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혜인은 장관 후보도 사퇴하고 국회의원도 사퇴하라

과욕으로 인생 종치는 정치인들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능력일 수도 있고, 정치적 경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는 것이 있다. 공직에 대한 절제와 염치, 그리고 자신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자세다.


국민에게 공정과 정의를 말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예외를 요구하는 정치인, 특권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누리는 특권은 끝까지 움켜쥐는 정치인, 다른 사람에게는 원칙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경우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 한마디로 빠져나가려는 정치인이라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말해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최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의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둘러싼 논란은 바로 이 정치인의 염치와 공직윤리라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용 후보자는 장관으로 임명되더라도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법상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을 겸직하는 것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원이 장관에 입각하면 의원직을 사퇴하고 다음 순번 후보자가 승계하는 것이 정치권의 관례였다.


용 후보자는 자신이 사퇴하면 기본소득당이 원외정당이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 대목에서 국민은 묻는다. “그것이 정말 국민을 위한 선택인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지위와 당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인가?”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정치적으로 옳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법적으로 된다’는 말이 ‘공직자로서 옳다’는 뜻은 아니다. 용혜인 후보자의 문제는 단순히 국회의원직을 겸직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공직을 맡으면서도 기존의 정치적 지위와 정당의 이익까지 동시에 지키겠다는 태도다.


비례대표 의원은 특정 지역 유권자의 개인적 선택으로 당선된 지역구 의원과 성격이 다르다. 정당의 비례대표 명부를 통해 의석을 얻고, 의원이 그 직을 내려놓으면 다음 순번 후보자가 승계할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돼 있다. 그런데 장관이 되면서도 자신의 의원직을 유지하겠다면, 그 결과는 결국 한 사람이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이라는 두 개의 정치적 지위를 동시에 움켜쥐는 것이다.


더구나 용 후보자는 21대와 22대 총선에서 범여권 비례위성정당을 통해 연속 당선됐다는 점에서도 비례대표제와 위성정당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더욱이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단순한 정치적 보직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공정과 평등, 차별과 특권의 문제를 다루는 자리다. 그런 자리의 후보자가 “법에 겸직 금지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하나 더 보유하겠다고 한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공직윤리는 법의 최소 善을 지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법에 명시적으로 금지되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공직자로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관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법의 최소 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자기절제가 요구된다.


과거 장관직을 욕심내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고 결국은 임명되자마자 바로 여론의 압력으로 사퇴했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른바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던진 가장 큰 질문 가운데 하나였다.


조국이 무너진 이유는 단순히 개인적인 흠결 때문이 아니다. 공정을 강조하던 사람이 자신의 가족 문제에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는 인식이 국민에게 각인됐기 때문이다. 자녀 입시비리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장관은 결국 대법원에서 징역 2년과 추징금 600만원이 확정됐다.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의원직도 상실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순히 조국이라는 한 정치인의 몰락이 아니다. “나는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므로 나의 경우에는 다르게 봐달라”는 정치적 특권의식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국민에게 공정을 요구하는 정치인일수록 자신의 가족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남의 자녀에게는 공정한 경쟁을 요구하면서 내 자녀에게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인맥, 정보와 영향력을 활용한다면 그 순간 공정이라는 말은 허울이 된다.


조국 사태가 우리 사회에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공정을 말하는 것과 공정하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인은 전자보다 후자를 먼저 보여줘야 한다.


이혜훈 전 의원의 경우는 또 다른 의미에서 정치인의 공직윤리를 생각하게 한다. 2026년 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던 이혜훈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러 의혹과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낙마했다. 당시 보좌진에 대한 갑질 의혹과 부동산 관련 의혹, 국회의원 재직 당시 특혜 논란 등이 잇따라 제기됐다.


특히 재산 형성과 부동산 거래를 둘러싼 의혹은 고위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이라는 관점에서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었다. 언론 보도에서는 과거 부동산 거래와 배우자의 토지 거래 등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물론 의혹이 제기됐다는 것과 불법이 확정됐다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장관 인사청문회는 형사재판이 아니다. 장관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순히 “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이 없으니 문제없다”는 수준의 자격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을 다루고 국가의 예산을 책임지는 기획예산처 장관이라면 오히려 일반 국민보다 훨씬 높은 도덕성과 설명 책임이 요구된다.


그래서 이혜훈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직자라는 것”은 다르다.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는 더욱 상징적이다.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직장 내 갑질과 권력관계의 불평등에 대한 감수성이다. 그런데 강 전 후보자는 장관 후보자 지명 이후 보좌진에 대한 갑질 의혹과 해명 논란에 휘말렸고, 결국 자진 사퇴했다.


특히 장관 후보자가 자신의 보좌진처럼 상대적으로 권한이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했느냐는 문제는 단순한 사생활 문제가 아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약자를 대하는 방식 자체가 공직자의 품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성가족부 장관은 직장 내 성평등과 차별, 약자 보호 등을 책임지는 자리다. 그런데 바로 그 장관 후보자가 보좌진에 대한 갑질 논란으로 낙마했다면 국민이 느끼는 괴리감은 클 수밖에 없다.


네 사람의 공통점은 ‘법의 최소선’과 ‘공직자의 도덕선’을 혼동하는 데 있다. 공직자의 자기절제와 특권의식이라는 관점에서 국민이 느끼는 문제의식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장관은 ‘한 자리 더 얻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를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용혜인 후보자에게 특히 묻고 싶다. 장관이 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국회의원직까지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기본소득당이 원외정당이 되는 것이 걱정된다면, 그것은 정당의 문제다. 장관은 국가의 일을 맡는 자리이지 자신의 정당을 국회에 계속 남겨놓기 위한 보험이 아니다. 비례대표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후순위 후보자가 승계할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한다. 그런데 본인이 사퇴하면 정당이 원외정당이 된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유지하겠다면, 국민들은 기득권과 특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성인군자가 아니다. 최소한의 염치다. 정치인에게 완벽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참기 어려운 것은 실수 그 자체보다 자신에게만 관대한 태도다.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특혜를 받았으면 내려놓고, 의혹이 있으면 자료를 공개하고, 설명이 부족하면 더 설명하고, 공직을 맡기 위해 필요한 희생이 있다면 기꺼이 감수하는 것. 그것이 공직자의 기본 자세다.


공직은 권리가 아니라 책임이다. 장관 자리는 자신의 정치적 경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발판이 아니다. 국회의원직 역시 평생 누릴 수 있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모두 국민이 잠시 맡긴 자리다. 그런데도 정치인이 국민에게는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면서 자신은 끝까지 특권을 움켜쥔다면, 국민이 등을 돌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치인은 국민보다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감당해야 한다.


용혜인 후보자의 이번 논란이 단순한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 문제의 본질은 정치인이 자신의 기득권을 어디까지 내려놓을 수 있느냐에 있다. 조국 사태는 공정을 말하던 정치인이 공정의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보여줬다. 이혜훈 사례는 장관 후보자가 아무리 정치적 경력과 전문성을 내세워도 각종 의혹과 공직윤리 논란을 국민 눈높이에 맞게 해소하지 못하면 결국 조직 전체에 부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강선우 사례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약자를 어떻게 대했는지가 장관의 자격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제 용혜인 후보자가 시험대에 올랐다.


장관도 하고 국회의원도 하겠다는 선택이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스스로 답해야 한다. 국민은 정치인의 말보다 행동을 본다. 공정을 외치는 정치인에게는 공정한 행동을 요구하고, 특권을 비판하는 정치인에게는 특권을 내려놓는 용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개혁을 말하는 정치인에게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부터 개혁할 것을 요구한다. 정치인이 국민에게 신뢰를 되돌려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라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면 내려놓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실제로 내려놓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진짜 공직자다.


장관 자리를 탐하면서 국회의원직까지 움켜쥐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권력이 아니라, 권력을 내려놓을 줄 아는 염치다. 그리고 국민이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것도 결국 하나다. “남에게 요구한 원칙을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라.” 그것이 공정이고, 그것이 상식이며, 그것이 정치의 최소한의 도덕이다.



● 아래는 이기철님의 글이다. 일독을 권한다.


< 워킹맘 코스프레는 그만하시라 >


용혜인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내놓은 소감에서 딱 한 문장에 눈이 멈췄다.

“30대 워킹맘으로서.”


그 말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솔직히 재수없음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무슨 일이든 하고 있으면 모두 똑같은 ‘워킹맘’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사전적 말장난을 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워킹맘’이라는 말이 어떤 삶을 가리켜왔는지를 묻는 것이다.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이 오면 상사 눈치부터 보고,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늦을까 발을 동동 구르고, 육아휴직을 쓰면 돌아왔을 때 내 자리가 남아 있을지 걱정하고, 아이 때문에 승진에서 밀릴까 두려워하면서도 월급이 끊기면 당장 생활이 흔들리기에 악착같이 직장을 붙들고 살아가는 여성들. 출근하면서 아이에게 미안하고, 퇴근하면서 회사에 미안하고, 어디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사정을 말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불러온 ‘워킹맘’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장관 후보자가 되자 자신을 설명하는 말로 느닷없이 ‘30대 워킹맘’을 꺼내 들었다. 참으로 편리한 정체성이다. 국회의원의 권력을 행사할 때는 헌법기관이고,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세비와 보좌 인력과 각종 지원을 받을 때는 고위 공직자인데,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설명할 때는 갑자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0대 워킹맘’이 된다.


권력은 권력대로 누리고, 서사는 평범한 노동자의 것을 가져다 쓴다. 나는 바로 그게 같잖다. 용혜인은 2021년 생후 두 달 된 아이를 데리고 국회에 출근했다. 그 장면은 언론의 카메라에 담겼고 ‘아이 동반 국회 출근’이라는 정치적 메시지가 됐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평범한 워킹맘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생후 두 달 된 아이를 안고 회사에 출근하면 회사에서 어떻게 받아줄까. 국회의원처럼 카메라가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회사에 애를 왜 데리고 왔느냐”는 말을 먼저 듣게 될까. 이것이 권력과 노동의 차이다.


더구나 2023년 용혜인은 부모와 남편, 아이와 제주 가족여행을 하면서 김포공항 귀빈실을 이용해 논란이 됐다. 당시 규정상 공무 수행 때 이용하는 시설이었고 부모는 동반 이용 대상도 아니었다. 논란이 일자 용혜인 측은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며 사과하고 비용을 납부했다. 평범한 워킹맘들이 가족여행을 떠날 때는 어떤가. 휴가 하루 받으려고 눈치를 보고, 비행기값 몇 만 원 차이를 찾아가며 예약하고, 아이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공항을 뛰어다닌다.


그런 사람들의 삶과 국회의원의 삶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있다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이니까 보좌진도 필요하고 의정활동을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 문제는 그렇게 특별한 권력과 제도적 자원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만들 때는 평범한 여성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에서 만들어진 언어를 아무렇지 않게 가져다가 자신의 훈장처럼 다는 것이다.


더 우스운 것은 민주당도 기다렸다는 듯 ‘30대 워킹맘’을 다시 받아 장점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후보자는 “30대 워킹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여당은 “30대 워킹맘”으로서 현실을 담아낼 역할을 기대한다고 화답한다. 이쯤 되면 개인적인 자기소개가 아니라 정치적 브랜드다.


성평등가족부 장관에게 필요한 것은 ‘워킹맘’이라는 자기소개가 아니다. 평범한 워킹맘들의 삶을 얼마나 바꿀 능력이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아이 때문에 조퇴했다가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 여성, 출산했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밀리는 여성, 육아휴직을 썼다가 돌아갈 자리가 사라진 여성, 아이 맡길 곳이 없어 결국 직장을 포기하는 여성, 생활비 때문에 아픈 몸을 끌고서라도 출근해야 하는 여성. 그 사람들이 장관에게 요구하는 것은 “나도 워킹맘이에요”라는 동질감 놀이가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장관 후보자라면 ‘30대 워킹맘’이라는 감성적인 자기소개 대신 자신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말하시라. 당신이 엄마인 것은 장관의 자격이 아니다. 당신이 30대인 것도 장관의 자격이 아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워킹맘이라고 부르는 것은 더더욱 장관의 능력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자의 특혜와 자원은 그대로 누리면서 평범한 노동자의 고단함에서 만들어진 이름까지 가져다가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로 쓰지는 마시라. 워킹맘은 정치인의 액세서리가 아니다. 당신의 프로필 한 줄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이름은 더더욱 아니다.


진짜 워킹맘들은 오늘도 카메라 없는 곳에서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서 눈치를 보고, 월급을 벌기 위해 뛰고 있다. 그들의 고단한 삶에 숟가락 얹으면서 그걸 자신의 정치적 자산인 양 내세우는 것. 나는 그게 정말 너무 재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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