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 토로한 파병군 전사자 유가족,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들 죽어 쏟아낸 분노를 당과 국가 비방 행위로 해석…"영웅 가족이라도 입조심 해야"
북한의 러시아 파병군 전사자 가족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차 표창 수여식 직후 당국에 불만을 토로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러·우전에 파병된 북한군 가운데 약 2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은 일부 전사자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를 부여하고 가족들에게 특별대우를 약속했지만, 동시에 유가족들의 불만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강도의 한 소식통은 24일 “지난주 보천군에 거주하는 50대 가장과 그의 가족이 며칠 전 영웅 칭호를 받은 맏아들의 표창식을 마치고 귀가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농장과 마을 주민들이 큰 충격에 빠졌다”고 전했다.

이 가족의 아들은 북한군 폭풍군단 소속으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전사해 2차 표창 수여식에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아버지는 보천군 가산농장에서 분조장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표창을 받은 뒤 가족은 침통한 표정으로 지냈다가 돌연 사라졌다.

가족의 실종이 알려진 것은 지난 14일 오후였다. 집에는 평소 쓰던 물건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이를 먼저 발견한 인민반장이 보위부에 보고하면서 사건이 퍼졌다.

사건의 도화선은 추모행사 기록영화를 시청하던 자리였다. 영웅의 아버지는 “내 아들을 승인도 없이 끌고 가 남의 나라 전쟁에서 죽게 했다. 그 대가로 평양에 집을 주겠다고? 나는 그런 올가미에 매여 살고 싶지 않다. 이게 대우냐?”며 울분을 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원래 평양 출신이지만 아버지 세대에 추방돼 보천군으로 내려왔다. 아들이 전사자로 지정돼 평양 이주가 예정되자 “원한 서린 평양에 아들 목숨 대가로는 못 간다”며 거부 의사를 노골적으로 밝혔다.

분노를 삭이지 못한 그는 집 밖으로 나와 도끼로 장작을 패며 하루 종일 울분을 쏟아냈고, 이 장면은 주민들과 행인들에게 목격돼 삽시간에 퍼졌다. 결국 이는 당과 국가를 비방하는 행위로 해석돼 보위부가 개입하는 계기가 됐다.

소식통은 “보위부는 사전 설명도 없이 밤중에 들이닥쳐 가족들을 입은 옷 그대로 끌고 갔다”며 “집안의 물건은 그대로 두고 주민들에게 정리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일부 주민들이 “아들이 영웅인데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라고 말하자 보위원들은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입을 다물라”며 냉정하게 경고했다고 한다.

다음날 리당 간부들과 함께 모인 주민들 앞에서 보위부는 “가장 가슴 아픈 이는 김정은 원수님”이라며 강압적 사상 교육을 실시했다. 또 “아버지가 당과 국가를 심하게 비방해 강제 조치로 이어졌다”며 “아들이 영웅이라고 해서 아버지의 죄가 무마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이 사건 이후 주민들 사이에서는 공포가 확산됐다. 소식통은 “영웅 가족조차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판국인데, 불만을 말할 수 있겠느냐”며 “이제는 아들이 영웅이어도 입조심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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