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이 논란이 되자, 황현필, 이덕일 등 유사 역사학자들이 나서서 영화 내용과 실제 사실과 비교하며 <암살자(들)>을 옹호하고 있는 가운데,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 여러 매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썬킴‘도 최욱의 <매불쇼> '거침없는 세계사'에서 이 사건에 대해 약 51분간 다뤘다.
방송 제목부터 “육영수 여사를 죽인 진짜 범인은?”에서 알 수 있듯이 썬킴도 영화 <암살자(들)>에서 보여준 허진호 감독과 같은 시각으로 이 사건을 대중들에게 설명했다.
썬킴이 매불쇼에서 이야기한 내용은 영화 <암살자(들)>보다 더 심각하다. 영화 속의 ‘허구’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라는 핑계로 피해 갈 구석은 있지만, 썬킴은 대놓고 사실을 왜곡해 영화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함으로써 대중들이 영화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믿게 만들었다.
썬킴이 얼마나 ‘문세광의 8.15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왜곡해 51분간 떠들었는지 지금부터 하나하나 따져 보자.
1. 문세광이 사용한 권총은 경호원이 사용한 권총과 동일하다?
썬킴은 문세광이 사용한 권총은 경호원들이 사용한 권총과 동일한 기종으로 암살용이 아니며, 문세광이 일본 오사카 경찰서에서 훔치지 않은 듯이 말했다. 썬킴의 이 말은 우리측(중정)이 문세광에게 권총을 제공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문세광이 사용한 미제 5연발 Smith&;Wesson 38구경 리볼버 권총은 오사카 경찰서에서 자신이 직접 훔친 게 확실하며 경호원들이 사용한 권총과는 다른 기종이다. 경찰의 권총 도난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미 일본에서 있었음에도 썬킴은 도난 사건 자체가 없었다는 듯이 말하기도 했다.
일본 경찰은 문세광의 집과 차량 등을 수색해 도난당한 권총 중 한 정과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공구 등을 발견했다. 또 한국 측에서 전달받은 탄환·탄피와 일본 경찰이 보관하던 권총의 시험 발사 탄환·탄피를 비교해, 강선 흔적과 공이 자국이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에 따라 일본 경찰은 권총 절도를 문세광의 범행으로 판단했다.
경호원의 오발로 무대 천장에 피격되었던 탄두를 국과수가 감정 분석한 결과, 문세광이 사용한 권총의 총탄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썬킴은 경호원이 사용한 권총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2. 문세광이 민단 소속인 것만 밝히고 한청에서 反박정희, DJ지지 활동한 것에 대해서는 함구
썬킴은 문세광이 親남한 조직인 민단 소속이었다는 점만 밝히고 김성일 선집, 모택동 어록, 공산당 선언 등 좌익 서적을 탐독하고 공산 혁명을 꿈꾼 열혈 공산주의자였던 사실과 反박정희, DJ지지 단체인 한청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는 사실, DJ의 연설을 직접 들었던 사실, 오사카 조총련 정치부장 김호룡과 2년간 월 2회 만났던 사실, 조총련 소속의 병원장 소유인 도쿄 적부동 병원에서 1달간 입원해 사상교육을 받고 권총 다루는 연습을 했던 사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문세광을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청년인 것처럼 묘사했듯이 썬킴도 문세광이 한국에 우호적인 민단 소속이었음으로 박정희 대통령이나 남한에 반감이 없어 대통령과 영부인 저격에 스스로 참여할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인식하게 하여 중정의 꼬임에 자작극에 이용당한 인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문세광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이 진주여서 문세광 집안이 민단 소속이었을 뿐, 문세광은 전공투와 적군파가 득세했던 당시 일본의 좌익 분위기에 편승해 공산주의를 신봉한 소영웅주의에 빠진 열혈 청년이었다는 사실은 썬킴은 말하지 않았다.
3. 문세광이 탄 차량은 등록이 안 된 차량이었다?
썬킴은 이건우 감식계장의 말을 인용해 문세광이 조선호텔에서 국립극장까지 이동하면서 사용한 콜택시 포드200M 차량의 번호가 위장된 것으로 등록이 안 된 차량번호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차량의 소유주인 김사복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이 차량 번호는 1091호로 위장 번호가 아니었고, 김사복 소유의 차량이었으며, 문세광을 태워준 기사는 김사복의 스페어 운전기사 황수동이었다. 만약 중정이 동원한 차량이고 위장 번호였다면 김사복이 살아 생전에 이런 사실을 폭로하지 않았을 리 없다.
김사복이 어떤 인물인지 안다면 썬킴은 절대 저런 주장을 하지 못한다. 김사복은 영화 <택시 운전사>의 실제 모델로 1980년 5·18 당시 독일 기자 힌츠페터 일행을 광주까지 데려다 주었고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다. <택시 운전사>에서는 김사복이 형편이 어려워 돈을 벌기 위해 우연히 힌츠페터 일행을 광주까지 일반 택시로 태워 준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사실은 김사복과 힌츠페터는 이미 알고 지낸 사이로 김사복이 김포공항까지 가서 힌츠페터 일행을 맞아 광주까지 태워 주었다.
김사복은 열렬한 김대중 지지자였고, 장준하, 함석헌 등 당대의 재야 인사와 교분도 상당해, 1975년 장준하의 의문사(사실 의문사가 아니라 사고사였음) 당시 힌츠페터와 사고 현장까지 함께 갔다. 1975년 김사복이 함석헌 등 재야 인사와 힌츠페터 일행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으며, 아들 김승필이 증언한 내용도 있다.
이 정도면 문세광과 중정의 자작극보다는 문세광-김사복-김대중의 연결이 있었는지 의심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물론 필자는 8·15 육 여사 피격 사건과 김대중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4. 허벅지를 관통했는데 멀쩡하게 걸었으니 이상하다?
썬킴은 당시 감식계장이었던 이건우 경감의 말을 인용해 오발을 해 허벅지 관통상을 입었다던 문세광이 멀쩡하게 걸었다고 주장한다. 썬킴이 이건우의 전언을 소개한 것은 우리측 수사기록을 믿지 못하고 우리측 자작극 가능성을 시청자가 느끼게 하기 위함으로 보였다.
문세광은 권총을 꺼내다 오발로 자신의 허벅지를 쏴 관통상을 입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허벅지 관통상을 당했지만, 주요 혈관이나 운동신경을 손상하지 않아 다리의 움직임에 지장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현장검증이나 재판정 등 문세광이 노출될 때 문세광은 큰 불편없이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건우는 이것 외에도 사실과 다른 주장들을 많이 했는데 모두 어떤 근거도 없고 그냥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 하기 위해 모든 상황을 그에 맞추어 아무렇게나 던졌는데, 이를 썬킴은 검증도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5. 중정의 감시 대상이었던 문세광에게 어떻게 비자 발급이 되었냐고?
썬킴은 문세광이 위조 여권을 사용해 한국 오사카 영사관에 비자 신청을 했을 것인데 중정 감시를 받던 문세광에게 비자 발급이 되었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문세광의 위조 여권 취득을 도운 요시이 미키코는 처벌받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여권 위조를 도와준 요시이 미키코를 일본측이 처벌하지 않은 것을 보니 일본 측은 위조 여권에 책임이 없고, 한국측이 자작극을 위해 문세광의 위조 여권도 중정측이 만들어 준 것이고, 그래서 비자 발급도 문제없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일본 측 수사 결과를 보면, 문세광은 내연녀 요시이 미키코를 통해 그녀의 남편 요시이 유키오의 호적등본과 주민표를 확보했고, 이 서류를 이용해 요시이 유키오 명의의 일반 여권을 발급받았다. 1973년 11월 19일 문세광은 요시이 미키코와 함께 홍콩으로 여행했는데, 일본 측 수사 결과는 이 여행이 해당 신분(위조 여권)으로 해외 출입국이 가능한지 시험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경찰은 국내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뒤, 1974년 12월 25일 문세광을 권총 절도, 살인예비, 여권 관련 위반,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오사카지검에 송치했다. 요시이 미키코는 여권 부정 취득을 도운 혐의로 기소됐고, 1975년 3월 7일 오사카지방법원에서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일본 측 수사 결과를 보면, 위조 여권 발급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 측에 있으며, 위조 여권 발급에는 한국 측 관여는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당하게 일본인 이름을 가진 일본 여권을 가지고 비자 신청을 하는데 영사관 직원이 그걸 믿고 비자를 발급한 것인데 왜 이상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문세광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여권으로 비자 신청을 했다면 걸러져 비자 발급이 거부되었겠지만, 일본인 ‘요시이 유키오’가 신청한 비자를 무슨 명분과 이유로 거부할 수 있을까?
6. 총성이 7번, 총탄도 7발이라고?
썬킴은 당시 현장에서 7발의 총성이 울렸고, 문세광이 4발, 경호원이 3발 발사했으며, 경호원이 육 여사를 부축하기 위해 무대를 뛰어들었던 탁금선씨를 육 여사를 위해하기 위한 것으로 오인한 경호원이 탁금선씨를 향해 쏘았다가 장봉화를 맞혔고, 경호원이 쏜 나머지 2발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당시 벌어진 상황을 전혀 모르고 수사 기록도 보지 않고 이건우 말만 듣고 하는 개소리에 불과하다.
당시 상황은 생중계되었기 때문에 동영상과 음향이 그대로 다 공개되었다. 음향 분석을 해 보면 총성은 6발(문세광 4발, 경호원 2발)이었고, 현장의 탄착점도 6군데(문세광 허벅지(객석 B214), 연단 상부, 육영수 여사 이마, 중앙의 태극기, 장봉화(객석 D100), 무대 동북쪽 천장)였다. 다큐인 MBC PD 수첩,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꼬꼬무도 총성 6번, 발사된 총탄 6발, 탄착점 6군데라고 설명했다. 경호원이 쏜 총탄은 장봉화와 무대 천장에 맞았고, 나머지는 문세광이 쏜 총탄이다. 수사 기록이나 다큐를 보아도 문세광의 흉탄에 육 여사가 돌아가신 것은 분명하다.
썬킴이 7발의 총성이라고 하는 것은 불발탄인 문세광의 제3번째 총탄이 불발된 것을 포함했거나, 육 여사가 피격된 후 1분이 훨씬 지난 시점에 났던 약간 큰 소음을 일컫는 것일 뿐, 이를 총성으로 분석한 전문가는 없다.
경호원이 탁금선씨를 저격하다가 그 총탄에 장봉화가 맞았다는 썬킴의 주장도 말도 안 된다. 장봉화는 객석 10열(D100)에 앉아 있었고, 탁금선씨는 객석 1열에 있다가 무대로 뛰어 올라갔는데 무대에 뛰어 오른 탁금선을 겨냥한 총탄이 객석 10열에 있는 장봉화가 맞을 수 있나? 고도로 훈련된 경호원이 불과 15m 정도의 거리에서 조준(목표, 탁금선)했는데 10m 이상 떨어진 지점(장봉화, 객석 10열)에 사격을 하겠는가?
경호원은 문세광이 사격을 시작하자 객석 1열과 무대 아래에 있던 문세광을 향해 쏘았다가 그 대각선상의 D100호석에 있던 장봉화를 맞힌 것이다.
7.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격 방향과 반대쪽으로 쓰러졌으므로 문세광이 쏜 총에 맞지 않은 것이다?
썬킴은 육 여사가 문세광의 총구 방향과 반대 방향인 오른 쪽으로 쓰러졌음으로 문세광이 아닌 다른 사람의 총에 맞은 것처럼 주장했다. 이것은 육 여사의 부검 결과도 무시하고 실제 피격 시의 신체의 반응도 모르고 하는 개소리이다.
영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의 논리는 대략 이렇다. 총탄은 앞에서 왔다 -> 케네디의 머리가 뒤로 움직였다 -> 따라서 뒤쪽의 오스왈드 한 명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 앞쪽 Grassy Knoll에도 저격수가 있었다 -> 따라서 음모가 있었다.
이런 논리로 “Back and to the left”, 즉 “뒤쪽으로, 그리고 왼쪽으로 젖혀졌다.”고 주장하며 오스왈드가 아닌 제3의 인물이 케네디를 저격했다고 음모론을 펼친 것이다.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머리에 총격을 받은 순간을 촬영한 자프루더 필름(Zapruder film)에는 케네디의 머리와 상체가 뒤쪽·왼쪽으로 크게 움직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 때문에 “뒤에서 총을 쐈다면 케네디는 앞으로 쓰러져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뒤로 날아갔으니 앞쪽, 즉 Grassy Knoll에서 총을 쏜 것 아닌가?”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제기됐다.
하지만 실제 조사에서는 머리의 움직임 자체를 총격 방향의 결정적인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검 X-ray와 사진, 입·출구 상처 분석 등을 종합해 두 발 모두 뒤에서 왔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총탄이 머리를 때리는 순간의 단순한 “총알의 운동량 → 사람의 몸이 총알 반대 방향으로 이동”이라는 단순한 모델로는 실제 인체의 반응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HSCA가 검토한 설명 중 하나는 신경근육 반응(neuromuscular reaction)이었다. 머리에 치명적인 손상을 받으면 신경계가 순간적으로 교란되어 등과 몸통의 근육이 강하게 수축할 수 있고, 이 때문에 머리와 상체가 뒤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총탄이 머리를 때리는 순간의 1차적인 움직임과 수 밀리초 뒤 나타나는 신경근육 반응을 구별해야 한다고 한다.
케네디 역시 뒤쪽에서 발사된 것으로 판단된 총탄에 맞은 뒤 머리와 상체가 뒤로 움직였지만, 그 움직임 자체는 전방 사격의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미국 HSCA의 법의학 패널은 X-ray·부검사진·상처 분석 등을 종합해 두 발 모두 뒤에서 들어왔다고 판단했다.
육 여사도 피격 순간에는 약간 좌측(문세광의 총격 방향)으로 움직였다가 곧바로 우측으로 쓰러진다. 케네디 피격 사례에서 보듯이 썬킴의 주장은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헛소리이다.
8. 총소리가 다르다?
썬킴은 육 여사 피격 순간에 난 총소리는 문세광의 총격 소리와 다르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썬킴은 앞에서는 경호원의 권총과 문세광이 사용한 권총은 같은 기종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번에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썬킴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그 때 그 때 자신이 주장하는 의혹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말이 모순되는 줄도 모르고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문세광이 육 여사를 저격하는 순간에 경호원이 문세광을 향해 쏘았다가 장봉화를 맞혔기 때문에 음향 분석에서 총격의 위치도 다르고 권총 기종도 달라 두 총소리가 다르게 들린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세광의 총구는 육 여사에게, 경호원의 총구는 문세광에게 가 있었기 때문에 다르게 들린 총성은 경호원이 쏜 총격에 의한 총성으로 육 여사를 맞힌 총격에 의한 것이 아님이 명백하다.
9. 문세광의 판결과 사형 집행이 빠른 것이 의아하다?
썬킴은 문세광이 8월 15일 사건이 발생한 후 채 4개월이 조금 지난 12월 20일에 신속하게 사형이 집행된 것은 자작극을 덮으려 했기 때문인 것처럼 말했다. 수사도, 재판도 신속하게 진행된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문세광은 12월 17일 사형 언도를 받은 후 3일 뒤에 사형당했다. 썬킴은 문세광의 수사와 재판, 사형 집행이 빠르다고 의문을 제기하는데, 케네디 암살 사건의 수사, 재판 과정과 비교해 보자.
1963.11.22 : 케네디 피격
1963.11.24. : 오스월드 잭 루비에게 피살
1963.11.28. : 잭 루비, 오스월드 살해 혐의로 기소
1964.02.10. : 재판 관련 배심원 선정 절차 시작
1964.2.17.~3.3 : 본 재판의 배심원 선정
1964.03.14. : 배심원단이 살인죄(murder with malice) 유죄 및 사형 선고
케네디 암살범 오스월드는 범행 2일 만에 잭 루비에게 살해당했고, 잭 루비는 케네디 암살로부터 채 4개월도 되지 않아 사형 선고를 받았다. 잭 루비는 사형 선고 후에 바로 사형 집행이 되지 않고 1967년 1월 3일 사망해 사형 집행은 문세광이 빠르긴 했지만, 당시 한국은 지금과 달리 사형 집행이 있던 때였고, 미국의 분위기는 달랐던 점을 고려하면 사형 집행이 빨랐다는 점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참을 오버한 것이다.
10. 문세광이 “나를 살려달라. 국군에 입대하겠다. 그 놈들(중정을 지칭하는 뉘앙스)에게 속았다”고 유언을 남겼다고?
썬킴은 문세광이 자신은 자작극 놀음에 놀아난 것을 후회하는 말과 유언을 상기와 같이 남겼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사형 직전 유언에서 “あいつら(아이쓰라, 그놈들, 저놈들)이라는 경멸적인 느낌의 표현으로 자신의 배후에 복수의 사람들이 있는 듯이 ”그 놈들에게 바보같이 속았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것 역시 한 마디로 개소리이다. 썬킴은 문세광의 마지막 유언 중에 일부 문장만 단장일취하여 맥락은 완전히 무시하고 청취자들이 오해하게 문세광의 유언을 설명했다.
아래는 문세광 유언의 전문이다.
“나는 바보였습니다. 참으로 박 대통령과 육 여사에 대해서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재일 동포로서 무엇하나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대통령에게 깊이 사과 드립니다. 대통령에게 총을 겨냥해서 잘못했습니다. 나는 일본에서 그들에게 속았습니다. 내가 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리 됐습니다. 참으로 대통령에게 미안합니다. 육 여사와 죽은 사람 곁에서 같이 살고 싶습니다.
나의 처에게 말씀 전해주십시오. 아직까지 젊은 나이이므로 재혼하여 제2의 인생을 걸어가도록 말씀해주십시오. 장남은 2살이므로 형님 부부가 맡도록 전해주십시오. 어머니께는 자식의 불효와 기대에 어긋난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전해주십시오. 형제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하다고 말씀해주십시오. 나는 사실 바보였습니다. 처에게는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리고 박 대통령과 국민에게 미안합니다. 나는 속았습니다. 미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만약에 한국에서 커왔다면 그들에게 속을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참으로 바보였습니다. 사형을 당하여도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들과 처 사진을 보여주십시오. 처에게는 될 수 있으면 육 여사 묘소를 참배하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전문에 나오는 ‘그들’이 문세광이 현장에서 일본어로 말한 “あいつら(아이쓰라, 그 놈들)이다. 전체 문맥을 보면 일본에 있는 조총련 놈들에게 속아 이런 어이없는 짓을 저질러 자신이 바보스럽고 박 대통령과 미안하고 육 여사 묘를 참배하라고 처에게 전하라고 말한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썬킴은 문세광의 유언을 완전히 왜곡해 대중들을 기만했다.
11. 채덕신의 “육 여사는 뒤쪽 후두부를 맞았다”는 말을 신뢰하는 썬킴
채덕신은 6.25 당시 거창 양민학살 주범으로 그 이후 외무부 장관으로 지내다 박정희 대통령과 틀어져 월북해 우리나라 최고위급 월북 인사로 사후에는 북한의 혁명열사능에 묻힌 자다. 이 자가 월북 후에 “자신이 현장에 있었는데, 육 여사는 뒤쪽 후두부를 맞았으며, 총격은 무대 뒤쪽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채덕신의 주장을 썬킴은 매불쇼에서 그대로 인용해 소개했다.
그리고 “서울대 의사한테 어디에 맞았는지 물어봤으나 함구하고 도망갔다”는 이건우 감식계장의 말도 덧붙였다.
채덕신의 주장이나 이건우의 말이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 당시 육 여사를 집도했던 서울대 의사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육 여사는 이마 오른 쪽 우측에 맞은 총탄이 정수리 중앙부를 아래에서 위로 뚫고 관통했다”고 생생하게 증언했다.
문세광이 육 여사 피격 당시 총구 방향이나 각도는 육 여사를 향해 있었음도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고, 총성도 6개, 탄착점 6개로 확인되고 그 중 4발은 문세광, 2발은 경호원에 의한 것이었으며, 경호원 총격의 탄착점은 객석 D100호석과 무대 동북쪽 천장이었다.
채명신의 주장대로 라면 탄착점이 무대 쪽에 3곳, 객석 쪽에 3곳이 나와야 하지만, 탄착점은 무대 쪽에 4개, 객석 쪽에 2개이다.
썬킴은 영화 <암살자(들)>이 나오기 훨씬 전에 채널A <이만갑>에서 이 사건을 다룰 때 패널로 참석해서는 매불쇼에서 말했던 것처럼 발언하지 않았다. 진중권 등 다른 패널들이 문세광에 의해 육 여사가 피격되었고, 문세광의 배후에 조총련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썬킴이 매불쇼에서는 완전 상반된 이야기를 했다. 프로그램 시청자의 성향에 맞춰 역사적 사실을 손바닥 뒤집듯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돈도 좋고 인기도 좋고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어도 역사를 놓고 장난치는 것은 용납할 수없다.
대중들에게 역사를 재미있게 설명하기 위해 가볍게 양념을 치는 것이야 이해하겠지만, 국민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고 역사 왜곡이 논란이 된 소재에 대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수 백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에서 떠드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썬킴이 바로잡지 않으면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