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투사형 기업인

해방둥이 기자의 年代記 / 40대가 해냈다! <3>
오늘의 풍요와 고민을 만든 1980년대의 대전환은 세계에서 IQ가 가장 높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오랜 시간 일한 자연스러운 결과물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교실에서 이뤄졌다. 해방된 직후부터 불렸던 ‘졸업식 노래’대로 우리는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우리나라 새 일꾼’이 되었던 것이다.

  

보수의 키다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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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 앨트웰 회장.

 

나는 지난 8월 12일엔 해방둥이보다 세 살이 많은 또 다른 기업인이 상[우남 이승만(雩南 李承晩) 애국상]을 받는 자리에 가서 축사를 했다. 그도 김석원 회장처럼 1980년대를 40대로서 치열하게 산 분이지만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란 점에서 결이 다르다.

  

오늘 우남 이승만 애국상을 받으신 김박(金博) 회장은 이름대로 80 평생을 사신 분입니다. 한자 이름 풀이를 하면 돈(金)을 많이 벌어 널리 공평하게(博) 쓸 인물이란 뜻입니다. 김 회장의 삶을 요약하면 기업인으로서 한국적 사업보국(事業報國)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깨끗하게 번 돈으로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만들어 나라에 보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적 현실을 직시, 장학재단 운영, 애국운동 지원,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 건립 등을 통하여 우남 선생의 반공(反共)자유민주 정신을 이어가는 일에 정진(精進)하여왔습니다. 개인의 존엄성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체제는 부자와 기업인들이 먼저 법을 지키고 용감하게 행동해야 유지될 수 있음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신 김 회장의 생애가 참 아름답습니다.

  

〈전쟁으로 여덟 살 때부터 날품을 팔아야 했던 소년은 여간해선 울지 않았다. 피같이 모은 종잣돈으로 뛰어든 공구(工具) 사업이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주먹으로 짓이긴 눈물이 전부였다.

  

백발의 그가 다시 눈물을 흘린 건, 지난달 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지에서다.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이 백선엽 장군의 동상과 이웃해 세워지던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7년을 기다린 일이거든요. 저의 오늘을 있게 해준 두 생명의 은인이 다시 살아 온 듯합니다.” 보수우파의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는 김박 앨트웰 회장 이야기다.〉

  

작년 8월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의 인터뷰에 실린 내용입니다. 제가 작년에 읽은 인터뷰 중 가장 감동적인 인터뷰이기도 합니다. 명언들이 많았습니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6·25, 그리고 경제 부흥은 세계 유례가 없는 위대한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그 주역들을 우리 스스로 박해하고 있어요. 동상 하나 세우는 일이 이렇게 괴로워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가장(家長) 역할을 해서 잘 알아요. 전쟁 3년 동안 미국의 원조 물자, 양곡, 구호품이 없었다면 우리 여덟 식구는 다 굶어 죽었을 겁니다.”

  

“그때 전쟁이 났어요. 일본서 대학 나온 아버지는 책만 읽는 지식인이어서, 6남매 중 제일 사나운 제가 생업에 뛰어들었죠(웃음). 서산 피란 시절엔 지게 지고 땔감을 구하러 다녔고, 시골서 농산물을 떼다 오일장에서 팔았어요. 경기상고 시절엔 학교 파하면 명동으로 달려가 고려은단 가게에서 은단을 떼다 동대문에서 서대문까지 걸으며 팔았지요. 교복을 입은 채로요. 집에 오면 밤 11시 반. 기절하다시피 잠들었죠.”

  

“장학증서 수여할 때 간곡히 당부해요. 여러분이 성공해 먹고살 만하게 되면 주위의 가난한 이들을 돌아봐 달라. 그리고 당신들이 속한 조직이 부정부패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 나나 우리 회사가 불법에 연루되면 가중 처벌로 다스려달라.”

  

  

자유투사형 기업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포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주역은 유럽의 경우 프로테스탄트의 윤리로 무장한 부자와 기업인 등 자본가였습니다. 그들은 청빈(淸貧)사상을 경멸하고 오히려 깨끗하게 번 돈, 즉 청부(淸富)로써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일에 쓰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유럽에서 좌우(左右) 대결이 벌어지면 오른쪽으로 자동적으로 정렬하곤 했던 이들이 장교단, 자본가, 성직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윤리가 뿌리내리지 못했던 한국에서 자본가들은 권력자와 관료의 밥이 되어 좌(左)든 우(右)든 가리지 않고 권력에 봉사하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김박 회장이 특별한 점은 깨끗하게 돈을 벌었기에 용감하게 쓸 수 있었다는 것이고 이런 점에서 가장 혁신적이면서도 가장 고전적인, 자유투사형 기업인으로서 연구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싸우는 자본가이자 콧대 높은 사람입니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김박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업 시작하고 첫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2300만원의 과세를 당했어요. 부당하다고 여겨 국세청을 제소(提訴)했지요. 당시 여러 사람이 국세청을 상대로 싸우는 바보가 어디 있냐, 그래서 재벌 되겠냐 말렸지만, 저는 법대로 하겠다고 했어요.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해 2300만원을 되찾고 이자 300만원까지 받아냈지요. 명색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꿈꾸는 기업인이 1원이라도 탈세를 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닌가요?”

  

김윤덕 기자가 “보수의 가치가 뭐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더니 “배고픈 사람이 없게 하는 것.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리사욕(私利私慾)과 부정부패를 멀리해 종북좌파들이 공격할 틈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 네 가지 원칙이 있어요. 국세청으로부터 자유로울 것, 금융기관으로부터 자유로울 것, 검찰·경찰로부터 자유로울 것, 언론과 시민단체로부터 자유로울 것. 이 원칙을 지켜 빚 하나 없는 10층 회사를 강남에 세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궁정동 식당에서 김재규가 쏜 총탄에 가슴 관통상을 당하여 등판에서 피가 샘솟듯 하고 있을 때 곁에 있던 신재순과 심수봉이 “각하, 괜찮습니까”라고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괜찮아.”

  

저는 마지막 만찬장의 두 생존자, 신재순씨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난 괜찮아”가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두 사람의 말은 일치했습니다. “‘난 괜찮으니 자네들은 피하게’라는 뜻이었습니다.”

  

모든 고통을 참으면서 아랫사람들에게 “난 괜찮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민족중흥의 기수(旗手) 박정희 대통령은 갔고, 이제 그 세대의 마지막 주자(走者) 김박 회장은 이승만 정신의 계승자로 우리 앞에 우뚝 서 있습니다. 그는 묻고 있습니다. “내가 든 이 횃불을 누가 이어받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고민과 다짐을 담아 김 회장에게 기립 박수를 보냅시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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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건 2024-09-28 오전 8:04

    네 크게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김박 사장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면서요. 이분은 북한동포에게 진리를 보내는 대북풍선에도 행동으로 나서 주신 분이십니다. 부디 건강 장수 축복을 기원합니다.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 이민복 대북풍선단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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