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군단' 출신 기자 증언 "조악한 훈련과 배고픔…그래도 자폭용사가 될 생각이었다"

철탑에서의 낙하산 훈련에 실망…'총폭탄'이 되겠다는 맹목적 집단으로 세뇌.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은 1만 2000여 명, 그 중 사상자 수는 3천 명을 넘었다고 한국과 우크라이나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파병의 핵심으로 알려진 것이 정예부대인 '폭풍군단'이다. 일본과 한국의 미디어에서는 초인적 신체 능력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러시아의 전장에서 '만취했다', '드론 공격으로 쉽게 전사하고 있다' 등, 정예부대라는 이름에 물음표가 붙는 정보도 전해진다. 과연 '폭풍군단'이란 어떤 집단인가? 폭풍군단에서 복무한 탈북기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설한다.

◆ 엘리트, 입당 보장, 대학 추천…선망의 대상
나는 1990년대 후반 조선인민군에 입대했다. 북한에서는 남자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만 17세에 군에 입대한다. 신체검사와 면접도 있지만, 대학이나 전문학교에 진학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졸업생이 군에 입대한다.

'폭풍군단'이라고 하면, 건장한 육체의 병사들이 기와를 깨거나 몸에 감긴 쇠사슬을 찢어 버리는 초인적인 모습이 영상에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에 어필하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 특수부대라고 하지만, '폭풍군단' 병사도 일반 병사와 거의 다르지 않다. 단, 건강하고 다부지다는 점이 중시돼 선발될 뿐이다. 한편 '폭풍군단'은 입대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우수한 전투 기술과 체력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라는 사회인식이 있다. 그리고 다른 부대보다 상대적으로 식사가 좋다. 그리고 그 당시는 제대 후 조선노동당 입당이 보장되고, 대학 입학 추천을 받을 가능성도 있는 등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즉, '폭풍군단'의 대부분은 특수부대 복무를 통해 '계급 변경'과 대학 진학을 꿈꾸는, 농민과 일반 노동자 가정 출신 젊은이들인 것이다.

※계급 변경:북한은 계급 사회다. 특히 농업은 가난하고 발전 가능성도 닫힌 최하층 직업으로 간주되고 있다.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면, 자자손손 평생을 농장원으로 보내야 한다.

내가 입대할 당시 '홍길동', '명령 027호' 등의 전투영화가 유행해, 나는 실제로 전투 기술을 배울 수 있고 친구에게 자랑할 수 있다는 이유로 '폭풍군단'에 지원했다. 같은 해 신병들은, 비행기를 탈 수 있어서, 대학에 갈 수 있어서…등의 이유였다. 특수부대 배속이 정해지자, 동기들과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 철탑에서의 낙하산 훈련에 실망
'폭풍군단'의 주목적은, 후방교란이다. 전투시 후방 지역에 투입돼 폭파나 요인 납치·암살 등을 담당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훈련의 실태는 이와 동떨어졌다. 처음 배치된 곳은 황해북도 곡산군에 있는 58여단 항공육전부대였다. 항공부대이므로 낙하산 훈련이 있다. 그러나 지휘관이 송전탑 같은 철탑을 가리키며, '저 탑에서 낙하 훈련을 한다'고 말했을 때는 무척 실망했다.

북한에서 평생 비행기를 타볼 수 있는 인구는 5%에도 못 미칠 것이다. 특수부대에 가는 것을 만류했던 부모님도 비행기는 한 번 타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너지가 부족한 북한에서는 철탑에서 강하 훈련을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철탑에 올라 150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을 했다. 무서워서 오줌을 지린 병사도 있어서, 세탁을 위해 2시간의 휴식이 주어진 적도 있었다. 1년에 한 번, 비행기를 타고 800m 높이에서 낙하하는 훈련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 비행기에 타고 실시한 강하 훈련에서 350명 중 2명이 추락사했다.

그 외에도 강행군, 체력훈련, 기압훈련 등 다양한 훈련을 경험했다. 구타를 견디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집단 구타를 당한 뒤 목적지까지 돌아오는 훈련은 너무 힘들었다. 그 혹독함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

◆ 식사는 쌀에 기름 한 술
기대했던 식사도 비참한 상황이었다. 예를 들면 2000년대 초반의 식사는 찰기 없는 쌀에 기름 한 숟갈뿐. 반찬이 될 부식물은 군대 부업지에서 캔 야채로 조달했다. 영양실조에 걸리는 사람도 많아서, 12명으로 구성된 우리 조에 적어도 2명 정도는 영양실조였다.
※ 식량배급제가 거의 붕괴해 대량의 아사자가 발생한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이후 몇 년은, 군대의 식사 사정도 극히 열악했다.

열악한 식사 사정 때문에 탈주병도 발생했다. 혹독한 훈련에 지치고 열악한 식사에 실망해, 왜 부모 말을 듣지 않고 특수부대에 왔을까 후회하는 친구도 많았다.

◆ '총폭탄정신'에 의한 맹목적인 집단
폭풍군단에서 무엇보다도 중시되는 것은, '총폭탄정신'이다. 이것은 수령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사상이다.

낙하 훈련 때는 등의 낙하산과 별도로 배에 예비 낙하산을 묶는데, '폭풍군단'은 예비 낙하산 대신 폭탄을 주면 폭탄이 되어 적진에 떨어진다는 충성을 맹세한 부대로도 유명했다.

1993년 한미합동군사연습에 대비한 준전시 태세 때, '폭풍군단'에서 김정일에게 '예비 낙하산 대신 폭탄을 달라'라는 편지를 보내 충성을 인정받았다는 일화도 있다.

당시의 나 역시 장군님의 특공대라는 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들은 특별한 군인이라는 우월감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자폭용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정신만 차리면 몸을 내던지도록 훈련에 힘쓰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9세부터 소년단 조직에 가입해, 정치적 조직 생활을 시작한다. 학교에서도 사상 교육을 집중해 실시한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17세의 청년이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총폭탄', '결사옹위', '자폭용사' 등의 슬로건이 사방에 쳐져 있는 주둔지 안에서 피를 토하는 훈련의 나날을 보내게 되면, 아주 쉽게 맹목적인 집단이 된다.

◆ 충성 앞에…너무나도 잔혹한 앞날
'폭풍군단' 병사의 실체는,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사회 경험도 없는 세뇌된 청년들이다. 당시의 나를 돌이켜 보면, 분별없이 마구잡이로 돌진하는 불나방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판해야 할 것은 순수한 젊은이들을 이용하는 북한 당국이다. 어느 나라라도 군인이라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다. 우크라이나에 파병되는 병사는 주로 18~24세로 추정되고 있다. 전장에서 북한 병사가 만취했다, 러시아의 지휘 계통에 따르지 않는다 등의 보도도 나오고 있지만, 젊은 병사들은 처음으로 전쟁을 겪고 극한의 심리 상태에 놓여, 심한 혼란에 빠진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정은에게 있어 '폭풍군단'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폐쇄적인 계급 사회 안에서, 자신의 장래를 개척하기 위해 국가에 충성을 맹세하는 길을 선택한 젊은이들의 앞날이 전장이자 죽을 곳이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잔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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