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중단 및 축소’ 등의 응급실 파행이 지방 병원을 넘어 서울의 대학병원, 심지어 빅5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대통령실은 언론의 ‘과장보도’일 뿐 ‘관리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늘어나는 ‘응급실 뺑뺑이’도 “30년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라며 책임을 전가했다. 현장의 아우성과 동떨어진 인식에 과거탓·언론탓은 무책임을 넘어 ‘현실부정’ 수준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일부 응급실에서 단축 운영되거나 온전하게 운영되지 못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관리 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전국 408개 응급의료기관 중 24시간 진료가 일부 제한되는 곳이 세 군데인데, 이 중 순천향대 천안병원과 천안 단국대 병원은 9월 1일부터 정상화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머지 한 군데인 세종 충남대병원도 인력 충원 방안을 협의 중으로 조만간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보이며, 인력 소실로 진료가 제한된 아주대 병원 역시 복지부가 일대일 협의를 거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응급실을 전전하다 제때 진료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늘어나는 마당에 대통령실의 발언은 판단 능력이 마비된 수준이다.
응급실 문만 열려 있으면 정상 운영인가? 응급실 종합상황판엔 서울의 대학병원, 빅5까지 하루에도 10~25건이 넘는 ‘환자수용 불가’ 메시지가 뜬다. 전공의가 사라진 응급실에서 한계에 내몰린 응급의학 전문의들의 공백 탓도 있지만 환자를 인계해 줄 배후 진료과 전문의들이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서 장비차량 2대가 충돌해 작업자 2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다친 작업자가 16시간 동안 응급실을 전전해야 했다. 현장에서 4분 거리의 고려대 구로병원 중증외상센터에 연락했지만, 환자 수용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119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증외상센터의 ‘수용 가능’ 확인을 받고 사고 발생 1시간여 만에 환자를 이송했지만, 검사 후 병원 측은 대퇴부·골반골 골절 응급수술을 할 정형외과 전문의가 없어 응급전원을 해야 했다. 이후 마포구에 있는 서울연세병원 옮겨져 머리 상처봉합 수술을 받았지만 역시 대퇴부 골절 수술은 불가능했고 결국 강서구에 있는 원탑병원으로 이송돼 사고 발생 후 15시간 51분만에 대퇴부골절 수술을 받았다.
이 사례는 약 16시간만에 수술을 받은 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겨야 할 지 모른다. 과거에는 위 내시경을 통해 비교적 쉽게 처지 가능했던 장 출혈의 환자가 최근 소화기내과 전문의가 없어 응급실을 전전하다 시기를 놓쳐 사망한 케이스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빅5 병원 응급실은 피부과·정형외과·성형외과 진료는 다른 2차 병원 등을 이용하라고 안내한다. 즉 사고로 골절되거나 피부가 찢어지는 등의 사고는 차라리 개인 병원 등의 외래진료가 응급실보다 빠르다고 안내하는 것이다. 모두 배후 진료를 맡아줄 전문의가 없어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데도 전국 응급의료 기관 중 3곳 빼곤 정상이라고?
이 뿐 아니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금의 응급실 대란을 과거 탓으로 돌렸는데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지난 30년간 누적된 의사 부족 문제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며 “여기에 더해 비응급이나 경증 응급 환자가 상급병원으로 바로 가면서 트래픽이 생기는 문제, 또 진료에 대한 보상이 불충분한 것 등이 복합적으로 깔려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환자와 국민들의 고통이 계속될 사안”이라고 했다.
지금의 현상이 30년 적폐의 산물이며, 2000명 의대증원과 같은 의료개혁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니 겪게 되는 일시적 진통일 뿐이라는 건데 착각도 유분수다. 정부가 2000명 증원을 발표한 2월6일 이전에 지금처럼 응급실에서 전공의들을 찾아볼 수 없었던 적이 있었나? 응급실 뺑뺑이가 지방도 아닌 서울에서 이처럼 일상이 된 적이 있었던가?
언론탓도 나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의료개혁 및 의대 증원에 대해 반발하는 의료계 목소리나 특정 사례가 부각되면서 과장된 내용들이 과도하게 나와서 국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고 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언론이 미처 다 담지 못하는 의료 현장은 생사가 오가는 아우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날 대통령실에서 나온 발언은 보건복지부가 연일 기자들에게 배포하는 ‘설명자료’와 판박이다. 대통령실이 복지부의 보고 내용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반복한 셈인데, 판단 능력이 없는 것인지 복지부가 왜곡된 보고로 눈을 가리는 것인지 궁금하다.
보건복지부는 23일 아주대병원 응급실 파행과 관련해 설명 자료를 배포했는데, “현재 11명의 전문의가 근무중으로, 권역응급의료센터의 법적 인력 기준인 5명보다 많은 인력이 근무중”이라고 밝혔다. 법적 기준 5명보다 많으니 응급실 운영에 문제가 없다는 셈인데 전형적인 사실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아주대병원은 연간 약 10만명의 응급환자를 수용하고 있고 중증도가 높은 환자가 많다. 전문의가 15명까지 근무하면서 전공의도 10명~15명까지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전공의도 사라지고 전문의는 11명까지 줄었는데, 이중 최근 4명이 사직 의사를 밝혔다.
그렇다면 복지부 설명대로 11명도 법적 기준을 초과하기에 충분한가? 이에 대해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복지부가 언급한 법적 기준 5명은 응급의료 관련 법 시행규칙에 있는 기준으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20년 전에 만들어진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현재 국제 기준은 전문의 1명당 PPH(Patient Per Hour, 시간 당 환자 수) 2명”으로 “환자 1명을 보는데 평균 30분이 소요되므로 1시간에 2명의 환자가 국제 기준에 맞는 적정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11명 전문의가 근무하는 아주대병원도 이 기준대로 하면 2배 이상의 환자를 받는 셈이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만약 아주대병원이 법적 기준대로 5명의 전문의만 있다면 1명의 전문의가 연간 2만명의 환자를 받는다는 얘기”라며 “이 경우 미국이나 영국보다 10배 이상의 환자를 보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법적 기준이 얼마나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인지를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복지부의 설명은 늘 이런 식의 왜곡이 가득하다. 자료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의 “숨 쉬는 것 빼곤 다 거짓말”이라는 발언이 생각난다. 이런 거짓된 보고에 대통령실이 놀아나고 있는 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