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 장례식장에 추모의 인파가 넘쳐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래서 발인을 하루 앞둔 어제(25일) 조문객이 뜸할 오후 시간을 골라 장기표 빈소를 다녀왔다.
과연 조화들이 이루 셀 수없을 정도로 도열해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나 생전에 인연이 있던 인사들은 다 조화를 보내온 것 같았다. 장기표는 살아있을 때는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이 없다. 마침 내가 간 시점에 이재명 조화도 도착한 모양이다. 장례를 돕는 이들 사이에 "이재명이 왜 이제서야 보냈을까" 수군거리는 말이 들렸다.
장기표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자 갑자기 '장기표 칭송' 비슷한 게 일어났다. 우리시대의 양심, 우리시대의 영웅, 우리시대의 정의..., 어떤 측면에서 충분히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한 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열렬하게 그를 칭송하는 이들은 왜 장기표가 살아있을때, 그가 현실 정치에서 거듭 실패할 때나 말년에 특권폐지정당을 할 때는 관심이 없거나 손을 내밀거나 지지하지 않았을까.
정치인은 자신의 부음빼고는 혹평기사라도 많이 나오는 게 더 좋다는데, 메이저 언론에서는 그동안 장기표를 진지하게 취급한 적이 없었다. 그를 몽상가나 비현실주의자, 지질한 허풍쟁이로 우습게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언론들이 장기표가 죽자 그를 이 시대에 다시 없는 '의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그에게 등돌리고 욕하던 이들까지 장기표와의 과거 인연을 들추며 '장기표 칭송 대열'에 숟가락을 얹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표는 죽어서 더 빛나고 행복한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표는 자신이 죽고난 뒤 이런 상황이 펼쳐질지 한번이라도 꿈꾼 적 있었을까. 조문을 하면서 왜 우리는 그를 보내고 난 뒤에 이럴까 하는 내 마음은 여전했다.
빈소에서 처음 뵙게 된 부인 조무하 씨는 친구의 강요(?)로 '최보식의언론'에 후원한 적 있고, 자신의 고교 제자가 내 처의 친구라는 인연을 이야기했다. 이재오 민주화기념사업회이사장도 5일째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위장취업 前歷이 훈장이 되는 세상,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