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희 정체 드러날라…김정은의 '째포 콤플렉스'

'후지산 줄기' 들킬까 전전긍긍…日 판결에 소환된 28년 전 '유령 수기
북한이 내부용으로 제작한 영상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에서 고용희가 어린시절 김정은의 그림 공부를 지도하고 있다.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 캡처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0일 북한에 거주하는 재일교포를 내세워 “사회주의 조국의 품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는 내용의 체험 수기를 대서특필했다. 일본 법원이 재일교포 북송 사업을 불법으로 판단하고 북한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지 나흘 만에 나온 기사다. 보도 경위가 짐작된다.

노동신문은 이날 6면 메인 기사로 함흥시 동흥산구역 서운1동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출신 황정순(77)씨의 수기를 실었다. 황씨는 재일교포 부모 사이에서 다리에 장애를 안은 채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차별과 가난 속에서 성장한 것으로 소개됐다. 6살 때 어머니를 잃은 뒤 아버지는 건설 현장을 전전했지만 생계가 어려워 딸의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다고 한다.

황씨는 어느 날 치마저고리 차림에 지팡이를 짚은 채 외출했다가 일본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들은 ‘조선계집애’, ‘병신’ 등의 말을 퍼부으며 황씨에게 집단 폭행을 가했다고 한다. 황씨는 13세가 되던 1962년 아버지 등에 업혀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건너가 함경남도 함흥에 정착했다.

수기에 따르면 황씨 가족은 주택을 배정받았고, 황씨는 학교에 입학해 교복과 학용품을 지급받았다. 학교에서는 일본에서 온 재일교포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에서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관심과 배려를 받았고, 비용 부담 없이 다리 치료도 받았다고 한다. 황씨는 “수많은 의료인들이 피와 살을 아끼지 않고 치료해줬다”며 “자본주의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치료를 마친 황씨는 도(道) 인민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했고 노동당에도 입당했다. 황씨는 “사회주의 조국의 품은 가장 위대하고 따뜻한 삶의 보금자리”라며 “그 품보다 더 좋은 곳을 나는 모른다”고 썼다.

황씨의 수기는 재일교포들이 실제로 북한에서 받는 대접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은 재일교포들을 '째포'라는 경멸적 표현으로 비하할 뿐 아니라 적대계층으로 분류해 평생을 차별·감시한다. 1959년 12월부터 약 25년간 '조선은 차별 없는 지상낙원'이란는 거짓 선전에 속아 북송선을 탄 재일교포와 그 가족 9만3340명 대다수가 겪은 일이다. 이들이 이동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강제노동, 고문, 추방 등에 시달렸다는 증언이 부지기수다. 북한에선 재일교포라는 출신 자체가 주홍글씨다. 이런 사정을 재일교포뿐 아니라 일반 주민도 알고 북한 당국도 안다. 노동당 기관지에 '공화국 만세'를 외치는 재일교포의 수기가 실렸다는 것 자체가 석연찮은 일이다.

사실 황씨가 노동신문에 등장한 건 처음이 아니다. 노동신문은 1998년에도 황씨의 사연을 보도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사랑의 대지’란 영화까지 제작·방영됐다. 이 정도 유명인사면 재일교포 사회에서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황씨가 살았다는 함흥에 거주하다 2000년대 탈북한 재일교포 출신 이은택 한반도환경과인권을 위한 모임 대표는 "그런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실존 인물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노동신문은 황씨의 사진을 게재하지 않았다.

노동신문이 그런 황씨의 사연을 28년이나 지나 '재탕'한 것은 며칠 전 나온 일본 법원의 판결과 무관치 않다는 게 외교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앞서 도쿄지방재판소는 지난 26일 탈북한 북송 재일교포와 유족 등 4명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총 8800만엔(약 8억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일본 사법부가 북한 정부를 상대로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북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판결 소식이 북송 재일교포들에게 전해지는 건 시간 문제"라며 "이들이 동요하거나 체제에 불안 요소로 작용하는 상황을 북한 당국이 우려한 것 같다"고 했다. 판결의 파장을 희석하기 부랴부랴 가공의 재일교포 여성을 내세워 선제적 프로파간다에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외교가 일각에선 김정은의 '출생의 비밀'을 거론한다.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는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출신이다. 김정은은 이 사실이 주민들에게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한다. "백두혈통이 후지산 줄기에 오염됐다" "수령인 줄 알았는데 '째포'라니" 같은 비아냥이 분출한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수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다. 집권 14년이 지나도록 고용희를 국모로 내세우지 못하는 것도, 자신의 생일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출생의 비밀' 때문이다.

전직 국정원 간부는 본지에 "'째포 콤플렉스'가 있는 김정은에게 일본 법원의 판결은 상당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며 "석연치 않은 노동신문 보도는 수령의 우려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선전 일꾼들의 고뇌의 산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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