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이 선정한 ‘해방 80년, 대한민국 역사에 족적을 남긴 80인’에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선정됐다.
월간조선은 올해를 ‘해방 80주년’으로 규정하고, ‘해방둥이에서 BTS까지’ 대한민국 역사에 족적을 남기거나, 시대의 성취를 상징하는 인물 80인을 선정했다. 1945년 이후 출생한 인물을 대상으로 정치, 경제, 사회·언론, 문화·체육 분야로 나눠 선정했다. 조갑제 대표는 사회·언론 분야 인물로 선정되었고 ‘탐사보도의 개척자’로 소개됐다.
월간조선의 선정이유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기자는 이념과 팩트(사실)가 충돌할 때에는 팩트 편에 서야 한다.”
조갑제(趙甲濟/1945~) 조갑제닷컴 대표가 후배 기자들에게 자주 하는 이 말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준다. 서슬 퍼렇던 유신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포항 석유’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내 고초를 겪었던 것도, 1980년 5·18 당시 광주에 몰래 들어가 취재했다가 해직당한 것도 ‘사실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1983년 ‘월간조선’ 기자가 된 조갑제는 탐사보도(investigative journalism) 영역을 개척하면서 시사월간지 전성시대를 열었다. ‘한국 내 CIA’ ‘KAL기 격추 사건의 진실’ ‘박정희 시대의 정치 비화’ 등은 이 시절 그가 생산한 특종의 극히 일부다. 그는 특종 기자기 되는 비결로 ‘호기심’과 ‘명예욕’을 꼽곤 한다.
젊은 시절 권위주의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조갑제는 1990년대 초 이후 박정희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를 되살리는 데 앞장서게 됐다. 북한 체제의 실체를 알게 되고부터는 김씨 왕조는 물론 그들을 두둔하는 국내 좌파 세력, 좌파 정권과 싸웠다. 그 연장선 상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우파 운동에도 깊이 간여했다. 반면에 그가 일부 우파들이 몰입하고 있는 5·18 북한군 개입설이나 부정선거 주장 등에 반대하는 것은 그런 주장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확신 때문이다.
‘논객 조갑제’에 대해서는 고개를 흔드는 소위 진보 인사 중에서도 ‘기자 조갑제’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994년 이후 ‘시사저널’이 매년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에 10차례 이상 이름을 올렸다. (배진영 기자)』
출처 : 월간조선 2월호 “해방둥이에서 BTS까지. 해방 80년, 80인”












설날 민심ㅡ 대통령 무죄, 종북 좌파 응징, 더불당 해체, 기레기 언론 제거, 여론 조작 가짜 뉴스 척결, 공짜 복지 청소
와! 조갑제는 친북 친중 주사파와 연대하여 윤석열 죽이기에 앞장서는 분이기도 하시다. 와우
조갑제는 탈북자구원자이기도 하다. 1994년4월7일 김영삼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북한당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탈북자를 받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을 돌려세운 특종을 내게 한 결정적 주인공이며 그로부터 UNHCR를 통해 탈북자를 받아들이는 길을 열게하였다. 그 당사자가 본인이다. 또한 탈북자란 용어를 처음 쓰게한 기자이기도 하다. 당시 조갑제 기자의 취재 임무를 받고 온 황성준 레닌그라드 대 전임강사와 인터뷰에서 귀순자란 말이 좋지 않으니 탈북자라고 하자고 했으며 이를 조선일보, 월간조선에서 처음 기사화하여 명칭으로 굳어졌다. 이 기사가 특종으로 되어 국내외 언론이 집중관심가지도록 했다. 월간조선은 관훈글럽상을 황성준은 모스크바 조선일보 특파원으로 되었다. 학계에서는 이 기사건으로 북한인권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조갑제 만세. 만세. 만만세.
내가 맥지 조갑제 어른을 스승으로 모셨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