너지면 다 같이 무너진다 하는 이야기를 했고, 11월7일 연설에서 또 퇴로를 열어놓았습니다. 좌파정권 교체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거기에 내가 방해가 되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하는 뜻을 담고 있는 이 연설은 아주 잘 쓴 연설입니다. 그렇게 화끈한, 선동적인 용어는 없으나 아주 잘 쓴 용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명박 씨 쪽에서 ‘우리가 그 동안 보수 세력을 너무 무시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반성이 얼마만큼 신빙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반성의 표현으로서 여러가지, 예컨대 이틀 전에 이명박씨가 재향군인회가 주최한 안보관련 발표회에 가서 발표를 했는데, 거기서 안보가 경제보다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문장을 바꿔서 경제제일주의를 버리고 안보제일주의로 돌아가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지금까지 이명박 씨의 이런 중도적인 노선을 뒷받침했던 이재오 최고위원이 사퇴를 하고 박근혜 씨에게 계속 구애를 하는 이런 모습은 결국 이회창 출마가 가져온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보수선명 경쟁이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회창 씨 쪽에서 ‘이명박 씨, 당신은 보수의 대표가 아니라 중도의 대표다, 내가 보수의 대표다’ 이렇게 주장하고 나오니까 저 쪽에서는 보수를 다 잡아야 되는데 중도로 몰리면 안 된다 해서 ‘나도 보수의 대표다’ 하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선의 경쟁이 시작되게 됐습니다. 이건 굉장히 좋은 현상이에요.

선거에서는 그 나라가 가장 절실하게 고민하는 것을 선거의 주제로 삼아야 됩니다. 그건 경제제일주의라는 말로 표현이 안 됩니다. 그럼 뭘로 표현되느냐. 햇볕정책을 폐기하는 사람과 햇볕정책을 수호하는 사람의 대결이다, 이렇게 이야기 해야 오늘날 대한민국의 고민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입니다. 또는 대한민국 헌법 체제를 수호하는 사람과 대한민국 헌법 체제를 파괴하는 사람, 기피하는 사람, 즉 헌법 기피 세력 및 파괴세력과 헌법 수호세력의 대결로 나눠야 합니다.

이렇게 노선투쟁을 제대로 하면 그 결과는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인데, 그렇지 않고 노선투쟁을 하기 싫어서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오로지 경제, 문화, 교육 이야기로 치중하는 사람은 결과가 나와도 한국의 고민을 다 수용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회창씨의 등장에 의해 법치·안보문제가 선거의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는 부분만큼은 이회창 씨의 供입니다. 그래서 현재 이명박 씨가 좌경화했다가 다시 우경화하는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이냐. 우선 이회창 씨는 11월7일 출마를 선언하고 난 후 한 행동을 보면 안보·법치를 주제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날 오후 국립현충원을 방문해서 이승만 대통령 묘소에 참배를 했습니다. 기자의 기억으로는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 중 이승만 대통령 묘소를 찾은 사람은 이회창 씨가 유일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제는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황 장교의 유족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마 이런 행동을 계속하면서 안보·법치를 가지고 나오고, 여러 가지 관련이 있는 공약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는 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표를 얻는 것으로 입증이 된다면 이회창씨에게 역전승의 찬스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컨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지난 좌파 10년 동안 일어났던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특별수사본부를 만들겠다. 그래서 특히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과 측근들의 비리를 반드시 수사해서 응당하겠다.’ 이런 공약을 하면 표를 얻을까요 잃을까요. 아마 표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면 이런 공약을 할 꺼에요. 이런 공약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이 됐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반면 이회창 씨의 출마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또 뭐냐. 보수 분열이니까 이회창 씨의 출마에 반대한다고 해서 애국운동 세력들 중 400명 정도가 모여서 성명서도 발표했습니다만,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제는 다 이겨놓은 게임인데,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었는데 이회창 씨가 나오는 바람에 압도적으로 이기는 게 힘들게 됐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사실상 경선 불복이라는 점, 그래서 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이런 점도 있습니다. 지금 이회창 씨의 출마를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선거법이 바뀌지 않아서 12월3~19일 사이에 이명박 후보가 유고가 되었을 시 대체후보를 낼 수 없다며 빨리 선거법을 개정해야 된다고 주장했던 사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회창씨의 출마가 바로 스페어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걱정을 덜게 됐지 않습니까. 그런데 또 이상하게 그런 주장을 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반대를 하는 분이 있어요. 아마도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었는데, 그래서 안심할 수 있었는데 표가 갈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 요동쳐서 3강 구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일리는 있죠. 잘못하면 3강 구도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회창 씨가 들어서서 3강 구도로 갈 수 있다는 걱정으로 보수 분열이라는 말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또 그렇게 될 가능성도 실제로 상당히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우선 이명박, 이회창 씨 두 사람의 대결이 인신공격이나 폭로 위주로 가지 않도록, 두 사람이 더티 게임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방호라는 사무총장이 이회창 씨가 2002년 대선에서 걷은 대선후보 자금을 남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하는 늬앙스를 풍기면서 폭로를 했는데 이회창 씨 쪽에서 응당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그런 류의 폭로나 인신공격을 하지 않고 오로지 노선투쟁으로 가야됩니다. 국가의 진로를 어떻게 잡느냐, 경제제일주의냐, 또는 6.15선언 폐기냐 찬성이냐, 폐기냐 유지냐, 햇볕정책은 어떻게 할 것인가, 금강산관광을 지금 식으로 계속해도 좋은가, 개성공단을 지금처럼 계속하는 것이 북한을 개방시키는 거냐, 하는 등의 이런 논쟁을 계속 하도록 주변에서 유도를 해줘야 합니다.

왜 이렇게 해야 되는가. 인신공격이나 폭로를 하게 되면 나중에 합치려고 할 때 합치기가 어렵게 됩니다. 보수끼리 원수가 되는 것이니까 그것을 막도록 주변에서, 그리고 유권자 표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관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선투쟁은 많이 할수록 좋아요.

이명박 지지층이나 이회창 지지층이나 다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들입니다. 한 우물에서 물을 먹었던 사람들이에요. 또 언젠가는 한 솥에서 다시 한 우물에서 밥을 짓고 해야 될 텐데 기분 나쁘다고 해서 그 우물물에다가 침을 뱉으면 어떻게 됩니까. 언젠가는 다시 마실 우물물에 제발 서로 침을 뱉지 말라는 말을 해야 됩니다.

또한 3강 구도로 갔을 때 어떻게 하면 두 李씨가 하나가 되든지, 두 李씨 중에 하나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죠. 그때는 참 여러가지로 문제가 생기는데, 이회창 씨가 3등으로 가면 아마 합할 가능성이 확실합니다. 지지율이 10% 대로 떨어지면 사퇴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2위를 하더라도 아슬아슬하게 2위를, 5~7% 차이로 지고 있을 때는 본인이 지고 있으니까 사퇴를 해야 된다고 느끼거나, 바로 뒤에 정동영 씨가 근소한 차로 추격하고 있게 되면 사퇴하라는 압력이 이회창 씨로 몰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정동영 씨가 큰 차이로 10% 이상 차이로 3위로 달리고 있다면 1, 2위로 끝까지 가게 될 겁니다. 그래서 이회창 씨가 2등으로 질 경우에도 거기에 모였던 사람들을 조직해서 정당을 만들고 다음 해, 그러니까 내년 4월에 보수 신당을 만들어서 국회의원을 확보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고, 기자는 그렇게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졌으니까 또 정계를 은퇴한다고 하지 말고, 정당을 하나 만들겠다는 결정을 하는 것이죠.

우리 국민들 중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선명보수 세력을 정치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대변자가 없었죠. 정통보수들의 울분을 대변하려는 신문도 없었고, 정당도 없었는데, 이제는 이회창 씨가 상당부분 정통보수 세력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으니까 이제는 그것이 정당의 모습으로 정치 안에서 대변될 수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보수당을 만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까지 생각을 하고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지더라도 이번 선거를 통해 30%의 지지율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정치력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사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공의 敵’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어원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습니다. 이 말은 영어를 번역한 말로, public enemy(퍼블릭 에너미), 1930년에 시카고 공안위원회의 위원장이 쓴 말입니다. 1930년대의 시카고는 갱영화에 많이 나오는 배경이죠. 조직폭력배들, 특히 알카포네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금주령이 내려서 술을 못 팔게 했습니다. 그런데 조폭들이 숨어서 술을 팔아 돈을 벌고 탈세한 사람들, 이 사람들을 public enemy, 즉 공공의 적이라고 해서 28명 이름을 죽 적고 맨 위에다가 알카포네를 넣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public enemy란 말을 FBI에서도 쓰기 시작하고 1931년에는 public enemy라는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졌어요. 제임스 캐그니라는, 연세 드신 분들이 기억하시는 깡패로 자주 나오는 그 배우가 주연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에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상당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회창 씨는 질서를 파괴하는 정도를 공공의 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자는 이 공공의 적이라는 개념을 좀 넓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공동체의 적, 공동체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자는 첫째로 친북좌익들이고, 간첩들이고, 공작원들이고, 조폭들이고, 무엇보다도 집단시위를 해서 행정과 치안을 마비시키는 자들이고, 동시에 천민자본주의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봅니다. 자본주의를 하면 깨끗하게 해야 되는데, 기업주라고 비자금을 만들어서 판사, 검사를 매수하는 것도 공공의 적입니다. 이러한 공공의 적을 우리 사회에서 밀어내는 것이 우리 보수 세력의 자정운동이 되는 동시에 친북좌익 세력들을 정치적으로 멸종시키는 좋은 테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자가 선거 구호를 만들어본다면, “공공의 적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구호와 “겨울바다에서 고래를 잡자”는 구호가 대결하면 누가 이기는지, 국민들에게 한 번 물어보자는 것이 이번 선거의 주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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