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 투표지 부족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지 부족 사태는 선거관리 역사상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투표를 하기 위해 긴 줄을 서거나, 투표용지가 부족해 기다려야 했던 유권자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 행사에 불편을 겪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1차적인 책임은 선거를 직접 관리하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있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함께 책임자에 대한 엄정한 책임 추궁,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책임을 선관위에만 돌리고 국회가 스스로의 책임을 외면한다면, 같은 문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 역시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선, 국회는 헌법상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통해 행정부와 국가기관을 감시, 통제하는 권한을 가진다. 선거관리위원회 역시 일정 범위에서 국회의 견제와 감시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그동안 선관위의 조직 운영, 인력구조, 투개표 준비 체계, 위기 대응 시스템 등에 대한 실질적인 점검과 제도 개선 논의는 충분했다고 보기 어렵다. 선관위의 비효율이나 조직 운영상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면, 국회는 이를 입법과 감시를 통해 개선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또한 국회는 공직선거법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유일한 입법기관이다. 그럼에도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정을 장기간 그대로 두거나, 시대 변화에 맞는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과도한 선거운동 규제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었고, 정치신인의 진입 장벽이나 소수정당의 정치 참여 확대와 관련된 제도 개선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위성정당 문제 역시 제도적 허점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었지만, 국회는 이를 둘러싼 입법적 논의를 충분히 매듭짓지 못했다.


아울러 공직선거법, 선거관리위원회법, 정치자금법, 정당법은 상당수 규정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규칙이나 유권해석에 의존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그 결과 선관위는 선거관리기관인 동시에 방대한 법률 해석과 규제 집행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고, 선거운동의 적법 여부를 판단하고 정치자금과 정당 활동을 관리, 감독하는 업무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구조가 투표와 개표라는 본연의 관리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국회는 이러한 제도 설계가 적절한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하면 법률을 정비할 책임이 있다.


이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단순히 현장의 준비 부족만이 아니라, 선거관리체계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국회는 선관위를 비판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왜 이러한 문제가 반복될 수 있었는지 입법부의 역할과 책임도 함께 성찰해야 한다. 감시해야 할 기관을 제대로 감시했는지, 시대 변화에 맞게 법률을 정비했는지, 선관위가 핵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물론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을 모두 국회에 돌릴 수는 없으며, 실제 투표용지 수급과 현장 운영은 선관위의 책임 영역이다. 그러나 국회는 선거제도와 선거관리체계를 설계하고, 이를 감시, 평가하는 헌법상 책무를 가진 기관이다. 이러한 책무를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책임 역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국민의 참정권은 어느 한 기관만의 노력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정하고 정확한 선거를 집행해야 하고, 국회는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과 제도를 마련하며 적절한 견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관위의 책임뿐 아니라 국회의 입법과 감시 기능도 함께 되돌아보고, 양 기관 모두가 국민 앞에 책임 있는 자세로 제도 개선에 나설 때 비로소 같은 문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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