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범죄 적용 여부 두고 딜레마에 빠진 트럼프·검찰·재판부

셋 모두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차악(次惡) 고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른바 성추문 입막음 사건 재판에 대한 판결이 곧 내려질 전망이다. 트럼프 측과 검찰 측은 현지시간 21일(화) 최종 변론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피고와 검사, 나아가 재판부가 어떤 범죄 혐의에 대한 판단을 배심원단에게 맡길지 주목되고 있다. 


현재 트럼프는 사업 운영 관련 자료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고 이와 관련해 총 34개의 중범죄(重犯罪) 혐의로 기소된 상황이다. 2016년 대통령 선거 직전 성인배우인 스토미 대니얼스는 이로부터 약 10년 전 트럼프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했다. 검사 측은 트럼프 당시 대통령 후보가 개인 변호사이자 그의 ‘해결사’로 불린 마이클 코언을 통해 대니얼스에게 13만 달러를 전달, 그녀의 입을 막도록 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선거 이후 코언이 지불한 13만 달러의 금액을 코언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지불 항목을 법률자문료 형식으로 지불했는데 이것이 사업 회계 자료를 조작했다는 것이 검사 측의 입장이다. 


20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선 그린버그 전 뉴욕주 판사의 기고문을 실었는데 그는 현재 재판의 향방이 배심원단이 어떤 혐의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인지에 달렸다고 했다. 즉, 트럼프와 검사 측, 재판부 모두 어떤 혐의에 대한 유죄 여부를 판단에 맡길지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검사와 피고 측, 재판부는 이르면 이번 주 트럼프에게 34개의 회계 자료 조작 1급 중범죄 혐의를 적용할지, 아니면 34개의 회계 자료 조작 관련 2급 경범죄(輕犯罪) 혐의를 함께 적용할지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 이를 통해 배심원단이 중범죄 유죄 여부뿐만 아니라 경범죄 유죄 여부를 다루도록 할지 결정하는 절차다.  


경범죄는 말 그대로 보다 덜 중대한 범죄로 형량 역시 낮다. 트럼프의 경우 경범죄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받기 위해서는 그가 의도적, 혹은 고의적으로 회계 자료를 조작했다는 것이 입증돼야 한다. 중범죄에 대한 유죄 판결을 위해서는 그가 의도적으로 회계 자료를 조작했고, 이에 더해 그가 다른 범죄를 숨기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확인돼야 한다. 판사는 검사 측, 혹은 피고 측의 요청이 있을 시 배심원단에게 기존의 중범죄 혐의에 추가로 경범죄 혐의에 대한 판단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만약 피고와 검사 측 모두 이를 요청하지 않을 시에는 판사의 재량 하에 이를 배심원단에게 지시할 수 있다. 


그린버그 전 판사는 이 문제와 관련해 피고, 검찰, 재판부 모두 복잡한 셈법을 갖고 있다고 했다. 판사는 피고인 트럼프가 회계 조작 범죄를 저지른 것은 맞지만 그 범죄의 중대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할 시 배심원단에게 경범죄 혐의 적용을 검토해달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배심원단 역시 트럼프가 의도적으로 회계 조작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범죄를 은폐하려는 뜻은 아니었다고 판단, 경범죄에 대해서만 유죄 평결을 내릴 수 있다. 즉, 트럼프가 다른 범죄 행위를 숨기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단순한 모멸감, 혹은 결혼 관계 및 선거 결과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한 것이 전부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검찰은 트럼프가 다른 중대한 범죄 무엇인가를 은폐하기 위해 이런 회계 조작 범죄에 나선 것인지를 배심원단에게 제시하지 못한 상황이다. 다만 사소한 선거 관련 범죄 등을 은폐하기 위해 이런 조작에 나섰다는 것이 지금까지 검찰의 주장이었다. 코언은 입막음 비용으로 트럼프의 승인을 받고 대니얼스에게 우선 자신의 돈을 줬다. 그런데 이것이 대통령 후보에게 개인이 기부할 수 있는 금액 2700 달러를 훨씬 넘었기 때문에 불법 선거자금으로 볼 수 있고 이에 따라 트럼프가 주(州)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즉, 대니얼스와 트럼프가 성관계를 가졌고, 입막음을 위해 돈을 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가 코언을 통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 각종 범죄 행위에 해당될지 알면서도 진행했느냐가 이번 재판의 핵심이다.  


그린버그 전 판사는 트럼프로서는 경범죄에 대한 유죄를 받을지, 아니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경험해야 할지 복잡한 상황이라고 했다. 만약 판사가 중범죄 혐의에 대한 판단만을 배심원단에게 맡기고, 배심원단이 트럼프가 회계 조작을 의도적으로 한 것은 맞지만 다른 범죄를 은폐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고 판단하면 트럼프에 대한 중범죄 혐의 기소는 기각된다. 만약 배심원이 위와 같이 판단한다면 그에게 경범죄 혐의가 적용됐을 시 그는 경범죄에 대한 유죄만을 받게 된다. 


트럼프 측으로서는 경범죄 혐의를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가 덜 중한 죗값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트럼프는 34개의 중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데 각 죄목의 최장(最長) 형량은 4년이라고 한다. 트럼프의 현재 나이를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무기징역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제 형량은 트럼프가 초범(初犯)인 점, 그가 노령인 점 등을 고려해 조금 줄어들 수는 있다. 그럼에도 경범죄를 검토하도록 하는 것이 트럼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처럼 두 혐의가 병합된 재판의 경우 뉴욕주에서의 경범죄 혐의 유죄에 대한 최장 형량은 징역 2년형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에 따라 그가 기각될 가능성도 있다고 하지만 이럴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그린버그 전 판사의 설명이다. 트럼프의 입막음 범죄 혐의는 대선이 막 끝난 무렵인 2017년에 일어난 일이다. 트럼프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의 공소시효는 2년이다. 약 7년이 흐른 것이다. 하지만 뉴욕주는 1999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공소시효는 범죄 혐의자가 뉴욕주 내에 ‘지속적으로 거주’한 기간만을 공소시효 기간으로 적용한다. 즉, 트럼프는 선거 승리 이후 워싱턴 D.C. 백악관에 거주했고 퇴임 후에는 플로리다주에 거주했기 때문에 2년간의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또 다른 딜레마 중 하나는 경범죄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항소심에서 이길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뉴욕주의 경우 피의자가 처음에 적용된 혐의보다 덜 중대한 혐의에 대한 판결을 요구하고 해당 혐의에 대한 유죄가 선고되면 피의자가 항소를 통해 이를 뒤집기 어렵게 돼 있다. 


트럼프 측은 재판 과정에서 검사 측의 주장을 입증할 법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우선 트럼프는 경범죄와 중범죄 혐의 적용에 필요한 조항인,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어떤 이들로부터 돈을 갈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작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입막음 비용은 개인 계좌에서 나갔기 때문에 법률자문료로 조작된 회계 자료 역시 트럼프 재단의 사업 자료가 아닌 개인 자료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그는 경범죄와 중범죄 혐의 모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가 1심에서 경범죄에 대한 판단을 내려줄 것을 배심원단에 부탁하고 이에 대한 유죄를 받으면 위와 같은 주장을 항소심에서 할 수 없게 된다는 딜레마가 있다. 


검사 측 역시 셈법이 복잡하다. 경범죄 혐의에 대한 유죄만으로 충분한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다. 검사 측이 경범죄를 적용할 것을 요구하면 일부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경범죄의 경우는 큰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기는 하지만 트럼프를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일부 언론과 대중은 이런 판결이 충분하지 않다며 반발할 수 있다. 하지만 중범죄로만 기소해 모든 혐의에 대한 기각 판단이 내려지면 검사 측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검사가 의도성을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사안이다. 트럼프가 지금까지 주장한 의도의 주요 이유는 그의 결혼 생활과 대중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다. 


검사와 트럼프 측 모두 경범죄 혐의 적용을 꺼려하면 판사의 재량으로 이를 배심원단이 검토하도록 할 수 있다. 트럼프의 경우 지금의 중범죄 혐의보다는 덜 중대한 범죄에 대해 유죄 판단이 내려질 수 있는 증거가 꽤 있다. 또한 경범죄에 대한 유죄 판단은 중범죄와 비교해 항소심 등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낮다. 판사로서는, 항소심에서 그의 1심 판결이 뒤집히는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안전한 경범죄 적용이 나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린버그 전 판사는 이런 상황을 설명하며 판사와 검사, 트럼프 모두 경범죄 혐의 검토를 요청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셋 모두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는 보다 안전한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결론에 따른 득(得)과 실(失)은 셋 모두에게 존재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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