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대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의정토론회’에 참석한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의 발언은 여러모로 충격이었다. “대놓고 거짓말”하는 수준이어서다. 거칠고 준비되지 않은 ‘의대 2000명 증원’이 불러온 9개월 의료대란과 정책실패에 대해 고개 숙이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전공의·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을 탓했을 뿐이다.
1. “‘의대 5년제’안은 애초에 있지도 않고 발표하지도 않았다”고?
장 수석은 정부가 의대 교육과정을 5년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 “의대 교육을 5년으로 단축하겠다는 말은 애초에 있지도 않고, 발표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6일 교육부가 배포한 보도자료 9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이 의대 교육과정을 현행 6년에서 ‘최대 5년’까지 줄이는 방안이 버젓이 들어가 있다. ‘의대 5년제’ 논란을 보도한 언론들이 단체로 오보라도 했다는 건가?
(교육부가 발표한 '의대 학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 방안' 9페이지 중)
그는 “교육부 발표 취지는 지금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이 8개월 됐으니, 의대생들이 나중에 복귀한 후에 잃어버린 시간만큼 프로그램을 단축하거나 방학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주자는 것이었다”며 “공백기가 있지만 리커버할 뭔가를 제시한다면 인정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초기 언론 보도 제목이 6년에서 5년 단축 검토로 나가다 보니까 설명에 오래 걸렸는데, 그 부분은 애초에 그런 의도가 없었다”며 “자율적으로 커리큘럼 할 때 학점을 이수하는 것으로 보자고 얘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 발표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고 불필요한 논란을 키워 송구하다’도 아니고 ‘애초에 의대 교육 5년 단축은 언급한 적도 없는데 언론이 잘못 보도했다’며 언론을 탓한 것이다.
현장에서 대놓고 거짓말하는 장 수석에게 기자는 “교육부 보도자료 9페이지에 나와 있다. 언론들이 전부 오보했다는 거냐”라고 질의했더니, 그는 “내용을 잘 보라. 학사 운영을 탄력적으로 하겠다는 파트에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뻔뻔한 거짓말이다. ‘교육과정 단축·탄력 운영’ 방안을 명시하면서 친절하게 “예: 현행 6년→최대5년”이라고 설명했고, 6일 교육부 브리핑을 맡은 오석환 차관도 향후 시행령 개정 등의 제도개선 추진까지 언급한 바 있다.
장 수석의 발언은 정부가 작성한 공문서를 가지고 ‘전 국민 문해력 테스트’하자는 수준의 오리발이다. 문제는 ‘의대 5년제’를 보도한 언론이 단체로 명예훼손 당한 현장이었는데도 이에 대해 발끈하고 거짓말을 지적한 언론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2. 장상윤의 도발 “2000명도 부족, 4000명 증원했어야”
장 수석은 이날 의대 2000명 증원이 과학적 근거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추계 연구의 변수를 현실화하면 2000명이 아니라 오히려 4000명 증원이 필요했다는 주장을 했다.
의료계와의 첫 토론에서 2000명 폭탄이 불러온 갈등을 좁혀나가야 할 대통령실 수석이 오히려 도발하듯 더 큰 폭탄을 투하한 것이다.
그는 정부가 참고한 3개의 연구보고서가 과학적 근거라면서 “미세한 가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2035년 약 1만명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동일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고 국가가 직접 공급까지 관리하는 체제를 가진 우리나라의 경우 장래 인구 추계 등을 토대로 의사 인력의 수급량을 매우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나아가 실질적인 의사 부족 전망치는 오히려 더 크다면서 해당 연구가 '의사가 90세까지 생산성 유지', '모든 의사가 연 265일 근무' 등 비현실적 가정을 전제했다고 지적하며 이를 현실화 할 경우 “부족한 의사 수는 2035년 1만명이 아니라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실질적 부족분인 2만명을 5년에 걸쳐 충원하려면 4000명 증원이 필요하지만, 연구상 '1만명' 추계치에 따라 2000명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장 수석의 이런 발언은 통계와 정보를 입맛대로 취사선택한 결과가 낳은 사실 왜곡이다.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3개 보고서(서울대 홍윤철 교수, 한국개별연구원(KDI) 권정현 박사, 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연구위원) 중 KDI 보고서를 제외한 2개 보고서는 매우 부실한 연구다. 또한 보사연 연구는 의료 수요는 매년 3% 이상씩 늘어난다고 가정하면서 의사 1인당 소화하는 업무량은 2019년에 동결하는 오류를 범했다.
또한 3개 보고서가 ‘2035년 1만명 부족’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 또한 부정확하다. KDI 보고서 한 곳에서만 수요·공급 측면에서의 변수에 따라 추계 시나리오가 8개나 제시됐다. 2050년까지 부족한 의사 인력을 22,000명에서 3만 명으로 예측한 시나리오도 있고, 같은 기간 8,500명 부족에 그친 전망도 제시됐다. 심지어 2030년까지는 의사 인력이 여유가 있다는 결과도 있고, 2040년 이후 의사 공급 과잉이 예상된다는 대목도 나온다. 즉 적용되는 변수에 따라 고무줄 전망이다.
그런데 대체 어느 시나리오의 어떤 변수를 어떻게 조정했길래 ‘2만명 부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건가? 결과에 맞춘 통계 끼워맞추기 아닌가.
이런 보고서를 가지고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우기며, 2000명도 부족해 4000명을 언급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식하면 용감하다’에 다름 아니다. 비교적 충실하게 연구한 KDI 보고서도 결론에서 “2030년 정도까지 매년 5~7%씩 점진적으로 늘리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명시했다.
3. 지겨운 반복 “OECD 인구 1천명당 의사 수, 한국 꼴찌”
장 수석은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부동의 꼴찌”라며 “지표상으로 볼 때 절대적인 의사 수 부족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대란 시작부터 정부가 대표적으로 내세웠던 통계를 또 반복해 언급한 것인데, 통계 취사선택의 대표적 사례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OECD 보건 통계(Health Statistics) 2024’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인구 1천명당 임상 의사 수는 우리나라가 2.6명으로 자료를 제출한 OECD 회원 38국의 평균 3.8명에 못 미쳤다. 우리나라와 멕시코 모두 2.6명으로 공동 최하위를 기록했다. 일본과 미국은 2.7명, 캐나다는 2.8명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오스트리아 5.4명, 노르웨이 4.9명, 독일 4.6명, 덴마크와 스위스 각각 4.5명, 아이슬란드와 리투아니아, 스웨덴 각각 4.4명, 체코와 스페인 각각 4.3명, 이탈리아 4.2명 등 4명을 넘겼다.
그렇다면 ‘OECD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장 수석 말대로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근거가 될 수 있나? 아니다.
같은 OECD 통계에서 국민 1인당 의사 외래 진료 횟수는 우리나라가 17.5회로 OECD 평균 6.3회의 2.7배에 달하는 1위였다. 의사가 부족한데 국민들의 외래 진료가 이렇게 높을 수 있나? 의사가 부족한데 무분별한 의료 쇼핑이 가능한가?
‘OECD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우리보다 높은 영국(3.2명), 스페인(4.3명), 스웨덴(4.4명), 노르웨이(4.9명) 등은 전문의 진료를 받기까지 평균 90일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파도 바로 의사 진료 받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즉 ‘인구 1천명당 의사 수’ 통계가 의사가 부족하다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동네 병원만 가도 죄다 전문의다. 수술 및 치료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3.6년으로 일본(84.1년), 스위스(83.7년)에 이어 3위였고 OECD 평균보다 3년 길었다. 회피가능사망률 역시 142.3명으로 하위 네 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치료를 못 받아 죽는 사람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적은 나라이고, 가장 장수하는 나라인 셈이다. 의사가 부족하면 이게 가능한가?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꼴찌여도 의사의 생산성이 높고, 인구 대비 CT·MRI·PET 장비 보유대수 세계 최고, MRI 검사 횟수 최고 등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추구하는 의료 시스템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세계적 수준의 K의료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런 요소들은 무시한 체 입맛에 맞는 통계를 취사선택해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만들어 거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정책 담당자가 해선 안 될 일이다.
장상윤 수석이 이날 토론회에서 보여준 오만함과 단순 무식함은 8개월 의료대란을 만든 윤석열 정부의 무능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사실은 그 자체로 언론이 견지해야할 최고의 가치일겁니다.
민주제도는 언론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함으로써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토론장에서 어떤 언론매체의 기자도 하지 못한 사실에 기반한 비판과 정부 권력에 대한 견제가 인상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