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방송 발상지(發祥地)' 기념비를 찾아

한국방송사(史)에 잊어서는 안 될 방송문화 유산이요, 기념물이다.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4가 중앙대로변 네거리에 가면 '부산문화방송 발상지(發祥地)'를 알리는 기념비가 있다. 빗돌은 마석(磨石)이 아닌 자연석이다. 포항 보경사(寺) 아래 계곡에서 채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강암 좌대(座臺) 위에 높이 70센티미터, 폭 1미터 크기의 기념비가 비바람 맞으면서도 자세를 잃지 않고 흘러 온 방송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빗돌 전면에는 '부산문화방송발상지'라는 비명(碑名)이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기념비를 세우게 된 취지문이 적혀 있다.


"1959년 4월15일,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상업방송 부산문화방송이 '어린이에게 꿈을 청년에게 이상을 가가호호에 위안을' 창사 이념으로 내걸고 고고(呱呱)의 성(聲)을 울린 여기가 그 발상지.

3·15 마산의거와 4·19혁명, 그 처절했던 역사의 구비마다 자유와 정의 편에 서서 방송언론의 지평을 연 부산문화방송. 오늘은 전국 20개 네트워크와 함께 민주방송의 깃발을 펄럭이니 부산시민이 사랑하고 지켜 온 부산문화방송. 부산MBC. 그 탄생의 터에 기념비를 세우노니 부산과 함께 영원하리라.


2004년 4월15일.

창사 45주년을 맞아 海灘 김영 짓고, 木雲 김동재 써서 부산문화방송이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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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문화방송 발상지' 기념비는 한국방송사(史)에 잊어서는 안 될 방송문화 유산이요, 기념물이다. 그 옆에는 부산 중구청이 전파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형성화한 MBC 상징 로고를 조각으로 만들어 세워 놓았다. 방송학도와 시민, 관광객들이 오늘도 부산MBC 옛터를 찾고 있다. 


부산문화방송 창사 2년 뒤에 서울문화방송이 부산문화방송 경영인 김지태와 젊은 방송인들에 의해 설립됐다. 뒤를 이어 각 지역MBC가 지역자본가들에 의해 설립됐다. 따라서 MBC라는 방송사의 명칭은 부산MBC가 출발점이다. 지금은 공·민영 방송이 여러 매체가 있지만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방송사는 부산MBC가 유일하다. 부산의 자랑이요, 긍지가 아닐 수 없다. 


방송 선각자 김상용이 물밀듯 밀려 오는 왜색(倭色)전파를 물리치고자 난관을 무릅쓰고 부산문화방송을 설립했다. 김상용은 창사 6개월 만에 경영권을 김지태에게 넘겼다. 碑文에도 새겨져 있지만 부산MBC는 마산 3·15 의거현장의 실황을 전파에 실어  보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당시 안성수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결단과 보도과장 전응덕, 기자 조재필, 이상철 등이 현장에서 방송기자로서의 기개(氣槪)를 발휘하며 취재, 생중개했다. 


당시로서는 서슬퍼런 권력에 맞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던 만큼 자유와 민주를 외친 시위현장의 생중개 방송은 용단이요, 결단이 아닐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부산문화방송의 이같은 결단은 방송이 언론기능으로 자리매김하는 시발점의 쾌거였다고 본다. 당시의 MBC 4층건물은 지금도 남아 있다. 상업시설로 용도는 바뀌었으나 옛자취를 확인할 수 있었음이 다행이었다.


당시 부산문화방송이 자리잡은 중앙동 일대는 부산우체국과 부산역, 부산세관 등이 자리잡은 부산의 상징적 중심지였다. 대중가요 '경상도 아가씨'의 무대이기도 한 40계단 층층대도 있다. 부산문화방송 발상지를 돌아보며 한국민간방송 역사의 현장이 이순(耳順)의 세월에도 흔들리지 않고도 위용을  보여주고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현장에서 젊음을 바친 필자는 보람을 느끼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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