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30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턴헤드에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 보퍼트(USCB) 힐턴헤드
캠퍼스의 사전투표소로 유권자들이 들어서고 있다.
사진 © 2026 강형원 촬영
필자는 고등학교 때 열다섯 살 반에 연습면허를 받아 운전을 배웠다. 열여섯 살부터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유니언 76 주유소의 정비소에서 자동차 수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필자의 혈관에는 엔진 오일이 흐르고 있었다고 해도 맞겠다. 1982년 UCLA에 진학해 일간신문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그 자리를 신문 인쇄용 잉크로 교체했다.
십 대 시절 일하면서 느낀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는 다른 정비사들도 풀지 못한 자동차의 고장을 해결하는 일이었다. 여기저기서 수리를 받아도 원인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던 손님이 찾아오면, 어린 정비공인 필자에게는 문제 해결 능력을 시험하는 도전이었다. 무엇이 고장 났는지 알아내고 자동차가 다시 제대로 달리게 고쳤을 때 느꼈던 커다란 성취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한 경험은 기자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먼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법을 배웠다. 손님 대부분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먼저 대화를 시작하고, 손님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며, 자동차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질문을 해야 했다.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아는 것만큼이나 귀 기울여 듣는 일이 중요했다.
정비소에서는 분석적인 생각과 의심하고 확인하는 태도도 배웠다. 손님들은 다른 정비소에서 어떤 수리를 받았는지, 정비사들이 어떤 설명을 했는지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 이야기는 유용한 단서가 될 수 있었지만, 내가 직접 확인해야 했다. 손님의 설명은 출발점이었다. 직접 보고, 듣고, 질문하며 원인을 찾아내는 일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그러려면 문제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살펴야 했다. 때로는 고장의 원인을 찾기 위해 배선을 따라 연결 부위를 하나하나 확인해야 했다. 내가 가진 지식은 어디를 살펴볼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증거가 뒷받침되기도 전에 원인을 단정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다. 섣부른 추측 하나로 몇 시간씩 엉뚱한 곳을 헤맬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사소한 부분도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느슨해진 연결 부위 하나나 손상된 전선 하나가 여러 정비사를 곤혹스럽게 했던 문제의 원인일 수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늘 세부에 숨어 있었다. 답을 찾으려면 인내심을 갖고 거듭 확인해야 했다.
훗날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할 때까지 의문을 끝까지 파고드는 과정에서 익숙한 보람을 느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들은 이야기를 확인하고, 내 추측을 의심하고, 세부를 주의 깊게 살피는 일은 기자로서 내 업무에 없어서는 안 될 기본이 되어 있었다.
손에 든 도구는 달라졌다. 그러나 일을 대하는 자세와 자세히 살펴보는 습관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2026년 10월 31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휴양지 힐턴헤드 아일랜드에서 열린 콩쿠르 델레강스를 찾았다. 미국 남부의 환대와 명차의 품격이 어우러진 자동차 행사였다. 골프장에 전시된 20세기 자동차들 사이를 거닐며, 필자는 자동차를 고치던 시절과 우리 가족의 미국 이민 초기를 함께 떠올렸다.
그곳에서 만난 1931년식 포드 모델 A는 자동차가 보통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생각하게 했다.
2026년 10월 31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턴헤드에서 열린 2026 힐턴헤드 아일랜드 콩쿠르 델레강스에
전시된 1931년식 포드 모델 A. 모델 A는 1928년형부터 1931년형까지 약 500만 대가 판매됐다.
사진 © 2026 강형원 촬영
자동차 대중화의 길을 연 모델 T를 계승한 모델 A는 1927년 말 대중에게 공개됐다. 더 세련된 차체와 향상된 성능, 안전성을 갖추며 실용적인 이동 수단에서 현대적인 승용차로 나아가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1928년형부터 1931년형까지 판매된 모델 A는 약 500만 대에 달했다.
자가용 자동차의 보급은 개인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넓혔다. 기차역과 정해진 시간표에 맞추지 않고도 일터를 찾아가고, 가족을 만나고, 낯선 곳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자동차 문화가 사람들에게 안겨준 것은 스스로 목적지를 정하고 떠날 수 있는 자유였다.
우리 이민 가족에게도 자동차는 그 자유를 실감하게 하는 존재였다.
온 가족이 미국에 이민 와서 마련한 첫 자동차는 1966년식 캐딜락 플리트우드(1996 Cadillac Fleetwood) 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 후반 의전용으로 이용했던 자동차 역시 1968년식 캐딜락 플리트우드 세단이었다.
우리 차는 그보다 연식이 오래된 중고차였다. 대통령 의전차와 사양이나 쓰임이 같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타던 자동차와 같은 이름을 가진 차를 평범한 이민 가족이 탈 수 있다는 사실에는 특별한 감회가 있었다. 이민 초기 우리 식구들에게는 한없이 고마운 운송 수단이었다.
필자가 경험한 미국의 평등은 그런 일상 속에 있었다. 이민자라는 이유로 꿈의 크기까지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성실하게 일하고 법을 지키며 살아가면서 개인의 존엄을 존중받고,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미국 사회가 언제나 그 약속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지켜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약속을 향해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이민자의 나라 미국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시대를 앞서갔던 1966년식 올즈모빌 토로나도. 2026년 10월 31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턴헤드
아일랜드 콩쿠르 델레강스에서.
사진 © 2026 강형원 촬영
이번 자동차 행사에서는 우리 가족이 타던 캐딜락 모델을 보지 못했다. 대신 같은 해에 나온 자동차 한 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1966년식 올즈모빌 토로나도였다. 오늘날 기준으로도 뒤처지지 않는 미래지향적인 선과 공기역학적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차체는 필자 같은 자동차 애호가의 눈을 즐겁게 했다.
아름다움은 차체에만 머물지 않았다. 1966년형으로 등장한 토로나도는 거의 30년 만에 미국 양산 승용차에 앞바퀴굴림 방식을 되살렸다. 넓고 긴 보닛 아래에는 배기량 425세제곱인치, 약 7.0리터의 ‘슈퍼 로켓’ V8 엔진으로 앞바퀴를 구동하는 기술이 담겨 있었다.
엔진의 고장 원인을 찾으며 자란 필자에게는 그 구조 자체가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엔진과 변속기의 무게가 차를 끌고 가는 앞바퀴에 실려 눈길처럼 미끄러운 노면에서 출발할 때 접지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당시의 대형 뒷바퀴굴림 자동차들과 비교하면 실용적인 이점이었다.
토로나도는 내부의 기계 구조도 흥미로웠다. TH425 3단 자동변속기 안에서는 폭 2인치의 무소음 체인이 지름 7.5인치짜리 체인 기어 두 개에 걸려 돌아가며 동력을 전달했다. 차체 안으로 감춰지는 전조등에도 기계적인 멋이 있었다. 엔진에서 발생하는 진공으로 덮개를 여닫아, 불을 켜면 전조등이 드러나고 불을 끄면 다시 매끈한 앞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런 세세한 장치들이 지금도 필자의 심장 안의 정비사를 설레게 한다. 출시된 지 60년이 지난 토로나도에도 여전히 감탄할 것이 남아 있었다.
20세기 내로라하는 자동차들 사이를 거닐자, 새로운 자동차 디자인이 곧 다가올 특별한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던 시절의 설렘이 되살아났다. 자동차 경주에서 기계의 한계에 도전했던 기술자들의 노력도 떠올랐다.
물론 이런 말도 있다. 경주용 자동차는 휘발유를 먹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돈을 먹으면서 달린다고.
오래된 자동차를 복원하는 일에도 그에 못지않은 각오가 필요하다. 시간과 돈이 끝없이 들어갈 수 있는 예술이다. 이날 전시된 자동차 가운데는 집 한 채보다 값비싼 차도 여럿 있었다. 반짝이는 도장과 정성껏 복원된 엔진 뒤에는 헤아릴 수 없는 작업 시간과 인내, 애정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자동차들은 돈으로도 되살릴 수 없는 것을 떠올리게 했다. 지금은 둥지를 떠난 필자의 세 아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다.
아이들이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나기 전에 함께 자동차를 고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것이 아쉽다. 경쟁이 치열한 미국 교육 환경에서, 차고에서 아빠와 어울리는 시간은 공부에 밀리기 일쑤였다.
자동차 뚜껑을 열고 나란히 몸을 숙여 고장의 원인을 찾아내며, 멈췄던 기계가 다시 움직이는 기쁨을 나누는 오후가 더 많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세 아들 모두에게 직접 운전을 가르치지는 못했지만, 큰놈에게는 수동변속기 운전을 가르쳤다. 그렇게나마 아버지에게서 필자에게로, 다시 아버지의 손자에게로 우리 가족의 자동차 전통을 이어주었다.
언젠가 손주를 만나는 행운이 찾아온다면, 차고에서 다시 자동차를 고치며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다. 내 손 옆에서 작은 손도 연장을 나르면서 함께 움직이면 좋겠다.
이번 방문에서는 자동차 행사와는 다른 미국의 일상을 담은 장면도 만났다. 필자가 학술회의 기조연설을 위해 찾은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 보퍼트 힐턴헤드 캠퍼스에는 사전투표소가 마련돼 있었다. 시민들은 투표를 위해 캠퍼스를 찾고 있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사전투표는 10월 31일 토요일 오후 6시에 마감됐다. 지역 방송 Live 5 News에 따르면, 찰스턴 카운티에서는 금요일인 10월 30일 하루에만 1만 명 이상이 투표해 하루 사전투표 최다 기록을 세웠다. 2주간의 사전투표 기간에 참여한 유권자는 8만 9천 명을 넘었다. 방송은 이 수치가 2024년보다 2만 표 늘어난 것으로, 44세 미만 유권자들의 참여가 증가세의 한 요인이었다고 전했다.
마지막 날에도 마운트플레전트의 시코스트 교회 투표소에는 본투표일인 11월 3일의 혼잡을 피하려는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핼러윈과 겹친 이날, 분장을 한 채 투표하러 온 시민들을 선거 종사자들이 반갑게 맞이하기도 했다. 일상의 축제 속에서도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는 미국의 풍경이었다.
투표소를 찾는 사람들의 정치적 생각이나 선택은 서로 다를 것이다. 사진에 담긴 모습만으로 그들이 누구를 지지하고 무엇을 걱정하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장면을 바라보며 필자는 이민 가족에게 기회를 주었던 미국의 삶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 생각했다.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고, 법 앞에서 평등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약속. 필자가 미국에서 배우고 믿었던 민주 제도는 그 약속을 시민 스스로 지키고 고쳐갈 수 있게 하는 제도였다. 투표는 그 권리를 행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1931년식 포드 모델 A에서 1966년식 토로나도까지, 자동차의 역사는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을 넓혀왔다. 그 자유로운 이동이 어떤 사회, 어떤 미래로 이어질지는 시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멋진 자동차들 사이에서 필자의 혈관에는 다시 엔진 오일이 흐르는 듯했다. 투표소를 찾는 시민들을 바라볼 때는, 그들이 지켜가려는 삶을 기록하고 싶은 기자의 마음이 움직였다.
엔진 오일과 신문 잉크는 그렇게 필자의 삶에서 다시 만났다.
2026년 10월 31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턴헤드에서 열린 2026 힐턴헤드 아일랜드 콩쿠르 델레강스에
전시된 1931년식 포드 모델 A. 모델 A는 1928년형부터 1931년형까지 약 500만 대가 판매됐다.
사진 © 2026 강형원 촬영
2026년 10월 31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턴헤드에서 열린 2026 힐턴헤드 아일랜드 콩쿠르 델레강스에서
관람객들이 1934년식 SS1 투어러를 살펴보고 있다. 영국 코번트리의 S.S. 카스 리미티드가 제작한 클래식
스포츠카로, 이 회사는 1945년 3월 재규어 카스 리미티드로 이름을 바꿨다.
사진 © 2026 강형원 촬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