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면서 행복한 시간을 경험하는 데는 대체로 객관과 주관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불편함 없는 부잣집이나 名門大家(명문대가)에 태어났다고 반드시 행복을 느낀다고 말할 수 없다. 반대로 不幸하고, 미천한 가정에 태어났다고 해서 계속 불행하고 좌절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사람마다 주어진 객관 조건 속에서 건실한 주관이 배양·발전되어 객관 조건을 주관에 따라 잘 활용하거나, 불우한 객관 조건 속에서 오히려 주관을 단련·발전시켜서 자기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강철 같은 의지야말로 행복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라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근본에는 인간의 본성은 善(선)하고 義(의)롭다는 性善說(성선설)을 전제로 한 이야기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生의 思考(사고) 근본에는 나의 성장기의 가정환경과 사회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정환경에서는 아무 부족함이 없는 小地主겸 自作農에다 한학자이신 부친의 訓導(훈도)와 儒敎(유교)문화 분위기 속에서 받은 영향이요, 사회환경에서는 부친의 村落(촌락) 지도자로서의 일상에서 보는 지도자상과 불우한 농민들에 대한 同情心(동정심)에서 나오는 자기 자신의 꿈, 즉 주관의 발전이었다.
주관의 성장발전에 있어 새로운 객관적 조건에 봉착하거나, 동일한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였을 때 우리는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와 같은 나의 첫 번째 경험은 民族協和(민족협화) 王道樂土建設의 이론을 탐구한다고 하는 만주건국대학 학생시절 대학 건학정신과 현실 사이의 乖離(괴리) 때문에 고민할 때 국제주의와 친일동화주의로 가는 동창도 있었지만 六堂(육당) 崔南善(최남선) 선생의 薰陶(훈도)로 민족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기를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두 번째로 행복했던 순간은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날이었다. 이날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민족 모두 한없는 기쁨에 가득찬 날이었다. 오랜 세월 고대했던 기쁨인 만큼 그 기쁨의 깊이와 폭도 비할 수 없이 깊고 컸다 할 것이다. 오랜 세월 기다리며 노력한 목표에 도달하였을 때의 기쁨의 度(도)를 생각할 때, 우리 민족이, 「빨리 빨리」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참을성 없고 조급해서 개인이나 민족 전체의 입장에서 千年을 내다보는 웅대한 꿈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恨(한)이다.
나의 세 번째 행복의 순간은 평생 伴侶(반려)를 만나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며 부모님 승낙을 얻어 결혼하던 날의 기쁨이었다. 성서 구절 가운데도 있듯이 둘이 하나가 되는 신비 속에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은 모든 사람이 가지는 경험일 것이다. 이 신비 속에 나 자신도 나의 모든 것을 아내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다는 서약을 마음속으로 하였던 것이다. 한평생 살면서 이기심이 고개를 들 때에 나는 언제나 결혼식 때의 맹서를 반성한다. 행복한 순간의 連續(연속)을 위해 하느님은 우리에게 自省(자성)의 지혜를 주신 줄 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함은 인간만이 자성할 수 있는 점을 말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자성이나 자기 희생도 愛己(애기)의 연장선상에서의 愛他(애타)이기 쉽다 할 것이다.
나의 네 번째의 행복의 순간은 유일 절대자에 순종하기를 서약하면서 천주교인이 되는 날의 행복감이었다. 愛己·愛他를 초월한 행복감이라 할 것이다. 愛己·愛他를 초월하였을 때 나는 어떤 이념의 객관 조건에 부딪쳐도 그것은 나에 대한 하느님의 시련이요, 격려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고민이야 왜 없으랴. 그러나 그 고민 속에서도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나 온 한평생 행복한 순간 순간을 생각하면서 행복은 스스로 주어지거나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객관 조건을 통제할 수 있는 주관의 확립에서 오는 것이며, 오래 참고 노력한 끝에 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뿐이겠는가. 진정한 幸福은 나를 희생하여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며, 무한한 행복은 小我(소아)를 초월하는 순간에 내려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小我를 초월한다고 해서 한 번 하면 永久不變(영구불변)한 것이 아님은 두말할 것도 없다. 계속 참고 인내하며 노력한 끝에 달성된 꿈의 실현 속에서와,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위하며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였을 때에 경험하는 것이 喜悅感(희열감)이요, 幸福感(행복감)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행복감은 어디까지나 자기 입장에서의 행복감이지만 진정한 순수무구한 행복감은 小我를 초월할 때에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행복을 느꼈을 때(1)
- 姜英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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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1-22, 09: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