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軍의 6.25 - 아버지를 구출한 인민군 땅카병
北 포로들이 도운 여덟 시간의 비 속 철수
소나무 판때기에 전선줄을 둘둘 묶어 만든 땅카 위에 부상당한 아버지가 누웠다. 앞 뒤에서 인민군 포로가 들고 그 뒤에는 朴하사가 그들을 총으로 겨누면서 산비탈을 내려갔다
최 혜 원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정보장교 대리로 참전
내 아버지는 한국전에 참전한 용맹한 군인이다. 1999년, 아버지는 老兵(노병)일지 몰라도, 잊혀진 병사일지 모르지만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었던 훌륭한 대한민국의 영원한 젊은 군인이시다. 그런 나의 아버지를 살려주셨던 인민군 포로들에게 감사한다.
아버지의 부대가 香爐峰(향로봉·표고 1239m) 정상에서 인접 26연대의 공격제대와 임무를 교대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은 비가 줄기차게 쏟아져 내리던 1951년 8월23일 이른 아침이었다.
대대장 朴翊均(박익균) 소령(대령 예편, 성업공사 사장 역임 후 96년 작고)은 아침 7시 작전회의를 열고 명령을 하달했다.
<대대(수도사단 제1기갑연대 제2대대)는 23일 12:00까지 우 인접 2연대와 임무를 교대한다. 목표는 「A」(표고 924 고지)이고, 행군순서는 5, 6, 7, 8중대 순으로 즉시 출발한다.>
아버지는 香爐峰 작전에서부터 제2대대의 정보장교 대리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26연대는 인민군 13사단 예하 1개 연대와 924高地(고지)를 확보하려는 전투에서 매일 두 차례 이상의 교전을 벌이며 뺏고 빼앗기는 격전을 벌였으며 무수한 희생자를 내고 戰意(전의)를 상실한 채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대대는 최단 시간 내에 26연대와 임무를 교대하고 924高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밤새 내리던 비는 아침에 잠시 그쳤다가 다시 억수같이 퍼 붓고 있었다. 아버지의 대대는 장대비 속에서 강행군을 했지만 예정시간보다 24시간이나 늦게 도착하였다. 그렇게 쏟아지던 비가 밉지 않았던 것은 먼지로 변해버린 924高地에서 더 이상 먼지를 들이마시지 않아도 되어서였다. 흙과 먼지만의 벌거벗은 고지 정상에서 며칠 동안 포탄이 떨어져 폭발을 하면 먼지만이 푸석푸석 날렸던 그런 황폐한 곳이었다.
아버지의 부대가 고지 後斜面(후사면)에 도착했을 때는 1개 소대 가량의 병사들이 살아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탈진한 상태였다. 끼니를 굶어서 허기가 진 상태였고 실탄이 한 발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아버지의 부대가 적의 증원군보다 먼저 도착했기에 무혈점령이 가능했다. 아버지의 대대는 100여 평 남짓한 고지 정상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역습에 대비했다.
한편 高地를 선점당한 人民軍(인민군)들은 초저녁부터 교란 사격을 계속했다. 아버지 부대의 정보과원들은 판초 우의를 입은 채로 無蓋壕(무개호) 속에서 쭈그리고 새우잠을 잤다. 다행히 이날 밤, 적의 반격은 없었으나 李汶常(이문상) 7중대장(대위, 대령예편)은 전방을 수색하다가 2명의 적병을 포로로 잡았다.
잡힌 포로의 진술에 의하면 오늘은 반드시 적의 역습이 대대적으로 실시된다는 것이었다. 대대는 날이 밝자 진지를 강화하고 적의 역습에 대비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적의 61mm 포의 박격포 사격이었다. 대장은 아버지를 불러 적의 박격포 위치를 확인해서 제압하라는 명령을 했다. 아버지는 8중대장과 함께 정상에 올라서 적이 계속 쏘아대고 있는 61mm포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기다렸다. 그리고 적이 포를 쏘는 순간에 발사되는 소리를 포착하고 60도 급경사의 계곡 좌, 우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포탄 맞고 쓰러지다
『쉬…』 하는 소리가 나고 2~3초 후, 『꽝!』하며 고지의 후사면에 낙하소리와 함께 폭발음이 들렸다. 그리고 바로 또 『뽀옹!…』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낙하지점을 포착하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사이에 1초, 2초, 3초, 바로 아버지의 2m 옆에 『퍽!』하고 포탄이 떨어져 박혔다. 다행이 불발탄이었다. 다시 2탄, 3탄이 계속 발사되었다. 아버지가 포의 위치를 대략 확인하고 뒤돌아서는 찰나!
『쉬…』 소리와 함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얼마 만에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일어나려고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옆구리 통증이 너무 심해서 꼼짝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대로 교통호 속에 쓰러져 처박혀 있었다.
『야 아! 위생병!』 하고 소리를 질러 보았으나 그것은 입안에서 뱅뱅 돌 뿐이었다. 포탄은 계속 낙하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모기소리 같은 절규가 위생병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드디어 적의 역습공격이 시작됐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위생병! 朴하사!』를 연발하여 불러보았으나 아무도 오질 않았다.
아버지는 순간 다가오는 죽음을 느꼈다. 잠시 후 포탄의 폭발음이 멈추는 듯했다.
그 순간, 『선임하사님』을 외치며 호 속으로 朴하사가 뛰어들어왔다. 아버지는 감았던 눈을 뜨며 朴하사를 쳐다보았다.
『선임하사님, 빨리 일어나셔야 하겠습니다. 지금 후퇴 명령이 내렸습니다. OP는 이미 철수 중입니다. 제 등에 업히십시오』
『그래』
『국군 동지들, 우리를 풀어주시구레』
아버지는 그의 등에 업히려 했지만 옆구리가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아!~』
결국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며 업히는 것을 포기했다. 朴하사는 그런 아버지를 번쩍 들어 교통호 밖으로 올려 놓았다. 高地 정상에는 전투가 점점 치열해지고 있었다. 이때 건너편 소나무에 묶여 있던 포로들이 『국군 동지들, 우리를 풀어주시구레』 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선임하사님, 저 아이들을 어찌 합니까?』
朴하사가 포로의 처리를 물었다.
『놔둬라, 지금 우리가 끌고 갈 수도 없지 않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朴하사에게 빨리 후퇴하라고 했다. 그런데 朴하사는 아버지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서 묶여 있는 포로들에게로 뛰어갔다.
『야! 너희들, 풀어주면 국군 쪽으로 우리와 함께 가겠는가?』
『네, 네, 국방군과 함께 가갔시오』
『그래. 그러면 우리 선임 하사관님이 보다시피 부상을 당해서 움직이질 못하신다. 함께 모시고 가겠는가?』
朴하사는 제안했다.
高地에는 20분 안에 적이 점령할 것 같은 위기감이 감돌고 있었다. 朴하사의 제의를 받은 人民軍(인민군)은 대답했다.
『우리는 땅카병이 아니오? 빨리 풀어 주시면 우리가 메고 갈 겁니다』
朴하사가 그들을 풀어주자 인민군 포로들은 땅카를 급조했다. 그리고는 아버지를 태워 50%의 경사진 산비탈을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간은 오후 4시였다. 하지만 20도 경사진 비탈길을 내려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아버지와 같은 거구를 메고서 쏟아지는 비 속을 달린다는 것은.
朴하사는 뒤에서 두 포로의 등에 총을 겨눈 채로 독려를 하고 아버지는 누운 채로 칼빈 총을 앞의 포로의 등에 겨눈 채, 고통을 참으면서 死地(사지)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아버지의 옆구리는 이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통증의 정도가 심했다.
『야 ! 朴하사! 아파 죽겠다. 좀 쉬었다 가자』
아버지는 고함을 지르며 소리를 질렀지만 그들은 무시한 채로 미끄러지고 자빠지면서 앞만 보고서 줄기차게 달리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쉬었다 가자고 애원을 했지만 朴하사는 오히려 부탁을 했다.
『선임하사님! 쉴 시간이 없습니다. 참으십시오. 장대 소나기가 쏟아지면 계곡을 건널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朴하사의 절박한 심정이 결국 아버지를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견디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8시간.
그제서야 계곡에 도달했다. 뛰어내려오면 한 시간 거리도 안되는 곳을 이들은 아버지를 위해 고생하며 내려왔던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스러웠고 지겨웠던 장장 8시간의 시간.
소나무 막대기에 전선줄을 둘둘 묶어서 만든 땅카 위에 육중한 환자를 싣고 칠흑같이 어두운 그밤, 이슬비 내려 미끄러운 비탈길을 적의 추격을 피해 탈출한다는 것이 그리 쉽겠는가? 특히나 생명을 책임지고 아버지를 끌고 간 사람은 동료 전우도 아닌 적군이 아닌가.
아버지는 전쟁일화를 우리 가족에게 종종 말씀하신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살아남은 대표적인 우리의 한국 老兵 중의 하나인 아버지를 구해주신 당시의 朴하사님과 인민군 포로들에게 감사한다. 아울러 전쟁 이후 연락이 끊어진 朴하사님과의 해후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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