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태영호 前 의원 아들 “탈북민 성공 스토리 중요”

"(영국에 살 때) 나이키 신발 한번 신어보는 게 진짜 소원…한국 드라마, 평양 내에서도 보편화"
20일 자유아시아아송(RFA)을 방문한 태민우 씨. /RFA PHOTO
앵커:지난 2017년 아버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와 함께 탈북한 첫째 아들 태민우 씨가 8년 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태 씨는 “탈북민의 성공 스토리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는데요, 태민우 씨를 조진우 기자가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기자]탈북 후 8년 만에 언론과 첫 인터뷰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방송 출연을 결심하게 되셨나요?

[태민우]저는 여태껏 그냥 방송을 안 하고 그냥 조용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극동방송에 들어가면서 탈북민들, 특히 북한에 있는 북한 주민들이죠. 독재사회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 극동방송이 제주도에서 AM주파로 방송을 하고 있고 거기 박물관이 있어요. 그 박물관을 제가 갔었는데, 거기서 북한 주민들이 정말 목숨을 걸고 극동방송에 보낸 편지들을 보면서 내가 한국에 와서 해야 될 일이 무엇이고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어떤 위치에서 역할을 해야겠다라는 거를 알게 되었죠.

[기자]아버지 태영호 전 공사로부터 한국으로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심정이 어떠셨나요?

[태민우]솔직히 말씀드리면 평양에서 지냈고, 배경이라든지 이런 지위적인 부분에서는 상류층이었기 때문에 저희 가족이 탈북할 거라는 상상과 생각을 저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 평양에서 김일성 종합대학 다닐 때도 저는 해외에 워낙 아버님이 외교관이시다 보니까 외국을 많이 들락날락 했었죠. 그때 외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경험하다가 다시 북한에 들어가고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서도 평양에 들어갔을 때 그 다음에 또 나와 있을 때 탈북의 생각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랬던 저인데 저희 어머님과 저희 아버님이 본인들은 먼저 사회 독재 국가의 사회에 나와서 김정은이나 김씨 패밀리의 노예로 생활하시면서 자식들을 이렇게 자기와 같은 길을 걷게 하지 않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어가지고 어느 날 그냥 저희 아버님이 저보고 산책하자고 하더라고요.

뜻하지 않게 산책을 하다가 저희 아버님이 한국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라고 말을 꺼냈는데 저는 저희 아버님이 그런 말을 꺼낼 거라는 걸 살면서 진짜 상상도 못했었는데 그 말을 하시면서 독재 국가에서 본인도 몇 년 동안 거의 평생을 그냥 언젠가는 바뀌겠지 하면서 살아봤는데 안 바뀌더라. 그리고 지금 국가는 희망이 없다. 그리고 우리 본인 자식 대니까 저희죠. 저희 대까지 이렇게 고생하고 노예로 살게 냅두지 않겠다. 그러니까 한국 가자, 근데 어떠냐 너희도 성인이니까 너희 의견도 중요하다고 하시는데 저는 흔쾌히 오케이 했죠.

[기자]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가겠다고 했지만, 많이 당황했을 것 같은데요.

[태민우]네 왜냐하면 저희 아버님 같은 경우는 진짜 북한으로 말하면 그 당이죠. 당이나 김씨 패밀리가 가장 최측근으로 삼고 있는 그런 위치에 계셨던 분이라 항상 북한 사회에서 저희 아버님에 대해서는 저는 항상 프라이드가 있었죠.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어느 날 저보고 한국 가자고 말하니까 저는 진짜 당황했었죠. 제가 워낙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니까 저를 ‘지금 시험해 보나?’라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상 검증을 하나라고 생각한 거죠. 근데 이게 사상 교양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그때 당시에도 저는 평생을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살았는데 한 번도 저는 실패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가자고 하면 이것도 맞는 길이다 하고 일단 아버지 말을 듣고 따라왔어요. 자유민주주의 국가 한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 지식도 겸비해 가면서 북한이란 사회가 참 험악하구나라는 걸 인지하게 됐죠.

[기자]영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태민우]한국인 친구도 많이 접했죠. 저는 심지어 저희 아버님 월급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 너무 적은 편이어서 학교 단위 방학 갔다 오면 고등학교 학생들은 새로운 운동화를 신고 와요. 그러면 ‘나이키 브랜드에서 신발이 새로 나왔다’ 이렇게 서로 공유하는데 저는 그 나이키 신발 한번 신어보는 게 진짜 소원이었거든요. 그 정도로 저희가 (돈이) 없다 보니까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영국에서 한국 젊은 층들이 아르바이트를 진짜 많이 해요. 그래서 저는 아르바이트 하면서도 (한국 친구들을) 많이 접했고 학교에서도 많이 접했습니다.

[기자]탈북 후 한국에 와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태민우]한국에 있는 분들은 오히려 더 챙겨주려고 하고 도와주려고 하고 그런 게 있는데 북한에서 어렸을 때부터 사상 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평생을 (한국이) 적이라고 생각을 하던 국가에 오다 보니까 본인의 존재감을 숨기려고 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누가 다가와도 의심하거나 간첩으로 보는 그런 시각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하다 보니까 본인 모르게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는 게 있어요. 근데 이 문을 열기란 진짜 엄청 힘든 거죠. 저도 대학 4년제를 다녔는데, 거의 4년 동안 열지 못하고 저 혼자 공부하면서 다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탈북민이나 북한 주민으로서 한국에 왔을 때 가장 큰 힘든 고비가 이 마음의 문을 열기가 가장 제일 힘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그럼 이후에 마음의 문을 연 계기가 있었나요?

[태민우]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들어가고 극동 아카데미를 하면서 그때는 한국인 10명. 그 다음에 탈북민 6명이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같이 교육도 받고 이랬었는데 딱 한 번 저의 존재감을 다 드러내고 그 아카데미에서 한국인 젊은층들에게 다 오픈하고 편안하게 얘기를 해보니까 바로 (마음이) 풀리더라고요.

[기자]1980~2000년대생, 일명 ‘MZ 세대’들의 탈북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젊은 북한 청년들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시나요?

[태민우]저는 평양 외국어 대학 출신이거든요. 근데 저희 외국어 대학의 총 졸업생을 보면 한 대략 한 800명 정도가 돼요. 근데 그 800명 정도가 외국을 못해도 한 번씩은 최소 한 번씩은 나가본 친구들이고 외국을 나가게 되면 동남아로 나가든 유럽으로 나가든 꼭 한국인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 친구들 중에 드라마를 막 정주행하면서 보는 친구는 많아도 안 보는 친구는 없어요. 그럴 정도로 한국 드라마가 평양 내에서도 보편화됐고 누구나 다 보고 있고 또 그런 친구들이 해외에 나가서 또 한국인들과 얘기하거나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접할 수 있습니다.

[기자]북한이 변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태민우]옛날에 예를 들면, 북한 인권이나 대북정책 하면 드라마를 보내거나 이랬잖아요. 저는 좀 그 시대는 좀 지났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 드라마는 풍선이나 뭘로 안 들어가도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라도 드라마는 다 들어가고 다 보거든요. 이제는 좀 이렇게 소셜미디어나 이런 언론사 측에서 “우리 한국인들은 북한인들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을 해. 그리고 만약에 북한인들이 한국에 오면 이렇게 좋은 정책들과 이렇게 웰컴을 하고 있어 그리고 또 심지어 먼저 온 탈북민들은 이렇게 서로서로 단합이 돼서 잘 적응하고 잘 살고 있어”라는 성공 케이스를 보여주고 또 오게 된 루틴 이런 스토리를 많이 공유하는 게 보다 북한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많이 이렇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좀 이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기자] 네, 말씀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태민우 씨와의 대담이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조진우입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