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막으려 ‘목선(木船) 처분’…이젠 몇 척 남지도 않아”

김일혁 “공해상에서 중국 어선과 직접 수산물 거래하기도”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북한이 국경과 사회 통제를 한층 강화하면서 북한 주민의 삶은 더 궁핍해졌습니다. 또 북한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도 매우 어려워졌는데요. 2023년 5월, 목선을 타고 탈북한 김일혁 씨가 북한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생생한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북 압축파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내부 소식이 담긴 파일을 열어보겠습니다. 탈북민 김일혁 씨와 함께합니다.]

<국가에서 수산물 모두 회수…개인 밀수 기회 사라져>

[기자]김일혁 씨, 안녕하세요. 오늘은 북한의 수산업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김일혁 씨는 북한에서 수산업에 종사하셨는데, 당시 어떤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일혁]장소는 기본적으로 연평도와 백령도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그 구역 내에서 잠수선을 탔고, 배 위에서 작업하는 인원수가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15명까지 탑승하는 그런 배를 탔습니다. 일단 제가 배를 타게 된 이유는 생업을 목적으로 탄 게 아니고 탈북을 하기 위한 계획 과정에서 사전 정찰을 위해 배를 탔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오랜 기간을 탄 건 아니고요. 코로나 이전인 2018년과 2019년쯤에 2년 정도 배를 탄 거죠. 봄철 같은 경우에는 꽃게잡이를 많이 하고요. 숭어철 때는 숭어 자망도 놓고 했죠. 계절에 따라 수열치나 멸치가 잡히기도 하고, 이렇게 떼고기가 올라올 때는 고기잡이로 돌죠. 근데 그 외에는 기본적으로 잠수를 하면서 소라나 키조개 같은 종류의 조개를 잡았는데요. 잠수부들이 잠수하다가 사고를 당해 죽는 사례가 좀 많았습니다.

[기자]유엔 대북제재에 따라 북한의 수산물 수출이 금지됐는데, 그 이후에도 중국 등 해외 수출이 가능했나요?

[김일혁]수산업을 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서 합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코로나 이전에는 수산물을 중국에 판매했거든요. 그래서 그나마 외화를 좀 벌어들였는데, 코로나 때는 국경이 다 봉쇄됐고 그와 동시에 바다 출항도 금지시켰기 때문에 바다에 나가서 작업을 못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대북 제재를 받을 때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무역을 금지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바다에 나가서 작업은 계속했으니까 공해상에서 중국 어선과 바로 그 자리에서 중국 어민에게 자유 판매를 했었죠. 그렇게 밀수라고 했는데, 코로나 기간에는 아예 출항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공해상에 나갈 수조차 없었던 겁니다. 당시 북한 어민들이 엄청 고생했습니다.

[기자]김일혁 씨가 탈북하기 직전까지도 상황은 비슷했나요?

[김일혁]저희가 탈북한 때가 2023년 5월이었는데, 한 3월부터 간간이 출항을 시키는 곳이 있었거든요. 전부 다는 아니고 인민군 단위들, 그러니까 군부대 단위들을 위주로 기본적으로 외화벌이를 하는 기업소들의 출항을 승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길을 좀 열어놓은 거죠. 그때 나가서 잡아들인 수산물은 중국 쪽에 판매하지는 못했고요. 국내 시장에서 판매했는데 단가가 엄청 쌌습니다. (수산물이) 싼 값에 판매됐어요. 그래도 (북한) 어민들이 경제적으로 코로나 때보다는 조금 나아진 거죠. 그나마 생산을 조금씩 하니까요.

그런데 생산을 하더라도 국가에서 (관리)하는 방식이 좀 달라졌습니다. 전해들은 정보에 따르면, 중국에 수출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예전에는 개인들이 밀수도 하면서 외화를 좀 만졌거든요. 이제는 국가에서 수산물을 전부 회수합니다. 그리고 전부 기업소에 바치면 기업소에서 정해준 값대로 계산해 돈을 줍니다. 엄청나게 싼 값에 계산해주거든요. 물론 코로나 기간에 작업을 못 나가던 형편에 비하면 조금 나아졌지만, 예전에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자유 판매를 하던 값에 비하면 한 10분의 1 정도로 (수입이) 줄었습니다.

[기자]중국 외에 다른 국가에도 판매를 할 기회가 있었나요?

[김일혁]다른 국가요? 다른 국가를 접해볼 상황이 되나요. 김정은이 바다 (조업권)를 중국에 팔아넘긴 상황이니까 중국과 거래한 거지, 그렇지 않고서는 북한에서 먼 바다로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거든요. 통제가 엄청 심해서 먼 바다까지 나가서 다른 외국 사람들과 교섭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육로가 개방돼 한국 혹은 러시아를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잖아요. 고립된 상황이니까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와 거래를 생각해 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죠.

[기자]그럼 김일혁 씨가 직접 수산물을 밀거래해 본 경험도 있으세요?

[김일혁]그럼요.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제가 남포에 꽃게잡이를 갔었습니다. 거기에서는 ‘이동 작업’을 나가요. 제가 살던 황해도에 있는 서해안선은 한국의 백령도와 연평도에 가까운 곳인데, 거기는 최전방이라는 이유로 초소에서 당일 입출항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남포에 있는 바닷가는 한국과 가까운 접경 지역이 아니라서 당일 출입항을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나갈 때 ‘대략 한 달 정도 작업하다가 들어오겠다’라는 표약문 같은 걸 등록해놓고 나가서 작업하고, 약속된 날짜에 입항했다가 또 나가는 식인 거죠. 그 당시 공해상까지 나갔습니다. 먼 바다에 나가서 작업을 하다 보면 중국 어선하고 막 섞여서 작업을 하거든요. 중국 어선에 접근해서 “우리 꽃게 몇 kg 있다. 1kg당 얼마씩 받을 건데 살 생각이 있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중국 어선에도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서로 합의 하에 우리가 잡은 수산물을 넘겨주는 거죠. 요구에 따라 중국 돈을 받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달러를 받아요. 그 상황에 맞춰 환율대로 계산해서 그 값을 받곤 했죠. 이렇게 하면 국내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최소 두 배, (상품이 좋으면) 많을 때는 5배까지 받았습니다.

[기자]그 당시 수산물은 얼마 정도에 거래됐나요?

[김일혁](1kg당) 제일 낮은 가격이 북한 돈으로 4만 원(미화 약 2.3달러)이었습니다. 높게 받은 가격은 30만 원(미화 약 17달러)까지 받았고요. 원래 미화 100달러당 북한돈 80만 원에서 85만 원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게 정상 환율이거든요. 근데 코로나 기간에는 이걸 엄청 폭등시켰다가 폭락시켰다가, 이런 일을 국가에서 많이 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때는 미화 100달러가 북한 돈 20만 원이 될 때가 있고, 어떨 때는 100달러가 130만 원이 될 때가 있었습니다.

<목선 탈북에 골머리 앓던 김정은, “목선 없애라” 지침>

[기자]요즘은 수산업에 대한 단속도 매우 강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선을 타고 탈북하는 사례가 늘어나다 보니 단속이 심해진 것 같은데요?

[김일혁]북한이 코로나라는 비루스(바이러스) 전염병을 이용했다고 보면 됩니다. 탈북 행렬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한 명만 탈북해도 공화국의 존엄이 많이 훼손되고, 또 수많은 북한 주민 마음속에 불씨를 지피는 일이 될 테니까, ‘바다에서 수산업으로 돈(외화벌이)을 못 벌게 될지언정 탈북의 길은 막아야겠다'고 김정은이 선택한 거죠. 방역 조치 사업으로 주민들을 통제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코로나 이전부터 목선을 타고 탈북하는 사례들이 생기니까 북한 당국에서 조치를 내린 겁니다. 목선이 레이더망에 잘 안 걸리거든요. 그래서 김정은의 지침이 내려왔어요. 전국적으로 동해안과 서해안에 있는 목선을 전부 폐쇄하라는 지침이 내려와서 여기에 검열도 붙었습니다. 이 일로 (길거리에) 나앉은 선장이나 많은 사람이 난리가 나고, 스스로 목숨도 끊고 해서 복잡하게 됐죠. 또 이 일로 치안 문제가 발생하니까 이에 대한 보고가 올라갔나 봐요. 그래서 (2018년 기준으로) 다시 방침을 내놓은 게, “10년 전에 만든 목선은 놔두고 그 이후에 만든 목선들은 없애라”라는 거였어요. “세계적으로 목선이라는 한심한 배를 타고 다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어서 한 마디로 창피하다”라는 식으로 통제했던 걸, “우리나라에 산림자원이 황폐화가 돼가고 있다”로 바꾼 거죠. 산림자원이 황폐화되는 원인 중에 하나가 전국적으로 목선을 만들면서 나무를 많이 찍어서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도 피 같은 돈을 들여 만든 재산이니까 선장 중에서 뇌물울 찔러주고 빠져나갈 사람은 다 빠져나갔습니다. 그렇게 김정은이 골머리를 앓고 있던 와중에 코로나가 터진 거죠.

“출항뿐만 아니라 바다에도 나가지 마라. 남조선이 코로나 환자들을 백령도와 연평도에도 많이 격리시켰는데, 코로나 환자들이 생활하는 모든 댐물을 다 우리 북조선 해역으로 방류시키고 있다. 그래서 우리 어민들이 물 가까이 나가기만 하면 바로 코로나에 전염되니까 나가지 마라”, 이런 명분을 내세우면서 배 관리를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박해 있던) 배가 그냥 저절로 침몰되거나 파도에 배끼리 부딪혀 침수되고 물에 떠내려갔죠. 그렇게 목선이 깔끔히 정리되고 만 거죠. 이런 상황이었는데 2023년 5월에 저희가 탈북할 때쯤에는 배 수리를 할 수 있었던 거예요. 당시 저희가 떠났던 부두가에 목선 같은 배를 다 합치면 300척이 넘었거든요. 근데 이 300척 중에 작업을 나갈 수 있게 수리가 된 배가 10척도 안 됐어요. 힘 있는 사람들만 경제적으로 투자를 해서 목선을 다시 새로 만든 거죠. 그러니까 현재도 북한에는 배가 몇 척 안 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거든요. 당시 그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원상복구를 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기자]네, [북 압축파일] 오늘은 탈북민 김일혁 씨와 함께 북한 수산업과 이에 대한 통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김일혁 씨,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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