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의 김대중 연구(7)
미공개 자료를 中心으로 쓰는 金大中 연구③-2; 「암살기도」라는 김대중 교통사고 30년 만의 현장 검증;
『맞은 편 트럭 보기 힘든 상황』
―맞은 편에서 오던 트럭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까.
『제가 탄 2호차는 고갯마루를 넘어서 커브길을 내려가는 중이었고, 金大中씨가 탄 차는 평지로 접어드는 상황이었습니다. 1호차보다 높은 위치에 있던 제가 처음 본 것이 트럭의 윗 덮개였습니다. 그러니 평지에서는 맞은 편에서 올라오던 트럭을 보기 힘든 상황이었죠』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金大中씨 탄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택시의 추월을 막은 겁니다. 택시를 추월시켜 주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고를 당한 택시에는 누가 타고 있었습니까.
『추월시켜 주면서 보니까 앞자리에 운전수 외에 여자 2명, 뒷자리에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사고 직후 택시 앞자리에 타고 있던 승객의 보자기에서 터져나온 고액권이 피범벅이 되어 흩어져 있었습니다. 박살난 택시는 목포 번호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5명이 목포 택시 한 대를 대절한 것인데, 이들도 우리처럼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급하게 광주공항으로 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거액의 돈 보자기를 소지한 것으로 미뤄 상인들인 것 같았습니다. 신혼부부가 택시에 타고 있다가 즉사했다는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모르겠습니다』
許京萬 당시 수사 검사(現 전남 지사)는, 자기 차선을 지키며 잘 가고 있던 金大中 의원 승용차를 맞은 편에서 오던 트럭이 갑자기 중앙선을 침범해 들이받아 사고가 일어났다고 반박했다.
許지사의 주장대로, 만일 트럭이 먼저 중앙선을 침범했다면 현장에서 3명을 즉사케 한 트럭운전사는 重刑(중형)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는 트럭운전사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고, 트럭운전사는 1심에서 禁錮 8월(權씨 주장. 金大中씨는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중간에 풀려났다고 주장)이란 「가벼운」 刑을 선고받았다.
이 정도로 가벼운 刑이 선고되려면 트럭 운전사 뒤에 막강한 「배후」가 있거나 검찰에 대한 「외압」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기자는 許京萬 지사에게 수사 당시 상부나 외부로부터 사건을 축소하라는 압력이 있었는지를 물어보았다.
許京萬 지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뭣 때문에 검찰에 압력을 넣겠소. 내가 받아본 적도 없소. 그리고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어요』
―중앙선을 침범해 3명이나 죽었는데도 禁錮 8월이라면 너무나 가볍지 않습니까.
『사람이 죽었어도 합의되면 집행유예로 나가고…. 그러니까 일반적인 사건은 합의가 되면 집행유예로 나가는 상황이었어요. 형량은 조금 적게 나왔더구만요. 업무상 과실치사는 그 당시 1년을 넘지 않았어요』
―트럭운전사를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한 후 목포지청장이나 광주지검장으로부터 사건을 잘못 처리했다는 추궁을 받은 적은 없습니까.
『없었어요. 나는 검사 하면서 내 소신껏 일한 사람이에요』
許지사에게 기자가 파악한 사고지점의 지형과 사고 당시 金大中 의원이 탄 승용차와 경호차, 그리고 택시와 트럭의 위치를 그림으로 그려 보여 주고, 택시의 추월을 막으려고 중앙선을 침범한 승용차가 사고의 직접 원인이 아닌지를 물어보았다.
許지사는 『내가 그 사고를 왜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냐 하면, 동교동 집에서 金후보를 참고인으로 조사하면서 사고 원인 때문에 많이 싸웠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졸다가 사고가 났다는데 어떻게 살인을 입증하나』
『金후보는 살인음모라고 주장하고 다니고, 나는 주임검사로서 살인미수로 기소못하니까 논쟁에 대비해야 할 것 아닙니까. 나하고 金후보는 사고 원인과 추월에 대해 한참 싸웠어요. 金후보는 「이 사고는 나를 살인하려고 한 것 아니냐, 살인미수 아니냐」고 말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과실이 있는 사고도 있다. 졸다가 사고가 났다는데 내가 어떻게 살인을 입증하냐」고 했어요. 큰 소리도 나오고 했어요.
金후보 승용차가 택시의 추월을 막으려고 한 것이 사고 원인과 직결된다면 金후보 운전사를 입건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부터 金후보 승용차 운전사를 입건 안했어요. 金후보 승용차가 택시를 추월한 게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추월한 것하고 사고하고는 관계가 없어요』
기자는 許지사에게 金珍培씨가 쓴 「金大中 受難史-인동초의 새벽」에 기록된 교통사고 부분을 읽어 주고 『이 책에는 택시가 金후보 승용차를 추월하려다 사고가 일어났다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許지사는 『그건 정확한 것이 아닐 거요』라고 말했다.
―최근 발간된 金대통령의 자서전(역사와 함께 시대와 함께)에도 「택시가 경호차를 추월해 내 승용차를 뒤따라 왔다」고 되어 있고, 일부 목격자들도 金후보 승용차가 앞에 가던 택시를 추월한 게 아니라, 뒤따라 오던 택시가 金후보 승용차를 추월하자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이 택시의 추월을 막으려다 사고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金후보 승용차가 택시보다 앞에 있었다는 점은 지사님이나 목격자들의 진술이 일치한데, 金후보 승용차가 택시를 추월한 후 자기 차선에서 정상적으로 달리고 있었다는 지사님의 주장은 일부 목격자들의 진술과 반대입니다.
『목포에서 예고도 없이 비행기가 안 뜨고 서울 유세는 잡혀 있으니까, 광주비행장에 가려고 (金후보 승용차가) 속력을 냈던 것입니다. 金후보가 탄 차도 과속이었어요. 빨리 달렸다고요. 택시를 추월해서 가는데 앞에서 오던 트럭이 밀었던 것입니다』
―수사기록을 보고 말씀하는 겁니까, 기억에 의존하는 겁니까.
『그건 틀림없어요. 이 문제를 가지고 金후보와 한참 싸웠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요. 金후보도 나한테는 추월 안했다고 했어요. 金후보는 추월이 사고의 원인이 된 것으로 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죽어도 (자기 차가) 추월 안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추월하고, 사고 원인하고는 상관이 없다. 왜 추월 안 했다고 하느냐」고 따진 기억이 나요』
―金후보 승용차가 택시에게 추월을 주지 않으려고 하다가 사고가 일어났다는 목격자의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트럭운전사는 변명할 여지가 없으니까 졸음운전했다고 주장했어요』
―택시 승객이 신혼부부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뭡니까.
『그런 것까지는 내가 조사하지 않았고, 경찰 수사기록에 그렇게 되어 있었어요』
―사고 현장에 흩어져 있던 피묻은 고액권들은 보았습니까.
『나는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된 후 현장에 갔어요. 돈은 보지 못했습니다』
―사고는 왜 생겼다고 보십니까.
『둘 중의 하나예요. 나도 金후보한테 그랬어요.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장거리 운전하다가 졸다가 사고가 났다고 하는데 과실일 수도 있다. 본인이 자백을 안 하는데 살인미수를 입증할 수 없다. 그래서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할 수 밖에 없다」고 했어요. 나는 그때 검사 입장이었어요』
―트럭운전사가 졸음운전했다는 부분이 수사기록에 나와 있습니까.
『예』
트럭운전사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에 대해 許지사는 트럭이 갑자기 중앙선을 침범해 金의원 승용차를 향해 돌진했다고 주장했다. 갑자기 돌진한 원인은 운전사의 졸음운전 때문이라고 했다. 부산에 살고 있는 트럭운전사 權重億씨는 최근 기자와 인터뷰에서 『졸지 않았다』고 하면서 사고 당시와 그 후를 이렇게 말했다.
『(광주에서 목포 방향으로 가는 길에)고갯마루에 오르자마자 반대편에서 세단차가 중앙선을 침범, 내 차선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당황하여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저로서는) 내리막의 빗길이었습니다. 왼쪽으로 돌면서 트럭이 미끄러져 내려가는데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제가 몰던 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한 세단차(여기에 金大中 의원이 타고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를 살짝 부딪치고 뒤따라오던 택시를 들이받았습니다. 경찰이 와서 확인하였지만 미끄러져 내린 스키드 마크가 쫙 나 있었습니다. 제가 세단차 운전사한테 「당신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항의했지만 그는 중앙선 침범사실을 부인했습니다. 그가 중앙선을 침범 안했으면 왜 제가 제동을 걸었겠습니까.
제가 현장에서 도망갔다고 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택시에 탄 사람들을 끌어내는 일을 했습니다. 울면서 도와달라고 소리치곤 했습니다.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 살인기도가 아닌가 하는 추궁을 받은 기억도 없습니다. 저는 이 일로 감옥에 갔다왔습니다. 1심에서 금고 8월을 선고받았을 때는 너무나 억울한 생각이 나서 항소했지만 기각되었습니다.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집사람은 먹고살 길이 막막하니까 집을 나갔습니다. 제가 두 딸을 키웠는데 학교엘 보내지 못했습니다. 10년여 전 집을 나간 뒤로는 소식이 없습니다. 저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고로 저는 죄값을 다 받았습니다』
기자는 許京萬 지사에게 『이 단순한 교통사고를 살인미수사건으로 볼 수도 있다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許지사는 金大中 의원이 주장했다며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날씨가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닌데 목포공항에서 비행기가 안 뜬 것부터 의심하지요. 공화당 소속 洪承萬씨가 트럭회사 회장이었다, 사고 후 서울에 올라가니까 그 시간에 이미 金후보가 죽었다는 소문이 유세장에 돌더라 등 몇 가지를 댔어요』
―근거가 있는 이야기입니까.
『내가 입증할 수도 없고, 내가 조사한다고 해서 살인미수로 기소할 수도 없는 사건이었어요』
―트럭의 소속회사인 범한화물 사장(편집자注:사장은 洪國泰씨로 그 당시 공화당 전국구의원 후보였던 洪承萬씨의 아들)은 조사했습니까.
『조사 안 했어요』
―왜 안 했습니까.
『사건을 보면 기소할 수 있는 건지, 없는 건지를 대충 알지 않습니까. 이 사건은 고의로 죽이려 했다 하더라도 증명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단서가 있으면 수사검사는 당연히 밝혀내야 하지 않습니까.
『(내가 운전사를) 두들겨 팰 겁니까, 어쩔 겁니까. 경찰에서 못 밝히면 검찰에서 밝힌다는 게 힘들어요』
<8편에서 계속>
조갑제의 김대중 연구(7)
- 우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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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1-22, 12:07











