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내 개인적 소회에 대해 쓸까말까를 며칠을 망설이다 기어코 키보드를 두드리게 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필자는 그냥 담담했던 것 같다. 무덤덤했다고 하는 게 더 가까웠을 것이다.
한강이 맨부커상과 메디치상을 수상한 유명 작가라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고, 거저 들리는 이야기로, 스쳐지나가듯 온라인에서 본 것으로 그녀의 소설이 어떤 주제나 소재를 삼고 있었는지도 대충은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내 취향의 소설도 아니고, 역사적 인식도 한강과 달라 그녀의 소설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림원이 한강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 공감하거나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노벨상, 특히 평화상이나 문학상은 정치적 성격이 강한 것이라 생각해 그 권위에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은 것도 내가 무덤덤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BTS와 뉴진스의 노래나 멤버 이름은 하나도 모르지만 BTS와 뉴진스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세계가 열광한다는 뉴스를 듣고 그들의 성취에 축하를 보내며 그들의 노력에 존경을 표했던 것처럼 한 한국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니 축하할 일이 생겼구나 하는 느낌 정도였다. 하지만 BTS나 뉴진스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있다 하여 그들의 노래를 찾아 들으려는 생각은 없었던 것처럼 한강의 소설들 역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하여 찾아 읽어볼 생각은 없었다. 내 취향이 아님으로.
나는 온라인에서 언 듯 본 한강의 소설들의 발췌된 내용들과 한강과 김창완이 대담하는 동영상에서 한강의 조용하고 차분한 태도에서 염세적인 기운을 느꼈다. 김기덕이나 히치콕의 영화가 오버랩되기도 했고. 불편하고 불쾌해지는 문학이나 예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한강과 그의 소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은 어린 아이들이 많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와 생기를 느끼고 있지만, 예전의 서울 시내의 노인들이 많은 아파트에 살 때는 기가 빨리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던 것처럼 한강의 소설들이 그렇게 내게 다가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한강의 소설류를 내가 의도적으로 멀리했던 또 다른 이유는 고교 시절에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던 기억이 영향을 준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변신’을 읽게 된 이유가 지적 허영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과 카프카나 ‘변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열패감과 자괴감이 아직도 남아 있어 이런 소설류를 평가 절하하는 자기 방어기제가 작동한 듯도 싶다.
이게 내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느낀 첫 소회이고, 한강과 한강의 소설들에 대한 내 인상이다.
며칠이 지나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보수 진영에서 비판이 나오고, 또 이 비판에 대해 보수 진영 내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좌파 진영에서는 역사교사와 학자가 해내지 못한 일, 한강 한 사람이 해내었다며, 한강의 소설들(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이 ‘어떤 역사서보다 시대를 진솔하게 기록한 사료’라고 평가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우려가 밀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오는 이들이 있어 먼저 한강과 한강의 소설에 대해 좀 더 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한강이 인터뷰했던 것, 한강이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 한강의 소설에서 발췌된 글들을 온라인에서 찾아보면서 내 나름의 논평(비평)을 이렇게 남기게 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강 한 개인의 성취로 축하받을 일이며, 한국 문학과 그 관련 산업들에 매우 긍적적인 영향을 미치는 우리나라로서는 경사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한강과 한강의 소설들에 대한 비판과 비평을 금기시하는데 이용되는 것 역시 온당하지 않다고 본다.
나는 한강과 한강의 소설에 관심이 없었지만,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한강의 소설을 찾아보게 된 사람이다. 한강의 기고문과 한강의 소설을 접하고 그에 대해 나의 소감을 밝히는 것도 이 시점이 지나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한강과 한강의 소설을 찬양해야 하고, 한강을 비판하고 한강의 소설을 비평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는가? 오히려 한강과 한강의 소설을 (호평이든 비평이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사회 담론들이 풍부해지는 것이 한강을 위해서도, 우리 문학계를 위해서도 유익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측면에서 김규나의 한강 비평(비난)마저도 그 자체를 비판하기 보다는 그 비평(비난)의 내용에 대해 천착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김규나가 과격한 언사를 사용한 것은 잘못이라 생각하고, 김규나의 한강에 대한 비판 내용 전부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언어는 우리를 이어주는 실이다‘는 한강의 인식에 동의하고, 한강이 자신의 글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로하는데 힘쓰고 있다는 것에 존경을 표한다.
다른 한편, 글이 가진 힘의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자칫 그것으로 인해 역사가 왜곡되고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한다는 것도 많이 실감해 온 터라 한강의 글이나 소설 내용이 자신의 본의와 다르게 남들에 의해 악용되거나 역사와 동일시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뒤마의 ‘삼총사’는 부패하고 천하의 몹쓸 놈이었던 버밍엄 공작(영국)은 미화되고, 실용적이며 국가 비젼을 가졌던 리슐리외 추기경(프랑스)은 악마화되어 있다.
섹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대부업 밖에 할 수 없었던 유럽 사회에서 핍박 속에 살아가던 유대인에 대한 연민보다는 고리대금 악덕업자 샤일록으로 유대인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강화시켜 종국에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나 러시아의 포그람의 결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은 나의 극단적인 뇌피셜일지 모르겠으나, 대문호의 작품들이 역사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는 반증은 되지 않을까?
뮤지컬 ‘명성황후’와 이미연의 ‘내가 조선의 국모다’는 말에 우리 국민들은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하고 부패로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천하의 악녀 민자영(민비)을 일본 낭인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로 인식하고 있다.
영화 ‘대장 김창수’는 일본인 민간인을 죽이고 돈을 갈취한 강도살인 사건(치하포 사건)을 명성황후 시해에 복수하기 위한 일이었던 것처럼 왜곡, 미화하면서 김구를 항일과 건국의 영웅으로 만든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그려진 채시라가 연기한 위안부는 위안부 할머니의 전형인 것처럼 인식되어 식민지 치하의 가장 약한 고리였던 조선의 여성들이 가족을 위해 자신의 의지로, 혹은 부모나 악덕포주의 꼬임으로 위안부가 되어 참혹한 운명을 견디어 내었던 사실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역사의 질곡을 치열하게 살아낸 그들의 삶은 소거되고, 불순한 정치세력에 의해 항일의 투사가 되어 있는 자신을 마주하는 황당함을 안겼다.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는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수일간 감금, 고문하여 4명의 인생을 처참하게 짓밟은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미화하는 장치로 사용되고 유시민이 제도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반이 되었다.
비과학적인 픽션인 영화 ‘판도라’를 보고 일국의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여 국가 경제의 기반을 흔들어 놓은 것이 불과 수 년 전의 일이다.
이렇게 글이나 예술작품이, 특히 권위가 있고 유명세가 높은 자들의 작품들은 당대 뿐아니라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많은 경우에는 그들이 그려낸 작품 속 픽션이 역사로 둔갑되기도 한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이 위에서 내가 언급했던 것처럼 되는 것을 나는 경계한다.
불행하게도 좌파 진영에서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자신들이 그 동안 왜곡했던 사실들을 역사화하는 것은 물론, 왜곡된 사실을 바로 잡거나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만능키로 사용하려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나는 한강의 역사인식이나 인간에 대한 이해방식을 존중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한강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6.25를 미소 양국의 대리전이었다고 했다. 이는 명백한 객관적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 이에 대해 더 언급하고 싶지 않다.
한강의 뉴욕타임즈의 글에서 내가 더 주목했던 것은 ‘노근리 사건’과 ‘박근혜 탄핵과 촛불집회’를 언급했던 부분이다.
한강은 노근리 사건이 발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노근리 대학살은 미국군이 수백명의 시민을 태우고, 주로 여성과 아이들을, 돌다리 밑에서 며칠 동안 양쪽에 세워놓고 총을 쏴 그들 대부분을 죽였던 사건이다. 왜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 만약 그들이 남한 난민들을 "인간 이하로" 인식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들이 그들의 고통을 완전하고 진실하게 인지했더라면, 숭고한 인격체로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한강은 미군이 저지른 노근리 양민 학살은 미군이 한국민을 ‘인간 이하로’ 인식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보지만, 나는 전쟁이라는 극한 현장에 내몰린 나약한 인간의 이기적 본성의 발현이라고 본다. 미군도 인간이라 전장에서는 자신과 동료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협하는 것에는 조금만 의심되는 것도 배제하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그들도 또 다른 역사의 피해자가 아닐까?
물론 노근리 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은 애석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노근리 사건에 그들이 책임이 없다 할 수 없고 또 그 책임을 당연히 물어야 하겠지만, 전쟁을 일으킨 자와 전쟁을 유발한 자나 그 사회(국가)에 책임을 묻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한강은 6.25를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국 전쟁‘으로 인접한 강대국들에 의해 일어난 대리전이었다고 규정하면서 김일성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반도의 내전이었음을 애써 부인함으로써 전쟁(6.25)의 책임에서 김일성과 공산세력을 교묘하게 비껴 서 있게 한다. 노근리 사건을 언급하며 미군은 침략자이고 가해자라는 인식을 은연 중 대중들의 무의식에 심어주고 있다고 보는 것은 나의 무리한 추론일까?
한강은 또 연약하고 순수한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평화로운 촛불혁명으로 부패한 박근혜를 탄핵했다고 말한다.
당시 좌/우, 진보/보수를 막론한 언론들이 거짓과 날조 기사를 쏟아내며 박근혜를 주술에 빠진 무능한 대통령, 부패한 대통령으로 악마화하자 이에 부화뇌동한 대중들이 박근혜의 목을 내치는 퍼포먼스와 화형하는 시위를 했다. 그리고 여성 대통령의 성기를 그린 나체 그림을 국회에 전시하는 반인륜적, 반여성적 행위에도 비열한 보수 정치인들 마저 침묵했다. 암묵적 청탁과 경제공동체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로 박근혜를 탄핵하고 기소하여 감옥에 넣어 일국의 대통령, 한 여성의 인권을 깡끄리 짓밟은 것이 박근혜 탄핵 사건의 본질이다.
한강에게 묻고 싶다. 박근혜가 단 한 푼의 뇌물을 받았는가? 최서원(최순실)의 불법적 행위를 묵인하고 삼성으로부터 받은 말 3필에 대해 박근혜는 알았다고 생각하는가? 당시에 언론들이 쏟아낸 관련 기사 중에 사실과 부합하는 것이 몇 %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당시 왜곡된 기사와 근거 없는 소문에 선동된 대중들이 한 개인에게 가한 언어 폭력과 촛불로 위장한 폭압적 분위기 연출에 당시 분노했던 내가 비정상인가? 과연 당시의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한강이 답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 ‘소년이 온다’는 소설 전부를 읽지 않았고, 읽을 생각이 없었지만, 조만간 책을 구해 읽어 볼 참이다.
책의 전문을 다 읽어보지 못해 일단은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년이 온다’의 발췌된 내용 중 일부를 보고 먼저 간단히 내 생각을 피력해 볼까 한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는 다음의 내용이 나온다.
-.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을 생각해.
-.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80만발이었다는 것을. 그 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 발씩 죽음을 박아 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나는 위의 문장들에서 한강이 5.18에 진압군으로 참가했던 공수부대원들과 경찰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유추해 보았다.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미군이 한국민들을 ‘인간 이하로’ 봤기 때문에 노근리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고 주장한 것처럼 계엄군에 대해서도 그들이 광주시민들을 ‘인간 이하로’ 봤기 때문에 시위대를 학살했다고 한강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철저하게 계엄군을 가해자로 보며, 악마의 탈을 쓴 학살자라고 부르고 싶은 모양이다.
한강의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라는 글을 읽으며, 나는 조용히, 나직하게, 뇌의 거부감을 삭제시키며 인간을 악마화하는 이보다 더한 기교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이 문장들은 노골적으로 계엄군을 악마로 표현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악마로 보이게 만드는 문장이다.
나는 진압에 참여한 계엄군(공수부대원) 역시 역사의 소용돌이에 희생된 피해자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들은 상부의 명령에 의해 현장에 투입되었을 뿐이며,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전장 같은 시위 현장에서 역사의 질곡을 맞았을 뿐이다. 그들은 광주시민들을 ‘인간 이하로’ 보지도 않았고, 다만 생사가 오가는 전장같은 시위 현장에서 동료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신의 생명을 본능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다.
한강은 발포 명령자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숱한 조사와 수사를 통해서도 자위적 발포는 있었지만 발포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은 찾아내지 못했다.
한강은 5.18 기간 중에 계엄군에 지급된 탄환이 모두 80만발로 이는 광주시민 40만을 두 번 죽일 수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2차대전 당시 1명의 사망자당 2만5천발의 총탄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시위대가 장갑차와 카빈 소총, LMG로 무장했다는 사실과 계엄군이 왜 발포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강이 의도적으로 광주인구를 반으로 줄였는지, 아니면 착오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광주 인구는 40만이 아니라 80만명(873,909명)이었다.
나는 5.18 관련하여 두 번의 충격을 받았었다.
처음은 1981년, 대학을 갓 입학하고 선배들이 알려준 5.18을 듣고 받은 충격이었고, 두번째는 2000년초인가에 김영삼 정부가 조사한 5.18 수사 보고서(1995년 작성)를 보고 받은 충격이었다.
전자는 전두환 정권에 대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후자는 진실을 왜곡해 나를 기만했던 것에 대한 배신감과 그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불찰에 대한 자괴감을 불러왔다.
전자의 충격으로 나는 운동권 학생이 되었고, 강의시간에 5.18 당시의 육성 녹음 테이프를 틀며 동기들에게 5.18 진상을 알리다 교수님과 충돌하기도 했다.
후자의 충격은 전자의 충격보다 훨씬 컸고 내 가치관과 역사인식을 뒤바꾸게 만들었다. 그 이후는 사실판단 이전에 가치판단을 먼저 하는 것을 경계했고 fact check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감옥에 까지 보낸 김영삼 정권 하에서 작성된 5.18 관련 수사보고서(5.18 관련 사건 수사결과, 서울지방검찰정/국방부검찰부, 1995.18)는 내가 그 때까지 알고 있던 내용과 너무 달랐다. 경상도 공수부대원을 일부러 동원하고 술과 마약을 먹게 하여 여성의 유방을 도려내고 임산부의 배를 찔러 죽였으며, 발포 명령을 받은 공수부대원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애국가를 부르며 평화로운 시위를 하는 군중들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하는 등 수천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수사 보고서의 내용은 달랐다. 일자별, 시간대별로 계엄군과 시위대의 동향이 자세히 기록된 수사 보고서에는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수천 명이 죽은 것이 아니라 19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 중에는 경찰과 계엄군 사망자도 30명 가까이 되었다. 이들은 시위대가 몬 장갑차, 트럭, 버스에 깔려 죽었고, 이 과정에서 계엄군의 자위적인 첫 발포가 일어났다.
아마 대부분 우리 국민들이 알고 있는 5.18 내용은 황석영이 썼다고 알려진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나오는 내용과 5.18을 다룬 <화려한 휴가>, <26년>, <택시 운전사> 영화에 나오는 장면일 것이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홈피에도 사망자는 154명으로 나오는데 야당 국회의원이 실시간 중계 방송되는 국회 공식석상에서 5.18 희생자가 2천명이라고 과장해서 국민들을 기만하고 증오를 증폭시키는 망동을 해도 누구도 바로 잡는 사람들이 없었다.
혹자는 154명이 희생되었던, 2천명이 사망했던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으며, 위의 내용들이 사실이 아니고 유언비어라고 할지라도 계엄군이 과도하게 진압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5.18에 희생된 광주의 영령들을 추모하고 기리는 것이 왜 문제냐고 반문할 것이다. 맞다. 희생자가 얼마이든, 유언비어였던 아니었던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에 변함은 없고 5.18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려야 한다는 것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실체적 사실을 제대로 아는 것과 유언비어를 사실로 알고 희생자 수가 2천명이라고 알고 있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5.18 관련한 화합과 용서의 단계에서 역시 많은 차이를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화려한 휴가>에서 표현된 대로 계엄군이 일렬 도열하여 비무장의 광주시민을 향해 M16을 조직적으로 조준 사격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과 장갑차의 뚜껑을 열고 그 안으로 불붙은 짚단을 넣으려는 청년을 향해 자위적 차원에서 대퇴부에 총상을 입히고(이 사람은 대퇴부 부상을 입었으나 사망하지 않았지만, 사망했다는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5.18 관련 기념 사이트에서도 사망한 것으로 적어 놓았다가 수정했음), 시민군에 의한 차량 돌진으로 계엄군 1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수 명이 부상을 입는 생사를 다투는 절박한 상황에서 어떤 발포 명령이 없는데도 자위적 차원에서 사격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은 진압군의 당시 행동에 대한 인식에 많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화려한 휴가>에 나오는 것처럼 계엄군이 일렬로 도열하여 상부의 발포명령에 따라 일제사격을 했는지, 아니면 계엄군이 자위적인 차원에서 발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수사 보고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1995.7.18.,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검찰부가 작성한 <5.18 관련 사건 수사 결과>의 P198~202에는 계엄군이 첫 발포한 시간과 발포한 이유, 실탄의 배분 내용, 발포 지시와 관련한 내용들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와 있고, P72~105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시간대별 알 수 있다. 계엄군이 시민들을 학살한 것이 아니라 자위적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총기를 사용한 것임을 보여준다.
진압군도 학살자가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었으며 형제였고 아들이었다. 그들도 얄궂은 시대적 상황과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본의와 무관하게 5.18 현장에 투입된 죄 밖에 없지 않은가? 그들 역시 시대의 희생자이니 학살자의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은 억울하지 않겠는가?
<화려한 휴가>, <26년>. <택시운전사> 등 5.18을 다룬 영화들에 나온 과장된 장면들은 영화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표현들이라 일부 이해해 줄 수 있지만, 계엄군을 악마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장면들은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십여년 전에 5.18과 관련하여 온라인에서 논쟁을 한 적이 있는데, 상대방이 5.18의 참상이라며 사진을 올렸는데, 참혹하게 짓어겨진 얼굴들, 공수부대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비무장으로 평화롭게 시위하는 광주시민들을 향해 횡렬로 일제 사격을 하는 장면 등이었다. 그건 영화 ‘화려한 휴가’에 나온 장면들이었지, 실제 상황을 담은 사진이 아니었다.
이렇게 내 논쟁 상대는 물론 대중들은 영화의 내용을 실제 역사로 인식하게 되고, 영화의 장면들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이용되면서 허구가 사실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5.18도 올해로 44년이 되었다. 희생자들과 유족들은 여전히 한으로 남고 뼈에 사무치는 기억일 테지만,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의 아픔을 함께 치유하기 위해 이젠 역사의 바다로 흘려보내는 것이 어떨까?
말초적 증오와 분노에서 벗어나 용서를 위한 준비를 하고, 5.18의 역사적 의미를 국민들 모두 새길 수 있도록 차분히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함이 어떨까 생각한다.
중고서점에서 산 최영미의 <시대의 우울>이라는 책에 소개된 ‘카스트너’의 미술 작품을 보고 우리도 5.18을 ‘카스트너’의 방식으로 기억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나찌당의 본거지였던 뮌휀의 쾨히니 광장 자리에는 지금 미술가 ‘카스트너’의 <풀은 역사 위에 어떻게 자라는가>라는 작품이 있다. 1933년 나찌가 퇴폐적이라고 낙인 찍은 작가들의 책들을 불살랐던 광장에 ‘카스트너’가 그 자리를 불 살라 재로 만든 후 어떻게 풀이 자라는지를 관찰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과거를 상기하고 잊지 않도록 하되, 미래 세대가 그 의미를 찬찬히, 그리고 되씹게 하는 것으로 세련되기도 하여 한참을 그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그 작품을 바라보았다.
이 작품을 보고 나는 5.18의 실체를 제대로 알았을 때 반사적으로 일어났던 5.18에 대한 다소 부정적 생각들(본질적인 것이 아닌 부차적인 것이지만 그 반사적 강도가 강해 본질마저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에서 벗어나 다시 차분히 5.18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5.18에 대한 이해와 5.18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대해서 나와 한강의 생각과 입장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5.18이 민주화운동임을 부인하지 않으며 600명의 북한군이 내려와 개입했다는 지만원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과 다른 날조된 이야기와 부풀려진 이야기로 당시 진압에 참가한 계엄군을 악마화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계엄군을 악마화한다고 해서 5.18의 정신이 빛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용서와 화해로 우리 사회를 통합하는 것에 방해만 될 뿐이다. 사실은 사실 그대로 전하며 계엄군도 시대의 희생자였다는 인식을 하고 함께 아픔을 보듬어 나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한강이 <소년이 온다>는 소설에서 보여준 유려하면서도 은밀하게 계엄군을 악마화하는 기교에 심히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한강에게 진압에 참여했던 계엄군의 시각에서 5.18을 다룬 소설을 기대해 보는 것은 나의 욕심일까?
사족.
나는 우크라이전과 팔레스타인전을 언급하며 수상 기념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한 한강의 생각을 전한 한승원의 말에 불편함을 느꼈다. 노벨의 화약으로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었고 현재도 화약으로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무고한 생명들이 쓰러지고 있다면, 한강은 노벨상 거부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노벨상이라는 권위와 명예는 취하면서 또 자신의 인간애와 도덕성을 유지하려는 모습에 부조리를 느끼는 것은 나의 편견이고 억지인지 모르겠지만, 인간 존엄의 보편성과 사회(국가)의 부조리를 주제로 쓴 소설로 노벨상을 받게 된 작가에게 또 다른 부조리와 모순을 느끼게 되는 묘한 감정은 어쩔 수 없다.
그냥 담백하게, 아무 조건이나 수식어 없이 수상 기념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거나 나중에 하겠다고 했다면, 나도 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한국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담담히 축하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