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잃는 한이 있더라도 올림픽은 성공시켜야”

<秘話>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생각하는 88서울올림픽과 全斗煥의 순정 (1)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새삼 위대하게 보이는 서울올림픽, 한국과 세계를 바꾼 16일의 드라마, 세계 사람들의 善意가 모이니 이런 기적이 일어났다.
 
 ⊙ “올림픽은 하늘이 고생하는 한민족에게 준 선물”
 ⊙ ‘일본의 國士’ 세지마가 서울올림픽 유치 건의
 ⊙ 6·29 선언은 서울올림픽 성공과 김대중·김영삼 분열을 계산한 대도박
 ⊙ 고르바초프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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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재임하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자주 입에 올린 말은 ‘88서울올림픽’이었다. 내가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할 만큼 나의 최대의 관심사였다.〉(전두환 회고록)

  

아무리 힘이 지배하는 국제관계와 세계사지만 간혹 선의(善意)가 힘이 되어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 수가 있다. 1950년 6·25 남침 때의 유엔군 파병과 1988년 9월의 서울올림픽이 대표적 사례다. 서울올림픽을 매개로 하여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적 선진화, 소련 및 동구 공산체제의 붕괴, 그리고 북한 정권의 몰락이 대세화되었다는 것은 이젠 정설(定說)이다. 서울올림픽은 도저히 불가능한 조건에서 성공하였는데, 그 동력은 착한 마음들의 집합이었다. 여러 나라 지도자들의 결단과 세계시민들의 선의가 한 덩어리가 되었으므로 지구촌 전체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더 자유로워졌고 더 평화로워졌던 것이다. 1950년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세 악당의 음모를 저지하고 살아남았던 나라가 그 38년 뒤 ‘사랑의 복수’를 한 셈이다.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36년 전의 그날, 9월 17일을 생각하면 가슴부터 뛴다. 전날 서울엔 폭우가 쏟아졌지만 개회식은 청명한 하늘 아래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힘차게, 신나게, 아름답게 펼쳐졌다.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던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어 잠실로 달려갔고, 그 뒤 2주 동안 경기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우리 세대의 가장 아름다웠던 나날이었다.

  

많은 사람이 잊고 있는 사실은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은 2년 전에 있었던 아시안게임의 성공이 예약했다는 점이다. 박세직(朴世直)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생전에 “아시안게임을 해보니 서울올림픽은 성공할 것이란 자신과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던 김용식(金溶植) 외무장관은 자신의 회고록 《새벽의 약속》에 감동적인 글을 남겼다.

  

1955년 그가 일본 주재 한국 대표부의 대표로 있을 때 진해에서 휴양 중이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을 찾아가 업무보고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김 대표에게 지시를 구술시킨 후 늦여름의 조용한 진해만을 내려다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자네, 내가 무엇을 기도하는 줄 아는가?”

  

노(老)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나는 늘 하나님께, ‘우리 민족도 다른 민족들 못지않게 잘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고 그런 기회가 올 때에 나로 하여금 알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네.”

  

“각하, 언제쯤 우리도 남부럽잖게 살 수 있겠습니까?”

  

“한 30년 걸릴 걸세.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바쁘게 지내야 할 걸세.”

  

〈86년도의 아시안게임이 서울의 잠실에서 개최될 때, 관람석의 한 모퉁이에서 나는 30년 전 이(李) 대통령이 한 말을 회상하였다.〉

  

  

‘일본의 國士’ 세지마가 전두환에게 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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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 유치를 조언한 세지마 류조 전 이토추상사 회장. 사진=조선DB

 

서울올림픽이란 엄청난 발상은 경호실장 출신 박종규(朴鐘圭)에게서 비롯되었다. 1978년 9월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서울에서 주최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당시 대한사격연맹회장이던 그는 88년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자는 생각을 구체화하여 4개 항의 메모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① 남북한 간의 체제경쟁에서 남한의 우위 확보

② 제3세계 국가 및 공산권에 대한 외교의 돌파구

③ 경제발전의 도약점

④ 사회선진화의 계기가 될 것이다.

  

대한체육회장이 된 박종규는 1979년 9월 21일 대통령의 재가(裁可)를 얻어냈고 정상천(鄭相千) 서울시장으로 하여금 발표하게 했지만 10·26 사건 뒤 정국이 혼란에 빠지고 5·17 뒤 박종규마저 부정축재 혐의로 연행됨으로써 서울올림픽 유치 계획은 잠시 실종되고 말았다. 이러다가 1980년 11월 이규호(李奎浩) 문교부 장관은 대한올림픽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서울올림픽 유치신청서를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내기로 하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게 되었다.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 공표한 일을 별다른 이유 없이 변경할 수 없다”면서 유치 신청을 허락했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대통령에 취임하던 때 내 머릿속에는 1988년 하계올림픽 유치가 하나의 아이디어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아이디어를 심어준 사람은 일본 이토추상사(伊藤忠商事) 상담역 세지마 류조(瀨島龍三) 씨였다”고 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의 엘리트 작전참모였던 세지마는 소설 《불모지대》의 모델이기도 한데 이병철(李秉喆) 삼성물산 창업자와 친밀했다. 이 회장의 요청으로 1980년 6월 한국에 와서 전두환의 육사 동기생 권익현(權翊鉉·나중에 민정당 대표)의 소개로 전두환 장군을 만났다. 그해 8월엔 다시 와서 대통령 취임을 앞둔 전두환에게 88올림픽 유치를 권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내가 권익현씨의 증언을 토대로 1990년 8월호 《월간조선》에 소개한 바 있는데 회고록은 이 사실을 확인해준 것이다. 세지마는 “장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고 국민의 힘을 한데 모으려면 올림픽을 유치하는 게 좋을 것이다”며 “한반도의 안전이 일본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는 만큼 한국의 올림픽 유치를 적극 돕겠다는 뜻을 비쳤다”고 한다.

  

당시 일본 나고야시 또한 올림픽 유치 의사를 밝힌 상태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혹시 무슨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선의의 조언’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勸善懲惡의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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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9월 30일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제84차 총회에서 서울은 일본의 나고야시를 꺾고 88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

 

1981년이면 피를 흘리며 집권한 전두환 정부가 국내외의 도전 속에서 첫발을 떼고 있을 때여서 경제 관료들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관계자가 유치 신청에 반대했다. 찬성파는 전두환, 노태우(盧泰愚), 노신영(盧信永·외무장관), 이규호, 유학성(兪學聖·안기부장),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회장), 조중훈(趙重勳·한진그룹 회장) 정도였다고 한다. 누가 뭐래도 올림픽 유치는 전두환 대통령의 고독한 결단이었다. 바덴바덴의 기적에 대해서는 많은 이의 공이 거론되고 있는데 표를 많이 얻는 데 기여한 것을 기준으로 하면 유치를 총괄 지휘했던 노태우 정무장관을 비롯하여 노신영, 박종규, 정주영, 조중훈, 김운용, 이연택씨 등이 있다.

  

한국의 선의에 악의(惡意)로 대한 것은 김일성 정권이었다. 북한은 서울올림픽 저지를 당면 목표로 삼고, 1983년 아웅산 테러, 1986년 김포공항 테러, 1987년 김승일·김현희 조(組)의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을 벌이면서도 공동 개최란 미끼를 던지고 대응 행사로 세계청년축전의 개최를 추진했다. 이런 음모는 그야말로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실패했다. 미얀마 외무장관이 정시(定時)에 와서 전두환 대통령을 아웅산 묘소로 안내했더라면 17명의 사망자는 18명이 되었을 것이고, 한국군은 서울올림픽을 포기하고서라도 대북(對北) 응징에 나서 무력 충돌이 벌어졌을 것이다.

  

일본 외교관이 바레인 공항에서 김승일·김현희의 출국을 저지하지 않았더라면, 또 김현희가 독약이 숨겨진 담배개비를 깨물려다 어머니 생각에 멈칫하지 않았더라면 115명이 죽은 폭파 사건은 안기부의 자작극으로 몰려 서울올림픽의 분위기를 망쳤을 것이다. 북한 정권은 평양 세계청년축전 개최에 50억 달러를 투입했는데 이게 경제를 망쳐 1990년대의 ‘고난의 행군’을 예약했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은 도덕 교과서에서만 배울 필요가 없다. 세계적 규모에서 착한 사람들이 이기고 나쁜 사람들이 진 곳에 서울올림픽이 있었다.


선의는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다. 선의는 유능해야 힘이 된다. 서울올림픽 주체 세력의 유능은 최다(最多)의 참여, 최고(最高)의 경기 운영, 최대(最大)의 수익으로 수치화되었다. 박정희·전두환의 올림픽 대전략을 외교 현장에서 집행한 사람은 노태우 대통령이었다. 동구와 소련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있는 기회를 잡아 서울올림픽의 성과를 북방외교로 확대시켜 임기 중에 한소(韓蘇), 한중(韓中), 한·베트남 수교를 이루고 유엔 동시 가입까지 성공시켜 한국인의 활동 공간을 지구촌 전체로 확대시켰던 것이다.

  

서울올림픽이 동구 소련 사람들을 각성시켜 이듬해 1989년의 공산체제 붕괴를 재촉한 요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6·29 선언을 통하여 한국의 민주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에는 인색하다. 전두환 대통령은 단임제 실천으로 평화적 정권 이양, 물가 안정을 기본 축으로 한 경제 성장, 그리고 올림픽 준비를 자신의 3대 임무로 설정, 우직하게 밀어붙였다. 세 개 가운데 가장 정성을 다해 챙긴 것은 서울올림픽이었다.

  

  

“올림픽은 하늘이 고생하는 한민족에게 선물로 준 것”

  

제5공화국의 청와대는 통치사료 담당 비서관을 두었다. 조선조의 사관(史官)을 닮은 이 자리에 있었던 김성익(金聲翊)씨는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이었다. 1986~88년 사이 그가 기록한 격동기의 대통령 언행은 드라마 대사처럼 생생하다. 비공개 자리에서 쏟아낸 입담 좋은 전두환 대통령의 솔직한 말은 구수하고 인간적이기도 하다. 올림픽과 관련된 전두환 어록을 따라가다가 문득 ‘순정’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서울올림픽에 꽂힌 한 사나이의 순정!

  

  1986년 3월 1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 운영계획보고회가 대통령 주재로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만제(金滿堤) 부총리, 장세동(張世東) 안기부장, 손제석(孫製錫) 문교, 박세직(朴世直) 체육, 이해원(李海元) 보사부 장관, 김종하(金宗河) 대한체육회장 등 135명이 참석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렇게 강조했다.

  

“86·88을 우리가 어떻게 유치했습니까. 우리 한민족이 하도 고생을 많이 하고 잘해보려고 해도 안 되고 하니 하늘이 큰 선물로 준 것인데 이런 걸 활용 못 하는 민족은 이 지구상에 살아남을 수 없어요. 살아남아도 종노릇밖에 할 게 없어요. 이것을 우리가 소화하지 못하면 후손에게뿐 아니라 나라와 역사에 죄를 짓는 거요. 모든 분야에서 끝마무리를 잘해주기 당부합니다.”

  

그는 자신의 결단으로 유치에 성공한 88서울올림픽에 유별난 애정을 가지고 준비에 정력을 쏟았다. 수시로 전방과 치안 일선을 시찰, 안전 문제를 점검했으며 틈날 때마다 올림픽 경기장 건설 현장과 태릉 선수촌 등을 돌아보는 등 ‘올림픽 준비단장’을 자처했다.

 

1986년 3월 17일 대통령은 청와대 만찬에 기독교 지도자들을 초대했다. 여기서 올림픽이 남북관계에서 결정적 변수가 될 것임을 예언했다.

 

“우리가 올림픽을 하면 자동적으로 16일간 텔레비전을 돌려서 전 세계 40억 인구가 보게 됩니다. 그 선전비를 돈으로 따지면 얼마가 되겠어요. 그게 바로 우리 국력이고 경제력이고 우리 제품에 대한 보장이 됩니다. 그렇게 밀고 가면 북한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체제가 무너집니다. 그걸 북한이 잘 알 겁니다. 자기네 체제를 유지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기로입니다. 김정일이가 세습을 하려면 한국이 86·88을 못 하게 해야 하고, 그러려면 버마 사건 식으로 게릴라를 집어넣는다든지 가만 안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국과도 협조해서 군경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스스로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는 것을 한 번도 못 한 나라 아닙니까. 그래서 갈등과 불신도 있습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두고 권력을 잡으면 내놓기가 힘들어요. 내가 해보니 그렇습니다. 나한테도 88올림픽이나 마치고 가야지 그냥 가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미국 상원의원, 우리 야당 의원도 있었습니다.

 

나보고 군인 출신이다 뭐다 하는데 나도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내가 집권한 후 학생들이 시끄러워도 치안을, 경찰에 의해서 유지해왔습니다. 군대를 동원해서 한 일이 없어요. 모든 문제를 힘이 아니고 순리로 하려고 무척 애를 써왔습니다. 정치인은 혼란이 생겨야 수지가 맞지만 혼란이 생겨 손해 보는 것은 국가와 국민입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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