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란치, ‘올림픽까지 계속 집권’ 간청”

<秘話>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생각하는 88서울올림픽과 全斗煥의 순정 (2)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새삼 위대하게 보이는 서울올림픽, 한국과 세계를 바꾼 16일의 드라마, 세계 사람들의 善意가 모이니 이런 기적이 일어났다.
 
 ⊙ “올림픽은 하늘이 고생하는 한민족에게 준 선물”
 ⊙ ‘일본의 國士’ 세지마가 서울올림픽 유치 건의
 ⊙ 6·29 선언은 서울올림픽 성공과 김대중·김영삼 분열을 계산한 대도박
 ⊙ 고르바초프도 도왔다

“사마란치, ‘올림픽까지 계속 집권’ 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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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과 사마란치 IOC 위원장. 사마란치는 전 대통령이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퇴임하는 것을 우려했다. 사진=조선DB

 

1986년 4월 28일 낮 대통령은 주요 언론사 사장들을 청와대로 초청, 점심을 함께하면서 비화(秘話)를 털어놓았다.

  

“내가 늘 말하지만 대통령이 어떤 일이 있어도 임기를 마치기 전에 죽지 않고 임기를 마치고 살아 나가면 민주주의 발전에 큰 전기(轉機)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요. 내가 반드시 살아서 나가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설사 빨리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더라도 나라를 생각해서는 내가 살아서 임기를 끝내고 물러가야 됩니다.

 

북한이 우리한테 별별 방해 공작을 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올림픽을 반대하다가 공동 주최하자고 하다가 이제는 종목을 반반씩 나누자, 24개 종목 중에 열 종목만 내놔라 운운. 내가 이번에 IOC 위원장을 만나보니 소련, 중공, 쿠바, 동구권이 어울려 IOC에 겁을 주었답니다. 이북에서 올림픽 종목을 몇 종목 안 주면 서울을 밀어버린다고 한다는 거예요. 언론에는 비밀입니다만 내가 구라파 방문 중에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스페인에서 스위스로 날아와서 만났습니다. 이분이 손을 떨면서 긴장해요. 이북이 군사적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얘기를 해요. 립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미국에서의 기자회견에서 북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했는데 괜찮으냐고 나에게 물어요. 그래서 당신이 직접 들었느냐고 물었어요. ‘직접도 듣고 소련, 중공, 쿠바 등 몇 나라에서도 그러더라’는 얘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러지 말고 이북한테 10개 종목을 떼어주고 서울올림픽을 성공시키면 어떠냐’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절대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하면서 한국이 이북에 비해서 군사력이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50년대처럼 그렇게 약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주한미군이 있지 않으냐,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북에 한 종목도 못 준다고 했어요. ‘당신이 지금까지 의연하게 잘해왔는데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걱정 마라’고 했습니다.

  

사마란치 위원장 말이 ‘그렇지만 각하는 88년 2월에 그만두시지 않느냐’고 해요. ‘그만두시면 국내 문제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요. 그래서 내가 우리 국민이 얼마나 우수하냐, 나보다 백배 잘할 유능한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올림픽은 내가 책임지마, 걱정 말라고 거듭거듭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 말이 ‘군대 문제는 미군이 있어서 안심이 되는데, 대통령께서 올림픽만 마쳐주고 그다음에 그만두면 어떠냐’고 해요. 그래서 내가 ‘헌법 때문에 안 된다’고 하니 ‘야당과 협상하면 되지 않느냐, 1년 정도인데 뭐 그리 어렵겠느냐’고, ‘88년 2월에 퇴임하시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고 했어요.

  

86·88이 다가오는데 나도 대통령을 무사히 끝내고 안전하게 보따리 싸서 우리 집에 돌아가도록 선례를 남겨야 선진화하는 길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가급적 내가 속상한 일을 참고 순리로 여론에 의해 풀려나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독사도 밟으면 무는 겁니다.

  

외국 언론이나 외국 국회의원이 정부를 까면 우리 언론은 좋다고 그걸 잡아서 쓸 게 아니라 우리 정부를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아웅산 사건 후 군의 보복을 말렸다”

  

1986년 8월 11일 오전 전(全) 대통령은 청와대 상춘재에서 청와대 출입 기자단과 간담회를 가졌다.

  

“버마에서 아웅산 사건을 당하고 몇 분(分) 사이로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난 다음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잠이 오질 않았어요. 내가 그때 내자에게 말했어요. 이번에 내가 만약 죽었다면 나라가 어떻게 됐겠느냐고. 내가 살았으니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하늘이 하는 일이지, 인력(人力)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지 않으냐, 내가 살았다는 것은 분명히 하늘이 나한테 하라고 하는 일이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 새로이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전쟁을 막아야겠다, 그래서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이와 같이 내 집념은 생사를 넘는 강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KAL 007기 격추 사건이 얼마나 슬프고 원통한 일이었나, 그리고 한 달 후에 버마에서 북한이 나를 죽이려고 테러를 했는데 원래 국가 원수에 대한 테러는 선전포고 사유가 될 수 있어요. 그때 우리 군에서는 육군, 해군, 공군 할 것 없이 북한을 때리려고 해서 세네월드 UN군 사령관이 얼굴이 새하얗게 됐어요. 내가 버마에서 돌아와 보니 군에서 전부 때릴 준비가 다 되어 있었어요. 위에서 승인을 안 해도 들어가겠다는 거야.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으냐고. 그래서 내가 그 보고를 받고 바쁜 가운데에서도 전방을 돌고 군 지휘관들을 만나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준 데 대해서는 감사한다. 그러나 전투를 하고 안 하고 하는 상황 판단은 국가 원수로서 폭넓게 보니 여러분보다는 낫다. 내가 필요한 시기, 적절한 시기에 때리라고 할 때 때리라고 했어요. 내 명령 없이 병사 한 명이라도 넘으면 나에 대한 불충이다, 내 명령에 따르라, 그렇게 진정을 시켰습니다.

  

지금 북한이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은 88년까지 승부를 보려는 저의를 갖고 있다고 나는 봐요. 북한은 30년 이상 국민 복지를 희생하고 군사비에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GNP 규모가 해마다 커지니까 북한이 군사력으로 경쟁하는 데는 한계가 오게 되어 있어요. 88년에 올림픽과 정권 이양이 잘 끝나면 북한은 대화 노선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90년에 가면 틀림없이 진짜 대화를 하려고 할 것이고 올림픽만 끝나면 중공과 소련도 우리한테 태도가 달라질 겁니다. 그러나 어떤 분야든 우리가 취약점을 보이면 저네들은 집중 공격을 해요.”

  

  

“우리 대머리 세 사람이 야간 경기에 나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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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9월 20일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손을 흔드는 전두환 대통령 부부. 하지만 2년 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사진=조선DB

 

서울올림픽의 예행연습이기도 했던 서울아시안게임은 1986년 9월 20일에 개막돼 10월 5일에 폐막됐다. 9월 14일 김포공항 구내에서 폭발물이 터져 5명이 죽고 30여 명이 부상했다. 지금까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데 북한의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 그 사흘 뒤인 9월 17일 낮 전두환 대통령은 사마란치 IOC 위원장 등 국제 스포츠 요인들을 청와대로 초대, 점심을 대접했다.

  

〈대통령: 아시안게임은 어느 나라에서 치르는 것보다도 훌륭하게 치를 만반의 준비가 다 돼 있습니다. 방해하려는 집단이 있기는 하지만 여러분이 조금도 염려할 것 없습니다.

  

사마란치 위원장: 제가 이곳에 여섯 번이나 왔습니다. 올림픽 가족을 대표해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는 저희의 기쁨을 말씀드립니다. 86아시안게임뿐 아니라 88올림픽에서 대성공을 거두기를 희망합니다.

  

대통령: 내가 사마란치 위원장을 스위스에서 만난 것까지 합치면 일곱 번을 만났는데 여기 계신 여러분을 다 두 번 이상 만났기 때문에 나도 올림픽 가족임을 스스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IOC의 티토프 씨는 내가 소련인과 오찬을 같이하는 최초의 손님입니다. 의미가 있고 나도 아주 즐겁습니다. 독일의 바이츠 부위원장은 내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 대통령 오찬 때 이어 오늘이 두 번째 오찬입니다. 두 분이 다 대머리이신데 나와 셋이 나가면 주변이 환해질 겁니다(참석자들 웃음). 야간 경기 할 때 우리 세 사람이 나가 있으면 선수들이 행복해할 것입니다(참석자들 폭소).

  

대통령: 티토프 씨는 언제 체조 금메달을 땄나요?

  

티토프: 56년 올림픽에서였습니다.

  

대통령: 티토프 씨, 우리도 조금만 기술을 배우면 체조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 텐데 이번에 안 바쁘면 비법을 한두 가지만 가르쳐주고 가시오.

  

티토프: 작년에 각하를 뵌 후에 소련 코치로 하여금 한국 코치를 일주일 지도하게 했습니다. 각하 말씀을 소련 코치에게 전하겠습니다.

  

사마란치: 하계올림픽 회장인 국제육상연맹 회장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로마 교황과도 친분이 있습니다.

  

대통령: 교황께서 이곳을 다녀가셨는데 아주 훌륭한 분이더군요. 오시기 전에 한국말도 공부를 했는지 아주 잘했어요. 우리 경제가 너무 빨리 성장하는 문제가 있어서 경기를 조금 진정시키고 있어요.

  

사마란치: 다른 나라에서는 부러워합니다. 한국이 이렇게 발전하고 국민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와서 봐야만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올림픽 준비 상황은 말로가 아니라 진실로 훌륭합니다.

  

대통령: 1960년도에 우리 개인 소득이 82달러였는데 지금은 20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국제 환경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90년에 가면 약 4000달러가 될 것입니다. 금년에 10.9% 성장될 전망이어서 10% 이하로 떨어뜨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퇴임 후 1986년이 가장 행복했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해는 무역흑자를 처음으로 기록했다고 해서 흑자원년으로 불린다. 1985~87년의 3년간은 민주화 시위가 가장 격렬했으면서도 경제성장률 또한 가장 높았다. 이 시기의 소란을 추억하면 뭔가 밝게 느껴지는 것도 경제호황 속의 최루탄과 투석과 화염병과 함성이었기 때문이다. 평화적 정권 이양과 서울올림픽 성공은 이런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1980년대 10년간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0.1%로서 세계 1위였다. 이를 배경으로 하여 80년대의 위대한 성취들, 평화적 정권 이양·서울올림픽·일본 따라잡기·IT 기반 확보·북방 정책이 펼쳐졌던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善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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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은 재임 중 수시로 관련 시설들을 돌아보며 올림픽 준비에 전력했다. 1986년 5월 28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을 시찰하는 전두환 대통령. 사진=조선DB

 

이 무렵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진짜로 돕고 있던 사람은 멀리 모스크바에 있었다. 서울올림픽의 성공 여부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온전한 대회가 되느냐였고 그 열쇠를 쥔 사람은 1985년에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였다.

  

김일성은 1986년 가을 모스크바로 가서 고르바초프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2년 전 그는 소련을 방문했을 때 “이것이 나의 마지막 해외여행이다”고 얘기했었는데 왜 또 갔을까?

  

그 수수께끼는 독일 통일 이후 동독 공산당 정치국 비밀문서 속에서 풀렸다. 1986년 11월, 즉 김일성의 두 번째 방소(訪蘇) 한 달 뒤 모스크바에서는 사회주의 나라들의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록에 따르면 고르바초프는 김일성이 자신을 찾아와 소련과 공산권이 서울올림픽에 참가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고르바초프는 김일성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 수뇌회의에서 서울올림픽 참가 여부가 논의되었다. 쿠바 수상 카스트로만이 보이콧에 찬성했고 다른 나라들은 참가를 결의했다. 남북한이 공동 개최를 하는 방향으로 노력해보고 그것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재독(在獨) 서병문(徐炳文) 박사는 “86년 11월의 이 150여 페이지짜리 수뇌회의 기록을 읽어보면 이 회의가 공산권의 급속한 개혁·개방을 재촉하는 분수령이었음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이 회의에서 공산주의가 실패했음을 솔직히 밝힙니다. 이제는 이데올로기의 껍질을 벗고 국민이 잘살게 하는 쪽으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이 퍽 감동적입니다.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기로 공산권 국가들이 결정한 데는 국내적인 압력도 있었을 것입니다. 공산국가는 모두 체육 강국인 데다가 두 차례나 반쪽 올림픽을 치러 또다시 보이콧할 경우 국민들의 불만이 커질 것을 우려했을 겁니다. 북한은 동독에 대해서도 서울올림픽 보이콧을 끈질기게 요구했으나 이것만은 호네커가 듣지 않았습니다. 서울올림픽은 남북한 간의 결전이었을 뿐 아니라 동구 공산권의 붕괴를 앞당긴 촉매제였습니다.”



“평화적 정권 교체와 올림픽 성공시킬 수 있는 인물이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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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10일 민정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는 전두환 대통령의 뜻에 따라 노태우 대표를 대선 후보로 선출했다. 대회장 밖에서는 최루탄이 터지고 있었다. 사진=조선DB

 

1987년은 공동운명체가 된 전두환과 올림픽에 결정적인 해였다. 박종철(朴鍾哲)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시위가 서서히 모멘텀을 키우고 있던 1987년 6월 2일 저녁 전두환 대통령은 민정당 중앙집행위원 및 민정당 소속 국회 의장단을 상춘재로 초청하여 노태우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추천하는 의식을 진행했다. 대통령은 앉은 자세로 미리 준비해간 ‘추천의 말씀 자료’를 육성으로 낭독해갔다.

  

“여러분이 잘 아는 바와 같이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그동안 국군보안사령관 등 군의 주요 지휘관을 역임해서 누구보다 군부를 잘 알고 탁월한 안보 식견을 갖추고 있으며 내무장관과 정무, 체육부 장관 등 행정부의 직책을 맡아 정부 조직에 정통할 뿐 아니라 올림픽 조직위원장과 국회의원, 집권당 대표위원 등을 거쳐 당과 정치인의 생리를 알고 체험을 쌓음으로써 국정을 책임질 수 있는 정치 지도자의 경륜을 두루 쌓았습니다. 따라서 우리 당에 대한 국민의 지속적인 신뢰를 확보하고 평화적 정권 교체와 88올림픽의 국가 양대사(兩大事)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최적임자로 노 대표를 추천하는 나의 이 뜻을 여러분이 흔쾌히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1987년 6월 10일부터 격화된 반(反)정부 시위 속에서도 전두환 대통령은 서울올림픽을 챙긴다. 6월 16일 신임 이한기(李漢基) 총리서리 등 국무위원 전원을 부부동반으로 청와대로 초청, 축하 저녁을 함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10년 주기로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박종철 사건 하나로 시작이 되어 시끄러운 일이 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한 번은 겪어야 할 과정입니다. 체육부 장관이 좀 나서야겠어요. 올림픽을 방해하려는 북괴의 사주에 의해 움직이는 게 분명한데 내가 염려한 대로 벌써 《뉴욕타임스》 등에서는 시위 사태에 따라 올림픽의 안전 문제를 들고나오는 모양이던데, 반체제와 반정부 세력이 연합전선을 펴는 데 빨리 이 줄을 끊어야 되겠어요. 올림픽이라는 게 다시 없는 호기인데 북한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거요.”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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