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7일 미국 정보기관의 두 수장이 미 상원 정보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와 이란이 미국을 위협할 만한 미사일을 갖고 있지 않으며 개발을 시작하더라도 성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증언했다. 미국 CIA 부장과 국가안보국 국장이 같은 견해였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공격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주장을 사실상 부정한 것이다. 트럼프가 네타냐후가 제공한 허위정보를 근거로 핵무장 국가가 핵을 갖지 않은 국가를 불법 공격하고 지도부를 폭사시키고 레짐 체인지를 획책,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안보 수장 격인 알리 라리자니(68)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을 표적 공습해 제거했다고 지난 3월17일 발표했고 이란 정부도 이를 인정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영상 메시지에서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라리자니가 제거됐다”며 혁명수비대 산하 바시즈 민병대를 지휘하던 골람레자 솔레이마니 사령관도 별도 공습으로 죽였다고 밝혔다.
카츠는 “라리자니와 솔레이마니는 하룻밤 새 제거돼 알리 하메네이 등과 함께 지옥의 심연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이란 현지 매체들은 지난 4일 스리랑카 영해에서 미국의 공격에 침몰한 이란 호위함 데나호의 사망 승조원들을 추모하는 그의 手記 메모 사진을 보도했다. 현지 매체들은 라리자니가 전날 이 메모를 썼다고 전했다.
이란 실정에 정통한 한 전직 외교관은 "이란 지도부에서 가장 신망이 높고 온건한 라리자니를 죽임으로써 미국과 이스라엘은 앞으로 자충수에 빠질 것이다. 휴전을 협상하려고 해도 지도력 있는 상대를 찾기 어려울 것이고 혁명수비대가 실권을 장악, 강경해질 것이다"고 했었는데 요사이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958년 이라크에서 출생한 라리자니는 테헤란의 샤리프 공대에서 전산학 학사, 테헤란대 대학원에서 서양철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란 방송(IRIB)에서 언론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980년 보도국장으로 승진했다. 1981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혁명수비대에 입대해 준장까지 진급했고, 문화이슬람지도부 장관, IRIB 사장,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국가안보고문 등을 역임했다.
2005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이후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알리 하메네이와 군 수뇌부가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후 생존 최선임자로 미국·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작전을 총괄했다고 한다. 알리 하메네이가 자신의 有故時 라리자니를 권한대행으로 임명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알리 하메네이 아들 모즈타바가 차기 최고 지도자로 선출될 당시에도 경쟁상대로 꼽혔다.
그는 지난 1월 反정부 시위를 유혈탄압하는 데도 관여하였고, 작년 이스라엘의 폭격 이후 국가안보회의 총장으로 복귀하였다. 그는 성직자 집안 출신인데 형은 의사, 동생은 대법원장을 지냈다. 독일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 연구자이기도 하다. 이념적 강경파라기보다는 실용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기습공격 직후 "미국과 달리 이란은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고 했었다.
라리자니와 한국은 인연이 있다. 2014년 라리자니 국회의장은 강창희 국회의장을 초청했다. 한국의 두 은행에 묶여 있는 석유수출 대금 약 60억 달러의 동결해제를 부탁하려고 했다. 우리 외교부도 라리자니에게 부탁할 건이 있었다. 런던에서 공부하던 한국 대학생이 이란을 여행하면서 군사시설 사진을 찍었다가 간첩죄로 장기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이었다. 그의 석방을 이란 측에 요구했더니 풀어주었다. 60억 달러는 한국 측이 이란 석유를 수입하고 원화로 두 시중은행에 입금한 것인데, 미국의 압력으로 동결된 것이었다. 2023년 9월 바이든 대통령 시절, 미국 행정부는 이란에 수감된 미국인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동결을 해제하도록 하여 묶였던 돈은 카타르 은행으로 移替되었다가 그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직후 미국의 압력으로 재차 동결되었다.
라리자니는 2017년 6월26~28일 한국에서 개최된 제2차 유라시아 국회의장 회의에 참석차 방한했다가 주한 이란 대사관의 소개로 이명박 정부 시절 에너지 대사로 활약했던 신재현 변호사를 만났다. 라리자니 의장은 한국의 성공적 경제개발 정책에 관심이 많아 관계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신 변호사는 개발연대 때 경제정책에 핵심적으로 관여했던 전직 장관에게 부탁, 라리자니와 만나게 했다. 호텔 회의실에서 라리자니를 처음 대면한 전직 장관은 자신이 쓴 책을 갖고 나와 전해주면서 경험담을 들려주었고 라리자니는 경청했다고 한다.
신재현 변호사는 "라리자니 집안은 성직자 가문으로서 늘 이란 권력층의 핵심에 있었다"면서 "하메네이 爆死 이후 실질적으로 이란을 이끈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이란 문명의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품격을 느끼게 해주는 라리자니 형제들을 생각하면 지금 트럼프의 무법 무도한 이란 공격은 성공할 수도 없고 결국 미국의 쇠락으로 이어질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 지도부를 무차별 암살하면 이란은 결국 과격한 젊은 장교들에 의하여 끌려 갈 것이고 미국도 협상 상대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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