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3일 대통령실 인근인 전쟁기념관 앞에 모여 ‘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무력화 저지를 위한 전국 의과대학 교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다음은 울산의대 명예교수이자 20대 국회의원(자유한국당)을 지낸 박인숙 전 의원의 연설 전문이다.
▶ 박인숙 전 의원 연설 전문
의평원 법을 제가 국회의원 때 대표 발의해서 당시 여러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교육부와 싸워서 어렵게 통과시킨 인연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법이 통과된 지 10년이 넘었고 덕분에 우리나라 의학교육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야 국회의원들이 호심탐탐 의평원을 무력화시키는 법을 발의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미래는 관심 없고 오로지 자기 지역구에 의대 만들어서 선거 때 표 좀 얻으려는 불순한 목적 때문입니다.
의학교육의 최후 보루인 ‘의평원법’을 무력화시키는 법이나 교육부가 시행령으로 장난치는 것은 절대 막아야 합니다.
전쟁, 내란, 자연재해 등으로 세계가 요동치는 지금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내전이 진행 중입니다. 대통령과 의사들 간의 전쟁입니다. 대통령이 의사들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정부는 국민 세금과 건보료를 펑펑 써가면서 국민의 눈을 가리고 호도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국무총리라는 사람은 ‘전공의가 이 싸움을 시작했다’는 망언을 내뱉고 있습니다.
이 재앙의 직접 피해자는 국민인데, 대다수 국민은 관심조차 없습니다. 정치인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빽’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의사들을 ‘때리면’ 국민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재앙의 종말이 훤히 눈에 보이는 의사들과 일부 지식인들만이 나라와 국민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습니다.
발단은 의대 2천명 증원이지만 이 재앙의 바닥에는 대통령과 정부가 의사를 ‘악마화’ 한 데 있습니다. 젊은 의사들은 이번 사태로 인하여 자신들이 평생 치열하게 노력하며 꿈꾸어 왔던 미래를 빼앗겼고, 심지어 의사를 정부가 맘대로 부릴 수 있는 ‘공적 노예’ 취급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떠났습니다.
이제 학생은 물론 전공의도, 교수도 ‘2025학년도부터 2천명 증원이 철회’되기 전에는 돌아올 생각이 없습니다.
정부와의 신뢰가 박살나 버렸습니다. 의사들이 격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反정부 투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전쟁 같은 비상상황도 아닌데 어떤 수치를 보아도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은데, 대통령과 정부는 2천이라는 숫자는 절대 건드릴 수 없다고 합니다. 왜 하필 2천인가? 아무도 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온갖 흉흉한 루머가 나돌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의사들을 악마화 하니까 주위의 아첨꾼들도 덩달아서 이를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돈만 밝힌다, 수입이 지나치게 많다, 나쁜 의사들이 너무 많다, 정부 말을 듣지 않는다, 응급실을 지키지 않는다, 필수의료를 떠나서 돈 벌기 쉽고 편한 일만 찾는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지 않는다 등 가지가지 이유를 대면서 의사들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2천이라는 숫자는 건드리지도 못하면서 정부가 쥐꼬리 만한 수가 인상, 병원손실 보전, 위원회 설립 등 찔끔찔끔 내어놓는 대책들도 근본 대책이 아닌, ‘의료개혁’이라는 잘못된 용어로 겉만 그럴듯하게 포장한 면피용 사탕발림일 뿐이다.
대통령뿐 아니라 장·차관들도 의사 직업의 전문성을 이해하지 못하며 도발적인 발언을 하면서 의사들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의사면허만 있으면 아무라도 응급실이고 중환자실이고 꽂아 넣으면 다 되는 줄 알고, 비상식적인 강제 근무 명령을 거부하는 젊은 의사들을 징계하겠다고 겁박합니다.
최근에는 다급해진 정부가 한의사와 간호사에게 의사 일을 시키려는 위험한 시도도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이 의사들이 ‘이권 카르텔’을 만들어서 의료 행위를 ‘독점’한다고 말합니다. 독점이라니요? 전문성과 독점도 구분 못합니다. 의사면허 자체를 가볍게 생각하는 위험한, 초법적 발상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제껏 세계 으뜸가는 수준의 의료를 자랑했습니다. 전국민 건보 가입, 무제한적인 지역·병원·의사 선택권, 진료횟수 무제한, 낮은 진료비, 최고의 가성비, 언제든지 가까운 병의원에서 예약 없이 전문의를 볼 수 있는 의료 접근성 세계 1위 등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배우러 오고, 미국 대통령도 극찬한 대한민국 의료였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한방에 무너뜨렸습니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사법 리스크는 그 어느 선진국에 비해 가혹하고 빠르게 악화하고 있습니다. 고의성 없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천문학적 배상금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사법부의 편견, 왜곡된 온정주의, 전문성 부족으로 야기된 사법부 횡포 때문에 젊은 의사들 뿐 아니라 필수의료 의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습니다.
⚫ 지금 이 상황이 국가재앙인 이유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대학병원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전공의 뿐 아니라 필수과 교수들이 떠나면서 전문의 신규 배출이 멈추며 앞으로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2) 의학교육이 무너지고 의사의 질이 폭락할 것입니다.
현재 한 학년 3천여 명을 가르치던 40개 의대에서 지금과 같은 의대 증원이 이루어지면 갑자기 7500명을 교육시켜야 하는데 이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교수 충원도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막무가내입니다. 정부는 법을 바꿔서라도 현재 1학년 학생들의 유급을 막아서 7500명을 교육시켜야 하는 상황만은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의평원법을 무력화시키려 합니다.
의평원법은 의학교육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런데 교육부 시행령에 따르면 교수가 부족해도, 실습 안 해도, 출석 안 해도, 강의 듣지 않아도, 시험 못 봐도 국가고시를 볼 수 있고 의사면허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의 2천명 증원 명령을 어떤 편법, 꼼수를 동원해서라도 관철시키려는, 정권의 하수인 교육부의 눈물겨운 노력이 바로 시행령 입법예고입니다. 이 정도면 국가가 아니라 범죄자 수준입니다!
(3) 6년 후 한 해에 갑자기 7500명이 졸업하면 전공의 수련도 불가능합니다. 이들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게다가 그 이후로도 한 학년 7500명이라는 여파는 영원히 지속됩니다. 끔찍합니다.
(4)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대학병원들이 천문학적인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을 처지에 이르면서 직원들이 무급휴가 또는 해고에 직면했고, 간호사, 기사들의 신규 채용이 멈추면서 관련 학과 졸업생들에게도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상권들도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들이 이런 피해를 입어야 합니까? 이게 국민이 뽑아준 지도자가 국민들께 할 짓입니까?
(5) 정부가 2천명 증원을 관철시키기 위해 수십조 원을 쏟아붓겠다고 합니다.
이 돈이 누구 돈입니까? 우리가 낸 세금과 건보료입니다. 현재 나라빚이 수백조 원에 이르고 올해 ‘세수 펑크’가 30조 원이라는데, 누가 봐도 미친 짓 아닙니까? 이 낭비의 뒷감당은 누가 할 것입니까? 건보 재정이 바닥나면 누가 책임질 건가요?
⚫이 재앙을 겪으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내년 2025년도 의대정원 2천명 증원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화의 절대 필수 조건이어야 합니다.
2) 국민과 의사 모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합니다. 지금은 무조건 버텨야 합니다. 국민도 각자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의사들도 너무 과로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의사들은 이 기회에 진정한 의료개혁을 이루기 위한 답안지를 가지고 있다가 다음 정권 창출에 이를 활용해야 합니다. 이 참에 지난 수십년간 쌓여왔던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닥부터 부수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 모처럼 온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정부에 어설프게 끌려가지 말고, 대충 고치려 하지 말고, 근본부터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중요한 의료정책들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서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4)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국가지도자를 잘 뽑아야 합니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헌법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2년 후 대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때까지 국민도, 의사도 잘 버텨야 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대통령의 고집대로 내년도 2천명 증원 및 각종 정책들이 실현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이전과 같은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는 불가능합니다. 혹시 2년 후 다음 정권이 의대 증원을 취소하고 진정한 의료개혁을 시작한다고 해도 원상 복구에는 10년 이상 걸릴 것입니다.
가장 걱정되는 피해는 현 정부가 의사들을 ‘악마화’ 하면서 깨어진 의사와 국민 간의 신뢰입니다. 한번 깨진 신뢰는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의대 정원 2천명 증원과 나쁜 정책들이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 이어진다면 대한민국 의료는, 나아가서 국가 자체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보건의료 안보도 국방 안보만큼 중요합니다. 의료안보가 무너지면 국방도 무너집니다. 그러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참으로 슬프고 화나고 안타까운, 해외뉴스 토픽 감의 황당한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왜?
2년이 빨리 지나가기 만을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앞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각자도생 하며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끝으로 이번 교육부 만행을 물리친 서울의대에 감사하고 다른 의대들도 용기를 내서 끝까지 싸워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그리고 의평원 법을 만들 때 큰 도움을 주신 의학교육학회 교수님들, 고대 안덕선 교수님, 연대 안덕선 교수님, 양은배 교수님 등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정작 감사원 감사를 받아야 할 대상은 서울의대가 아니라 교육부와 복지부다’ 라는 명쾌한 발언을 해 주신 최재형 전 감사원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끝까지 투쟁해 주십시요. 저도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24년 10월 3일
울산의대 명예교수, 전 국회의원 박인숙












법을 무시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비아냥 거리는 정치인들, 트집쟁이들, 사리사욕자들, 거짓말쟁이들, 범법자들이 사회를 혼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