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과 휘트니 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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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 개막식

 

38년 전 9월을 생각하면 가슴부터 뛴다. 전날 서울엔 폭우가 쏟아졌지만 9월17일 서울올림픽 개회식은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힘차게, 신나게 펼쳐졌다.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던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어 잠실로 달려갔고, 그 뒤 2주, 경기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대한민국이 가장 아름다웠던 나날이었다. 박종규(세계사격연맹회장)는 국가선진화의 비전을 담아 서울올림픽 유치를 건의했고 박정희는 시해사건 직전에 이를 승인했으나 정변으로 잊혀진 것을 다시 살려낸 이는 전두환이었다. 그에게 올림픽 유치를 권한 이는 ‘일본의 국사(國士)’로 불리던 세지마 류조(소설 ‘불모지대’의 주인공)였다. 나고야가 올림픽 유치에 나선 때였다. 

 

두 차례 반쪽 올림픽(모스크바, 로스엔젤레스)에 이어 서울올림픽도 그렇게 될 뻔했는데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등장이 운명을 바꿨다. 

 

1986년 11월, 김일성의 방소(訪蘇) 한 달 뒤 모스크바에서는 세계 사회주의 나라들의 정상회의가 열렸다. 고르바초프는 김일성이 찾아와 서울올림픽 보이콧을 종용했으나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 회의에서 남북한이 공동개최를 하는 방향으로 노력해 보고 그것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공산권 국가들(모두 스포츠 강국)도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기로 결정되었다.

 

전두환은 1987년 6월18일 부산에서 시위대가 시청을 포위하는 것을 보고 다음 날 군 출동 준비 명령을 내렸으나 오후에 취소했다. 계엄령 선포 소문이 퍼지도록 하여 자제를 유도하기 위한 심리전이었다. 그는 군대를 동원하면 서울올림픽은 날아간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올림픽은 정권과 시위대 양쪽에 다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 그 열흘 뒤, 무혈(無血) 민주화의 길을 연 전두환-노태우 합작의 6·29 선언은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 


아무리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아주 드물게 선의(善意)가 모여서 힘이 되어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 수가 있다. 1950년 6·25 남침 때의 유엔군 파병과 38년 뒤의 서울올림픽이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서울올림픽을 매개로 하여 한국의 민주화와 선진화, 소련 및 동구 공산체제의 붕괴, 그리고 북한정권의 몰락이 대세화(大勢化)되었다는 것은 이젠 정설(定說)이다. 서울올림픽은 도저히 불가능한 조건에서 성공하였는데, 그 동력은 착한 마음들의 세계적 집합이었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스탈린·모택동·김일성 세 악당의 음모를 저지하고 살아남았던 나라가 자유세계에 보은(報恩)을 한 셈이었다. 

 

그런데 세계인들의 선의에 악의(惡意)로 답한 것은 김일성 정권이었다. 그들은 서울올림픽 저지를 목표로 삼고, 1983년 아웅산 테러, 1987년 대항항공기 폭파 사건을 벌이면서도 공동개최란 미끼를 던지고 대응행사로 세계청년축전을 추진했다. 이런 음모는 그야말로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실패했다. 미얀마 외무장관이 정시(定時)에 와서 전두환 대통령을 아웅산 묘소로 안내했더라면 17명의 사망자는 18명이 되었을 것이고, 한국군은 올림픽을 포기하고서라도 대북(對北) 응징에 나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다. 

 

일본 외교관이 바레인 공항에서 가짜 일본여권을 사용한 김승일·김현희 조(組)의 출국(탈출)을 저지하지 않았더라면, 바로 그 자리에서 김현희가 독약이 숨겨진 담배개비를 깨물 때 어머니 생각에 멈칫하지 않았더라면 115명이 죽은 폭파사건은 안기부의 자작극으로 몰려 서울올림픽의 분위기를 망쳤을 것이다. 북한정권은 평양세계청년축전 개최에 50억 달러를 투입했는데 이게 경제를 말아먹어 1990년대의 ‘고난의 행군’을 예약했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은 도덕 교과서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인이 꼭 기억해야 할 이름이 더 있다. 너무 일찍 죽어 남긴 노래가 더욱 소중해진, 불멸의 가수 휘트니 휴스턴이다. 서울올림픽 중계사 미국 NBC의 의뢰로 그가 부른 ‘원 모먼트 인 타임’(One Moment In Time)은 미국과 유럽에서는 비공식 서울올림픽 주제가로 통한다. 4분이 넘는 이 열창(熱唱)은 역대 올림픽 주제가 랭킹에선 부동(不動)의 1위이다. 공식 주제가는 물론 ‘벽을 넘어서’란 올림픽 정신을 담아 그룹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잡고’인데 이 노래도 역대 3위권이다. 두 노래를 포함해 랭킹을 매긴다면 역대 최고의 올림픽 개회식은 단연 서울올림픽이다. 전(全) 세계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고 마음을 사로잡은 개회식이 역사를 바꾼 것이다.

 

전두환은 ‘올림픽 성공은 선진국으로 가는 문고리를 잡는 것이다’고 했고 박세직(朴世直) 조직위원장은 성공여부는 시청률이 가장 높은 개회식에 달렸다고 판단, 집중투자했다. 나는 그에게 ‘이름 뜻이 세상을 바로잡을 분’이라고 농담을 했다. ‘올림픽’이란 브랜드를 활용, 세계적 조각가들의 작품을 거의 공짜로 모은 서울올림픽 조각공원도 그의 작품이다. 그들은 민주화의 열병을 앓고 있던 시절 ‘제2의 베를린 올림픽’이란 저주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위대한 유산’을 만들고 있었고, 우리는 그것들을 즐기면서 이름들은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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