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자신을 ‘파시스트’라고 비난한 조란 맘다니(34) 뉴욕시장 당선자와 회동을 가졌다. 선거 기간 중 서로 날선 비판을 해왔기 때문에 이날 회동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대중의 우려(?)와는 달리 둘이 ‘브로맨스’를 보여줬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회동을 보도하며 “‘파시스트?’ ‘공산주의자?’ 그들은 이날 오후만큼은 (뉴욕) 퀸즈 출신의 평범한 남자들이었다(‘Fascist’? ‘Communist’? For an Afternoon, They Were Just 2 Guys From Queens)”라는 제목을 달았다. 부제는 “뉴욕시장 당선인과 대통령이 공동의 목표를 홍보하며 독한 설전은 잠시 접어뒀다”였다. 

회동 당시 한 기자가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을 ‘파시스트’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장면이 아마 이날의 하이라이트였을 것이다. 곤란한 질문을 받은 맘다니의 답변을 듣기 전 트럼프가 먼저 “괜찮다, 그냥 ‘그렇다’고 말해도 된다”고 하며 어색한 분위기로 흐를 뻔한 상황은 모면했다. 

NYT는 “미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아주 기묘한 콤비 코미디 같은 장면이었다”며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 대통령과 시장, 노년의 남자와 젊은 신진 정치가. 지난 수개월 동안 서로에게 독설을 퍼부어왔던 바로 그 두 사람이 맞나 싶은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트럼프가 존중하는 것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승자’다”라며 “그는 맘다니가 정치권 기득세력에 맞선 언더독으로서 승리를 거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고 했다. 이어 “트럼프는 화제성이 큰 미디어 이벤트도 좋아한다”며 “이번 만남이 그런 성격의 장면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이날 집무실을 가득 메운 언론사 카메라를 가리키며 “각국 정상들과 수없이 많은 회담을 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이 회담만큼은 당신들 모두 아주 난리가 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강력한 지도자, 즉 승자에게 관대(?)하다는 분석은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NYT의 모린 다우드는 22일 “공손해진 돼지(Piggy Gets Polite)”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트럼프의 성향을 보다 깊이 분석했다. 트럼프는 이념이나 과거 그가 뱉어온 말들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보다 권력과 카리스마를 본능적으로 추종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다우드는 그의 칼럼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거칠고 잔혹한 언행에 미국 사회가 무감각해지도록 만들어 놨다. 자기 중심적 성향의 트럼프는 기생적 기술 재벌들과 인터넷 문화를 통해 미국의 가치를 훼손하며 명예와 진정성이라는 개념을 마치 시대착오적이게끔 보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 순간들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다. 물론, 참을 수 없는 범위라는 것이 이제 어디까지인지조차 모호해졌지만 말이다. 

 최근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블룸버그통신의 기자 캐서린 루시가 엡스타인 관련 기록 공개 문제를 집요하게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녀의 얼굴에 손가락을 들이대며 말을 끊고는, “조용히 해, 조용히 해, 돼지야(piggy)”라고 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후 이를 해명하며 황당한 설명을 내놨다. “대통령은 여러분 뒤에서 숨는 대신, 여러분 면전에서 솔직하고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지난 행정부보다 (타인을) 훨씬 더 존중하는 방식이다.” 

 역겨웠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트럼프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사람들에게 ‘돼지(pig)’나 ‘개(dog)’라고 부르는 것을 즐겨왔고 자신의 연인이었던 (성인배우) 스토미 대니얼스는 ‘말상(horsefac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우드 칼럼니스트는 트럼프의 조롱은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한때 한 편이었던 (전 뉴저지주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 역시 ‘뚱뚱한 돼지’, ‘지저분한 놈’ 등으로 불렀다는 것이었다. 

다우드는 수십 년 전 트럼프가 부동산 개발업자로 주목을 받던 시절 인터뷰했을 때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었다고 했다. 여자 모델과 배우들의 외모에 점수를 매기듯 평가했고, “안타깝게도 (모델) 하이디 클룸은 이제 더 이상 10점이 아니다”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고 했다. 또한 “트럼프는 내게 신문사 여기자들의 사진을 보내줬는데 외모가 좋은지 안 좋은지를 펜으로 코멘트를 적어 보냈다”고 했다. 

다우드는 “정치인이 코미디언처럼 사람들을 모욕하는 시대는 트럼프 이전에는 없었다”며 “그러나 그는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 비웃음과 조롱이 정책 논의를 흐리게 만드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다우드는 트럼프가 블룸버그통신 기자를 ‘돼지’라고 부른 사건 이후에도 ABC뉴스의 메리 브루스 기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고 했다. 브루스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연관이 있는지를 물었다. 앞서 미 정보기관은 왕세자가 직접 명령을 내렸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이에 트럼프는 미국을 방문한 손님에게 그런 질문으로 망신을 줄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 질문은 “끔찍하고 불손하며 정말 나쁜 질문”이라고 했다. 연방통신위원회(FCC)는 ABC의 방송 라이선스를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다우드는 이런 트럼프가 맘다니와의 회동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맘다니를 ‘공산주의자’, ‘유대인 혐오자’라고 비난했고 뉴욕시의 연방 지원금을 끊고 군대를 보내겠다고 위협했었다. 그러나 백악관 회견이 끝날 무렵 이 둘은 지나치게 친밀해진 것처럼 보였다. 폭스뉴스 앵커가 ‘이러다 JD 밴스 (부통령) 자리를 맘다니가 대신할 기세’라는 농담까지 할 정도였다. 트럼프는 맘다니가 당선되면 ‘부유층과 기업들이 뉴욕을 떠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회동 이후에는 ‘이런 시장이면 뉴욕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초상화 앞에서 맘다니와 찍은 사진을 공유하며, “뉴욕의 신임 시장 조란 맘다니를 만나 영광이었다”고 쓰기도 했다. 

 이 장면은 트럼프가 이념이나 일관성보다, 카리스마가 있고 이기는 사람을 더 선호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우드는 공화당은 최근 선거에서 참패했고 트럼프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고 했다. 엡스타인 자료 공개와 관련해 피해자들과 공감대를 표한 마조리 테일러 그린 연방하원의원을 ‘배신자’라고 칭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했다. 그린 의원은 1월에 의원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그린 의원은 “열네 살에 성폭행당하고 인신매매로 착취되며 부유한 남성들에게 이용당한 여성들을 변호하는 것이 대통령에게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인가”라고 했다. 그는 “더 이상 나는 ‘맞고 사는 아내(battered wife)’처럼 참고 기다리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그린은 대선 부정선거 음모론을 신봉하고 2021년 1월 6일 의회 난동 사태 가담자를 옹호하는 등 ‘마가(MAGA)’의 여전사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다우드는 트럼프가 엡스타인과 가까웠다며 공화당 의원들조차 그가 왜 이렇게 해당 자료 공개를 막으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이 공개한 이메일에서 엡스타인은 ‘트럼프가 (피해자 중 한 명과 함께) 내 집에서 몇 시간씩 있었다’고 적었다”며 “트럼프는 그가 인정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그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악한 사람이, 누군가를 두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악하다고 부른다면 정말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