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가 기존 및 임시 시설, 파리가 금메달 감!

폐막식의 노래가 왜 My Way였나?
파리 올림픽 폐막식의 마지막은 프랑크 시나트라가 불렀던 '마이 웨이'였다. 이 노래는 원래 프랑스 사람이 작사, 작곡, 노래한 것인데 폴 앵커가 영어로 번역했고 이를 시나트라가 불러 유명해졌다. 개막식의 마지막을 장식한 노래가 '사랑의 찬가'였는데 이를 부른 셀린 디옹은 캐나다 국적이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난 가수이다. 프랑스가 다양성과 포용을 이번 올림픽의 주제로 포장했지만 늘 애국적 고려를 은근히 깔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톰 크루즈가 하늘에서 뛰어내려 올림픽기를 받아 오토바이, 비행기로 다음 개최지 로스앤젤레스까지 가져 가는 장면은 미리 찍은 것이지만 프랑스와 미국의 오랜 유대관계를 상징한다.

미국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프랑스 루이 16세가 파견한 함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프랑스는 유럽과 신대륙에 걸쳐 있었던 7년 전쟁에서 영국에 밀려 캐나다와 인도의 식민지를 잃게 되는데 이에 대한 복수로 워싱턴의 독립운동을 도운 것이다. 이때 지출한 戰費가 너무 많아 프랑스 대혁명을 불렀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미국도 恩人 국가인 프랑스를 두 번 구해준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 독일로부터, 2차 대전에 참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패전국 프랑스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이 되도록 한다. 두 나라의 이런 우애를 상징하는 것이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에 즈음하여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이다. 여신상의 철골은 에펠탑 건축가 에펠이 만들었다.

프랑스에 대해서는 대체로 비판적인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어제 "파리의 놀라운 올림픽 비전이 금메달감이다"는 好評 기사를 올렸다. 보기 드문 극찬이다. 나는 개막식을 보고 파리가 올림픽을 혁명했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코노미스트도 비슷한 평가를 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와 강을 무대로 삼아 창의적이고, 경제적이고, 자발적이고, 역사적인 올림픽을 성공시켰다는 것이다.

파리 올림픽 예산은 98억 달러인데 23억 달러만 국가예산으로 지원되고 나머지는 표값, 중계료, 후원금으로 때웠다. 예산규모는 앞선 도쿄, 리오데자네이로, 런던, 북경올림픽 때보다 적었다. 경기장 시설의 95%는 기존 및 임시 시설로 때웠다. 대규모 올림픽 시대가 끝난 것이다.

처음엔 냉담하던 파리시민들도 일단 올림픽이 시작되자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친절한 사람들로 변모했다. 상인들과 주민들이 희생적이었다. 파리의 중심부를 차량통행 금지 구역으로 만들어도 불평하지 않았다. 앵발리드(군사 박물관), 나폴레옹 무덤 교회, 콩코드 광장, 루브르 미술관 등 세계적 명소가 경기장이 되거나 무대의 배경장치가 되었다. 중계 화면을 채운 이들 건축물이 풍기는 '역사적인 품격'이 파리 올림픽의 전체 분위기를 만들었다. 라마르세이에즈, 이메진, 사랑의 찬가 등 노래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시각과 청각이 다 즐거웠다. 이코노미스트는 '기분 좋은 경기(feel good game)'였다고 했다.

총선 패배로 몰리면서도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시청을 전폭적으로 지원, 나라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세계인들을 감격시켰다는 것이 짜기로 유명한 이코노미스트의 총평이었다. 물론 센강의 수질, 선수단용 음식의 질, 냉방 실종 등 문제점도 있었지만 프랑스 정부와 파리시민들의 자부심과 열정이 이를 덮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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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올림픽 개막식이 끝난 직후 SNS에 한 문장을 올렸다.
"People will talk about this 100 years from now."
"사람들은 100년이 흐른 뒤에도 이것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예술과 혁명의 나라답게 프랑스는 올림픽 개막식을 혁명했다. 스타디움을 벗어나 파리 전체를 무대로 만들었다. 스포츠 행사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지상최대의 쇼, 드라마, 콘서트, 설치미술, 문학, 정치적 메시지 등을 포괄하는 차원 높은 종합예술 공연으로 바꿨다. 센강을 주무대로 삼아 행진, 노래, 연설, 율동 등 잡다한 이벤트를 프랑스 三色旗가 상징하는 자유, 평등, 博愛(박애)의 정신으로 한 흐름에 묶어 세계사람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던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이 '벽을 넘어서'란 메시지에 충실, 그 다음해 동구 공산권이 무너지는 주술(呪術)과 비슷한 역할을 한 이후 가장 강력한 메시지와 이미지를 만들어낸 올림픽 개막식이었다.

프랑스가 아니면, 파리에서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네 시간의 최대, 최고의 공연이었다. 세계에 左右이념 대결의 정치를 수출하여 20세기에 러시아 중국 한반도 인도차이나 등을 킬링 필드로 만든 원조 혁명국가 프랑스가 개막식에선 안면을 바꿨다. 軍歌 같은 '라마르세이에즈' 합창 속에서 마리 앙트와네트 처형과 바스티유 감옥 습격장면을 당당하게 드러내면서 한편으론 존 레논의 '이매진'과 셀린 디온의 '사랑의 찬가'를 통하여 다양성과 관용, 그리고 삶의 즐거움을 설파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意外性과 신선함과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프랑스는 새로운 시설을 짓기보다는 파리 전체를 스타디움으로 생각하고 역사적 건축물들을 경기장으로 변형시켰다. 콩코드 광장과 앵발리드(군사박물관) 마당도 임시 경기장이 되고 센강은 개막식의 트랙 역할을 했다. 보트로 성화 봉송에 나선 라파엘 나달, 칼 루이스, 나디아 코마네치, 세레나 윌리엄즈는 스페인, 미국, 루마니아, 테니스, 육상, 체조, 남자와 여자로 다르지만 나중에 장애인들과 합세, 성화를 점화하여 열기구를 띄우는 데는 하나가 되었다. 에펠탑에 유령처럼 홀연히 나타난 셀린 디온이 달처럼 날아오르는 聖火를 향해서 부른 '사랑의 찬가'는, 1949년 비행기 사고로 죽은 애인(미들급 세계챔피언 마르셀 세르당)을 추모하여 에디드 피아프가 작사한 곡이다. 가사의 마지막 대목은 <이제 아무 문제가 없는 하늘 위에서, 내 사랑, 내가 사랑한다는 걸 믿나요? 신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이어줍니다>이다.

그랑 팔레, 루브르 궁전, 노트르담 성당, 지하도, 개선문, 에펠탑, 알렉산더 3세 다리 등을 무대의 배경으로 삼은 공연을 더욱 빛낸 것은 비와 어둠이었다. 개막식 총감독은 며칠 전 뉴욕타임스 회견에서 "비가 오려면 폭우가 내려 번개와 천둥을 쳐주었으면 한다. 좋은 효과음이 될 것이다"고 했었다. 개막식을 늦은 오후와 저녁 무렵으로 잡은 것은, 파리의 夜景을 '빛의 도시'라 불리는 파리의 숨은 매력으로 역이용한 셈이다.

어제 개막식은 피날레가 최대의 특종이었다. 수년간 불치병(근육경색)으로 일체의 공연을 중단한 프랑스계 캐나다 가수 셀린 디온이 하얀 옷을 입고 에펠탑에 나타나 피아노 반주로 '사랑의 찬가'를 부르는 모습은, 마크롱의 말처럼 10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었다. '불란서'라고 하면 우스개로 매일 '경찰서가 불타는 나라'인데 어제는 인류의 가슴을 불타오르게 했다. 그런데 새삼 1988년 서울올림픽이 위대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올림픽이 성공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에서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한국과 세계를 바꾼 역전 드라마 서울올림픽의 네 영웅 전두환, 노태우, 박세직, 사마란치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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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학산 2024-08-11 오후 11:15

    역시 톨레랑스의 나라다 시민들의 협조와 친절. 도시와 강까지 불러 올림픽을 즐겼으니...
    "파리가 올림픽을 혁명했다"....역시 짝할 사람이 없는 안목이요 혜안이요 심미안이다
    95%가 기존 및 임시시설이라니 문재인 보고 있나?
    평창 동계올림픽 시설. 경기가 끝나자 막 바로 버려졌고
    처리도 못한 채 썩어가며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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