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위도 ‘기총소사·양민 학살 증거’ 찾지 못해

5·18 진상규명위 조사보고서 분석 <2>

⊙ 5·18 진상규명위도 사람을 겨냥한 기총소사가 아닌 위협사격 수준의 ‘헬기 사격’만 인정,

    이마저도 조종사들 전원이 부인

⊙ 국방부 특조위의 구성과 조사 과정에 근원적 의문점 있어

⊙ 무장헬기 출동이 있었고 사격 명령이 있었으니 사격이 있었을 것이란 난폭한 논리

⊙ 사격 명령 받은 조종사들이 인명 피해를 우려, 이를 거부했는데도 ‘사격했다’고 몰아 

    진짜 ‘광주의 義人들’을 학살범으로 만들었다

⊙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국군 명예회복에 나서고 안보 단체가 앞장서야

⊙ 역사 조작의 가장 큰 피해자는 광주시민들이 될 것

 

 

11.jpg

 

‘쓰레기 분리 처리 식’으로 증언을 왜곡 

 

재판부는 “목격자가 헬기 사격을 봤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군인들이 부인한다고 하여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논리를 세웠는데, 전두환 측 변호인은 그 반대 경우에도 그 논리가 그대로 성립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즉 “원심 판시 논리에 의할 경우 ‘목격자가 사격이 있었다고 진술하더라도 군인들이 사격은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에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명제도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주교 변호사는, 판사가 군인들의 진술을 “쓰레기 (분리) 재처리하듯 해 유죄의 증거로 사용했다”며 분개했다. 판사는, 군인들 진술이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내용임에도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부합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만 떼어내어 유죄의 증거로 재활용했다는 것이다(항소 이유서 초안).    

<예를 들어 전교사 부사령관 김기석 장군이 육군참모차장 황영시 장군으로부터 무장헬기를 동원하여 시위를 강경 진압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자신은 그 지시를 거부하고 대화를 통해 수습하였다고 한 진술은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진술입니다. 그런데 원심은 김기석의 진술 중 무장헬기를 동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 부분은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거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원심이 김기석의 진술과 공소사실이 부분적으로 부합한다고 한 판단은 마치 ‘발가락이 닮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항소 이유서는 “한 사람의 진술은 전체적 맥락에서 진술의 취지를 발견해야 마땅한데 이를 무시한 채 진술에 사용한 일부 용어가 유사하다고 하여 공소사실에 부합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악의적 사실 왜곡”이라면서 “헬기 조종사들이 500MD 헬기의 무장 사실을 자인(自認)한 진술이 헬기 기총소사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1심 판단을 강하게 규탄했다. 헬기 조종사들의 진술은 무장한 사실을 ‘자인’하면서 기총소사는 강경하게 ‘부인’하는 내용이었다. 기총소사에 대한 ‘적극적 항변’을 기총소사를 입증하는 것으로 조작했다는 뜻이다. 1심 재판부가 ‘쓰레기 재처리하듯’ 선별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한 헬기 조종사들의 진술은 그 취지가 ‘사격 부인’이었던 것이다.

전두환 측은 “비겁하게도 권세에 눌려 거짓을 추종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로 인하여 원심은 그 지방의 민심에 영합한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개인적 화(禍)를 면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하여 이 나라는 역사 왜곡이라는 큰 화를 입게 되었다”고 개탄했다.

 

4. 정주교.jpg

정주교 변호사. 사진=조선DB

 

진상규명위도 ‘기총소사·양민 학살 증거’ 찾지 못해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근거하여 2019년 12월 27일부터 2023년 12월 26일까지 실시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송선태)의 종합보고서가 지난 6월 24일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되었다. 13개 조사 항목 중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에 의한 헬기 사격 사건’에 대해서는 보고서 채택 여부를 둘러싸고 위원들의 표결이 있었는데 찬성 6, 반대 3으로 진상규명이 이뤄졌다고 결정했다. 이 보고서의 헬기 사격 부분을 읽어보면 여기서도 전두환 회고록 재판의 맥락을 이어받아 헬기 기총소사가 아닌 헬기 사격을 전제로 조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두환 재판과 진상규명위 활동이 국방부 특조위의 주장을 강화하기는커녕 사실상 양민 학살의 존재를 부인하는 결과가 되었으니 특조위만 외롭게 되어 국군을 학살 집단으로 몬 ‘역사 조작’의 책임자로 몰리게 된 셈이다.     

국방부 특조위가 집단 살해, 양민 학살이었다고 발표한 ‘헬기 기총소사’는 재판 과정에서 그냥 ‘헬기 사격’으로 축소되고 이번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는 이렇다 할 새로운 증거의 발견 없이, 즉 사망자·부상자·쏜 조종사를 한 명도 확인하지 못하고 개연성과 가능성 수준에서 몇 군데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식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세 차례 국가적 조사와 재판 결과를 요약한다면 1980년 5월에 광주에서는 시민들을 죽이기 위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것이 2017년 전일빌딩 탄흔 논란으로 시작된 8년에 걸친 세 군데 조사의 유일한 성과일지 모르겠다.  

진상규명위의 보고서 중 결론 부분을 요약하면 이렇다.

 

<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출동한 모든 기종의 헬기에서 사격 가능성이 발견되었다. 위원회 조사에서 조종사, 무장사, 정비사 중 일부는 최초 본대에서 출동할 당시 무장을 하고 광주로 들어왔다는 진술을 하였다. 위원회는 출동하는 조종사들에게 “코브라는 20mm 발칸을, 500MD는 7.62mm 기관총을 운용하라”는 지침을 주었고, 동시에 광주 상황의 심각성을 주지시킨 것으로 보았을 때 현지의 상황에 따라 사격도 충분히 전제해두었던 것으로 판단하였다.

위원회는 광주로 투입된 이후 비행 임무를 수행할 때 무장 수준 또한 사격 가능한 상태였다는 것을, 조종사, 무장사, 정비사, 그리고 승무원에 대한 대인조사에서 확인한 바 있다. 비행 중인 조종사들에게 전달된 사격 관련 지시 등은 광주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헬기들의 무장 수준이 바로 사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원회에서는 비행 임무 중인 조종사들에게 사격 지시와 명령이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을 대인조사를 통해서 확인하였다. 헬기 사격이 있었음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로서 조선대학교 절토지였던 장소에서 발견된 20mm 연습탄 탄두를 들 수 있다.

전일빌딩 10층 탄흔은 국가기관의 선행조사에 헬기 사격과 관련된 중요한 증거로 채택되었다. 위원회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계엄군이 도청 일대에 본격적인 작전을 개시하기 이전에 육군항공의 헬기들이 임무에 투입된 몇몇 정황들 또한 확인이 된다.             

이상과 같은 증거들을 토대로 조사 결과들을 종합해서 보면, 5·18 민주화운동 기간 광주에 출동한 모든 기종의 헬기에 사격을 지시하는 명령이 존재했으며, 그 명령은 살상을 포함한 위협사격 수준 이상의 지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광주에 출동한 3개 기종 모두에서 헬기 사격이 실행되었거나 사격의 개연성이 충분히 있음을 조사 과정에서 확인하였다.>

 

부존재의 증명은 불가능하다 

 

“무장한 상태로 헬기가 투입되었다, 사격 명령이 있었다, 그러니 사격이 있었을 개연성이 있다”는 주관적 추리로 끝난다. 사격했다는 조종사는 ‘이 사람’이라고 단 한 명의 이름도 대지 못하고 그런 허점을 덮기 위하여 이미 알려진 지엽적인 사실들을 질서 없이 나열한 보고서가 아닐 수 없다. 

이 보고서를 읽어본 전두환 회고록 재판의 변호인 정주교 변호사는 아래의 글을 적어 보냈다. 그는 아마도 이 사안에 대하여 가장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 사람일 것이다. 정 변호사는 먼저 진상규명위의 보고서를 관통하는 논리의 오류를 지적한다.

 

<헬기 사격 문제는 5·18 단체가 사실에 대한 ‘존재’를 주장하고 있고, 조종사들이 부존재(不存在)를 주장하는 구도이다. 그런데 부존재에 대한 증명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존재 사실을 주장하는 측이 입증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상규명위는 5·18 단체가 존재 사실의 논거로 제시한 주장을 쟁점으로 삼아야 타당하다. 그런데 진상규명위는 반대로 조종사들의 부존재 주장에 대한 논거를 쟁점으로 선정함으로써 처음부터 논리적 오류를 범하였다. 즉 조종사들은 헬기 사격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여러 가지 논거를 제시하였는데 진상규명위는 조종사들이 주장한 그와 같은 논거를 쟁점으로 삼고 그것에 대한 반박을 진상규명의 방법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부존재에 대한 논거가 반박되었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존재가 입증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진상규명위는 5·18 단체와 조종사들을 동등한 대립 당사자로 보고 있다. 그러나 조종사들은 각각 다른 시점에, 서로 다른 상황에서 각각의 상황에 따라 그에 부합하는 단편적 반론의 논거를 지시한 것이므로 그와 같은 단편적 주장을 5·18 단체의 주장에 대한 종합적이고 논리적인 반박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진상규명위는 전두환 회고록 사건의 법정에서 다루어진 검사와 변호인 측의 논리를 쟁점으로 삼는 것이 더 공평하다고 할 것이다.>

 

5. 특조위.jpg

2017년 9월 13일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는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총탄흔적을 둘러보았다.  

사진=조선DB

 

새로운 사실 없이 해석만 달리해 

 

정 변호사는 진상규명위가 발굴한 새로운 사실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보고서의 ‘5·18 민주화운동 기간 항공작전 운영과 무장 출동’ 부분 기술은 대부분 1995년 검찰수사 기록에서 밝혀진 사실이고 문재인 정권 당시 이루어진 국방부 특조위 보고서의 기초 사실과도 거의 같다. 이 부분은 형사판결문에 대비해 보면 ‘인정 사실’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그것이 과거 조사 내용과 같다면 결국 이번 진상규명위에서 헬기 사격과 관련하여 새로 밝혀낸 사실은 더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동일한 사실을 놓고 해석만 다르게 하겠다는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특조위는 조사실무를 담당하는 조사단과 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사단은 대부분 현역 군인, 경찰 등 공무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위원들은 전원 민간인들이었다. 조사단은 상근하면서 기초 사실을 조사하여 그 결과를 보고하면 비상임 위원들이 한 달에 한두 번 회의에 참석하여 조사 결과를 가지고 재판(?)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내가 전두환 회고록 재판을 할 당시 조사단의 간부라고 하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그 요지는 조사팀의 조사 결과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내부 결론을 내렸는데, 위원회가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의결했다는 것이었다. 이번 5·18 진상규명위 역시 헬기 사격에 관한 객관적 증거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 채 95년 검찰 조사를 근거로 괴이한 논리를 적용하여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냈다.>

 

‘헬기사격 없었다’는 진술을 짜깁기로 왜곡 

 

정 변호사는 “헬기가 무장했고 사격 명령이 내려갔으니 사격이 있었을 것”이란 위험천만한 공상적 추리는 이번에도 반복되었다고 했다.

 

<군인들이 광주에 갈 때 총을 들고 갔으니 사격을 하였을 수도 있다는 지극히 초보적인 논리이다. 이 부분 역시 국방부 특조위 논리와 똑같다. ‘헬기 사격 지시 및 명령’과 관련된 기초 사실은 모두 1995년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그런데 특조위는 추론에 추론을 거듭하여 억지로 헬기 사격과 연결시켰는데 5·18 진상규명위도 이 논리를 그대로 베꼈다. 헬기 사격 명령이 있었다는 말은 과거 청문회와 수사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당시 전교사 지휘관이나 광주에 파견된 헬기 조종사들은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기 위하여 상부에서 헬기 사격을 하라고 지시했지만 그 지시를 거부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이 원(原)진술자들이 헬기 사격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부분은 빼버리고 헬기 사격의 지시를 받았다는 부분만 부각하여 이 점을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7.62mm 및 20mm 탄약 불출 및 소모반납’ 부분은 전두환 회고록 재판 당시 언론에서 매일같이 헬기 사격 관련 추측 보도를 하였다. 당시 공장에서 근로자로 일을 하던 최○○가 직장 동료들과 그 방송을 보던 중에 ‘내가 그 무렵 성남 소재 항공대에서 탄약 담당을 하면서 헬기 무장사들에게 탄약을 지급했는데 나중에 반환을 받아 보니 탄약 몇 개가 비어 있었다’고 말을 하고 동료가 이를 방송사에 제보하여 최○○의 인터뷰가 뉴스에 나왔고, 그러자 광주지검 검사가 최○○를 수사함으로써 그의 진술이 증거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최○○의 진술은 만연한 진술일 뿐만 아니라 그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증거가 하나도 없다. 당시 검찰은 전일빌딩 탄흔은 UH-1H에서 M16 소총 사격을 한 탄흔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가 지급하였다는 탄약은 500MD의 7.62mm 탄약이고, 코브라 헬기의 고폭탄은 20mm 탄약이었다. 따라서 최○○의 증언은 전일빌딩 탄흔과 그 종류가 달라 특별히 취급되지 않았다.>

정 변호사는 특히 2017년 이후의 재조사를 촉발한 전일빌딩 헬기 사격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 계속 -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