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자여, 음모와 요설의 물살에서 빠져나오시라

- 샤베타이 체비, 빅터프랭클, 선거 음모론

1.

유대-기독교 전통에도 어쩔 수 없는 지적 흠결이랄까, 자기파괴적 지점들은 있다. 대표적인게 음모론적 인식체계다. 이걸 다른 표현으로 영지주의적이라고도 한다. 보이는 이면에 드리운 거대한 설계, 감추어진 진실이 있다는 고대 희랍적 사유가 유대-기독교 세계관, 소위 헤브라이즘에 농짙다. 우리 시대의 신심 깊은 복음주의자들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 본인 내면의 음모론적 취약성, 영지주의적 충동을 경계하고 성찰해야 ‘광신’의 가능성을 피할 수 있다. 컬트가 처음부터 컬트인 것은 아니다.


2.

1665년, 이스라엘 가자에 ‘샤베타이 체비’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곧 유대 지식사회에서 '레알' 메시아로 선포되었다. 유대 선조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지 천육백년만의 일이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유대 지식인 사회가 직접, 오피셜로 구세주 인증을 해줬다. '공인 메시아'가 탄생한 것이다. 체비의 후원자로 '나탄'이라는 아슈케나지 유대 랍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탄은 숱한 유럽지역의 유대인 학살, 축출극에 절망하던 인물이었고 어떤 식으로든 자기 세계에 희망의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예루살렘 여행 중 만난 샤베타이 체비가 자아도취적이고 조울증 증세가 있는 것을 보며 메시아 소질이 있다고 봤다. 나탄은 체비를 통해 유대사회를 영적으로 북돋고 싶었던 듯 하다.


1648년 폴란드에서 벌어진 직후 나탄은 체비를 본격적으로 메시아로 추켜세웠다. 나탄에 현혹된 체비도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받아들였다. 체비는 흰 말을 타고다니며 가자 일대를 누볐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불러모으겠다며 대사까지 임명했다. 당연히 지탄 받을 행동이었지만 유명한 유대지식인 나탄이 공인했다고 하니 사람들의 태도가 달랐다. 유대사회는 메시아의 소식으로 환호했다. 


유대인들은 종종 풍설로 들은 것을 흥분감 속에 길게 써서 부풀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이야기는 기적의 스토리가 되어있었다. 험악한 삶을 견뎌낸 민족들의 문화적 특징이다. 온갖 소문들이 유대 지식사회를 수놓았다. 체비가 콘스탄티노플에서 불가사의한 이적을 일으켰다더라. 죽은 이를 살렸다더라. 먼 옛날 사라져버린 이스라엘 열 지파가 체비의 명을 받들어 페르시아와 사하라 사막에서 집결하고 있다더라.




나탄은 전 유럽의 유대사회에 메시아에 관한 편지를 발송했다. 프라하, 콘스탄티노플, 암스테르담의 유대사회는 나탄의 권고를 받아들였고 기도와 단식을 시작했다. 메시아를 직접 보려는 순례가 줄이었다. 


1666년 메시아 샤베타이 체비는 터키에서 구속되었다. 숱한 유대지식인들이 메시아의 증언을 들으려 재판정에 모여들었다. 여차하면 그가 엘리야처럼 승천할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심지어 당대 최강의 군주 술탄까지 이 법정을 흥미롭게 참관하였다. 그러나 체비는 군중들 앞에서 본인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판사에게 답하곤 동시에 이슬람교로 개종 해버렸다. 터번도 직접 머리에 썼다. 술탄은 배꼽 잡고 웃으며 돌아갔다.


3.

일테면 물거품 같은 비참한 희망의 이야기이다. 민족이든 정치집단이든 혹은 개인이든 너무나 험악한 경험, 불행을 반복해서 겪으면 종종 헛된 희망과 공상에 허기가 진다. 웃고 싶고 달뜬 희망을 품고픈 그 소박한 허기를 사이비, 컬트가 파고든다. 그러나 꾸며낸 이야기들이 인간 존재를 달뜨게 할수록 그 물거품이 사그라든 자리는 더 큰 참혹함이 남는다. 희망으로 비대해진 자아, 존재는 순식간에 쪼그라들어버린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겪은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도 비슷한 증언을 했었다. 유대인 수용소 안에서는 독일의 패퇴와 연합국의 진격 이야기가 주기적으로 돌았다. 그 뜬소문들이 곧 허위로 밝혀지면 평소보다 많은 유대인 죄수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을 했다. 희망의 붕괴로 정신적 면역이 해체되어 버린 것이다. 거짓말은 유독하다. 위험하다. 비록 희망을 말할지라도.


연령으로는 노인세대,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주류인 한국의 아스팔트 우익들은 오늘날 정신적으로 너무나 위태롭다. 긴 세월 스스로를 한국사회의 당당한 '탑독'이라 생각했던 그들은 세상의 주류에서 벗어난 언더독이 된 현실을 받아들 수가 없다. 자신들은 여전한 한국의 코어요 중추니까. 이 정신적 불일치 때문인지 선거에서 패배할 때마다 한국 우익들은 선거부정론 같은 참혹한 헛소문으로 깊게 깊게 파고들었다. 그들의 마음앓이가 안쓰럽다. 하지만 치유가 필요한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이 숱한 거짓말에 대해 어떤 정신적 면역도 못갖춘채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것을 방치하는 자체가 '사회적 학대'다.


몇년전에는 음모집단의 대명사격인 ‘딥스테이트’ 세력의 투표결과 데이터를 두고 미국 델타포스와 CIA가 독일에서 총격전을 벌였다는 뜬소문이 인터넷을 휩쓸었다. 공병호 같은 이는 한껏 방송에서 이 얘길 떠들더니 탈이 날 것 같았는지 슬그머니 지워버렸다. 어제와 그제는 오키나와의 주일미군기지로 선거부정 획책세력 90명이 포박되어 심문을 위해 끌려갔다는 얘기들이 SNS를 강타했다. 미군 측이 직접 나서서 이 황당한 거짓말을 부인할만큼 헛소문의 회오리는 짙고 강렬했다.


4.

보수적인 상당수 크리스찬들이 오늘날 격정과 울화 마음을 휩쓸리고 있다. 참혹한 거짓말에 속으며 다시 또 헛 희망 품기를 반복한다. 대학살의 여파 속에 유대인들이 ‘지금 사하라에서 고대의 이스라엘 열 지파가 깨어나 집결하고 있다’고 믿었듯, 한국 보수는 선거패배를 반복하면서 ‘지금 주일미군이 선관위 서버 분석을 끝내고 트통에게 보고 올렸다. 미국의 반격이 머지 않았다’는 글을 교회 단체톡방에 퍼나르고 있다. 그 심리적 밑배경은 똑같다. 자기 편향의 함정, 알고리즘의 굴레에서 못벗어나고 있음을 수긍하고 분별력 있게 컨텐츠를 소비하는 문화적 체질을 갖추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충직한 기독교도들이 '영적 분별력'을 강조하지만 정작 우리 현실은 어떤가. 허탄한 것들에 수시로 마구 유린당하는게 당대 기독교도들 멘탈리티다. 실은 남에게 속는다기보다 스스로에게 속는 것에 가깝다고도 생각된다. 이 남루하고 취약한 정신적 배경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샤베타이 체비와 나탄 같은 사기극 놀음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선거부정론이 우리 시대만의 짧고 아팠던, 금새 극복한 ‘오발탄’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당대의 보수주의자요 기독교도의 한사람으로서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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