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권의 도청과 수구적 이중잣대
해법의 첫단추는 불법도청에 대한 엄중한 처벌, 과거로의 책임회피야 말로 수구적 행태
1. 도청에 관한 아노미(anomie) 상태
도청은 해도 되는가, 하면 안되는가? 이전 정권보다 덜 하면 되는가? 공익을 위해서라면 해도 되는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권은 해도 되는가? 만일 국가기관의 도청을 처벌한다면 건국이후 모든 도청 사례와 처벌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는가?
열린우리당 민병두 기획위원장은 “박정희·김영삼 정부때의 도청은 원조범죄이고 김대중 정부때는 관습범죄”라고 말했고, 김영삼 전대통령측은 “우리때 공운영(전 미림팀장)이 한 것은 아날로그 형식의 비리였다면, DJ 때의 도청은 차원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대북송금과 도청문제 등을 아예 'DJ 흠집내기'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다.
이런 식의 이중잣대나 정략적 태도로는 도청에 관한 제대로 된 원칙이 세워질 수 없다. 정치권은 자신들이 합의로 만든 통신비밀보호법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현존하는 법을 지킬 의지도 없으면서 과거사를 논한다면 무엇을 근거로 과거를 비판하는 것인가? 이런 자세로는 개혁을 통해 원칙이 제대로 서있는 미래를 만들 수도 없다.
2. 수구적 이중잣대 - 과거를 심판할 때와 과거를 핑계 댈 때
1998년 2월 25일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김대중 정부 출범을 맞이해 '건국 이후 최초의 정권교체를 통해 새정부는 지난 반세기동안 누적된 적폐와 잘못을 시정하고 사회전반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떠안고 출범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005년 11월 두 명의 국정원장이 도청 혐의로 구속 수감된 것은 과거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규정했던 DJ정권 역시 그 비정상적 과거와 별로 다르지 않았음을 증명한 셈이 된다.
중앙정보부 탄생의 주역 김종필씨와 DJP 연합정권을 만들어 집권에 성공했던 시절 여당 원내수석부총무를 지냈던 정세균 현 열린우리당 임시 의장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때의 불법도청이 더 광범위하고 수법도 잔인했다. 검찰은 그 당시 문제의 역사적·사법적 정의를 세우는데 앞장서라”고 말한다. 정권을 잡았을 때는 몰랐다가 이제와 알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준엄하게 과거사를 심판하다가도 자신들이 그 과거와 똑같거나 더한 잘못을 했을 때는 표정을 바꾸고 과거에는 더했다는 등의 궤변을 쏟아내며 자신이 심판하던 그 과거와의 평등을 요구하는 치졸한 이중잣대를 과감히 접는 용기가 필요하다.
3. 역사 바로 세우기의 조건 - 도청의 경우
과거 정권의 도청이 DJ 정권때보다 훨씬 더했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는 의미는 있을지언정, 도청 문제에 관한 새역사를 만드는 전환점은 되지 못한다. 진정한 역사 바로세우기는 현 정권하에서 국가기관의 불법도청이 전혀 없다는 것이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하고, 불법도청행위가 법에 따라 처벌된다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아야 가능하다. 그래야 비로소 과거 정권의 불법도청에 대한 폭로를 반면교사 삼아 도청에 관한 새로운 원칙이 자리를 잡게 된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통신비밀보호법에 입각해 불법도청행위를 엄정히 처벌하는 것이 모든 논의를 정상적으로 시작하는 첫걸음인 셈이다. 일단 현재의 법규범을 확실히 실천한 다음, 국가기관의 불법도청에 관한 공소시효 배제가 논의되어야 옳다. 도청에 관한 원칙을 바로 세우기보다, '재수 없게 걸린' 전직 국정원장 변호와 '과거에는 더했다'는 물타기가 앞서서는 안된다. '과거처럼 안하겠다'는 정권은 과거 정권보다 더 높은 수준의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4. 3년전 역사라도 바로 세울 수 있나?
법적인 처벌의 문제는 그렇게 정리된다 해도, 사회적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우리는 현 정권의 도청 문제를 지금 제대로 논의할 수 있을까? 2002년 대선때를 돌아보면 국가기관의 도청문제가 정파간 대립에 휩싸여 도저히 도청 그 자체를 논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2002년 당시 이낙연 민주당 대변인은 야당이 미국계 선거전략 전문회사를 통해 공작을 벌였다고 말했다. 장영달 의원은 '이부영 의원은 공작정치를 거부해야 하며, 그래야 삶이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부영씨는 도청 의혹을 폭로하다 대선 후 열린당 의장을 지냈다. 도청 의혹을 기정사실화 했던 언론이나, 조작의 냄새가 난다는 둥 근거없이 깎아내린 언론이나, 정상적 의사소통의 통로가 아니었기는 마찬가지였고, 폭로를 하는 정파나 부정하는 정파나 진지하지 못했다. 이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국가범죄에 진지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사회는 언제든 불법도청에 희생될 수 있다. '바로 지금' 국가기관의 불법도청을 엄벌하고 유사한 불법행위를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이다. 오늘의 잘못을 언제든 과거에는 더했다며 회피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수구적인 행태가 어디 있겠는가?
스트라이크테러 (네티즌 논객)
진보정권의 도청과 수구적 이중잣대
- 뉴라이트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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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1-21, 1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