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에서도, 국회에서도, 시중의 술자리에서도, 윤석열을 지지하고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도, 윤석열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들도 '비상 계엄의 위헌성과 그에 대한 책임'과 관련한 공방이 뜨겁다.
윤석열과 군경 지휘관들 간에 당시 행위를 지시한 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진실 게임을 하고 있다.
필자는 왜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논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나 간단 명료한 사안이 아닌가? 비상계엄 선포 전후로 일어났던 사실에 대해 확인만 하면 될 일이고, 누가 어떤 일을 했던 그에 대한 최종 책임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이 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설사 휘하 군과 경찰, 국정원과 소방청의 지휘관들이 윤석열의 지시를 직접 받지 않고 자신들의 판단하에 부하 장병들이나 경찰과 대원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행위들임으로 최종 책임은 윤석열에게 있다.
비상계엄 선포 전후에 벌어졌던 일들이 반헌법적이고 위법한 것인지만 따지면 될 일이다.
비상계엄과 관련하여 시간대별 사건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아래에 정리된 사건들이 실제 있었던 것인지 확인하고, 이를 근거로 윤석열의 탄핵 여부를 결정하고 윤석열을 내란죄로 처벌하면 될 일이다.
필자는 비상계엄 관련 타임라인을 정리하면서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계엄군의 모든 행위들은 윤석열과 김용현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고, 계엄군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윤석열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윤석열의 탄핵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윤석열은 내란의 수괴로 무기징역이나 사형 선고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본다.
-. 2023년 11월부터 김용현을 중심으로 대통령경호처, 기무사령부, 특수전사령부, 수도방위사령부의 기관장 비공식 모임을 가져왔으며, 윤석열도 참여하여 비상계엄을 시사하는 말을 함.
-. 2024년 2월, 이진우 당시 수방사 사령관이 계엄 대비를 위한 비밀조직 "수호신 TF"를 결성(2025년 1월 10일, 민주당 윤석열내란진상조사단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내용)
-. 2024년 10월 29일, 이진우는 통합방위 목적 등을 위한 시설 견학 명목으로 제1경비단장과 군사경찰단장을 여의도 변전소에 보내 국회 전력 공급 상황을 확인했으며, 이진우는 당시에도 북한의 도발가능성을 언급.
(12월 3일 비상계엄 당시 수호신 TF 소집하여, 장교 28명 부사관 87명 병사 19명 군무원 두명 등과 실탄 및 공포탄을 지급하고 국회로 출동)
-. 2024년 3~4월, 김용현이 한남동 공관에서 이진우 수방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 충암파 인사들과 비공개로 회동.
-. 2024년 6월, 안가에서 윤 대통령이 군 수뇌부와 소맥 회동.
-. 2024년 6월 28일, 국가수사본부와 국군방첩사령부의 계엄 상황에서만 조직되고 활동하는 합동수사본부 설치에 관한 업무 협약.
-. 2024년 7월 24일, 정보사령부에서 훈련영화 피복 제조를 목적으로 인민군복 200벌을 긴급공고를 통해 주문. 제한경쟁으로 발주되었고, 유찰 후 수의계약 형태로 계엄 3 주 전에 정보사령부에 납품.
-. 2024년 8월, 국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부대에서 쏘카, 휴맥스모빌리티 등 국내 차량 공유 기업들에 차량 추적 및 동원 등에 대해 이례적 협조를 요청.
-. 9월 모일, 문상호 정보사령관은 속초 HID부대원 40명을 선발해 국지전 대비 훈련을 지시. 이들에게 계엄 선포 직전에 "서울로 올 수 있다"는 지시가 하달되었으며 5인은 판교 정보사 사무실에서, 35인은 수도권 모처에서 대기 지시를 받음.
-. 9월 6일, 김용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
-. 9월 6일, 국군방첩사령부 주도로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의 B-1 벙커의 내부 수리. B-1 벙커는 비상계엄 후 국회의원 및 주요 인사를 감금하려고 했던 장소.
-. 10월 3일, 평양 무인기 대북전단 살포 사건 발생.
-. 10월 18일, 이진우 수방사령관은 여의도 공공기관들에게 공문을 보내 사회기반시설 통합훈련 협조토의 명목으로 10월 25일 한국전력 남서울 본부에 모이게 하여 북한 타격시 전력공급에 대해서 문의했고, 국회가 단전되더라도 1초 이내에 비상전원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
-. 10월 29일, 통합방위 목적 등을 위한 시설 견학 명목으로 이진우 수방사령관, 제1경비단장, 군사경찰단장, 제213보병여단장 등이 여의도 변전소 계통운영센터를 방문하여 국회에 전력 공급을 하는 계통을 확인.
-. 10월 30일,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명의로 특전사령부 단편명령 24-33호 "팀 전투력 완성을 위한 부대훈련 강화 지시" 를 통해 대대급 야외훈련을 11월 8일로 종료하라는 명령을 하달.
-. 10월 30일, 대통령경호처에 국정원처럼 '신원조사권'을 가지도록 입법 예고.
-. 11월 17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롯데리아 1차 회동에서의 문상호 정보사령관과 정성욱 대령들에게 계엄사실을 알리고, 전산부서, 정보보호부서, 여론조사심의위원회 등 선관위 각 부서 직원 30명의 명단을 주고 체포 임무를 부여. 케이블타이, 밧줄, 야구방망이, 작두 재단기 등의 준비를 지시,
-. 11월 20일, 정보사 정성욱 대령이 인터넷으로 종이 30장을 한꺼번에 자를 수 있는 반원형 칼날 작두형 재단기를 구입. 구매 이유는 "선관위 직원들을 위협하기 위해 구매한 물건"이라고 하지만, 위협 아닌 물리력을 행사하여 거짓 자백을 유도하기 위해 야구방망이 등과 함께 준비.
-. 11월 25일, 국방부는 2024년 후반기 장성급 장교인사를 발표. 양재응 대령이 준장으로 진급, 11월 말에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국회에 들어간 현장병력에게 안내를 제공.(검찰 공소장 내용)
-. 11월 25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가짜평화를 주장하는 '반국가세력'이 존재하고 이걸 명확히 인식해야 할 위협"이라는 내용의 전 전군 대상 집중 정신교육 지시.
-. 11월 28일, 오전 10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 독대회의를 4시간 진행. 10시에 "전입자 신고와 대령 직책계급장 수여 신고"가 있을 예정이었으나, 이를 이경민 참모장에게 넘기고 독대회의.
-. 11월 30일, 김용현은 노상원과 국방부 공관에서 만나 계엄령 모의를 하고, 여인형을 불러 "계엄이 선포되면 국회에 방첩사 요원들을 보내고,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증거가 담긴 데이터를 갖고 오라"는 지시를 하고 윤석열도 만남. 당시 윤석열은 격노 상태라고 여인형이 진술.
김용현이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소 3곳, 민주당사, 여론조사 꽃 등 6 곳 확보 지시.
-. 12월 1일, 문상호 정보사령관과 정보사 김봉규 대령, 정성욱 대령이 전직 정보사령관 노상원과 함께 노상원의 점집 부근 안산 롯데리아에 모임. 노상원이 "햄버거를 먹고 이야기 하자"하고 "부정선거 관련하여 중앙선관위 서버를 확인하면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것, 너희들이 중앙선관위 전산실로 가면 된다"며 대령들에게 "중앙선관위 서버 확보"를 지시.
노상원은 대령들에게 "봉 선생(김봉규 대령)이 먼저 장군하고 다음에 말 선생(정성욱 대령)이 하면 되겠다"라며 정보사 여단장 진급을 언급하며 회유.
선관위 직원들과 대법관인 선관위원장을 "케이블 타이로 손목과 발목을 묶고 두건을 씌워서 데리고 오라"고 지시.
"노태악은 내가 확인할 테니 야구 방망이 사무실에 갖다 놓아라"고 했고, 실제 흉기를 준비.
-. 12월 2일, 수도권 소재 일부 군 병원에선 환자 전시 분류작업인 트리아지 훈련 실시.
-. 제707특수임무단 비상 대기명령, 훈련 일정도 모두 취소.
-. 김건희가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문자 2통을 보내고 조태용 국정원장은 3일 답장.
-. 12월 3일, 새벽 전직 정보사령관인 노상원이 한남동 국방부장관 공관에 들어가 김용현과 미팅.
11시 40분 국방컨벤션센터에서 "국방혁신기획단"과 오찬을 하며 "국회가 국방예산으로 장난질인데, 탱크로 확 밀어버려"라는 취지의 발언. 이후 육군 제2기갑여단장 구삼회 육군 준장은 휴가를 내고 정보사령부 100여단 판교 사무실에서 대기.
김용현은 민주당 '윤석열 내란 진상조사단'을 공수처에 고소.
-. 15시 반경 노상원과 구삼회 장군, 김용군을 포함한 국방부 조사본부 전, 현직 육군 영관급 장교 4인이 다시 안산에 모여 2차 롯데리아 회동.
구삼회 준장은 상급부대인 제1군단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 휴가를 내고 이 회동에 참석한 뒤 4일까지 이틀간 정보사 사무실에서 대기. 회동에 참가한 한 조사본부 대령은 비상계엄 사태를 조사하는 군 책임자로 수사를 지휘하고 수사 내용을 보고 받고 있었으나, 이 회동에 참석한 것이 밝혀진 후 업무 배제.
-. 오후 모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개인적인 이유로 조퇴.
-. 16시 김용현, 박안수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독대하여 "9시 40분에 장관 대기실에 와 있으라" 지시.
-. 17시부터 제13특수임무여단과 제707특수임무단 일부 요원들은 "북한 관련 상황이 심각하다"며 실제 작전 투입을 위한 '격리지역활동'에 돌입.
-. 18시경 정보사령부 100여단 판교 사무실에 문상호 정보사령관, 김봉규 대령(정보사 신문단장), 북파공작원 HID 요원 5명, 정보사 특수임무요원 20여 명, 구삼회 준장(육군 제2기갑여단장), 방정환 준장(국방부 전작권 전환 TF장) 등 38명 수준의 인원이 대기.
-. 19시 윤석열이 김용현과 함께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전가옥으로 불러 계엄군 장악 대상 기관과 인물들이 적혀 있는 A4 1장짜리 지시사항을 하달.
장악대상 언론기관은 MBC였고, 여론조사 꽃 등 10여 기관을 장악 기관으로 명시.
김봉식, 윤석열로부터 비상계엄은 '개인적인 가정사' 때문이라는 말을 들음. (김봉식이 헌재에서 증언)
-. 비상계엄 선포 관련 회의는 22시 17분에서 22분까지 5분 간 대통령실 접견실에서 열림.
한덕수 총리는 대통령실 도착한 직후인 20시 40분께 계엄 선포 계획을 인지했으며, 대통령에게 반대 입장을 표명한 뒤 이를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9시께 국무회의를 소집.
해당 회의는 윤석열과 한덕수 및 장관 9명, 총 11명이 참석했으며 통상적인 개회·종료 선언이 이뤄지지 않았고, 속기 등 별도의 기록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도 확인. 실제 국무회의가 열린 시간은 참석자들 증언에 따라 5~7분 내외로 추산.
대통령실에 먼저 도착한 국무위원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계획을 듣고 반대 의견을 냈지만 일방적으로 발표.
-. 22시 17분, 국무회의 의결정족수인 11명이 집결하자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를 공식화. 윤석열은 회의 참석자들에게 "지금 이 계획을 바꾸면 모든 게 다 틀어진다. 이미 언론에 (대국민 담화 계획을) 다 발표했고,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대통령의 결단이다. 국무회의 심의를 했고 발표를 해야 하니 나는 간다"는 발언을 남긴 뒤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담화 발표.
-. 비상계엄 선포 국무 회의에서 윤석열은 최상목과 조태열에게 지시사항이 담긴 A4 분량의 쪽지를 주었으며, 최상목의 쪽지에는 "비상입법기구 예비비 마련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음.
김용현은 12개 부서가 비상계엄 시에 해야 할 일들을 적은 쪽지를 준비했다고 헌재에서 증언.
-. 22시 23분, 윤석열 대통령이 생중계로 긴급 대국민 담화문 낭독.
-. 22시 25분, 비상계엄령 선포.
조지호 경찰청장이 김봉식 서울청장에게 전화로 "국회 주변의 안전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 주변의 안전과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5개 기동대를 배치.
-. 22시 30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국군방첩사령부의 IT 전문 인력이 포함된 10여 명이 중앙선관위 청사 내 서버실에 들어감. 계엄선언이 있기 전에 움직인 것이며, 군정보기관인 국군방첩사령부가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서버실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군의 역할을 벗어난 상황.
계엄군이 선관위에 투입되어 3시간 20분간 점거. 10여 명의 계엄군이 중앙선관위 청사에 투입해 야간 당직자 등 5명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행동 감시와 출입 통제.
-. 22시 30분경 국회경비대장 목현태 총경은 국회의원의 원내 진입을 통제하기 시작.
-. 22시 30분경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전화로 체포명단 16인에 대한 위치 추적을 요청.
-. 22시 46분, 김봉식 서울청장이 돌발 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국회 내부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을 일시 출입통제하라고 지시.
-. 22시 55분, 국회가 봉쇄됨. 이때 국회의 외곽문이 폐쇄되었으며, 의원 출입도 일시 금지. 이에 일부 의원들은 국회 담을 넘어 진입. 그러다가 의원과 보좌관만 출입 허가.
조지호 경찰청장은 경찰청 간부 회의 긴급 소집을, 최상목 부총리는 기재부 간부 회의 긴급 소집을 이행.
-. 23시 00분, 담화문 전문이 언론에 배포됨.
-. 23시 06분, 국회의원·관계자의 신분을 확인한 뒤 출입할 수 있도록 무전 지시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이내 조지호 경찰청장 지시에 따라 다시 출입통제.
-. 23시, 수원 선거관리위원회 연수원이 사복을 입은 군 병력 혹은 경력들에 의해 장악, 통제. 선관위 직원과 민간인 등 90여 명 감금.
-. 23시 04분, 국회 출입문 폐쇄.
-. 23시 25분, 계엄사령관에 육군참모총장인 박안수 대장 임명. 계엄으로 용산기지의 국방부 영내에 계엄사령부 설치.
-. 23시 30분,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 발표. 국회, 지방 의회, 정당 활동,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정치 활동 금지,출판물 검열, 전공의 등 모든 의료인의 48시간 내 본업 복귀 명령, 이를 어긴다면 계엄법에 따라 처단, 위반 시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송할 수 있으며 계엄법에 의거하여 처단한다고 선포.
-. 23시 36분,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이 폐쇄되고 공무원 출입이 막힘.
-. 23시 40분 이후, 국회 상공에 UH-60 블랙 호크 기동 포착. 국회 해산에 수도방위사령부를 위시한 군 병력이 동원되기 시작. 서울 톨게이트 부근에서 부대 이동 목격.
병력이 탑승한 헬기들은 계엄군 지휘부가 목표한 시간보다 40분이 넘게 늦게 국회 경내에 도착.
원래 계엄 계획상에서는 군 헬기가 23시에 도착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을 것이나,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기지의 P73 비행금지구역을 통과하는 데 있어 공군작전사령부 및 MCRC와 혼선이 있어 특전사 국회 도착 지연된 것으로 알려짐. 계엄 포고 후 일부러 1시간의 간격을 두고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는 대통령실의 해명은 거짓.
-. 23시 45분,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전군 비상경계 및 대비태세 강화를 지시, 이로 인해 신분 불문 모든 전역 예정자의 전역 무기한 연기 통보.
-. 23시 48분,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를 개의.
-. 23시 48분, 국회 마당에 군 헬기 착륙 및 작전차량으로 국회 앞마당 진입 시도가 있었으나 차량을 에워싸고 막아서는 시민들에 의해 진입하지 못함.
-. 23시 57분경, 국회 입구에 육군특수전사령부로 추정되는 무장 병력 등장.
-. 23시 58분경, 서울특별시경찰청 기동본부 제3기동단에서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갑호비상으로 전 직원 출근하도록 전파바란다"는 공지를 산하 기동대에 내림. 그러나 실제 서울특별시경찰청 기동본부는 "휴무 부대를 제외하고 전 직원 출근 지시를 부탁 드린다"는 내용의 지시를 하달한 것으로 확인.
-. 23시 59분경, 용산기지의 대통령실 앞에 바리케이드 설치.
-. 김용현은 11시 25분 비상소집명령을 내려 군 수뇌부를 지하의 전투통제실로 불러들임. 부처실, 국장과 합참 본부장급 간부들까지 포함해 40여 명. 집결 후 별다른 지시 없었고, 그 후 계엄이 실질적으로 해제된 후 해산. 비상계엄 해제 후 제기되는 추측으로는 이 비상소집명령의 이유는 계엄군 통제하에 있는 장교들을 제외한 다른 장교들이 계엄군을 막지 못하도록 묶어놓기 위해서라는 추측.
-. 23시 40분경, 먼저 도착한 국민의힘 박성민, 정동만 의원은 제지를 당해 1번 게이트로 국회를 출입했고 김기현은 출입 제지를 당함. 김재섭은 국회 본회의관 진입을 막는 경찰과 대치 끝에 월담하여 회의장 안으로 들어감. 국민의힘 뿐만이 아닌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 또한 출입을 제지당함.
-. 12월 4일, 00시 07분경, 계엄군이 국회 경내에 진입했고 본청 진입 시도.
-. 00시 12분경,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707특수임무단 다수의 계엄군이 국회의사당 뒷문으로 진입 시도.
-. 00시 13분경, UH-60 블랙 호크 헬리콥터를 타고 국회 뒷문으로 진입한 계엄군이 본청 진입 시도.
-. 00시 15분경,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비상 의총을 중앙당사서 소집.
-. 00시 22분경, 우원식 국회의장이 "헌법 절차 따라 대응…군경, 동요 말고 자리 지켜달라"고 말함.
-. 00시 22분, 계엄군 국회 본청 출입문 완전 봉쇄.
-. 00시 24분경,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군, 국회 진입…반헌법적 계엄에 동조·부역해선 안 돼"라고 말함.
-. 00시 29분경, 국회 본회의가 개의. 국회의원 146명이 참석.
-. 00시 30분경, 국회 입구에서 시민들과 대치 중이던 병력 후퇴.
-. 00시 31분경, 계엄군의 국회 진입 시도로 인해 격렬한 대치가 발생했고, 육군 특전사 인원들이 국회 진입 시도.
-. 00시 30~40분 사이 계엄군이 국회에 들어갔을 때, 윤석열이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의결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 내라"라고 지시 했다고 곽종근이 증언.
-. 00시 34분경, 흑복 차림의 육군 707 특임대 병력이 의사당 창문을 깨고 진입 시도.
-. 00시 36분경, 공수부대가 국회 본청의 유리창을 깨고 진입.
-. 00시 37분경,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울청사서 긴급회의를 진행했으며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음.
-. 00시 39분경, 서울경찰청이 오전 1시부로 을호비상령을 발동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오보로 밝혀짐. 발동 검토를 했으나 대기 명령이 나왔고 최종 보류.
-. 00시 40분경, 한국일보 보도를 통해, 계엄 포고령 반포 익일부로 '보도처' 설치를 통한 언론 및 출판물 검열과 통제가 이루어짐이 확인.
-. 00시 42분경, 공수부대가 국회 내부, 본청 인근까지 진입. 계엄군이 한동훈 대표 사무실 인근에서 내부 인원과 대치 중이며, 국회 보좌진들이 계엄군 진입을 막기 위해 뿌린 소화기 연기가 날리고 있는 장면 포착.
-. 00시 43분경, 국회의 국민의힘 룸에서 로텐더홀로 가는 길이 차단됨.
금융 당국은 "금융 외환시장 안정 위해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발표.
-. 00시 44분경, 계엄군이 국회 본청 안으로 진입하려 시도하자, 유리문 안에 있던 국회 직원들과 보좌진들이 바리케이드로 저지. 응급사태를 대비해 의료진 및 구급대원이 국회 안으로 진입.
-. 00시 50분경,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딴지일보 사옥에 군인들 집결.
-. 00시 54분경, 특수작전사령부에서 국회로 특전사 소속 헬기의 도착과 증원 확인.
-. 01시 00분경, 서울경찰청은 국회 정문의 시민 집결에 따라 질서 유지를 위해 '을호비상' 발령 검토 시작.
-. 01시 00분경, 의안 번호 2206197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안건으로 상정.
-. 01시 01분경, 재석 190명 중 찬성 190명의[101] 만장일치로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가결.
-. 계엄 당시 지역구인 동탄에 있던 이준석 의원이 급히 국회로 향했으나, 경찰에 의해 의회 진입을 저지당함. '비상계엄으로 인해 열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라는 서울시경 61기동대장 이수진 경정[103]의 말에 격노하며 "비상계엄이 아니라 불법계엄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떤 병신한테 명령 받았길래 이런 소리를 해?! 국회의원이 국회에 못 들어간다는 게 말이 돼?"라고 격렬하게 항의.
도무지 방도가 안 보이자 황태석 보좌관은 담을 넘으면 되지 않냐 제안했는데 이에 이준석 의원은 "시끄러 임마" 라고 핀잔을 주거나, "내가 왜 내 직장에 와서 담벼락을 넘어야 하냐"며 거부. 이런 이준석의 행보는 경찰이 불법하게 국회의 정당한 의정 활동을 방해한 증거들 중 하나로 남음.
-. 00시 32분 경,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을 포함한 계엄군 16명은 국회 본관 2층 창문을 깨고 내부로 진입.
-. 00시 50분 경,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은 '전기라도 끊을 수 없겠냐'며 김현태 단장에게 전화를 통해 물었고, 김현태 단장은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답함.
-. 01시 01분 경, 병력 중 7명이 승강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감.
-. 01시 06분 26초, 병력은 지하 1층 분전함을 열고 일반조명 차단기 및 비상조명 차단기를 내려 국회 본관 지하 1층 전력을 차단. 이 단전은 약 5분 48초간 지속. 이 동안 국회사무처 직원은 01시 01분 경에 비상계엄해제 결의안이 가결되었음을 고지하고 병력 철수를 안내. 이후 군인들은 차단기를 다시 올린 뒤 직원 안내에 따라 철수.
-. 01시 08분경,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가결을 강조하며 '국회 경내 군경은 당장 국회 밖으로 나가주시기 바란다'라고 발언.
-. 01시 11분경, 국회 앞에 위치한 계엄군이 본청에서 퇴거하는 등 철수를 시작.
-. 01시 15분부터 육군 민수차량들이 국회 경내에서 철수하기 시작.
-. 01시 16분경,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본청 내부의 군경이 모두 철수했다고 발표.
-. 01시 22분경, 국회 후문에서 헬기 철수.
-. 01시 30분경, MBC의 보도로 대통령실과 국방부 출입 기자 일동이 00시 30분부터 상부의 지시로 전원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짐. 대통령실 참모들도 비상계엄 선포 직전까지 무슨 일인지 몰랐던 것으로 알려짐.
-. 01시 40분경,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건물에도 진입했으나 철수.
-. 01시 41분, 국방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계엄 해제 때까지 계엄사령부를 유지한다고 발표.
-. 01시 42분, 사복 군인 2명과 무장 군인 11명이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 배치.
-. 01시 50분, 민주당 당사에서 철수하고 있는 육군 특전사의 K-151 소형 전술차량들을 포착한 시위대가 단체로 군용차를 막아섬.
-. 01시 56분,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 상황 중대 우려...정치 분쟁, 법치주의에 따른 평화적 해결 바란다"라는 성명을 발표.
-. 01시 58분, 우원식 국회의장은 계엄 해제 요구 통지서를 대통령실, 국방부에 보냈다고 밝힘.
-. 02시 08분, 윤석열 대통령이 카톡으로 국무위원들에게 모이라고 지시.
-. 02시 17분, 대통령실에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짐.
-. 02시 22분, 류혁 법무부 감찰관이 3일 계엄 관련 논의에 참여할 수 없다며 사직서를 제출.
-. 02시 27분, 비상계엄령 선포로 00시에 소집된 경찰청 긴급회의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별도 입장 없이 종료. 이에 따라 발령 검토 중이던 '을호비상' 역시 발령되지 않음.
-. 02시 59분,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음에도 대통령실 경찰력은 증원된 것으로 알려짐.
-. 03시 08분, 백악관은 한국의 계엄령 선포에 대해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밝힘.
-. 03시 08분,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와 한동훈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기 위한 체포대가 결성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
-. 03시 35분, 대검찰청 긴급회의 중인 것 확인.
-. 03시 37분, 윤석열은 계엄 선포 전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국무위원들이 참석한 국무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파악. 한 총리는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이동해 간부들과 비상회의를 한 뒤 오전 2시 30분께 퇴청.
-. 03시 39분, 미 국무부는 대한민국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안이 "준수되길 희망한다"는 입장을 내놓음.
-. 03시 41분, 국회 둔치주차장에 있던 계엄군 차량 철수.
-. 03시 53분, 국방부 본부의 비상소집 해제.
-. 03시 56분,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비상계엄을 건의했다고 국방부 공식 확인.
-. 04시 01분, 국방부 본부 비상소집이 해제되면서 출근했던 직원들이 퇴청 중이고 김용현 국방 장관은 국방 청사 안에 남아 있다고 보도.
-. 04시 13분, 윤석열은 합참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짐.
-. 04시 45분,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 배치된 전 병력이 철수.
-. 04시 27분, 윤석열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 국회의 요청대로 군을 철수시켰으며, 비상계엄 선포를 즉각 해제할 예고를 발표했으나 새벽인 관계로 국무회의 의결 정족수가 미달이라 정족수가 충족되는 대로 해제할 것이라고 발표.
-. 04시 39분, 계엄사령부가 내렸던 대통령실 출입기자 퇴거명령 철회.
-. 04시 49분, 계엄사령부 해체.
-. 05시 04분, 국무총리실은 04시 30분에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이 의결되었다고 밝힘. 이로써 긴급 담화문 발표로 시작된 비상계엄 상황은 약 6시간 만에 종료.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발표 기준 5시간 30분만.
-. 김용현,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전 명태균을 언급하며 '비상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밝힘. 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은 명태균이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된 날.
-.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윤석열이 비상 계엄을 하게 된 배경에는 '가족 문제'가 있었음을 밝힘.
-. 경호처는 김건희와 노상원에게 비화폰을 지급했음.
-. 12월 2일, 김건희는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2건의 문자를 보냈으며, 12월 3일, 김건희에게 1건의 답장을 함.
-. 윤석열은 12월 3일 20시에 조태용과 통화했고, 20시 05분에 대통령실은 조태용을 국무회의 참석하라고 통보함. 20시 20분에 윤석열은 홍장원 국정원 1차장과 통화했으며, 이 때 윤석열은 홍장원에게 "조금 있다 다시 전화할 테니 대기하라"고 했다고 했으며, 게엄 선포 후 윤석열이 다시 전화해서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을 줄테니 방첩사에 인력 등을 지원해 주고,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했다고 홍장원은 증언함.
-. 홍장원은 10시 58분과 11시 6분에 여인형 방첩사 사령관과 통화에서 여인형으로부터 체포명단을 불러 받았고 이들에 대한 위치 추적을 부탁 받았다고 증언함.
-. 여인형은 10시 30분 경,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체포명단 15명을 불러 준 뒤에, 나중에 한동훈을 추가해 불러 주고, 위치 추적을 의뢰했으나, 조지호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함.
-. 검찰 조사 결과 윤석열은 12월 3∼4일 비상계엄 선포 전후로 조 청장에게 6번 전화, 6통 중 2통은 국회의 계엄 해제요구안 의결 이후 걸려온 전화. 조 청장은 당시 통화에 대해 "국회는 (계엄) 해제 의결을 했으니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한다는 선포를 해야 될 것 아닌가, 그게 없어 (현장에) 봉쇄 해제를 지시 안 했다"는 취지로 진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