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닥터X'에 등장한 5·18 헬기 기총소사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 계엄군 악마화는 멈춰야 한다.

영화 <암살자(들)>에 이어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닥터X>가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6회에 5·18 당시 헬기 사격으로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그 파편이 머리에 박힌 채 살아온 오상범이 주인공인 의사 계수정에게 수술을 받게 되는 과정이 나온다. 원작에도 없는 내용으로 뜬금없이 전체 내용과 맞지 않는 5·18이 배경으로 나오는 것에 뜨악하다는 시청자들이 많고, 또 5·18 팔이냐며 의료 드라마에 이념과 정치를 덧씌우는 것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 보인다. 


세상사를 모두 5·18로 귀결시키고 5·18이 마치 무한한 까방권을 가진 것인 양 만능 치트 키처럼 사용하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피로감과 염증이 임계치를 넘어 그 반작용의 목소리가 본격화 되는 것 같다.


영화든, 드라마든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닥터X> 작가나 연출가가 5·18을 동원하는 것은 자유이다. 마찬가지로 <닥터X>에 대한 시청자나 국민들의 비판 또한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암살자(들)>나 <닥터X>의 방영 금지를 요구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다만, 그 내용이 역사왜곡을 했거나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감독이나 제작자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에 정치적 신념을 반영하든, 허구의 창작을 구겨넣든 그건 감독의 표현과 창작의 자유의 영역으로 존중한다. 그러나 그 자유가 조악한 정치적 메시지와 억지스러운 극적 전개에 대한 시청자의 비판까지 봉쇄할 수는 없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의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허용하듯 학문의 영역에서도 의혹 제기와 검증을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를 허하라.


<닥터X> 6회에 나온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아 역사왜곡의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닥터X> 6회에서 오상범은 5·18 당시 헬기의 기총사격으로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그 파편이 머리에 박힌 채로 46년 간 살아온 것으로 나온다. 죽은 형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형의  환상을 보며 괴로운 삶을 살아오다 계수정의 수술을 받으려 한다.  


그런데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은 없었고, 헬기 기총소사로 사망한 사람이나 부상한 사람도 없었다. 따라서 6회의 오상범이라는 존재는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총격의 원인으로 5·18을 끌어다 쓴 것뿐인데 이걸 역사왜곡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5.18에서 헬기 기총소사 여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의 명예가 걸려 있을 뿐아니라 5.18에서 군이 국민을 대한 태도를 평가하는데도 절대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5·18에서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는지 따져보자.


헬기 기총소사 여부에 대한 조사는 1989년 ‘국회 5·18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 특별위원회’, 1995년 ‘검찰조사’, 2005년~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있었고, 이 조사에서는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고 결론 내렸는데, 2017년 문재인의 지시로 구성된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가 처음으로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가 2018년 2월 10일에 내놓은 조사결과 보고서를 보면, 그 전의 조사에서 밝혔던 내용 외에 새롭게 밝혀진 내용은 없었으며, 단지 그 전의 조사결과를 다르게 해석(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했을 뿐이었다.


똑같은 내용을 두고 2017년 이전의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헬기 기총소사가 없었다고 판단했고, 문재인의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는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 조사를 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기총소사가 없었다는 의견을 냈지만, 5·18 단체나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특별조사위원회 위원들은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조사결과 보고서에 올렸다.


이 특조위가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내세운 근거는 전일빌딩의 외벽, 창틀, 바닥, 천장에 난 탄흔에 대한 국과수의 감정서(법안전감정서)이다. 


1995년, 검찰조사에서는 전일빌딩의 탄흔을 M16 소총이나 카빈 소총 탄흔으로 결론 내렸는데, 2017년 국과수는 다른 감정 소견을 내놓았다.


그런데 국과수의 감정서를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과수 감정서 전문은 입수하지 못해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근거로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과수는 탄흔이 전일빌딩 10층 내부에 177개, 건물 외벽에 68개, 내외부 합계 245개를 발견했는데, 이 중 내부 탄흔 177개와 외벽의 16개 탄흔이 헬기 기총소사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내부 탄흔 중에는 창문에서 1m 거리 밖에 되지 않는 천장(텍스)의 탄흔도 다수 있고, 창문 턱 바로 밑의 바닥에 탄흔도 다수 있었다. 


국과수는 헬기가 상하로 호버링하면서 기관총(M60)을 상향, 수평, 하향 사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천장의 탄흔(상향 사격)과 창문 턱 바로 아래의 탄흔(하향 사격), 벽면의 탄흔(수평 사격)이 설명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외벽의 탄흔 68개 중에 16개만 헬기 기총소사 탄흔이라고 했음으로 나머지 52개 탄흔은 M16이나 카빈 소총으로 외부에서 사격해 생긴 탄흔일 것이다. 외부에서 M16이나 카빈 소총으로 사격을 했다면 벽면에만 정확하게 52발을 맞히고 벽면 외에 창문, 천장 등에는 1발도 맞히지 않았을까? 10층 내부나 창문에서 사격하는 사람을 목표로 사격했을 것인데 벽면만 맞혔다고? 10층 내부 탄흔 177개 중에 헬기 사격이 아닌 외부의 총격으로 생긴 탄흔이 1발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될까?


그리고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시민군을 진압하러 전일빌딩에 들어갔을 때 시민군이 저항해서 10층 내부에 M16으로 총격을 가했는데 어떻게 이 총격에 의한 탄흔은 10층 내부에 1발도 남겨져 있지 않을까?    


<전일빌딩 진입을 현장 지휘하였던 당시 중대장의 증언>

“전일빌딩에 접근할 당시 전일빌딩 상층부에서 지상을 향한 사격을 받고 상층부를 향하여 응사한 사실이 있다. 공수부대가 전일빌딩에 진입한 후 10층 내부 수색을 할 당시 10층 방송실 문이 잠겨 있어서 문밖에서 방 안으로 총구를 바닥으로 하여 위협사격을 한 후 진입하였다. 방송실 바닥에 난 탄흔은 그때 전일빌딩을 수색하던 계엄군이 문밖에서 방으로 위협사격을 하였을 당시 발생한 탄흔이다.”


광주시 진실규명 자문단은 전일빌딩과 인근 건물에 시민군이 있었으며, 계엄군의 건물 진입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광주시 진실규명 자문단의 주장을 보더라도 전일빌딩 내부에서 계엄군과 시민군 간의 총격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전일빌딩 내부의 탄흔 중에는 이 총격전에 의한 것이 없을 수 없다.


위 사실들로 볼 때, 국과수가 전일빌딩 10층 내부에 있는 177개 탄흔 모두가 헬기 사격에 의한 탄흔이라고 감정한 것은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다.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 씨는 5월 27일 최후 항전 과정에서 시민군 여러 명이 전일빌딩 옥상에서 숨졌다고 증언했다. 만약 5월 27일 새벽,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면 전일빌딩 옥상에 있던 시민군을 향해 헬기 기총소사를 했을 것인데, 전일빌딩 옥상에서 탄흔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전일빌딩 탄흔에 대한 헬기 조종사들은,

① 비행 중인 헬기 안에서 어떤 사격을 하더라도 전일빌딩 방송실 안에서 발견한 밀집한 형태의 탄착이 형성될 수 없다 

② UH-1H의 프로펠러 때문에 헬기 안에서는 소총 사격을 할 수 없다 

③ 전일빌딩 방송실 바닥에서 발견된 100여 개의 탄흔 중 대부분의 탄흔이 창문에 인접한 곳에서 발견되었고, 심지어 창틀에서 10cm 이내의 탄흔도 여러 개 발견되었는데, 창틀 때문에 80~90도의 탄도가 나와야 하는데 헬기에서는 그와 같은 탄도를 만들어낼 수 없다 

④ 전일빌딩 천장에서 30여 개의 탄흔이 발견되었고, 그것도 모두 창문에서 1m 이내에 밀집된 형태로 발견되었는데, 상향으로 70~80도 탄도가 나와야 탄흔이 형성될 수 있지만 방송실이 10층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탄도 형성은 불가능하다 

⑤ 전일빌딩에 대한 진입은 4시에 이루어졌고, 그 시간은 심야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조명이나 불빛도 없이 UH-1H가 도심에서 야간 비행을 할 수 없고(그 당시는 야간 비행 장치가 없었고 오로지 육안으로만 비행하였음), 시야가 확보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10층 방송실의 좁은 창문 안으로 150발의 소총 사격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당시 동원된 헬기만 해도 수십 대인데 그렇다면 조종사만 해도 약 100명 정도가 된다. 그리고 무장사, 정비사,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지금까지 그중에 단 1명이라도 사격했다고 진술하는 사람이 없다. 1987년 민주화 되어 좌파(진보) 정권이 4번(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들어섰고, 공소시효도 이미 지났으며, 헬기 기총소사로 사망한 사람은커녕 부상당한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면 관련자가 수 백명은 될 텐데 왜 단 1명의 양심고백자나 내부고발자가 나오지 않을까? 이 중에는 호남 사람들도 수 십 명은 될 텐데 말이다. 양심고백을 하거나 내부고발하면 사회적, 경제적으로 이익도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할 텐데 왜 아직도 단 1명도 나오지 않을까?


국과수는 외벽이나 내부 탄흔의 깊이, 넓이, 충격 정도를 보고 헬기 기관총 M60과 M16 소총, 카빈 소총의 탄흔을 구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50m 이내의 근접거리에서 헬기 M60  기관총이 외벽에 사격했을 때 남긴 탄흔과 최소 100m 이상에서 소총 M16과 카빈으로 외벽에 사격했을 때 남은 탄흔이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 납득이 되는가? 


외벽에 보이는 68발의 탄흔은 거의 모두 일정한 크기나 깊이, 비슷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과수는 이 중에 16발은 헬기 M60 총격이고, 52발은 소총에 의한 탄흔이라고 했다. 국과수는 탄흔의 크기, 깊이, 충격 정도가 아니라 사격 방향(상향 혹은 하향)과 각도로 공중에서 헬기가 기총소사한 탄흔(하향 사격)인지, 지상에서 전일빌딩 10층으로 향해 쏜 소총에 의한 탄흔(상향 사격)인지를 구분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국과수는 천장의 탄흔도 헬기 기총소사 탄흔이고, 창 바로 아래 바닥의 탄흔도 기총소사 탄흔이라고 했다. 즉, 헬기 기총소사는 수평, 상향, 하향 사격을 다 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외벽의 탄흔 68개는 모두 헬기 기총소사에 의한 것이라고 해야 하는데 왜 이 중에 16개만 헬기 기총소사라고 했을까? 어떤 기준으로 헬기 기총소사 탄흔과 소총 총격 탄흔으로 구분한 것인지 궁금하다.


당시 조종사들은 헬기를 띄워서 한 번만 사격을 해보면 전일빌딩 탄흔이 얼마나 거짓인지 금방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헬기 사격장 중 한 곳을 금남로 전일빌딩과 동일한 조건으로 설정한 뒤 헬기를 띄워 사격을 재현하는 실험을 요구했지만, 끝내 헬기 실사격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사격 검증만 하면 외벽이나 내부 탄흔이 헬기 기총소사에 의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왜 헬기 기총소사를 주장하는 측이나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린 조사위원회는 실사격 검증을 철저하게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조비오 신부나 아널드 피터슨 목사 등 8명은 5월 21일에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했다고 증언했지만, 이들은 모두 피격 현장이 아니라 피격 현장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측의 유일한 직접적인 증거는 전일빌딩의 탄흔이다. 그런데 당시 전일빌딩 앞에는 수 만 명이 몰려 있었다. 수 만명이 모여 있던 전일빌딩에 헬기가 기총소사를 했다면 이를 목격한 사람은 최소 수 천명은 될 것이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에 이를 목격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데, 1km 정도 떨어져 있던 성당의 조비오 신부나 피터슨 목사 등의 헬기의 기관단총 총격을 들었다는 증언이 신빙성이 있을까?


그렇게 수 백발의 헬기 기관단총 사격이 있었는데 이에 맞아 사망한 사람은커녕 부상을 입은 사람도 없다. 수 백발의 기총소사가 있었으면 탄피와 탄두도 현장에 많이 남아 있었을 것인데 한 점도 나오지 않았다. 계엄군의 핼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하는 시점 후에는 계엄군이 수세에 몰려 철수한 뒤라 시민군들이나 시위대가 발견할 수 있었는데도 기관총의 탄피와 탄두가 1점도 제시되지 않은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다시 <닥터X>로 돌아가, 6회에 뜬금없이 등장한 5·18 헬기 기총소사 장면과 기총소사 피해자 오상범으로 인해, 시청자들이나 국민들은 5·18 당시 계엄군이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헬기 기총소사를 한 것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직도 5.18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한 특전사 등 장병들과 헬기 조종사, 무장사, 정비사들이 생존해 있다. 이들은 <닥터X> 6화로 인해 국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다는 오명을 덮어쓰고 살아야 하며, 그 불명예가 그 자식들과 후손들에게 이어질 것이다.


전체 이야기와 맥락과 동떨어진 연출자의 이념과 정치색이 확연하게 보이는 에피소드를 억지로 끼워넣는 무리수를 두는 것은 연출자의 자유이지만, 그 에피소드가 타인의 명예를 심하게 훼손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논리성과 개연성이 떨어지는 스토리텔링에 시청자들이 떨어져 나가겠지만,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자기가 선전하고 싶은 ‘역사물 PPL’을 드라마에 넣은 것에 대한 시청자의 외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닥터X> 이옥규 CP는 논란을 이미 예상했는지 자신의 SNS에 “No Fear”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원작에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의도적으로 5·18 헬기 기총소사를 다룬 이 에피소드를 별도로 만들어 넣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판단과 평가는 시청자가 할 것이고 결과는 시청률로 나타날 것이다. 6회는 시청률이 21%를 찍었는데 7회부터는 시청률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PS. 필자는 이번 기회에 ‘5·18 헬기 기총소사‘ 사실여부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근거가 희박한 조사결과와 편향된 조사위원들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헬기 기총소사‘가 역사적 사실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계엄군이 악마화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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