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필자는 좀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5·18 관련 자료를 국방부, 검찰, 국회, 조사위원회 등이 2017년까지 조사한 자료만 봤는데, 최근 <닥터X>의 6화에 5·18 헬기 기총소사가 등장하면서 추가적으로 자료를 찾다가 2024년 6월에 발표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를 보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종합보고서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에 근거해서 2019년 12월 27일 설치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5·18진상규명법」 제3조 제4호에서 정하고 있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에 의한 헬기사격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그 동안 검찰을 비롯한 여러 국가기관의 선행조사가 미흡하다고 판단하여, 헬기사격에 관한 명시적인 실체를 밝히기 위해 4년간 조사하고 내 놓은 보고서다.
이 종합보고서에는 5·18 당시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려놓았지만, 그 내용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볼 새로운 증거는 없는 대신 오히려 기총소사가 없었다는 증거가 새롭게 나와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Ⅰ(2024. 6. 24.)>
https://518.org/base/contents/view?contentsNo=359&;;menuLevel=2&;;menuNo=119
이 보고서 P304에는 헬기 기총소사 여부에 대한 조사를 재개하게 된 계기(이유)를 2016년 전일빌딩 재보수 과정에서 탄흔이 발견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헬기사격 사건이 다시 논란의 쟁점 대상이 된 것은 2016년 광주 금남로에 위치한 전일빌딩의 전면적인 재보수 과정에서 확인된 10층의 탄흔이 발견된 데 따른 것이다.“
조사 재개의 이유치고는 좀 구차하다. 전일빌딩에 탄흔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고 1995년, 검찰이 5·18 관련 조사를 할 때 전일빌딩의 탄흔을 확인하고 헬기 기총소사가 아닌 것으로 판명했었다.
그리고 2016년 재보수를 할 때서야 탄흔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1980년 5·18 이후 전일빌딩을 2016년까지 완전히 폐쇄하고 2016년에 재보수를 했다면 모르겠지만, 전일빌딩은 5·18 이후 쭉 계속 사용해 왔고 탄흔이 있는 10층도 사람들이 근무해 오고 있어 벽면과 바닥에 있는 탄흔을 2016년 전까지는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될까?
지금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겠다. 종합보고서 P352에서부터 ‘전일빌딩 탄흔’에 관련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을 볼 수 있다.
5월 27일 계엄군이 전일빌딩을 진압할 때 그 당시 전일빌딩 8층에 머무르고 있던 전일방송 직원들은 헬기 사격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청경은 11시에서 새벽 1시경에 ‘두두두두’하는 소리를 들은 바 있다고 했지만, 이것 역시 헬기기총 총격 소리도 아닌 헬기 비행 소리일 뿐아니라 시간 상으로도 계엄군이 진압한 시간에 비해 3시간 이전이라 헬기 기총소사와는 무관하다.
조사위원회가 기총소사가 있었다는 근거로 삼는 것이 고작 ‘27일 상황이 모두 종료된 뒤 출근을 한 일부 직원들의 7층과 8층, 10층에서 탄흔과 탄두, 그리고 일그러진 납 파편들이 있었다고 하는 증언’과 ‘당시 전남일보에서 27일 직후에 찍은 10층의 유리창이 파손되어 있는 장면의 사진‘이다. 그 당시 전일빌딩 내에 남아있던 탄두가 M60의 탄두라면 확실한 증거가 되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외부 지상에서 수없는 사격이 있었고, 5월 27일 계엄군이 10층에 진입할 때 내부에 위협 사격을 했으니 유리창이 깨져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걸 헬기 기총사격의 증거라고 내세우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P353) “전일빌딩에 진입했던 제11공수여단 특공조 병력으로부터는 당시 전일빌딩 옥상에서 광주관광호텔에 진입한 계엄군과 오인 교전을 한 것 외에 사격을 하였다거나 시민군과 충돌이 있었다는 진술은 나오지 않았다.
또한 진압과정에서 헬기사격을 목격하였거나 들은 바가 없다는 계엄군의 진술도 확인하였다.
전일빌딩 내에 머무르고 있던 전일방송 직원들은 8층 내부의 안쪽에 있었기 때문에 헬기사격을 목격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나 청경 문◯◯의 경우 26일 11시경 아니면 27일 새벽 1시경에 ‘두두두두’하는 소리를 들은 바는 있다고 하였다. 이 소리가 헬기와 관련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당시 8층에서 연행된 김◯◯ 또한 전일빌딩에 머무르는 동안 간간이 총소리를 들은 바가 있으나 헬기소리였는지는 기억이 없다고 하였다.
다만 헬기사격의 가능성을 유추해볼 수 있는 상황들은 당시 전일방송, 전남일보에서 재직하던 직원들의 진술을 통해서 추정해볼 수 있다. 27일 상황이 모두 종료된 뒤 출근을 한 일부 직원들은 7층과 8층, 10층에서 탄흔과 탄두, 그리고 일그러진 납 파편들이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특히 당시 전남일보에서 27일 직후에 찍은 사진에는 10층의 유리창이 파손되어 있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일부 전일방송 재직자는 10층에서 탄흔 자국과 파편을 보았다고 증언하였다.”
지금부터는 진짜 충격적인 사실을 말하겠다. 필자는 아직까지 헬기 기총소사의 실사격 실험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당시 헬기 조종사들과 전두환 측 변호인들이 실사격 실험 요청을 수없이 했음에도 재판부도 거절했고, 국과수도 실사격 실험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실사격 실험을 했고, 그 결과를 보고서에 기술해 놓았다.
(P356~357) “위원회 또한 두 국가기관의 전일빌딩 10층 탄흔 분석 결과를 토대로 전일빌딩 탄흔의 관입 각도, 함몰 깊이, 탄종, 생성 방향 등을 조사하기 위해 헬기모의실험사격을 실시했다.
위원회는 전일빌딩의 탄흔과 실험사격에서 생성된 탄흔에서 추출된 데이터를 비교하기 위해 국과수에 의뢰했다. 국과수는 양자의 데이터값이 약 1.5∼7.4배, 관입 깊이의 경우 약 5.6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차이는 사건 당시의 상황과 사격 실험의 조건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국과수는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두 데이터 간의 상호 비교분석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두 탄흔 데이터 간의 편차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논단할 수 없다고 하였다. 즉, 다양한 변인들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험사격에서 나타나는 결괏값과 전일빌딩 탄흔 데이터의 결괏값을 단순 비교해서 검토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이다.
위원회는 일반적인 헬기사격의 패턴에서 사탄 분포가 넓게 형성될 가능성을 고려하여 7, 8층에서 탄흔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했다. 27일 전일빌딩 7층 이상의 위치에서 탄흔과 탄두 등을 보았다는 전일방송 직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7층과 8층에서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흔적을 탐색하였으며, 의심되는 흔적들이 7층과 8층에서 발견되었다.”
헬기 모의 실험사격 결과, 양자의 데이터 값이 약 1.5∼7.4배, 관입 깊이의 경우 약 5.6배라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전일빌딩의 탄흔과 헬기 기총소사 실사격 모의실험에서 나타난 탄흔 간에 저렇게 큰 차이를 보였는데도, 위원회나 국과수는 다양한 변인들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결과임으로 비교하기 어렵다며 실사격 실험 결과를 무시했다. 이런 결론을 내릴 거라면 왜 실사격 실험을 했는지 모르겠다. 실사격 실험을 하기 전에 ‘다양한 변인들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라는 걸 모르고 쓸데없이 국고를 낭비하는 실험을 할 생각을 했다는 말인가?
만약 실사격 실험 결과 양자의 데이터 값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비슷하게 나왔다면 저 딴 소리를 했을까?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실사격 실험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래 놓고 마지막에는 전일빌딩에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P371) “마지막으로 5월 27일 광주재진입작전 당시 전남도청 일대 진압작전에 대한 항공부대의 작전 참가 과정에서 대공화기가 전일빌딩 옥상에 설치되었다는 첩보에 따른 전일빌딩에 대한 사격이 있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전일빌딩 10층에서 확인된 탄흔은 탄흔의 위치, 수평에 가까운 하향사격으로 추정되는 탄흔들이 27일 전일빌딩에 헬기사격이 가해졌음을 충분히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목격 시각이 다소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27일 전일빌딩을 포함한 도청 일대에서 지상병력의 작전을 공중화력으로 지원하기 위한 헬기사격을 포함한 항공작전이 전개되었을 가능성을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증거들을 토대로 조사결과들을 종합해서 보면, 5·18민주화운동 기간 광주에 출동한 모든 기종의 헬기에게 사격을 지시하는 명령이 존재했으며, 그 명령은 살상을 포함한 위협사격 수준 이상의 지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광주에 출동한 3개 기종 모두에게서 헬기사격이 실행되었거나 사격의 개연성이 충분히 있음을 조사과정에서 확인하였다.”
참 기가 차는 결론이다.
‘대공화기가 전일빌딩 옥상에 설치되었다는 첩보’를 헬기 기총소사의 증거로 삼는 게 말이 되는가? 이건 오히려 기총소사가 없었다는 반증이 아닌가? 계엄군이 옥상에 대공화기가 있었다고 판단했다면 헬기는 10층이 아니라 옥상에 기총소사를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옥상에 탄흔이 있어야 하는데 옥상에는 탄흔이 없다. 지상에서 전일빌딩을 향해 사격하더라도 옥상에 총격을 가할 수 없고, 계엄군이 옥상을 장악할 때도 교전이 없었으니 M16이나 카빈 소총의 탄흔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옥상에 헬기 기총소사도 없었으니 옥상에 탄흔도 없었던 것이다.
‘전일빌딩 10층에서 확인된 탄흔은 탄흔의 위치, 수평에 가까운 하향사격으로 추정되는 탄흔들이 27일 전일빌딩에 헬기사격이 가해졌음을 충분히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한다. 수평에 가까운 하향 사격을 했으면 10층 내부 깊숙한 바닥이나 내부의 벽에 최소한 10여발 정도의 탄흔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왜 단 하나의 탄흔도 그 곳에는 발견되지 않고 창가 쪽의 천장이나 바닥에만 탄흔이 남아 있는가?
목격자의 진술은 별 희한한 궤변으로 합리화 하여 헬기 기총소사의 증거로 삼으며 저런 엉터리 결론을 내리고 있다. 1995년 검찰 조사 결과는 목격자의 증언 모두가 사실이 아님을 구체적으로 밝혔는데 말이다. (1995년 검찰 수사결과는 아래에 첨부)
이게 진상규명인가? 사실왜곡이지.
1995년 검찰이 발표한 <5·18 關聯 事件 搜査結果 1995.7.18.>
(4) 헬기 기종 소사 여부 (p207~210)
0 광주에서 일기의 공중 사격으로 많은 人命 被害가 야기되었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었고, 조비오 신부, 이강영 승려, 아놀드 피터슨 목사 등이 헬기 기총 소사를 목격하였다고 주장하였음.
0 이에 대하여 당시 육군항공단 근무 관계자들은 헬기 기총 사격은 엄청난 人的, 物的 被害를 야기하는 것으로 그러한 射擊을실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군 관계자료상으로는 5.21. 2군사령부가 戰敎司에 수송용 헬기인 UH-IH 10대, 무장 헬기 AH_IJ(코브라) 4대를 지원하고, 事態 기간중 헬기가 총 48 시간 동안 武力示咸를 하였다는 기재 외에, 실제 공중 사격 실시 여부에 대하여는 아무런 기재를 발견할 수 없었음.
0 먼저 목격자들의 진술을 살펴보면,
- 위 이광영은 5.21. 14•匍경 헬기 사격으로 15-6세의 女學生이어깨 부위를 被擊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를 적십자명원으로 후송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적십자병원의 당시 진료기록부와 응급실 관계자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그 당시 헬기 사격 피해자가 來院하였음을 확인할 수 없었고,
_ 조비오 神父가 5.27. 헬기 사격의 피해자라고 지목한 洪 闌은 檢察 조사에서 부근 건물 屋上에 있던 戒嚴軍의 小銃 사격에 의하여 다쳤다고 진술하였으며,
- 鄭樂平은 5.21.14:00경 광주경잘서 상공에서 기종 미상의 헬기가 기관총 사격하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부근 진주다방의 종업원이 屋上에서 헬기가 쏜 기관총을 맞고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였으나, 진주다방 종업원인 심동선(남, 30세)에 대한 檢屍調書에 의하면 死因이 M16 소총에 의한 관통총상이고, 당시 빌딩 屋上에 있던 공수부대원의 射擊에 의한 被擊이라는 취지의 증언(광주오월항장사료전집 714쪽)도 있으며, 아놀드 피터슨 牧師는 헬기가 旋回하고 上空에서 총소리가 들려 헬기에서 기총 사격을 한 것으로 믿고 있으나 헬기 사격 자체를 목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동인이 사격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檢察에 제출한 사진상의 헬기 하단 불빛은 기관총 사격시 발생되는 섬광이 아니라 헬기에 부작된 충돌방지등 불빛임이 확인되었고,
- 그밖의 목격자들도 막연하게 헬기에서 사격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일 뿐, 달리 구체적으로 피해사실을 진술하지 못하고 있는 바,
- 광주시내 적십자병원, 기독병원, 전남대학병원의 각 당시 진료기록부와 응급실 관계자들의 진술을 검토해 보아도 그 당시 각 병원에서 헬기 총격에 의한 피해자가 來院하였거나 入院, 치료를 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고, 광주시위 관련 死亡者 165명에 대한 광주지방검찰청 死體 檢屍記錄에서도 특별히 헬기 기총 사격에 의한 死亡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할수 없었음.
0 또한 AH-IJ 헬기의 장착 武器인 토우 미사일, 2.75인치 로켙, 20밀리 발간포(분당 750발 발사)나 500MD 헬기의 장작 武器인2.75인치 로켙, 7.62밀리, 6열 기관총(분당 2,000-4,000발 발사)에 의한 標的 射擊의 경우 나타나는 대규모의 人命 被害와 뚜렷
한 피단 흔적, 파편 등이 확인되지 않았고,
0 전교사 교훈집의 1油類 및 彈藥의 높은 소모율' 이라는 기제는,교훈집 작성시 헬기 사용의 일반적 敎理상의 문제를 육군 항공운용교범에서 그대로 인용하여 적시해 놓은 것이고, 실제 다른 사례에 비해 광주지역에서 油類나 彈藥을 많이 소모했다는 것이 아닌 점 등에 비추어 헬기 장작 무기에 의한 사격으로 人命 被害를 야기한 사실은 인정할 수 없었음.
PS. 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 내용 중에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해 줄 대목이 있다. 5.18 진압에 투입된 경찰과 계엄군에 대한 평가다.
(P300)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진압에 투입돤 경찰과 진압작전에 동원된 계엄군의 피해에 대한 공식적이고 종합적인 조사는 위원회가 처음이다. 2021년 5월 1일 개정된 「5·18진상규명법」 제3조 제11호에 따라 2021년 5월 31일 제35차 <전원위원회>에서 직권사건 조사과제로 의결하여 조사를 실시하였다.
위원회 조사 결과 5·18민주화운동 당시 경찰과 군도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첫째, 군의 경우 전체 사망자 22명 중 절반이 넘는 14명이 시위대의 폭력이나 총격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 계엄군 간의 오인교전과 계엄군의 과실에 의한 사망으로 확인되었다. 둘째, 경찰의 경우 시위진압 과정에서 시위대의 차량에 치여 사망한 경찰이 4명이었는데 유가족은 경찰의 사망에 따른 적절한 국가의 보상 조치는 물론이거니와 국가와 사회로부터 위로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44년을 고통 속에 시달려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피해조사를 위해 면담조사에 응한 계엄군 중 일반 병사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부상 후 적절한 국가의 조치가 매우 미흡하다는 입장이었으며, 그 후유증으로 오랜 세월 고통받고 있는 처지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광주에 투입되었다는 사실, 발포 현장에서 명령과 적절한 통제 및 지시 등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군인들도 피해를 입게 되었고, 광주시민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넷째, 특히 일반 병사들의 경우 자신이 입은 피해는 물론, 자신이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조차 가족에게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고 살아왔으며, 그 트라우마로 여전히 고통스럽다는 입장을 호소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위원회는 이들 계엄군이 작전 현장의 경험과 목격한 사실 때문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현실을 확인하고 이에 대해 전문 연구기관에 용역을 의뢰하여 그 심각성을 측정하는 조사를 병행하였다.
비록 44년이 경과한 지금 위원회의 출범과 「5·18진상규명법」의 개정으로 조사를 시작하였지만 경찰과 군의 피해에 대해서도 종합적이고 정확한 피해실태를 조사하여 국가 차원의 적절한 조치 및 관리가 이루어져야 하는 사안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부당한 명령’에 동원되었고,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서 그 명령을 주체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면 필요하고, 이 과정을 통해 「5·18진상규명법」의 목적인 ‘사회통합’을 실효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종합보고서에 포함될 대정부 권고 내용에 제시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