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의 함정에 빠진 선관위의 무지가 빚은 참극
이번 지선에서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선관위의 무지와 안이함 때문이다.
선관위는 종전에는 당일(본투표) 투표용지를 대통령선거의 경우 선거인수의 최소 70%, 지방선거인 경우 최소 60% 확보하도록 한 지침을 2026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처음으로 최소 50% 확보하도록 10% 하향했다.
* 중앙선관위의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종합관리지침'
“선거일 투표용지 인쇄매수는 예상 사전투표율 및 최근 선거의 투표율 등을 감안하여 축소인쇄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위원회 의결로 선거인수 50%(하한)를 기준으로 조정할 수 있다.”
선관위는 당일투표지 확보량을 선거인수의 50%로 하향한 이유는 비용절감과 부정선거음론자들이 제기하는 의혹을 불식하기 위함이었다고 밝혔다. 잔여 투표지에 대해 음모론자들이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자 잔여 투표지량을 최소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선관위의 취지와 목적을 의심하지 않고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하향 조정 시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부작용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고, 세부적인 방법론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평균의 함정에 빠져 하향 조정안을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사전투표율은 높아지는 대신 당일투표율은 낮아지는 경향이 두드러지니 선관위의 하향 조정은 타당해 보이지만, 문제는 특정 지역, 특정 투표소에서는 전체적인 방향과 역행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간과했다.
전국적으로는 당일투표율이 하향 추세임에도 이에 역행해 당일투표율이 높아지는 투표소가 발생하는 이유는 대략 3가지이다.
첫째, 부정선거음모론의 영향이다. 음모론을 믿는 보수세가 강한 지역은 사전투표를 하지 않고 당일투표가 더 늘어난다. 이번에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진 송파구, 강남구, 광진구 구의2동이 이런 케이스이고, 보수가 강세인 서초구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는 50% 이상의 투표지를 준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둘째, 사전투표보다 당일투표가 더 편한 지역인 경우 당일투표율이 높다. 사전투표를 기피하는 보수세가 약한 지역이라도 사전투표소당 선거인 수가 평균보다 월등히 많은 지역이나 사전투표소가 너무 먼 대신 당일투표소가 가까운 경우 사전투표율이 떨어진다. 2020년 총선에서 부천시의 사전투표율이 전국 최저였던 이유는 부천시가 동 폐합을 하는 바람에 한 동의 선거인수가 전국 평균의 10배가 넘었고, 사전투표소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의 강서구와 성북구에서도 투표지 부족의 투표소가 발생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셋째, 사전투표가 끝난 후 당일투표일 사이 정치적으로 영향이 큰 사건과 사고가 발생할 경우 당일투표율이 올라간다.
전국적으로 이번 지선에서 당일투표율이 40%를 넘지 못했고, 서울시도 40%가 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번에 투표지 부족 사태가 가장 많이 발생한 송파구의 평균 당일투표율도 40%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 단위로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잠실4동, 7동, 가락2동 등에서는 당일투표율이 50%를 넘었고, 더 세부적인 단위인 투표소 단위에서는 55%가 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투표지를 50%만 준비한 투표소에서 당연히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 선관위 단위(시,군,구 단위)의 평균 당일투표율을 예상하고 이를 기준으로 일정 여유분을 더해 투표용지를 준비하게 하다 보니 동 단위, 투표소 단위에서 구 단위 평균보다 훨씬 높은 당일투표율이 발생하는 경우는 투표지 부족 사태를 막지 못한 것이다. 즉, 평균의 함정에 빠져 하향 조정안을 설계하다 이런 참극을 빚은 것이다.
또 하나 선관위가 간과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 지선의 경우는 대선과 총선과 달리 지역 선관위 단위의 투표지가 동일하지 않은 선거가 포함된다.
대선과 총선의 경우 지역 선관위 단위에서는 후보자가 동일하기 때문에 혹 투표지가 부족한 동이나 투표소가 발생하면 다른 투표소에서 남는 투표지를 돌려 공급하면 되지만, 지선의 경우 광역의회의원 선거나 기초의회의원 선거는 각 동마다 후보자가 달라 투표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투표소에서 남는 투표지를 돌려막기를 할 수 없다.
이번 사건으로 부정선거음모론자들과 윤어게인 세력들이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은 대형 부실 관리 사건으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정도로 엄중한 사건이지 통상적인 부정선거과는 무관하다.
필자도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례를 들었지만, 개표결과를 보면 오세훈이 정원오를 6만 표 이상 차이로 이겼기 때문에 투표지 부족으로 발생한 영향이 오세훈의 승리를 부정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재선거는 불필요하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부실관리로 판단했기 때문에 재선거를 사법부가 결정한 것이다.
이진숙이 재선거를 주장하는 것은 오버이며, 국힘당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정치적 발언이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한 윤석열을 옹호한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제에 불과하다. 장동혁이 국회에는 가지 않고 잠실7동 제2투표소로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이고. 황교안, 전한길 등 부정선거음모론자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더 황당한 것은 부정선거음모론자들을 그렇게 혐오하던 자들이 이번 사건을 부정선거의 증거인 양 몰아가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지금까지 윤석열의 계엄을 옹호했던 모순적인 행보를 보였는데, 이번 사건을 기화로 그 모순을 해소하려는 듯 투표지 부족을 부정선거 증거로 몰아가고 있다.
부정선거음모론자들이 제기하는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시도한 선관위의 안이한 조치가 오히려 부정선거음론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하고 더 날뛰게 하는 아이러니가 향후 정국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부디 모두 이성과 합리를 가지고 현명하게 대처해서 혼란과 갈등이 없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