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신장투석기' 받고도 선 긋기…교류=관계개선 공식 깨졌다

제한적 협력과 정치적 대립이 동시에 존재하는 관계.
최근 제주도와 북한 간 접촉 사례를 남북관계 개선의 신호로 섣불리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북한이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이후에도 제한적 협력과 실리 추구는 가능하지만, 이를 화해 국면의 전조로 보는 기존 접근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은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은 12일 공개한 ‘적대와 교류의 병행: 북·제주 접촉이 보여주는 북한의 대남전략’ 보고서에서 최근 북·제주 접촉 사례를 분석하며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이후에도 제주도와의 접촉에 비교적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신장 투석기와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약 등 필요한 지원 품목을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등 실질적 협력에는 관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북한은 지원 물품을 수령한 이후 의례적인 공식 회신조차 보내지 않았으며, 방북 초청이나 추가 협의와 같은 후속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박 연구위원은 이를 두고 “북한이 지원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남북관계 개선으로 확대하는 데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중앙정부가 아닌 제주도와 접촉한 배경에도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중앙정부와 직접 협력할 경우 자칫 ‘적대적 두 국가론’의 후퇴로 비칠 수 있어 부담이 크지만, 지방정부나 민간 채널을 활용하면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하면서 필요한 지원과 실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최근의 북·제주 접촉은 적대적인 두 국가가 서로의 국익을 위해 제한적 협력을 수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교류와 협력을 관계 개선의 필연적 과정으로 이해해온 기존 문법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향후 제한적 접촉이나 인도주의 협력이 재개되더라도 이를 과거처럼 화해 분위기 조성이나 관계 개선의 신호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은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분야에서는 실용적 협력을 병행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제주도는 지난 8일 제주도청에서 기자브리핑을 갖고 “지난 5월4일 남북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의료기기, 산림방재 약품, 한라봉 묘목 등 물품이 중국 다롄항을 거쳐 북한 남포항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이번 협력의 결과는 제주도와 북측 조선장애자후원회사와 2월 초부터 협력의 논의를 거쳐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5일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면담을 통해 제주형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을 논의했다고 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올 2월에 제주도 대표단은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관계자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남북협력사항에 대한 전반적인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했다. 협력은 감귤, 의료복지, 산림방재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단계적으로 양돈과 관광산업 등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정권이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공식화한 이후 남북 교류의 성격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과거에는 인도적 지원이나 민간 교류가 정치·군사적 긴장 완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제한적 협력과 정치적 대립이 동시에 존재하는 새로운 관계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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